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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꼭 지켜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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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

 


 

“이제 마리아의 처녀성과 그녀의 출산은, 주의 죽음이 역시 감추어졌듯이 이 세대의 통치자들로부터 숨겨졌습니다.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성취되었지만, 이러한 것들은 크게 선포되어야 할 세 개의 신비들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어떻게 세상에 계시되었습니까? 한 별이 모든 별보다 하늘에서 좀 더 밝게 빛났습니다. 그것의 빛은 묘사할 수 없었고 그것의 신기함은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해와 달과 함께 성운들의 모든 나머지들이 별 주위에서 합창단을 형성했지만, 그 별 자체는 그들 모두보다 훨씬 더 밝게 빛났으며, 다른 것들과 그렇게 다른 이 이상한 현상의 기원에 대하여 당황스러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의 새로움을 가져오려고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결과적으로 모든 마술과 모든 종류의 주문이 해소되었고, 사악한 자들의 아주 특징적인 무지가 사라졌으며, 고대 왕국이 철폐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서 준비된 것이 시행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로써 죽음의 철폐가 수행되었기 때문에, 모든 일들이 소동 속으로 던져졌습니다.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의 편지들」 중 ‘에베소인들에게, 19장’에서-

“그러나 주님은 겨울, 즉 12월에 태어나셨다. 달력으로는 1월 8일인데 다 자란 올리브를 압착하여 기름을 짜는(즉, 기름부음crisma) 날이고, 다른 허브들도 잎을 내는 날이다. 음매애 하고 우는 양들이 태어나고, 큰 낫으로 포도가지를 잘라서 달콤한 포도를 수확하여 사도들이 성령으로 취하게 되는 날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마다 찍혀 불에 태워지느니라.’ 그러나 그들은 또한 그 날을 정복되지 않은 자의 생일이라고 부를 것이다. 죽음을 이기신 우리 주님처럼 정복되지 않은 자가 누구인가? 그들이 태양의 생일에 헌신하는 대상은 말라기 선지자가 말한 의의 태양 자신이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태양이 떠올라서 그의 날개로 인해 치료가 일어날 것이다.’” -고대 교부 크리소스토무스의 설교 중에서-

 

 

 


성탄절기의 중요성

 

   교회력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중심으로 구성되는데, 부활과 성육신이 교회력의 두 기둥을 이루고 있다. 즉, 교회력의 사이클은 두 개인데 하나는 부활절 사이클이고, 다른 하나는 성탄절 사이클이다. 각 사이클은 준비절기와 축제절기로 나누어진다. 부활절은 준비절기인 사순절과 축제절기인 부활절과 성령강림절로 이루어져 있다. 성탄절은 준비절기인 대림절과 축제절기인 성탄절과 주현절로 이루어져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부활절 사이클이 2세기 이전에 일찌감치 확정되었지만, 성탄절 사이클은 뒤늦게 교회에 도입되었다. 성탄절 사이클은 4세기에 가서야 확정되었다.
 

   신약교회의 유일한 절기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이었다. 한 주간의 시작이요, 정점인 부활의 날인 주일은 년 중 부활을 기념하는 날인 부활절로 발전한다. 교회는 부활을 기념하는 주간의 날인 주일과 년 중의 날인 부활절로 만족했다. 하지만 로마제국이 기독교회를 용납하면서 교회는 신학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오심. 즉 성육신을 숙고하기 시작하면서 성탄절기를 차츰 확립했다. 이 성탄절기의 날짜는 아래에서 살펴보겠지만 당시 로마제국에서 태양을 섬기는 축제와 투쟁하면서 확립되었다.

 

   성탄절기는 부활절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이 독자적으로 발전하고 확립된 것은 아니다. 고대 교회는 부활절을 매 주일, 더 나아가 매 해 반복되는 성례라고 생각했지만 그리스도의 탄생은 연중 기념일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탄생, 즉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이들이 일어나면서 성탄의 의미가 중요해졌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구원역사가 성육신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선포하기 시작했다. 성탄은 부활의 의미를 더 분명하게 드러낼 뿐만 아니라 신자로 하여금 부활을 살도록 이끄는 역할도 했다. 교회력에 의하면 부활절이 한 해의 시작이 아니라 성탄절의 준비절기인 대림절(성탄 전 4주간의 기간)로부터 한 해가 시작된다. 그러므로 교회력 발생순서와 달리 성탄절기를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왜 12월 25일인가?
 

   아기 예수는 12월 25일에 탄생하셨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사복음서를 통해 확인해 보면 아기 예수가 탄생했을 때 베들레헴 들판에서 목자들이 양을 치면서 밤을 지새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날은 추운 겨울이 아니라 가을쯤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사실, 팔레스타인에서는 4월에 양을 방목하기 시작하여 10월 중순에는 방목을 끝낸다.

 

   그런데 교회는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정해서 지켜오고 있다. 교회는 수많은 날들 중에 왜 하필 12월 25일을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로 정하여 지킨 것일까? 성탄절이 12월 25일이 된 것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맞서고 있다.

 

   먼저는 ‘태양숭배일에 세례를 주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성탄절이 12월 25일이 된 것은 로마의 겨울축제인 ‘무적의 태양 출생’(Natalis solis invicti) 축제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주장이다. 당시 로마는 율리우스 달력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12월 24일이 하루 해가 가장 짧은 동지였다. 그 다음 날인 12월 25일부터 태양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로마사회는 이 날에 태양신이 다시 출생하는 것으로 보고 축제를 벌였다. 274년경 로마황제였던 아우렐리안(Aurelian)에 의해 12월 25일에 ‘무적의 태양 출생’을 기념하는 축제를 벌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바로 그 날에 황제는 태양신을 위해 신전을 지어 봉헌했다. 황제 아우렐리안은 제국의 통일을 위해 애쓴 공로로 ‘제국의 회복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종교 통일에도 앞장섰다. 동양의 미트라교와 시리아의 무적의 태양숭배를 도입하여 태양 단일신을 숭배하므로 제국의 통일을 꾀했다.

 

   콘스탄티누스는 그의 부친과 마찬가지로 태양숭배를 해 왔다. 그는 312년 밀비안 다리에서 그의 정적 막센티우스와 접전할 때까지만 해도 태양신 아폴로에게 헌신했다. 그는 환상 중에 ‘이것으로 이기라’라는 그리스도의 첫 두 글자로 된 표지(그리스도라는 헬라어의 첫 두 글자-Χ위에 Ρ자 있는 것)를 군기와 방패에 붙여 막센티우스를 제압한 후 기독교에 호의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는 태양 숭배와 기독교 신앙을 혼합하여 가졌다. 이후에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로 개종하므로 기독교회는 로마와 동방의 태양숭배 사상에 세례를 주어서 12월 25일을 의의 태양이 떠오른 날로 지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구약성경 말라기 4장 2절 말씀에 나와 있듯이 예수님은 ‘의의 태양’으로 이 땅에 태어나셨기 때문이다. 로마교회가 공식적으로 성탄절을 12월 25일로 기념한 것은 354년이라고 한다. 이 해에 로마의 리베리오 주교는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정해 로마 축일표에 기록했다. 로마의 주교 비망록에 따르면 336년부터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축하했다는 기록이 있기에 더 이른 시기로 잡아야 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다음으로 ‘구속사의 날짜를 계산해서 이르게 된 결론’이라는 견해이다. 성탄절을 12월 25일로 정하게 된 것은 당시의 태양숭배와 아무런 상관이 없고, 구속사의 날짜를 계산하여 자연스럽게 이르게 된 결론이라는 견해이다. 구속사의 시점으로 잡는 날짜는 3월 25일이다. 헬라교부 크리소스토무스(안디옥 출신인데 403년에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으로 임명됨)에게 돌려지고 있는 문서 『De solstitiis』(춘분, 추분 할 때의 ‘분’[分]을 가리키는 말)에 이 부분이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크리소스토무스는 우선 예수님의 선구자인 세례요한의 잉태부터 언급하기 시작한다. 제사장 사가랴가 제비를 뽑아 분향한 달이 티슈리(Tishri) 달이다. 이 티슈리 달에 추분이 있다. 그렇다면 요한의 출생은 9달 뒤인 하지(夏至)가 된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수태고지를 했을 때 친척 엘리사벳이 잉태한 지 6개월이었다고 성경이 밝히고 있다(눅 1:36). 그렇다면 예수님의 잉태는 요한의 잉태 6개월 후, 즉 춘분(春分)이다.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탄생은 9개월 후인 동지(冬至)가 된다. 요한은 추분에 잉태되어 하지에 태어났고, 예수님은 춘분에 잉태되어 동지에 태어나셨다. 이렇게 예수님의 탄생이 동지가 된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역사했기 때문이다.

 

   이 두 번째 견해에 의하면 12월 25일을 의의 태양의 출산(solis natalem)으로 이해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지를 그리스도의 출생의 날로 잡은 것은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서방에서는 요한의 잉태와 출생과 관련된 날들을 축하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동방에서는 요한부터 시작되는 구속사 전체를 강조했다. 콘스탄티노플과 소아시아에서는 요한의 잉태일이라고 잡은 9월 23일을 한 해의 시작으로 보곤 했다. 콘스탄티노플에서는 5세기에 이미 9월의 첫날을 새 해의 시작으로 삼았지만 세례요한의 잉태를 축하하는 9월 23일을 ‘새 해’라고 부르곤 했다.

 

   이상에서 살펴 보았듯이 12월 25일이 성탄절로 정해진 것에 대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로마와 동방의 태양숭배 사상을 세례 준 것이라고 보는 것과 구속사의 날짜 계산을 통해 이르게 된 결론이라고 보는 것이 그것들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견해가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이 두 견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의의 태양이 떠오른 것으로 보았다는 점에 있어서 일치한다. 한편, 예수님의 탄생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것은 당시 유행하던 아리우스주의 때문이기도 하다. 아리우스는 예수님을 참 하나님이 아닌 위대한 사람 정도로 보았다. 그에게는 예수님의 탄생을 떠들썩하게 축하해야 할 뚜렷한 이유가 없었다. 이에 정통교회는 참 사람이요 동시에 참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을 신자의 구원이 성취된 날로 해석하여 크게 축하하기 시작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탄절은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한 신비로 우리를 이끈다. 고대교회 신경에는 이 성육신의 신비를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다. 동방교회의 신경인 니케아 신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할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나셨으나 창조되지는 않으셨다고 고백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먼저 고백하고 있다. 이 고백 이후에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에게서 육신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다고 고백한다. 서방교회의 신경인 사도신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고만 고백한다. 어느 쪽이든지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태에서 잉태되고 태어나셨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몰락한 다윗가문의 후손인 요셉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는 천사를 통해 자신이 처녀의 몸으로 사내아이를 밸 것이라는 놀라운 소식을 듣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이제 자신은 결혼하기 전에 외간남자와 몸을 섞었다는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오해받는 것 정도가 아니라 간음죄로 몰려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서게 되었다. 그녀는 이것이 성령의 능력으로 된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한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선지자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로부터 내려오는 기도의 맥, 즉 하나님께서 낮은 자를 높이시고, 높은 자를 낮추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했다. 자신의 태에 있는 생명이 곧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이요, 이방의 빛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고대 교회에서는 동정녀 마리아의 이 믿음을 칭송하면서 그녀를 테오토코스(theotokos), 즉 ‘하나님을 낳은 분’이라고 불렀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발언이 아닌가? 지레 선입관을 가지고 볼 일이 아니다. 이 표현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신 분,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드님인 것을 고백하기 위해 만들어낸 용어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고대교회에 성자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이들,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께서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것이 아니라 단지 인성밖에 없다고 고백한 단성론자들(합리론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이에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출생한 마리아를 ‘하나님을 낳은 분’이라고 불렀다. 그리스도의 신, 인성을 보호하기 위해 부른 이 표현이 이후에 중세교회에서는 마리아를 숭배하는 자리로 이끌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교회는 성탄절에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출산한 마리아의 믿음을 부각시킨다. 성탄절에는 마리아의 믿음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지만 마리아만 아니라 그 남편 요셉도 다루어야 한다. 요셉은 아내 마리아가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을 알고는 그녀와의 관계를 조용히 끊으려고 했다. 천사 가브리엘이 그에게 나타나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밝혔을 때 자기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씨를 잉태한 아내를 흔쾌히 받아 들였다. 이 두 부부의 순종하는 믿음이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리스도를 받아 내었다. 성탄절에 우리는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크게 기뻐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를 품은 요셉과 마리아의 믿음을 묵상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는 장차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받아야 하니 말이다.
 


성탄예배
 

   서방 교회에서는 성탄절에 3번의 미사를 드린다. 이것은 성탄일 당일에 로마주교가 로마의 성당을 순회하면서 세 번 미사를 드린 것에 기원하고 있다. 로마의 이 미사전통은 성탄절에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의 출생과 관련된 장소를 순례하면서 미사를 드린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것에서 따온 것이다. 첫 번째는 ‘성탄 밤미사’이다. 이 미사는 베들레헴에 있는 구유대성당에서 밤에 드리던 성탄미사를 로마가 차용해 온 것이다. 로마교회는 에스퀼리노 언덕에 건설한 성모 마리아 대성당 안에 베들레헴의 구유모형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 미사를 지냈다. 이때 ‘나에게 이르는 말씀: 너는 내 아들, 오늘 너를 낳았노라’는 입당송을 부른다. 한때 교회가 흙으로 만든 구유를 은으로 바꾸자 성 제롬은 “금이나 은으로 된 구유가 아니라 진흙으로 된 구유에 태어나기를 원하신 세상의 창조주 주님을 나는 찬미한다”는 설교로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표현했다.
 

   두 번째는 ‘성탄 새벽미사’이다. 성탄 밤 미사를 드리고 난 다음 베드로 대성당으로 이동하는 길에 팔라티노 언덕 아래에 세워진 성녀 아나스타시아 성당에서 드린 미사이다. 이 성당은 비잔틴 사람들의 구역에 세워진 성당인데, 비잔틴인들은 12월 25일에 성녀 아나스타시아를 기념했는데 로마교황은 그들을 배려하는 입장에서 그 성당에 들러서 미사를 드렸다. 이 미사는 새벽에 드렸기에 ‘목동들의 미사’라고 불리기도 했다. ‘큰 빛이 오늘 우리 위에 비치리니, 주님이 우리를 위해 나셨도다’라는 입당송을 부르며 미사가 시작되었다. 세 번째는 ‘성탄 낮 미사’이다. 베드로 대성당에서 드리는데 ‘우리를 위하여 아기가 태어나고 우리를 위하여 아들이 주어졌으니, 그의 양 어깨에는 세상의 주권이 놓여 있도다’라는 입당송을 부르면서 성대하게 미사가 거행되었다. 이 낮 미사는 성육신의 신비를 발설한 요한복음 서문(1:14)을 낭독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이 세 번의 미사를 드리기 전, 성탄 전야인 12월 24일에 미사를 드리므로 4번의 독특한 미사를 드리는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로마교회는 12월 25일 하루만 성탄절을 축하했지만 점차 성탄절 축제가 성대해지면서 다른 날들로 연장되었다. 교회는 성탄 당일에 이어지는 3일간에 의미를 부여하여 스데반, 사도요한, 무죄한 어린이들을 위한 축제를 베풀었는데 이게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중세 때에는 마지막 3일째에 광란의 축제를 벌였다. 성탄 후 8일째 되는 날은 성모 마리아를 경외하고, 예수님의 할례를 기념하는 큰 축일이 되었다. 성탄 후 40일째(2월 2일)는 성탄을 마무리하는 ‘주의 봉헌 축일’을 지내는데 초를 봉헌하는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이 날에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안은 것을 기념했다. 20세기에 접어들어 로마교회는 성탄절 다음 주일(12월 30일)을 ‘성聖 가정 축일’로 정하여 예수님과 요셉, 마리아의 가정을 그리스도인의 가정생활의 모범으로 삼고 있다. 이렇듯 성탄절이 부활절 못지 않게 점차로 성대해져갔다.
 

 

성탄절 축하
 

   부활절과 성탄절 중에 어느 절기가 최고의 절기일까? 부활절이 아닌 성탄절이 최고의 절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성탄절이 한 해의 마지막에 위치하고 있기에 한 해를 정리한다는 생각과 맞물려 있기도 하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성탄절은 이제 주님의 오심을 경건하게 기다리는 절기라기보다는 상업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성탄카드, 성탄트리, 캐롤 등이 거리를 뒤덮으면서 흥청망청거리는 성탄절이 되었다. 그렇다고 성탄절 장식마저 터부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가장 두드러진 성탄절 장식은 위에서 언급했던 ‘구유장식’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라나 황후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 동굴에 구유성당을 세웠다. 성탄절기 때 이 대성당으로 순례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았다. 베들레헴에 있는 이 구유를 본떠서 지금도 유럽의 수많은 교회들이며, 기독교 전통이 자리잡고 있는 지역들에서는 마을이나 시청 등에 나귀와 소, 더 나아가 세상의 수많은 직업의 대표자들을 배치한 구유 모형을 만들어 놓는다. 최근에 네덜란드의 한 성경번역은 구유(crib-‘바구니’라는 라틴어 corbis에서 기원)라는 표현이 낭만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여 ‘여물통’(voederbak)이라고 적나라하게 번역했다.
 

   성탄절의 중심인물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사슴이 되어가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산타클로스는 유럽에서 축하하고 있는 세인트 니콜라스의 미국판이면서, 동시에 상업적 버전이다. 니콜라스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270년경 현재의 터키에서 태어나 자란 니콜라스는 남몰래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왔고, 로마황제를 신으로 섬기지 못하겠다고 하여 감옥에 갇혔다가 기독교가 공인되고 난 다음에 고향인 미라(Myra)에 가서 주교가 되었다. 로마교회는 이 니콜라스 주교를 시성(諡聖)했고, 12월 6일을 성 니콜라스 축일로 정했다. 지금도 네덜란드에서는 12월 6일부터 이 세인트 니콜라스가 스페인으로부터 흑인 피터를 데리고 배를 타고 건너와서 흰 말을 타고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행사를 벌인다. 그는 착한 아이들에게는 선물을, 나쁜 아이들에게는 회초리를 준다. 이런 절기가 잉글랜드인들에게 알려져 미국으로 건너가서 산타클로스로 바뀌었다. 산타클로스는 루돌프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집 굴뚝을 타고 내려와서 선물을 나누어 준다는 식으로 점점 더 매혹적인 전설이 되어갔다. 소박한 성 니콜라스 행사가 강력한 산타클로스 축제로 바뀐 것이다. 산타클로스가 성탄트리에 묶어 놓은 양말 속에 선물을 넣어 준다는 생각은 어린아이들에게 추억으로 남을지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상업적인 것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은 성탄절을 꼭 지켜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들은 주일 외에 다른 날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주중에 있는 성탄절을 지키지 않았다. 주일이 아닌 평일, 그것도 예수님이 실제로 태어나지도 않은 날인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킬 필요가 있는가 하는 질문은 정당하다. 성탄절을 지키는 것은 로마가톨릭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마저 있다. 예수님이 실제로 태어나지도 않은 12월 25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12월 25일이라는 날짜 자체를 섬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성육신의 신비를 한 날을 정해 기념하고 축하하므로 모든 날들을 거룩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죄로 인해 죽은 인생과 신음하고 있는 피조물을 회복하기 위해서 오신 주님을 기쁘게 축하한다. 청교도들이 성탄절을 지키지 않았지만 성탄의 의미 자체를 무시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12월 25일과 제일 가까운 주일에 성탄을 축하했다. 그들의 생각처럼 굳이 12월 25일이 아니라도 상관없겠지만 우리는 교회력을 존중하여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킨다. 성탄절을 축하하기 시작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신학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성탄절은 고대 교회와 교부들이 신학 했듯이 온 우주를 새롭게 하는 새 창조의 ‘새 해’요 ‘새 날’이다.

 

   우리 한국교회는 전통적으로 성탄 이브에 모여서 축하행사를 가졌다. 어린아이들이 몇 달 동안 정성껏 준비한 발표회를 하고, 중고등부 친구들은 밤샘을 하면서 선물을 주고 받고 논다. 이렇게 교회에서 밤을 지새우는 이유는 새벽송을 돌기 위함이다. 천사들이 밤에 잠자는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을 알렸듯이 아이들까지 합세하여 새벽송을 돈다. 교인들의 가정을 일일이 돌면서 ‘기뻐다, 구주 오셨네’ 등의 찬송을 부르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는 천사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면 각 가정에서 정성껏 준비한 과자나 과일 꾸러미를 내어 놓는다. 이렇게 새벽송을 돌고 나면 정작 성탄절 당일 축하예배 때는 다들 피곤해서 조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풍경도 이제는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성탄절이 너무나 익숙해졌기에 이 절기를 의미있게 보내는 길을 찾아야 하겠다. 성탄절은 주님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낮고 낮은 이 땅 위에 오신 것을 축하하는 절기이다. 그렇다면 성탄절은 우리 사회의 낮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찾아나서는 절기가 되면 좋겠다. 성탄절이야말로 이 세상의 모든 불평등과 차별을 극복해야 하는 절기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이들이 누구일까? 각종 장애를 앓고 있는 이들, 고아원과 양로원에 있는 이들, 우리나라에 와서 힘들게 생활하고 있는 동남아 근로자들이 아닐까? 성탄절에 이런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 주님의 오심을 같이 기뻐하는 것이 좋겠다. 믿는 이들끼리만 모여서 선물을 주고 받으면서 즐기는 날이 아니라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는 절기가 되면 좋겠다는 말이다.
 

   성탄절은 2,000여 년 전에 오신 아기 예수를 축하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절기이다. 고대 교부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께서 마리아를 통해 이 땅에 태어나셨지만 우리 마음에 주님이 태어나지 않으신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외쳤는데 오해의 소지가 있다. 우리는 동정녀 탄생이라든지 성육신의 역사성은 무시한 채 그리스도의 오심을 마음으로만 기리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셨고, 늘 오고 계시고, 장차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성탄절은 역사를 회고하는 절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종말을 지향하는 절기이다. 성탄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총체적으로 맞이하는 절기이다.
 

   성탄절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면서 2,000여 년 전에 주님이 이 땅에 오셨던 것만이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복을 누리자. “주님, 낮고 낮은 이 땅에 자리를 펴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중 어느 누가 가장 부유한 자리에서 스스로 가장 낮은 자리로 떨어지고 싶어 하겠습니까? 성자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아지셨습니다. 우리처럼 율법의 멍에를 매셨습니다. 죄의 몸이 되셨습니다. 성자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은 입으신 그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되게 하기 위함이라는 동방교부들의 담대한 선언은 신이 되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 아닐 것입니다. 성육신의 신비 앞에 고개를 숙입니다. 주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것만 제외하고는, 죄를 짓지 않으신 것만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아지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주님께서 이처럼 낮고 낮은 곳에 임하셨으니 저희도 높은 곳에 마음을 두지 말고 낮은 곳에 자리를 펼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다른 사람을 무자비하게 짓밟고서라도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하는 저희들에게 가난한 심령을 주시기를 구합니다. 처음에 오셨을 때는 무기력한 아기로 오셨지만 다시 오실 때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오실 것을 알게 하옵소서. ‘주님, 오시옵소서’, 이것이 저희의 고백입니다. 부요하신 분이지만 가난하게 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생명과 부요함에 동참시켜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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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병훈 2020.12.24 08:24
    잘 정리된 글 감사합니다. 성탄절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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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신 2021.01.11 06:29
    오래간 만에 좋은 글을 보게 돼 감사드립니다. 고신마저도 '주일성수'를 고리짝 취급하고 성탄절을 우상화하는 작금의 현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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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la 2021.05.07 17:01
    칼빈은 제네바에서 쫓겨났을 때의 이유중 하나가 성탄절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정통신학을 지키는 청교도들과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에서는 성탄절과 같은 절기들을 금지했습니다.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말씀의 원리에 맞지 않으면 지키면 안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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