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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이 지나갔습니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회복하였을까요? 행사만 요란했지 세습을 포함하여 개혁에 역행하는 일들이 더 많았습니다. 한국이 복음을 받은 지 130여년 후에 교회는 이 민족에게 길을 제시하기는커녕 스스로 길을 잃어버린 느낌입니다. 우리가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그리하여 ‘오직 그리스도’를 붙잡지 않고서는 교회는 지속적으로 짓밟히고 조롱거리가 될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종교개혁의 정신을 차분히 돌아보고 나아갈 길을 치열하게 모색해야 하겠습니다. 서양교회를 포함한 전 세계 교회가 처한 도전과 고민을 함께 나누면서 근원적인 질문과 문제제기를 하려고 합니다. 새로운 500년의 문을 여는 이 작업에 함께 뜻을 모아주시기를 바랍니다. - 편집장 주

 

 

개(個)교회주의를 극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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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섭 목사

(올곧은교회)

 

우리교회만 잘 되면 다 잘되는 줄 알았어

  미국 상원의 채플 목사였던 리처드 핼버슨 목사는 “교회는 그리스로 이동해 철학이 되었고, 로마로 옮겨가서는 제도가 되었다. 그 다음에 유럽으로 가서 문화가 되었다. 마침내 미국으로 왔을 때 교회는 기업이 되었다”고 말한바 있다. 사랑의 교회 사태를 다룬 영화 [쿼바디스]의 김재환 감독은 “그리고 교회는 이제 한국으로 와서 대기업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이 말은 명성교회 사태를 다룬 JTBC의 앵커 브리핑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가기도 했다. 어느 교회의 권사님이었다는 김재환 감독의 어머니는 아들이 이런 영화를 만든것을 싫어했고 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마침내 영화를 보고 나서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우리교회만 잘 되면 다 잘되는 줄 알았어!”  

  “우리 교회만 잘되면 다 잘되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개교회주의의 카피라이팅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기실 한국교회의 개교회 문제는 비단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문제이며 한국인의 문제이기도 하다. 돈과 권력이 우상이 되어 쾌락과 탐욕을 지향하는 한국 사회와 개인의 문제 말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문화와 쾌락과 탐욕에 영합한 일부 교회와 그 교회의 지도자들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교회 조롱시대

  오늘날 한국 교회는 전례 없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비판을 넘어 도에 지나친 조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히 교회 조롱시대가 아닐 수 없다. 교회가 핍박을 받고 고난을 당했던 것은 역사상 늘 있어왔던 일이다. 하지만 작금의 비판이나 조롱은 단순한 고난이나 핍박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이런 비난에 직면하게 된 것은 무리한 성전건축과 도산, 2대, 3대 목회세습, 변칙적 교회개척, 사제주의, 교회재정의 유용과 횡령, 무조건적 교회성장주의 가치관 등등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으로 똘똘 뭉친 개교회주의일 것이다. 

  본래 개교회주의는 부정적인 용어가 아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장로교 헌법에 따라 하나의 지역교회라 불릴 수 있는 개교회 특히 장로교회는 교회의 치리회 기관인 당회가 독자적으로 행정을 수행하며, 어떤 기관으로부터도 행정적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즉 상회 기관인 노회나 총회라 할지라도 개교회의 기본권을 지도할수는 있지만 침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의미의 개교회가 때때로 아니 매우 자주 총회나 노회 등 상회의 지도를 거스르는 근거로 오용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의 거대한 대형교회가 하나의 교단이 되어 속한 교단의 지도에 불복하는 경우를 우리는 심심찮게 목격하고 있다.

  이 글에서 말하는 개교회주의는 전적으로 후자의 의미이다. 이런 의미에서 개교회주의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왜냐하면, 개교회주의는 단순히 상회의 지도를 받지 않으려는 개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질서에 따라 권위를 부여받은 당회의 지도를 따르지 않는 개인주의적이며 이기적인 신앙의 행태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개인주의 신앙을 극복해야

  개교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지금은 가히 탈교단 탈교회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교회를 나가지 않지만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는 가나안 교인의 시대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가시적 교회, 조직 교회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가 죄용서 받고 천국가기 위함이라는 값싼 구원에 근거한 바리새적 종교생활이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 권징이라는 용어는 그저 수십 년 전 유물에 지나지 않는다. 교회에서 권징이 사라진지 오래이다. 그 누구도 교회의 권징을 존중하지 않는 듯 한 분위기이다. 어떤 교회에서는 권징을 받아야 할 자를 세워 간증을 시킨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정당하고 적법한 절차를 따라 권징을 시행하려 치면 이교회 밖에 없느냐며 순종하지 않는다. 자기 비위에 맞지 않거나 불만스런 일이 생기면 너무나 쉽게 교회를 떠난다. 물론 대단히 심각한 교리적 윤리적 문제가 있는 교회를 떠나는 것은 자기 영혼을 살리는 방법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바빙크 역시 어떤 교회를 떠나는 것이 참된 교회에 가입할 기회가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뜻에 맞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교회를 떠나고 여기 저기 방황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언제든지 자기 뜻에 맞는 교회를 찾을 수 있다고 낙관하기도 한다. 아니 그런 교회를 찾지 못한다 할지라도 어차피 신앙이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라고 치부하며 가나안 신앙을 합리화한다. 만일 신앙이란 것이 절대자와 나와의 개인적 관계에만 한정된 것이라면 교회공동체는 불필요한 조직이 될 것이다. 신앙은 개인적인 측면이 있지만 분명히 공동체적 측면이 존재한다. 자기 뜻에 맞는 사람들끼리만 모인다면 그것이 어찌 교회이겠는가? 그리고 자기 뜻과 생각에만 맞추라 한다면 이 역시 개인주의적 아집과 독선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보편교회라는 인식의 확대가 필요

  탈교단, 탈교회, 가나안 교인의 현상은 결코 성경적이지 않으며 장로교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반드시 지양되어야 하고 해결되어야 할 사안이다. 왜냐하면 개혁주의 장로교 신학이 주창하는 것처럼 교회 밖에는 통상적인 구원의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신앙고백서 25장 2항). 바울의 교회론이라 할 수 있는 에베소서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교회에 목사와 교사(박사)를 주셔서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셨기 때문이다(엡 4:11-14). 따라서 주님은 교회에 사역자를 주셨고 말씀(설교)과 성례를 통해 세상 끝날까지 이 땅에서 성도들을 모아 온전케 하신다(신앙고백서 25장 3항). 그러므로 중생 받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회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구원을 누리고 두려움과 떨림으로 계속 구원을 완성해 가는 일에 있어서 필요한 모든 은혜가 교회를 통해 제공되기 때문에 교회를 바라고 소망하고 그 안에 진실되게 가입해 있어야 한다. 개혁교회가 16세기의 타락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회론을 비판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회의 중요성을 소홀히 취급하거나 무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보편 교회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지체이다. 손가락 하나가 아프면 온 몸이 아프듯 한 교회가 아프면 다른 교회가 아픈 법이다. 이 말은 전 세계의 진실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의 교회라는 뜻이다(요 17:20-23). 유형교회의 회원들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한 세례를 받는 것 역시 교회가 하나라는 것을 웅변적으로 증거한다(엡 4:4-6; 마 28:19-20). 이를 다른 말로 보편적 교회라 칭한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요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의 충만이다(신앙고백서 25장 1항). 그러므로 부정적 의미에서의 개교회주의란 존재할 수 없다. 온 세계의 보이지 않지만 진실한 무형 교회(승리적 교회, 천상 교회, 보편교회)가 유형 교회(지역교회, 가시적 교회, 유형 교회)를 통해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전자는 하나님이 아시는 교회이고 후자는 우리가 보는 교회이다. 그러므로 지상교회에는 위선도 존재하고 외식도 존재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불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가시적 교회 안의 죄인들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이 교회를 통해 계속하여 참된 백성을 모으시고 양육하신다. 이런 의미에서 지역에 기반한 교회는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기관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따라서 참된 교회는 가시적 교회가 천상교회인 것처럼 주장한 로마 가톨릭교회도 아니며, 반대로 가시적 교회에서 천상교인을 구분하려는 재세례파의 극단적 종파도 아니다. 보편적 교회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로마가톨릭교회라는 기형적인 개교회주의와 제세례파라는 또 다른 개교회주의가 출현할 뿐이다.  

 

교회론 교육의 시급성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 시대는 교회 직분의 직무를 포함한 교회론 교육이 시급히 요구된다. 몇 년 전 여러 문제로 분열된 교회의 당회원들에게 몇 주간 교회론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이분들은 한 교회에서 수십 년 동안 신앙생활을 해 왔고 당회원으로 임직을 받은 분들이었다. 6주 동안의 강의를 통해 교회가 무엇이며, 교회의 권세와 정치와 직분과 사명에 대해 강의하고 당회원들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강의를 거듭하면서 교회에 대한 이분들의 의식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었는지를 보게 되었다. 교인들을 심방하고 교회를 치리하고 행정하며 감독하는 지도자들인 당회원들이 성경적 교회론에 대해 무지하거나 또는 관심이 없다면 그 교회가 어디를 향할지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시대의 개교회주의를 극복하려면 합법적이고 정당한 절차를 받아 자격을 취득하고 훈련된 성경교사들(목사와 교수)을 통해 성경이 말씀하는 교회론을 배워야 하며, 장로교 신앙고백에 기초한 교회론과 직분론에 대한 교육이 필수적이다.

  장로교회는 민주주의나 공산주의 정치제도가 아니라 장로교 정치제도를 채택한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선물로 주신 사역자들을 통해 교회를 모으시고 다스려 나가신다. 이들은 하나님이 부르신 사역자들이며 교회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다(고전 3:9).

 

노회역할의 중요성

  바로 여기에 노회 역할의 중요성이 제기된다. 개교회주의 문제는 단순히 개교회 문제가 아니라 노회와 총회의 문제이다. 노회는 단순히 친목도모기관이 아니다. 노회는 신앙에 대한 논쟁과 양심에 대한 문제들을 목회적 차원에서 확정하거나 하나님께 드리는 공예배와 교회의 정치가 더욱 질서 정연하도록 규칙과 지침을 제공하는 권한을 지니고 있다(신앙고백서 31장 3항). 교회는 노회와 총회의 이런 결정이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는 경우 그것이 말씀에 일치되기 때문만 아니라 그것들에 부여되어 있는 권세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의 말씀으로 정하신 하나님의 규례로 알고 경외심과 복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개교회주의와 노회의 권세가 그릇된 화학작용을 일으킨다면 노회나 대회는 개교회주의를 더욱 장려하는 방편이 된다. 예를 들면, 하나의 교회가 문제가 발생해 분열됨으로 그리스도의 교회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고 그리스도의 영광이 훼손되었다면, 노회는 공평무사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그런 양측의 교회 관계자들을 치리하고 권징해야 한다. 그들이 진심으로 회개할 경우 책벌을 해벌하고 교회의 지위를 회복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적지 않은 노회 정치가 여러 종류의 이해관계에 얽혀 아무런 책벌이나 해벌 없이 교회 분열을 인정한다면 노회는 개교회주의를 방관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노회는 시쳇말로 “또 하나의 교회가 생기니 좋은 것 아니냐?”는 안일한 생각으로 좋아할 일이 아니다. 따라서 노회 차원의 목사재교육과 연합제직교육과 같은 교회론 교육이 시급하다. 개교회의 목양은 그저 담임 목사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한 교회의 담임 목사는 본래 노회가 파송하며 노회가 감독하는 것이다. 또한 시찰회의는 담임목사와 그가 목회하는 교회가 목양을 잘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돕기 위해 필요하다.   

 

올바른 개교회주의를 확립하자

  우리 집에는 다섯 식구가 산다. 여기에는 가장이 있고 부모가 있고 형제자매가 있다. 다섯 식구는 개인이자 동시에 가족이다. 가족들 간에도 지켜야 할 예의와 윤리가 있다. 뿐만 아니라 각 개인의 권리와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다섯 명의 각 개인들은 하나님이 함께 살라고 맺어주신 가족 공동체라는 사실이다.

  가족이 있다면 가족을 무시하고 나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가정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그는 가족 공동체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주적 보편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다. 따라서 다른 가족인 교회들 없이 나 혼자의 교회로는 살 수 없다. 공동체 없이는 내가 없다. 내가 곧 공동체를 대표하며 공동체가 곧 나를 대표한다. 그래서 교회는 성경의 법을 따라 세상에서 언덕위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마 5:14-16). 언덕 위의 도성은 모든 사람들이 보는 교회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개인과 하나의 개교회가 어떤 행동을 할 때는 늘 공동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위기가 곧 기회

  오늘날 너나 할 것 없이 교회를 비판한다. 기실 일부 교회들이 하는 행태를 보면 비판받아 마땅한 국면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비판할 때 사용하는 ‘교회’라는 이름은 우리가 경박하게 함부로 비판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교회를 위해 피를 흘리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차제에 우리가 교회를 비판할 때는 어떤 특정 교회, 어떤 특정 신앙인을 명시해서 비판해야 할 것이다.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것을 애통해 하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사람들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확실히 이런 국면에서 작금의 조국교회는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위기가 곧 기회이다. 교회는 실패한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실패한 그 자리에서 다시 영광스러운 교회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 그것을 명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실패한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아침 밥상을 손수 차려주시면서 그에게 또 사명을 맡기셨다. 실패했다고 자포자기해서는 안되며 이제 더 이상 소망이 없다는 지극히 비관주의도 우리의 것이 아니다. 주께서 사명을 다시 맡기시면,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결연한 결단과 추진력을 보여야 한다. 변화하지 않아도 고통은 수시로 우리를 엄습해 온다. 변화함으로 받을 고통보다 가만히 있어 현실에 안주함으로 받는 고통이 더 심각할 것이다.

  우리는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지역 교회를 새롭게 갱신해야 한다. 큰 집회, 큰 모임, 큰 교회가 곧 부흥이요 힘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한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하나의 교회를 만드는데 있지 않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사회를 도덕적으로 개선하는데 있지도 않다. 교회는 세상에 선한 사람을 만드는데 있지 않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새사람을 창조하는데 있다. 교회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고 자신의 엄청난 죄악을 발견하게 하고 그 결과 자신에게 소망이 없음을 깨달아 절망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오직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사람들을 인도하는데 최선의 목적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런 그가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교회가 되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게 해야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개인의 변화 없이는 개교회주의의 변화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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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18.04.25 By개혁정론 Views1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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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기획-교회개척 프로세스] 교회설립까지 행정 및 법적인 절차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 기획기사는 교회개척 프로세스입니다. 지금도 교회개척이 필요하냐고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교회를 개척할 필요가 없다고요. 있는 교회도 정리해야 할 판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이제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
    Date2018.04.23 By개혁정론 Views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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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기획-교회개척 프로세스] 장로교 교회개척원리

    이번 기획기사는 교회개척 프로세스입니다. 지금도 교회개척이 필요하냐고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교회를 개척할 필요가 없다고요. 있는 교회도 정리해야 할 판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이제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
    Date2018.04.20 By개혁정론 Views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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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사설
실력에 속지 말라
[사설] 남북정상회담에서 평화협정... 1
[사설] 부목사도 노회원이다
[사설] 거짓 증거를 경계하자
[사설] 순장 총회와의 교류를 적극 ...
[사설] 제67회 고신총회에 바란다
[사설] 대선에서 누구를 뽑을 것인가?
[사설] 총회 직원 순환보직이 악용...
[사설] 작금의 국정농단사태, 어떻...
[사설] 역사의 교훈을 경시해서는 ...
칼럼
영원한 은혜 (2)
영원한 은혜 (1)
지속되는 은혜 (2)
지속되는 은혜 (1)
[해외칼럼] 지키시는 은혜 (2)
[해외칼럼] 지키시는 은혜 (1)
[해외칼럼] 귀한 은혜 (2)
[해외칼럼] 귀한 은혜 (1)
[해외칼럼] 찬송가 뒤에 있는 이야...
[해외칼럼] 찬송가 뒤에 있는 이야...
기고
화란개혁교회와 고신총회의 관계에 ...
기독교의 가장 중요하고 오래된 의...
[대담] “진리를 말하고 삶으로 진리... 1
개혁신앙인은 현대과학을 어떻게 볼... 1
시대 상황과 그리스도인의 사명 1
칼빈의 창조적인 교회력 수정
미래 목회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거울 뉴런 발견자와 르네 지라르의 ...
[기고] 명성교회의 세습을 슬퍼하며
우리는 무엇을 팔고 있는가? (재미...
논문
[논문] 작은 교회 성도들은 행복한가?
한국 장로제도의 반성과 개혁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유산과 한국...
장로회정치원리에 비추어 본 노회 실태
고령화 시대, 선교현장을 섬기는 교...
개혁주의 교회설립에 대한 새로운 비전
KPM선교의 내일을 향한 준비 (김종...
여성 목사 안수에 관하여
종교개혁과 교리개혁: 사도신경을 ...
수도권의 교회연합 가능성 모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