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획기사는 '총회상정안건 분석'입니다. 장로교회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치리회를 통한 다스림을 교회정치원리로 가지고 있습니다. 당회와 노회와 총회는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잘 구현해야 합니다. 상설치리회는 아니지만 가장 넓은 치리회인 총회는 교리, 예배, 치리에 있어서 상정된 안건을 다루고 결정하므로 교회의 하나됨을 구현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해 교회다움을 드러냅니다. 올해 제69회 고신총회에 상정된 안건들 중 중요하다 싶은 것들을 다루어 봅니다. 총회의 논의과정이 성경적이기를 바라고, 그 결정이 노회와 지역교회가 흔쾌하게 받을 수 있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 편집자 주 |
<지적 장애인 세례지침>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보고서에 문제 있다
성희찬 목사
(작은빛교회)
1. 이번 제69회 총회에 제출된 고려신학대학원교수회 보고서 중에 “지적 장애인 세례 지침” 보고서가 있다. 이는 2018년 서울남부노회가 제68회 총회에 발달장애인(지적, 자폐성 장애인)의 세례 지침을 마련해 줄 것을 청원했고, 총회는 이에 대한 연구 및 보고를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에 맡겼던 것인데, 이번에 해당 보고서가 제출된 것이다.
2. 이 보고서를 읽어보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가 늘어가는 있고, 더구나 적지 않은 교회에서 장애인 부서를 조직하고 장애인 대상으로 사역하면서 자연스럽게 대두된 교회 안에 있는 지적장애인의 세례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3. 사실 이 보고서는 약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제60회 총회(2010년 9월)에서 지적발달장애자들의 세례문제에 대해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가 제출한 연구보고서를 기초로 작성되었다. 당시 해당 연구보고서는 2008년 남서울 노회가 지적(발달) 장애인 세례가능성에 대한 신학적인 판단을 내려줄 것을 총회에게 요청했고, 제58회 총회(2008년 9월)는 이 헌의를 받아 신학대학원 교수회에 맡겨 1년간 연구하기로 했으나, 제60회 총회(2010년 9월)에 가서야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4. 그런데 제69회 총회에 제출된 현 보고서를 보면 우리가 가진 교리표준(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교리문답)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 나온다. 즉 인지 능력이 없고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중증 성인 장애인의 경우에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불신자일 때에 교인(교사 등) 중에서 영적 부모나 언약의 후견인을 세워서 세례를 줄 수 있으며, 나아가 이에 근거하여 세례지침과 세례예식서까지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신가정에서 출석하게 된 지적장애인들 중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분들이 있다면 담당 교사나 교역자를 통해 세례의사를 확인하고, 교회 회원 중 자원하는 수세자의 후견인이나 보호자가 서약을 하게 하여 세례를 실시한 후 언약 공동체의 일원이 됨을 선언할 수 있다.”(제69회 총회보고서 181페이지)
그 근거로 첫째,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유아에게 언약신앙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처럼 여기서 유추하여 언약 관점에서 인지능력이 없는 중증 장애인에게도 세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교회론적인 근거로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중증 지적장애인이 세례를 받지 못한 채로 있으면 그 몸의 지체로서 온전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기에 그가 비록 인지의 능력이 없고 또 소통이 불가능하여 자기 입으로 신앙을 고백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그도 세례를 받음으로 교회 구성원으로 공적인 인정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이때는 교사 중에 영적인 후견인이나 보호자가 대신 서약을 하게 하여 세례를 베풀 수 있다는 것이다.
5. 그런데 과연 이 근거와 논리가 타당한가?
물론 교수회의 보고서 역시 지적장애인에게 세례를 베풀 때에 “지적장애인 본인이나 그 가족을 단지 인간적으로 위로하는 차원에서 세례를 고려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세례가 자동적으로 중생과 구원의 방편이 아니기 때문에 지적장애인이 세례를 받음으로 어떤 가시적인 유익을 얻을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 신앙고백서 28장 5항에서 세례 없이는 중생이나 구원을 받을 수 없다든지 혹은 세례만 받으면 확실하게 중생을 받게 된다고 말할 만큼 세례에서 은혜와 구원이 불가분리적으로 결합되어 있지 않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고백과 교수회의 보고서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또 교수회 보고서가 제시하는 것처럼, 언약의 유비와 교회론적인 근거의 타당성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좀더 생각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있다. 본인 대신 영적 후견인이 서약하는 것은 마치 천주교의 대부모제도를 떠올리게 한다. 따라서 이런 사안일수록 충분한 시간을 두고 더 많은 토론을 가져야 했다.
필자는 교수회 보고서에 대한 반박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다음에서도 더욱 아쉬운 마음을 가진다.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가 왜 이렇게 성급하게 대답을 제시하려고 하는 것일까? 왜 이렇게 신학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가지고 여러 신학자들과 일선의 목사들과 교인들이 모여서 토론도 하면서 함께 답을 찾기 위해서 노력이 없이 총회 앞에 내 놓는 것일까? 이 문제가 한국교회에 미칠 중대한 사안이라는 것을 왜 좀 더 생각하지 않을까?
이러한 보고서가 특정한 학자의 개인 연구물이라면 이해가 된다. 그럴 경우 이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그 학자에게 어느 정도의 성경주석과 해석에서 자유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총회에 제출하는 보고서이며,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에서 심의하고 검증된 보고서라는 것이 문제이다. 교수회가 고신 교회의 신앙과 신학의 방향을 이끌어가고 지도해야 할 위치에 있는 교회의 교사들의 회이기에 더욱 이 보고서는 심각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연구보고서에서 보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 발생한 현실적인 이 문제를 가지고 씨름한 것은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충분한 토론과 검증과정이 없이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렸다. 이 결론이 채택되었을 때 일선 교회에 미칠 혼돈을 생각해보라. 총회는 이 보고서를 당장 채택하기보다는 이를 계기로 이 사안을 두고 대대적인 신학적인 세미나와 토론, 공청회를 통해 이 문제를 접근하여 일선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6. 제60회 총회(2010년 9월)에 제출된 보고서는 과연 지적장애인에게 세례를 줄 수 있다고 하였는가?
이 질문을 왜 던지느냐 하면 이번 제69회 총회에 올린 보고서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는 60회 총회가 채택한 지적(발달)장애자 세례에 대한 연구보고서의 신학적 결론 즉 지적장애자들에게도 세례를 시행함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타당함을 재확인한다.”
필자는 제60회 총회 보고서와 제69회 총회 보고서를 비교하며 꼼꼼히 읽어보았다. 그리고 두 보고서 간의 결정적 차이를 발견하였다. 두 보고서는 각각 중증 지적장애인의 세례 가능성을 다루는 자세에서 차이가 있고, 사용하는 용어가 다르다. 다음을 보라:
제60회 총회 보고서: “조심스럽게 타진”(보고서 184, 186페이지), “최종적으로는 당회가 이 일의 의미와 중요성을 감안할 때 세례여부를 책임 있게 판단하여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185페이지)
제69회 총회 보고서: “전향적으로 검토”(175, 178페이지), “긍정적으로”(178페이지에서 2회 사용)
즉 동일한 문제를 두고 접근할 때 제60회 총회(2010년 9월) 보고서는 신중하게 타진하며 조심스럽게 다루었는데, 제69회 총회(2019년 9월) 보고서는 전향적으로,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으로 하고 있다.
제60회 총회에 제출된 보고서는 중증 지적장애인의 세례 가능성에 대해 신중하게 타진하는 길을 열었을 뿐이지, 그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단정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이번 제69회 총회에 제출한 보고서 서두에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는 60회 총회가 채택한 지적(발달)장애자 세례에 대한 연구보고서의 신학적 결론 즉 지적장애자들에게도 세례를 시행함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타당함을 재확인한다”이 말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며 정직한가?
7.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문제를 두고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의 입장이 약 10년 지난 후에 크게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이 원인이 되어서 바뀌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제69회 총회는 이 보고서를 당장 채택하기보다 이를 계기로 충분한 세미나와 토론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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