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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17일(화) 오후 2시 신촌강서교회(황신기 목사 시무)당에서 수도권노회 임원초청 ‘제9회 서울포럼’(위원장 유상현목사) 소포럼이 열렸다. 당일 발표된 김중락 교수의 논문을 아래에 싣는다. - 편집자 주

<2019년 12월 17일 수도권노회 임원초청 서울포럼 강의안>

노회는 장로회교회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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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락 (경북대학교)

1. 들어가며

2. 노회가 교회의 단위이다.

3. 누가 노회의 회원인가?

4. 시찰(visitation)을 해야 노회이다.

5. 사역자의 사례, 노회의 책임이다.

6. 신학생 선정, 교육, 그리고 사역지 배분도 노회의 책임이다

7. 교회개척, 노회가 결정하고, 노회가 책임져야 한다.

8. 교회분립, 노회가 강제해야 한다.

9. 노회장은 노회의 의장, 즉 사회자일 뿐이다.

10. 총회 총대의 선출, 정치적 영향을 없애야 한다.

11. 목사청빙, 노회가 감독해야 한다.

12. 나가는 글: 내 사랑 장로회교회.

1. 들어가며

한국교회가 많이 아프다. 한국교회의 압도적 다수는 장로회교회이므로 한국교회의

아픔은 곧 장로회교회의 아픔이다.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하나? 마치 고르디우스의

매듭과도 같이 얽혀있는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보면 이를 풀 수 있는 단칼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장로교회의 원형을 살펴보면 우리가 얼마나 본래의 궤도에서 벗

어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장로회 정치를 원형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문서는 스코틀랜드의

『제2치리서』(The Second Book of Discipline, 1578)와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만든

『장로회 교회정치』(The Form of Presbyterial Church Government, 1645)이다.

오늘날 전세계 장로회교회가 이들 문서를 교회정치의 가장 중요한 기초로 여기고 있

으며, 이는 한국의 장로회 교단들도 마찬가지이다. 『제2치리서』는 존 녹스의 제자인

앤드류 멜빌(Andrew Melville)에 의해 초안되고, 스코틀랜드 총회에서 받아들여진 최

초의 장로회 헌법이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장로회 교회정치』는 『제2치리서』를 기

초로 하여 이를 더욱 정교하게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문서와 함께 우리가 참고해야할 부분은 최초의 장로회교회를 만들고 시행한

스코틀랜드 교회의 역사이다. 물론 그들에게서도 한계가 발견되지만 그에 앞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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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배워야 할 많은 부분들이 있다. 본 글은 위자료들을 근거로 한국 장로회교회의 노

회 모습을 점검해보고, 우리가 배우고 개혁할 부분을 찾기 위함이다.

2. 노회가 교회의 단위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장로교’란 말은 ‘장로회교회’를 의미한다. 즉, 장로회

(eldership)는 치리회인 총회, 노회, 당회를 가리키는 말이다(각 노회별로 존재하는

치리장로 친목회가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총회 차원의

지도가 필요하다). 이 치리회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노회(presbytery)이다. 사

실 노회는 장로회의 준말이기도 하다. 노회가 중요한 이유는 장로회의 대부분 치리가

노회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노회가 교회의 기본단위이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만든 『장로회 교회정부』는 노회가 교회의 단위라는 사실을 상

세히 설명하고 있다. 초대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나 에베소 교회가 하나의 교회였고 그

교회 아래에 많은 회중, 즉 개별교회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개별교회를 교회로

간주하고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회중은 교회가 아니라 교구에 불과하다. 따라서 개

별교회는 교구교회(parish church)인 것이다. 진정한 교회의 단위는 하나의 예배모

임 즉 교구교회가 아니라 많은 교구교회로 구성된 노회인 것이다. 이는 교구교회들이

하나의 교회정부인 노회 아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의미에서 노회는 장로회

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 중반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총회에서 가장 큰 쟁점은 장로회파

와 독립파 사이에 일어난 교회론이다. 총회의 독립파 목회자들은 그들의 주장을 담은

『변증론』(An Apologeticall Narration, 1643) 을 출판하였다. 같은 경건한 청교도였

지만 독립파는 교구교회(개별교회 또는 회중)가 교회의 단위라고 보았고, 노회를 상급

기구로 인정했지만 교회의 최종적인 결정권은 노회가 아니라 개별교회에 속한다고 주

장하였다. 독립파 역시 당회, 노회, 총회의 구조를 반대하지 않았고, 국가 교회 조직

내에 남아있길 원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노회는 느슨한 연합체에 불과하였고,

개별교회는 총회나 노회의 결정에 꼭 따라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들은 노회를 인정

했으나 그들에게 최종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거부하였다.

반면 총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장로회파는 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들은 개별교회에 최종적인 결정권을 허락하면 국가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고,

교회의 분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모든 노회는 총회의 결정을, 모든 교구교

회는 노회의 결정을 따라야 하는 것이었다. 이것만이 교회가 교리의 순수성을 지키고,

이단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당시 청교도 목사인 존 바스트윅(John Bastwick)이

독립파를 ‘독립적인 장로회파’(the Presbyterians Independent), 장로회파를 ‘의존적

장로회파’(Presbyterians Dependent)로 구분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한국 장로회교회는 장로회의 간판을 달고 있으나 실상은 17

세기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장로회파와 대립했던 독립파가 추구한 교회의 모습과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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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히 일치한다. 노회를 인정하지만 모든 것은 교구교회에서 결정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노회는 사실상 형식적인 조직에 불과하다. 노회는 시찰을 멈추었고, 개별교회가

어떠한 교리를 가르쳐도, 종교개혁의 이전의 성례를 행해도, 재정을 어떻게 사용해도

관여하지 않는다. 시찰회 모임은 친목회로, 노회는 목회자 노조로 발전한지 오래이다.

현재 한국의 장로회 교회가 이 같은 모습을 바꾸지 않으려면 ‘장로회’의 간판을 떼고

‘독립’의 간판을 달아야 마땅할 것이다. 노회는 개별교회에 대한 감독권을 회복해야

한다. 이는 노회가 교회의 단위임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3. 누가 노회의 회원인가?

장로회는 한마디로 ‘장로(presbyter)들’의 모임이다. 『제2치리서』는 장로회가 “목

사, 박사, 그리고 일반적으로 우리가 장로라고 부르는 이들”로 구성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사는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이니 오늘날의 신학교수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

다. 그리고 『제2치리서』는 장로가 “하나님의 교회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고, “목사와

마찬가지로 영적기능(function spiritual)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제

2치리서』는 “때때로 목사와 박사도 장로라고 불린다”고 언급하고 있다. 요컨대 『제2

치리서』는 목사, 박사, 장로를 모두 장로로 보고 있으며, 이들의 모임임 치리회를 ‘장

로회’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장로회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장로회 정치』는 “노회는 말씀 사역자(ministers of the Word)와 교회 치리자

church-governors)로 구성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목사와 장로 모두가 노회의

구성원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장로회는 장로들로 구성되는 회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세워지는 과정도 우리에게 동일한 결론을 말해준다. 목사나 장로는 모두 개

별교회 회중의 동의(선출)를 통해 노회에 의해 세워진다. 목사는 노회의 허락 하에 개

별교회의 회중에 의해 선출되고, 장로 역시 노회의 허락 하에 회중에 의해 선출된다.

그러니 노회에 의해 세워진 목사, 장로 모두가 노회의 당연직 회원이라 할 것이다.

물론 나라마다, 노회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게 운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장로 회원이

너무 많은 경우 이를 줄이기 위해 대의원 제도를 운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당연직 노회원의 자격을 상실한 것은 아니다. 북미의 대부분 장로회 교

회가 모든 목사와 장로를 다 노회원으로 여기고 노회 참석을 의무화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든 회원이 참여하는 노회가 원칙이다.

장로의 수가 너무 많아 노회의 모임이 어렵다면 작금의 노회를 세분할 필요가 있

다. 실상 한국 장로회교회의 노회는 너무 많은 교회를 관리하고 있으며 이는 노회의

실제적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에 하나 노회에

서 목사와 장로의 세력 대결을 우려하여 장로들의 노회 참석을 제한한다면 이는 우리

가 스스로 하나님의 직분을 감당하는 자가 아니라 교권이라는 세속적인 욕심에 사로

잡힌 자들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북미의 장로교회들이 모든 장로와 목사의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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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출석을 의무화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배워야 한다. “목사 회원, 장로 대의원 여

러분!” 참으로 이상한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사역지를 떠난 직분은 없다. 어느 장로회 교단이나 마찬가지로 은퇴한 목사들이 노

회에 참석하여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 대해 불만이 가득해보인다. 어느 교단에는 은퇴

한 목사들이 발언권과 의결권을 모두 가지고 있다하니 그 불만을 이해할 만도 하다.

은퇴한 목회자들이 후배 노회원들의 부족한 모습을 보며 가르쳐야겠다는 의협심(?)이

없지 않겠지만 이는 분명 잘못된 관습이다. 목사와 장로는 계급장이나 자격증이 아니

다. 그들의 직분은 항상 구체적 사역과 관련이 있다. ‘oo교회 목사’는 있지만 그냥 목

사는 없다. ‘oo교회 장로’는 있지만 그냥 장로는 없다. 목사와 장로는 특정 사역지에

맡겨진 직분이다. 노회가 어떤 이를 그냥 목사, 그냥 장로로 세운 것이 아니라 ‘oo교

회 목사 또는 oo교회 장로’로 세운 것이다. 장로가 섬기는 교회를 떠나면 장로가 아

니듯이 목사도 섬기는 교회를 떠나면 목사가 아니다. 엄격히 말해 은퇴한 사람은 더

이상 목사가 아니다. 우리가 예의상, 호칭상 그렇게 불러도 이는 기술적인 의미를 담

은 말이 아닌 것이다. 무임목사도 마찬가지이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장로회 정치』는 “목사 안수는 개별회중을 위해 고안 된다”고

명확히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장로회 정치』는 “개별회중이 반대하는 이를 목사로 안

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역시 회중이 없는 자는 목사가 아님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장로회 정치』는 개별회중에 해당하는 특수목회 사역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도 노회가 그 사역을 맡기는 경우에만 목사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노회는 필요한 경우 경륜이 깊은 은퇴 목사, 장로의 지혜를 빌릴 수도

있고, 또 그리해야 한다. 그러나 조언은 조언으로 끝나야 아름다울 것이다.

노회 회원이 누구냐의 문제는 노회와 당회의 바른 운영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들

이 스스로를 노회로부터 파송을 받은 자들이라고 여길 때 책임져야 할 곳이 있음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장로 역시 노회의 당연직 회원이라는 인식은 그들에게 노회의

운영에 대한 더 강한 의무감과 자부심을 부여할 것이고, 사역자 간의 평등이라는 장

로회의 또 다른 원칙도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노회가 교권모리배들의 정치(politics)

가 아니라 교회의 바른 운영, 즉 정치(polity)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려면 이러한 혼

란은 즉시 중지되어야 할 것이다.

4. 시찰(visitation)을 해야 노회이다.

종교개혁 초기 스코틀랜드 교회에서 노회는 법정을 비롯하여 다양한 기능을 수행했

으나, 그 중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시찰이었다. 『제2치리서』에 따르면 모든 치

리회는 교회와 교리의 순수성을 지키고, 교회의 평안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 그들의

사법권 아래 있는 교구교회나 치리회(당회)에 시찰(visitation)을 실시해야 한다고 규

정하고 있다. 앞의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노회가 교회의 단위이고 개별회중(교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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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감독할 권한과 책임이 있다면 노회의 정기적인 시찰은 가장 중요한 노회의 존재이

유라고 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 개혁교회의 시찰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노회는 2명 이상의 시찰단

을 조직하거나, 전 노회원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개별교회에 대한 시찰을 시행하였다.

대개의 경우 특정한 교회의 시찰에 앞서 노회는 시찰일과 설교자를 정하였으며, 시찰

일에는 해당 교구에서 예배를 드리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금하는 일부터 시작하였

다. 그 후 시찰단은 방문한 교회에서 목사를 제외한 당회원들과 모임을 갖고 목회자

에 대해 감사를 행하기도 하였으며, 그 후에는 목사와의 면담을 통해 장로들의 문제

에 대해서 비슷한 조사를 행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당회의 기록 및 교회당의 상태와

재정문제 등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를 감행하였다. 대부분의 경우 시찰은 하루 종일

소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시찰은 감시, 감독, 감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같은 교우들 간의 교제였으며 노회와 개별교회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고자 하

는 노력이었다.

한국 대부분의 장로회교회는 그 산하에 시찰회라는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노회보

다 더 작은 그룹으로 이웃교회 간에 좀 더 편리하게 시찰을 시행하라는 의미로 만들

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찰회가 그 기능을 행하지 못하고 이웃교회 목회자들 간의 친

목회로 전락한지 오래이다. 교회 시찰보다는 관광지 시찰을 하고 있는 셈이다. 노회가

시찰회에 시찰을 독려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도 없다. 노회나 시찰회나 누구도 시찰

에 관심이 없다.

시찰이 사라진 오늘날 한국 장로회교회의 모습은 처참하다. 어느 교회는 교인이 수

천 명이 되어도 장로는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니 장로회교회의 모습을 포기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노회는 간섭하지 않는다. 적어도 노회비는 잘 내고 있기 때문인

가? 기분이 상할까봐 재정기록을 보자고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개별교회의 설교

에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은 금기 중에 금기다. 나도 당할 수 있기 때문일까? 같

은 교회이지만 그저 남의 교회이고 이웃교회일 뿐이다.

교인들도 이러한 상황에 편리함을 느낀다. 정당한 노회의 관심은 간섭으로만 여긴

다. 시찰을 통해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사전에 예방하기보다는, 문제가 발생한 후에야

전권위원을 보낸다. 그러나 아름답고 원만한 해결은 쉽지 않다. 지금이라도 진정한 시

찰이 이루어지도록 시찰회 기능을 회복시켜야 한다. 최소한 노회 임원들이라도 정기

적으로 교구교회를 시찰하고 개별교회의 문제를 바로잡는다면 이로써 노회의 회복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노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시찰이 없으면 노회의 존재이유

도 없다.

5. 사역자의 사례, 노회의 책임이다.

한국 장로회교회의 반장로회적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노회 내 회원목사들

간의 사례불평등이다. 이는 ‘사역자간의 평등’(parity between ministers)이라는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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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교회의 중요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사역자간의 평등은 단지 감독(주교)의 지위를 부

정하기 위한 원리만은 아니다. 노회에서 모든 회원은 평등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지

닌다는 정치적 평등에서 더 나아가 경제적 평등까지도 의미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실

상은 오늘날 노회 회원 간에는 종교개혁이전의 주교제도하에서보다 더 큰 불평등이

존재한다. 노회에서 상회비를 많이 내는 교회의 목회자와 장로들이 큰소리 내는 상황

이 만들어진지 오래다. 경제적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데 정치적 평등이란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역사를 살펴보면 특권 귀족세력에 대한 평민들의 불만은 늘 정치적

인 영역에서 경제적인 영역으로 옮겨간다. 경제적 평등이 더 중요하고 어려운 평등임

을 말해주는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 간의 경제적 균등에 대해 여러 곳에서 언

급하고 있다. 믿음의 형제들 간에 서로 돕고,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성도들 간의 “균

등”(고후8:13)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세상으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 진정한 사랑이

존재함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의 선생인 목사들 사이에도 이러한 모

습이 보이지 않는데 우리가 어찌 세상에 사랑을 논할 수 있을 것인가?

장로회제도의 초기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제2치리서』를 만든 스코틀랜드 개혁교

회는 이 부분에 대해 상당한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교구(parish)를 정함에

있어서 경제적 빈부를 따라 결정하였다. 다시 말해, 교구가 목회자 한 명을 부양하고,

가난한 자를 도울 수 있는 정도가 되도록 한 것이다. 『제2치리서』는 교회재정의 4중

분배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는 목사 또는 감독의 생계와 손님접대를 위해,

둘째는 장로들과 집사들과 모든 성직자들을 위해, 셋째는 가난한 자, 병자들, 낯선 자

들을 위해, 넷째는 교회의 유지와 다른 특별한 일들을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제2

치리서』 12장은 교구 구성에 있어서 교구 간 경제적 평등을 제시하고 있다. 보통의

교구는 한 개의 마을이었으나 부유한 도시의 경우 2개 이상의 교구로, 가난한 마을의

경우는 두세 개 혹은 그 이상이 연합하도록 하였다. 모두 교구교회가 경제적으로 자

립하고, 목회자를 부양하고, 가난한 자들 돕도록 의도한 것이다.

한국의 장로회교회는 이러한 가르침에 대해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대형교회나 어

느 정도 규모가 있는 교회의 목회자 사례는 상상 이상이다. 높은 월 사례금은 물론이

고 보너스, 고급사택과 고급자가용도 제공된다. 감추어진 소득도 적지 않다. 자녀교육

비, 그리고 퇴직적립금, 사택관리비, 각종 휴가비 등도 있다. 영수증 요구도 없는 도

서비와 목회 활동비도 있으며, 숨겨진 소득도 없지 않다. 반면, 같은 노회에 있으면서

도 교회의 열악한 재정 때문에 굶주리는 목회자들도 적지 않다. 목회자로서의 최소한

의 품위나 자녀교육은 고사하고 끼니조차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난 때문에 부업

으로 내몰리는 목회자도 적지 않다. 한 마디로 비참하다. 그러나 더욱 슬픈 것은 부

자교회들의 태도이다. 자기교회 교인들의 화장실을 최고급으로 바꿀지언정 장마철 지

붕이 새는 이웃교회에 신경 쓰는 법이 없다. 장로회교회란 이런 지독한 개교회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교회제도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같은 노회 내에서 이러한 경제적 불평

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무슨 장로회교회라 할 수 있겠는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가난한 이를 돕는 것은 교회의 기본적 본분이다. 경제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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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교회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국가에 손

을 벌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많은 목회자들이 차상위자로, 더

러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는 모양이다. 예전에는 교회가 구제를 베푸는 곳이었는

데 이제 교회가 구걸하는 모습이 되고야 말았다. 교회가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우리에게 이 문제를 개선할 의지가 없다면 ‘장로회’란 간판을 떼면 된다. 그러나 우

리가 장로회교회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달라져야 한다. 노회가 진정으로 한 교회이고

한 형제라면 더 이상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을 지켜보아서는 안 된다. 지금 교회를

‘헤쳐모여’ 하자는 것은 아니다. 『제2치리서』의 4중 분배로부터 통찰력을 얻어 보자.

『제2치리서』는 목회자 부양을 4중분배의 하나로 보고 있다. 즉 모든 교회는 수입의

25% 정도를 목회자들을 위해 사용하니 노회가 소속 교회들의 총 재정수입의 25%를

거두어 이를 소속 노회원들에게 균등히 분배한다면 되지 않겠는가? 너무 혁명적인가?

복음이란 혁명이고, 종교개혁도 혁명이었음을 잊지 말자. 물론, 이러한 제도가 지니는

문제도 있을 것이다. 노회원 중에는 소명이 없는 자도 있을 것이고, 일부는 무임승차

를 하려는 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노소에 따른 차등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

러한 문제들은 다른 방도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사례의 평등을 거부하는 논

리는 될 수 없을 것이다. 큰 교회 목사가 더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어디서 온 것인

가? 이것도 못하면서 우리가 세상을 위해 사랑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장로회교회’ 간판을 고쳐야 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이다. 더

나아가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이다. 즉, 교회인가 아닌

가의 문제이다.

6. 신학생의 선정, 교육, 그리고 사역지 배분도 노회의 책임이다.

“당신은 안 됩니다” 이런 소리를 듣고 싶다. 목회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이 많

은 시대이다. 그리고 목회자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장로회 교단에서

목회의 길을 원하는 사람은 노회의 추천을 받고, 신학교에서 훈련을 받아 목회자가

된다. 노회의 추천을 받는 과정은 식은 죽 먹기다. 나는 아직 노회의 추천을 받지 못

해 목회의 길을 포기했다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외국의 경우는 있었지만. 노회

가 목회자가 되려는 이들에게 “NO”를 외치지 못해 한국교회의 타락을 가져왔다고 말

한다면 지나친 주장일까?

지난 세기 중후반의 한국교회는 오늘날과 너무나 달랐다. 목회의 길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겠다는 각오 없이는 나서기 어려웠다. 목회자는 모자랐다. 이 상황에서

양극단에 속한 이들이 목회자로 유입되었다. 정말 헌신되고 유능한 이들로 어려운 길

을 자처하여 걸어온 이들이 한 그룹이고, 여러 가지 경쟁에서 실패하여 목회 외에는

다른 길을 찾지 못한 이들이 또 다른 그룹이다. 연령상 이들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최

고지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각 교단 노회에는 목회의 길을 원하는 이들을 스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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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장치가 있었지만 이는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난맥상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목회자는 교회의 지도자이다. 이들에게는 내적 소명이 있어야 하고, 교회를 이끌만

한 능력, 즉 외적 소명도 있어야 한다. 스코틀랜드의 『제1치리서』는 “경건하고 학식

있는 자”를 목회자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장로회

교회정치』는 목회자가 되려는 이에게 “삶의 거룩”, “학식”, 그리고 “소명”을 강조하였

다. 스코틀랜드의 『제2치리서』는 목회자에게 “말씀봉사”와 회중에 대한 “감독”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이처럼 교회에서 중요한 이들이 목회자들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러한 지도자를 세워왔는지, 그리고 세우고 있는지 묻는다면 그 대답은

너무나 명백하다.

장로회교회는 좋은 목회후보자를 찾아내는 정말 좋은 제도를 가지고 있다. 신학을

원하는 이는 소속 교회의 당회 추천을 받아야 한다. 당회원들은 그를 잘 아는 이들이

니 그가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노회로 이관한다. 노회는 필요한 인원을 고려하여 적합

성 여부를 판단하고 그의 훈련을 교단의 신학교에 위탁한다. 신학교 재학 중 노회는

그의 학업에 대해 감독하고 재정을 지원한다. 그리고 학업이 끝나면 노회는 그를 다

시 검증하고, 노회소속 목회자로 장립한다. 좋은 목회자를 만들기 위해 삼중 사중의

거름 장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장로회 교회에서 이러한 제도는 유명무실하다. 한 단계에서도 제대

로 지켜지는 곳이 없다. 당회차원에서는 지원자와의 안면 때문에, 또는 교회를 떠날까

봐 우려하여 거의 100% 추천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노회의 검증도 형식적이다. 노회

는 지원자가 당회의 추천을 받았다는 핑계를 대고 신학교에 추천서를 보낸다. 노회의

목회자 수급에 대한 계획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추천한 신학생에 대한 장학금은커

녕 제대로 배우고 있는지 한 번도 돌아보지 않는다. 신학교도 문제투성이다. 각 교단

의 신학교는 노회의 추천을 받지 않는 학생들을 입학시키기도 하며, 심지어 사후 추

천을 받는 조건으로 입학생을 모집하는 경우도 있다. 교단 신학교는 교단의 목회자를

양성하는 고백공동체이다. 엄격히 말해 노회가 위탁하는 학생만 교육을 해야 하는 것

이다. 학점이나 학위관리도 철저히 지켜지는지 의문이다. 수년을 가르친 제자에게 엄

격한 잣대를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을 것이다. 목사고시 역시 형식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많은 검증과정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정말 좋은 우리의 제도를 정상적으로 작동시켜야 한다. 이 과정에

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회의 역할이다. 노회는 기간별로 노회 내 목회자 수급상황을

점검하고 그에 맞는 인원을 추천해야 한다. 지금처럼 젊은 후보자들이 사역지가 없어

내몰리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철저한 후보자 검증을 통해 소명이 있는 자를,

그리고 해당 노회에 필요한 이를 신학교에 추천해야 할 것이다. 추천한 신학생에 대

해 재정지원을 해서 걱정 없이 오로지 학업에만 열중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해당 신학생의 성적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태만한 신학생에 대해서는 추천을 철회하

여야 할 것이다.

- 8 -

 

『장로회 교회정치』는 노회가 주관하는 목사고시에 대해서도 엄격한 규정을 제시하

고 있다. 노회는 대학에서의 전공과 성적도 파악해야 하고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을

읽을 수 있는지, 그리고 라틴어도 일부 알고 있는지를 조사해야만 했다. 어떤 신학저

서를 읽었는지, 정통교리를 알고 있는지, 성경의 장소나 연대기 그리고 교회사를 알고

있는지도 조사해야 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옛 전통을 지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충분한 지적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정신은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다.

7. 교회개척, 노회가 결정하고 노회가 책임져야 한다.

기독교인 수는 감소하는데 교회 수는 증가한다. 2018년 한국교회의 아이러니 중 하

나이다. 교회 수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교인수가 감소하고

있다면 이를 한국교회의 성장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비약해서 말한다면 그것은 사역지를 찾지

못한 이들이 교회개척을 통해서라도 일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는 기존의

교회에 실망하여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어보자는 동기에서 개척을 하기도 한다. 그러

나 대부분의 경우는 사역지를 찾지 못해서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숭고한 목적이 아니라 개인의 일자리 때문에 교회개척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문

제는 신학교 배출인원이 너무 않은 탓이기도 하지만, 너무 쉽게 교회개척을 시작할

수 있는 우리의 환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혹자는 개척교회가 많은 것이 무슨 문제냐

고 물을 것이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개척교회 성공률은 1%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

고 70% 이상이 미자립 교회라고 한다. 쉽게 생겼다 사라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대부분의 경우 개척교회는 목회자 본인이 단독으로 주도하여 시작한다. 목회자 본인

이 목돈을 구해 조그만 공간을 빌리고, 교회간판을 달고, 가족예배로 시작한다. 헌금

이 없으니 사례를 받을 방법이 없다. 어느 공적기관으로부터도 지속적인 지원이 이루

어지지 않는다. 간혹 찾아오는 이들도 너무나 적은 예배인원에 부담을 느끼고 합류를

포기한다. 어느 순간 목회자도 인내의 한계점에 이르고 실패를 선언한다. 유산된 것이

다. 너무나 많은 개척교회가 이러한 절차를 거친다. 이러다 보니 불신자들의 눈에는

동네 구멍가게 하나가 생겼다 사라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들에게는 교회는 영리

집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복음에 장애가 되는 현상이다. 그리고 꼭 필요한

경우 개척의 의지를 꺾어버리는 기제로 작동한다.

종교개혁 직후 존 녹스에 의해 초안된 제1치리서는 ‘시찰감독’(Superintendents)

의 자리를 규정하고 있는데 그들의 주요 임무는 교회가 없는 곳곳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다. 제1치리서가 규정한 시찰감독의 기능을 자세히 살펴보자.

“우리는 당분간(for this time) 이 나라에 있은 모든 경건하고 학식 있는 이들 가운데 12명 또는 10

명(우리가 전국을 구분한 지역만큼)을 선택하여 교회를 개척하고 일으키고, 그들로 하여금 지금 목회

- 9 -

 

자가 없는 곳에 목회자를 세우는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깁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이 나

라 모든 백성들이 사랑과 돌봄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여러분들도 백성들에게 빚이 있기는 마찬

가지입니다. 또한 단순하고 무지한 이들(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말씀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 지식을 갖게 되고, 그 지식으로 미신과 무지로 죽었던 자들이 경건의 느낌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

과 참된 종교와 예배에 대한 더 많은 지식을 구하도록 자극을 받을 것입니다. 만일 백성들을 내버려

두면 그들은 불평할 뿐 아니라 장님의 상태와 그들이 익숙한 우상숭배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부분은 그들이 교회가 필요한 곳, 즉 말씀이 필요한

곳을 위해 시찰감독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는 일을 전담하도록 한 것이다. 그렇다, 교

회는 일자리가 없는 곳이 아니라, 말씀이 필요한 곳에 세워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노회가 나서야 한다. 노회는 현재처럼 형식적 승

인만 해주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아무리 노회원이라 하더라도 노회의 승인을 받지

아니한 자가, 노회가 승인하지 않는 곳에 교회개척을 시작한다면 노회는 이를 적극

금해야 할 것이다. 노회는 노회의 관할 영역(boundary) 내에 교회가 없는 곳이나 필

요한 곳이 있는가를 바로 살피고, 교회설립이 필요하다면 교회개척을 주도해야 한다.

노회 내 개척을 지원하는 위원회가 있다면 시찰감독의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다음 노회는 이곳에 사역할 사역자를 세워야 한다. 물론 사역자 세움에는 철저한

검증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예배를 위한 적절한 공간과 사택을 마련해주고, 자립

시까지 사례비와 교회 운영에 필요한 경비 등 모든 경제적 지원을 다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노회는 가능하다면 인근 교회와 의논하여 일정기간 동역할 수 있는 인력

도 제공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결국은 노회가 교회의 단위가 아니던가?

총회나 노회는 교회수를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

회에는 대형교회의 분립과 원자교회(micro kirk)들의 통폐합이 우선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듯하다. 노회는 필요한 곳에 교회를 세우기도 해야 하지만, 작금의 상황에서는

대형교회의 분립 및 난립한 원자교회를 거리나 필요에 따라 통폐합하는 데 전력을 기

울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불신자들로부터 교회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단지 교회수의 증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자.

8. 교회분립, 노회가 강제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해왔듯이 대형교회는 이 시대 한국교회의 가장 큰 병리현상 중

하나이다. 대형교회란 교회의 크기가 정상적인 교회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교회를 말한다. 이는 교회가 어느 종파에 속했는지, 어떠한 신학에 기반 했는지,

무엇을 추구하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대형교회는 기본적으로 교인의 수, 즉 크기의 문

제이다. 모든 단체는 적정한 규모의 크기가 있다. 그 크기가 적정 규모를 벗어나면

그 단체는 정상적인 작동이 불가능한 것이다. 몸집이 큰 과거의 포유동물들이 생존에

실패했듯이 모든 단체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라도 적정 규모

- 10 -

 

의 사원을 벗어나면 심각한 경영위기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교

회도 교인의 수가 적정규모 이상이면 교회로서의 기능이 사라지게 마련이다.

오늘날 교구교회가 아무리 비대해져도 노회는 먼 산 불구경만 하고 있는 듯하다.

교회 규모가 어느 정도 되면 교회의 기능이 상실되고 수많은 부작용을 낳는다. 많은

부교역자들을 데리고 있으니 노회의 표결을 왜곡시키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그리고

제왕적 담임목사의 권한을 지속시키기 위해 당회의 회원수를 줄이기도 한다. 교인 수

가 1만 명이 넘는데 장로가 10명이 채 되지 않는 교회도 있다고 한다. 수족 같은 부

목사가 수십 명인데 당회든 노회든 맘대로 못하겠는가? 이러한 권력을 가진 목회자가

어찌 타락하지 않겠는가? 이 아까운 자리를 어찌 남에게 물려주겠는가?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 영국 케임

브리지 대학 역사학부 왕립석좌교수를 역임한 Lord Acton의 말이다. 이러한 부패를

막기 위해서는 노회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 노회는 일정 교인수가 되면 강제로

교회를 분립하도록 규정해야 하고, 이를 어기면 가차 없이 징계해야 한다. 노회의 중

요한 역할 중 하나는 법정이다. 단호함을 보여야 할 것이다. 큰 교회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두려워 말아야 한다. 썩은 부분은 도려내어야 나머지가 온전할 것이다.

9. 노회장은 노회의 의장, 즉 사회자일 뿐이다.

장로회 교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회의체에 의한 교회조직”(governments by

assemblies)과 “사역자 간의 평등”(parity between ministers)이다. 전자는 이미 언

급한 부분이므로 후자를 살펴보자. 감독제와는 달리, 치리회인 노회나 총회에서는 누

구나 평등하다. 그러나 한국의 장로회 교회에서 총회장이나 노회장의 경우 상당한 권

력(?)을 행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감독제 하에서 교황이나 주교가 권력을 행사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엄격히 말해 총회장이나 노회장은 총회와 노회를 진행하는

사회자(moderator)일 뿐이다. 총회나 노회가 열리는 기간에만 존재하는 직책이다. 그

런데도 우리는 그를 ‘총회장’ 또는 ‘노회장’이라 부른다. 이는 치리회가 열리지 않는

기간에도 그를 교단 또는 노회의 총책임자로 여기도록 만들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호칭은 부적절하며 결국 한국 교회를 타락시킨다. 우리가 그들에게 총회기간 밖에서

도 교단의 실권을 장악하게 만드는 한, 그들은 타락할 수밖에 없다. 현재 ‘총회장’ 또

는 ‘노회장’이 되기 위해 온갖 불법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진정한

장로회교회를 이루고자 한다면 ‘총회장’과 ‘노회장’이란 용어를 버려야 한다. 지금이라

도 원래 의미인 ‘총회의장’과 ‘노회의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총회나

노회가 열리지 않는 기간에도 ‘회의체 조직’이라는 장로회 교회의 특징을 살려 위원회

를 구성해서 일하는 것이 옳다. ‘장’이 있는 한 권력이 존재하고, 권력이 있는 한 부

패할 수밖에 없다.

10. 총회 총대의 선출, 정치적 영향을 없애야 한다.

- 11 -

 

노회는 노회 회원 중 상회인 총회에 참석할 대의원을 선출하는 기능을 가진다. 16

세기 후반의 스코틀랜드 교회도 완벽한 장로교 제도를 가지지 못했다. 그것은 교회가

상당한 정치적 영향 아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국왕 제임스 6세는 때때로 여러

노회에 편지를 보내 자신이 원하는 이들의 이름을 밝히고, 그들이 총대로 선출되기

원한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간혹 노회에 엄청난 하사금이 주어진 적도 있었다. 물론

총대를 사기 위한 것이었다. 국왕은 자신에게 순종적인 자들로 총회를 구성하고, 총회

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교회정책을 지지하게 만들고자 하였다. 오늘날 노회에 대한

외부의 정치적 강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회 내부의 정치가 문제이다. 많은

경우 노회의 총대 선출은 인기투표이다. 총대가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패거리 정치에

의해 선출되고 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총회의 기능이 “교회를 순결하게 지키는 것”

인 만큼 노회는 이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회원을 선출해야 할 의무가 있다.

11. 목사청빙, 노회가 감독해야 한다.

『제1치리서』나 『제2치리서』 모두 목회자의 청빙에 있어서 교구교회의 동의를 중시

하고 있다. 그러나 사역자 청빙은 교구교회에만 맡겨두지 않았다. 노회도 적절히 감독

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제1치리서』는 목회자 청빙에 있어서 선정(Election), 심사

(Examination) 그리고 위임(Admission)의 3단계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먼저 선정의

몫은 개별회중에게 주어졌다. 만일 회중이 이 일을 감당하지 못하면 시찰감독

(Superintendent)이 태도 그리고 교리와 지식 면에서 적합한 인물을 천거할 수 있었

다. 목회자가 선정되면 그 다음 그는 심사를 받아야 했다. 『제2치리서』 역시 사역자

는 “장로회의 판단과 회중의 동의로 임명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청빙문제는 전적으로 교구교회에 맡겨져 있다. 노회는 형식적

절차만 지켜지고 있는지를 살핀다.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교구교회의 청빙이 노회나

교단의 다른 교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작은 교회에서 유능하다고 소문

나면 큰 교회가 이를 빼앗아 가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연쇄반응을 유도한다. 그리고

성실하게 목회하는 사역자들을 유혹한다. 노회는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감독

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노회 내 부교역자 중에서 청빙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신학교에서 성적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많은 젊은 사역자들이 분개하고 있다고 한

다. 그러나 목회자가 어느 정도 학식을 갖추고 있어야 함은 앞에서 살펴보았다. 『장

로회 교회정부』는 노회가 사역자의 대학전공과 성적도 파악해야 하고, 히브리어와 헬

라어 성경을 읽을 수 있는지, 그리고 라틴어도 일부 알고 있는지를 조사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이 부분은 개별교회의 청빙위원회가 성적증명을 요구하는 것이 매우 정

당함을 말해준다. 그리고 청빙위원회가 노회의 도움으로 후보자의 지적 능력을 파악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신학대학에서 공부에 열중하지 않은 자가 강단에 서는

- 12 -

 

것은 정말로 안 될 일이다.

12. 나가는 글: 내 사랑 장로회교회.

노회개혁에 대한 얘기가 어찌 이뿐이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장로회교회를 자칭하려

면 최소한의 부분은 지켜야 한다. 노회는 장로회의 꽃이다. 노회가 바로 작동해야 장

로회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한국 장로회교회는 이름만 장로

회이지 실제에서는 독립교회이다. 노회는 개별교회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였다. 장로

회교회에서 노회가 그 기능을 상실하면 이는 본질을 상실한 것이다. 노회가 교회의

단위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장로회교회는 이제 기본으로

돌아가 본질을 되찾아야 한다. 한국 장로회교회가 개혁교회의 기치를 붙들기 원한다

면 먼저 스스로를 개혁해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개혁교회의 기치를 들

고 세상을 향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개혁 직후 스코틀랜드 교회는 스스로 “가장 잘 개혁된 교회”(the best

reformed church)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장로회교회는 성경에서 그 근원을 찾

을 수 있는 제도일 뿐 아니라 국가단위의 제도교회를 위해서도 적절한 교회조직이다.

정치적인 면에서도 상향이론(ascending theory)과 하향이론(descending theory)가

조화를 이룬 민주적 교회조직이다. 교회의 직분자 즉 지도자들(officers)을 회중이 선

출하고, 선출된 이들이 대의체를 구성하고 교회를 이끌어나가는 구조이다. 우리가 우

리의 정치적 대표인 국회의원들을 선출하고 그들이 결정한 법과 세금에 우리가 묶이

는 구조이다. 당회, 노회, 총회는 대의체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중심에는 노회가

있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우리는 신앙의 순수성과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우리가 원칙대로 운영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장로회교회는 국제적으로 볼 때 소수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최대의 교파이다. 장

로회교회의 탄생지인 스코틀랜드 교회보다 더 큰 교세를 자랑한다. 나는 이러한 상황

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한다. 이는 한국교회에 내리신 하나님의 축복이고 사명이다. 지

금까지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사로부터 많은 빚을 졌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복음을 받

았고, 그들로부터 제도를 받았고, 그들로부터 신학을 받았다. 이제는 우리가 나누어야

할 때이다. 우리의 사명은 진정한 장로회교회를 나누는 일이다. 우리가 지금의 혼란을

끝내고 장로회교회를 바로 정립한다면 후일 기록될 세계교회사에서 중요한 한 장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비록 문제도 많고 탈도 많은 한국 장로회교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오늘도 사랑고백을 해야 한다.

 

 

                                            -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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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18.06.17 By개혁정론 Views1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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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시대 상황과 그리스도인의 사명

    지난 6월 6일 전국 SFC 동문대회가 열렸다. 그곳에서 좋은 특강이 있었는데, 본보는 특강 강의안을 아래와 같이 게재한다. 시대 상황과 그리스도인의 사명 권수경 목사 (고려신학대학원 초빙교수) 가. 정치적 올바름 필자가 유학차 미국에 첫발을 디딘 1991년...
    Date2018.06.12 By개혁정론 Views3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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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칼빈의 창조적인 교회력 수정

    * 이 글의 작성자 엘시 맥키 (Elsie McKee)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를 거쳐 미국 프린스톤신학교에서 교회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프린스톤신학교에서 종교개혁사와 예배사를 가르치고 있다. * 이 글은 과거 맥키 교수가 고신대학교 개혁주의학술원 ...
    Date2018.06.08 By개혁정론 Views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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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미래 목회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미래 목회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 독일 힐데스하임에서 열린 “목회소명 2030” .video-js { width: 300px; height: 150px; } .vjs-fluid { padding-top: 56.25% } .vjs_video_3-dimensions { width: 300px; height: 168.75px; } .vjs_video_3-...
    Date2018.05.22 By개혁정론 Views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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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거울 뉴런 발견자와 르네 지라르의 만남

    거울 뉴런 발견자와 르네 지라르의 만남 - 뇌과학과 르네 지라르의 미메시스 이론 - 정일권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 신학박사(Dr.theol), 전 숭실대학교 초빙교수) 최근 한국의 뇌 과학 분야와 방송과 언론에서 DNA의 발견 이래 최대의 업적으로 평가받...
    Date2018.04.30 By개혁정론 Views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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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기고] 명성교회의 세습을 슬퍼하며

    명성교회의 세습을 슬퍼하며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2017년 11월 12일 명성교회(강동구 명일동)가 세습을 완료했다. 아들에게 물려주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는 김삼환 목사의 말과 세습 금지는 역사가 요구하는 바요 총회가 이미 결의한 바이기 때문에 ...
    Date2017.11.16 By개혁정론 Views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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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우리는 무엇을 팔고 있는가? (재미고신 총회 포럼, 권수경 목사)

    아래 글은 2017년 11월 1일 애틀랜타 염광장로교회에서 있었던 재미고신총회의 포럼에서 발표된 발제문이다. - 편집자 주 “우리는 무엇을 팔고 있는가?” 권수경 목사 (동북노회) 500년 전의 면죄부 마르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95개조 반박문...
    Date2017.11.04 By개혁정론 Views9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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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설] 어느 교회의 교단 탈퇴를 보며
[사설] 고신언론사 순환보직시행, ...
[사설] ‘표현’ 못지않게 중요한 것... 2
삼일운동 100주년 기념, 빌린 돈부...
실력에 속지 말라
[사설] 남북정상회담에서 평화협정... 1
[사설] 부목사도 노회원이다
[사설] 거짓 증거를 경계하자
[사설] 순장 총회와의 교류를 적극 ...
[사설] 제67회 고신총회에 바란다
칼럼
예배를 통해 도르트 총회 400주년 ...
도르트 신경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도르트 신경과 그 역사적 배경
[해외칼럼]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의 삶
[해외칼럼] 개혁주의 정체성과 예배
[해외칼럼] 이주(immigration)를 우...
[해외칼럼] 나를 반석으로 이끄소서
[해외칼럼] 권징 할 용기(2)
[해외칼럼] 권징 할 용기 (1)
[해외칼럼] 권징의 은혜 (2)
기고
노회는 장로회교회의 꽃이다
[기고] 총회 개최 장소 문제에 대하여
돌트교회질서(1619년)와 한국장로교회
세속화된 교회가 세속의 성화를 가...
나는 동성애를 반대한다! 하지만...
‘고신포럼발기’에 대한 우려와 기대
심방 예배(설교), 꼭 드려야 하나?
종교개혁자들에게 심방이란 무엇이...
섭리와 기도
이근삼 박사의 생애와 칼빈주의
논문
장로교 정치원리 하에서의 각종 단...
목사와 장로, 그 역할과 관계와 갈...
성경적 장로교 정치원리 (서울포럼 ...
[논문] 작은 교회 성도들은 행복한가?
한국 장로제도의 반성과 개혁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유산과 한국...
장로회정치원리에 비추어 본 노회 실태
고령화 시대, 선교현장을 섬기는 교...
개혁주의 교회설립에 대한 새로운 비전
KPM선교의 내일을 향한 준비 (김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