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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기사는 다시 코로나다. 코로나 19는 우리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고, 지금까지 견지해왔던 우리의 모든 경제생활과 사회생활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하라는 사인이다. 신앙생활도 예외가 아니다. 작금에 국가와 교회의 관계, 예배 자체에 대한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교회의 부실함과 신앙인의 어리석음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차제에 이 사태가 드러내고 있는 우리의 속살을 하나씩 꺼내놓고 문제제기를 해 보면서 향후 교회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 보려고 한다. 코로나 사태는 이번으로 끝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 편집자 주        

 

 

교회는 가현설(假現說)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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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고대교회가 싸웠던 가장 큰 이단 중에 하나가 바로 ‘가현설’(假現說)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가짜로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이 가현설은 물질은 본래 악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물질적인 육체와 결합할 수 없고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고 주장한다. 헬라의 영육이원론에 근거한 생각이었다. 그들은 인간 예수에게 그리스도께서 임해서 역사하다가 십자가 지기 직전에 예수를 떠났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가 떠났으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는 단지 인간 예수에 불과하다. 이 가현설이 고대교회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았기에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면 하나님께 속했고, 그렇지 않으면 적그리스도의 영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요일 1:1-2; 2:22-23; 4:2-3; 5:5-6). 가현설은 우리의 육체를 죄악된 것으로 보고, 우리의 몸이 구원받는다는 것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이 가현설과의 싸움은 고대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시대의 교회든지 다양한 형태의 가현설과 싸우고 있다.

 

 

가상의 공간이 점차로 확대되는 오늘날의 모습

 

코로나 19로 인해 주일과 예배의 모습이 급속도로 바뀌어가고 있다. 교회 내에서 여러 가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온라인 예배에 대한 논쟁이 대표적이다. 온라인 예배를 가상현실이라고 부를 것 까지는 없을 것이다. 목사가 혼자서 영상을 찍어서 전송하든지, 몇 사람이 예배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든지 그것은 실제로 발생한 것을 전송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예배는 지역사회감염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기에 개체교회의 회중이 한 자리에서 함께 하지 않고, 각자의 집에서 나누어져 영상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제 교인들은 각 가정에서, 그리고 홀로 있으면서 영상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것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교회가 이제 가상의 공간을 만들고 누리는 일에 합류했다고 하겠다.

 

가상의 공간이 왜 문제 되는가? 그것이 현대문화의 대표적인 모습이 아닌가? 이제 사람들은 온라인 공간을 훨씬 더 편하게 생각한다. 이제 사람은 몸소 한 공간을 찾아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힘들게 찾아가서 사람을 만나 마주 보면서 눈치를 보거나 얼굴 붉히지 않아도 된다. 화면이 싫으면 꺼 버리고 목소리만 들어도 된다. 온라인상으로도 얼마든지 함께 할 수 있고 하나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공간은 대면문화와 달리 불필요한 감정 소모 없이 적당한 선을 놓고 하나 됨을 경험할 수 있다. 내 쪽에서 얼마든지 조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기분에 맞추어 마우스나 스크린을 터치하여 얼마든지 단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공간은 오프라인 공간의 축소가 아니라 시공간의 제약을 무한정으로 확장시켜 준다는 것이 매력포인트다.

온라인예배는 아무리 직접성에 호소해도 간접적일 수밖에 없다. 왜 상상력이 부족하냐고 말할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육적인 것에 집착하냐고 말할지 모르겠다. 아니, 온라인과 영상은 굳이 상상이 필요한 것도 아니라고 말이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온라인으로 목사와 다른 성도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생생하게 보고 듣고 있는데 말이다. 사실, 대형교회에서는 주일에 예배에 참여해도 다른 교인들과의 인격적인 접촉이 거의 없다. 전혀 모르는 이들과 함께 한 공간에 앉아있기 때문이다. 저 멀리에 있는 목사의 모습만 아스라이 보고, 아니 어떤 경우에는 한 장소에 있어도 화면으로만 목사를 보면서 예배하니 온라인 예배와 하나도 차이가 없다. 심지어 예배당에 갔는데 한 공간이 아니라 다른 층이나 다른 건물에 앉아서 화면으로 예배를 하니 말이다. 현대교회는 온라인 예배를 하기 이전에 이미 서로에게 가상의 존재였다. 이 가상의 존재가 가상의 공간으로 옮겨가고 있다.

 

 

교인을 가상의 존재로 취급하지 말아야

다들 작금의 온라인예배를 임시방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나친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가정에서 온라인으로 예배하고, 가정 경건회를 가지는 것이 주일에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하는 것을 대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교인들에게 주일에 예배당에 모여서 집단적으로 예배한 것으로 신앙의 도리를 다한 것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것을 탈피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이제는 집단적인 신앙생활에서 개별적이고 각성된 신앙생활을 하는 단계로 올라설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젖만 먹는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딱딱한 것을 먹는 장성한 모습으로 자라야 할 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교인들을 개인주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상의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 아닌가? 교인은 그냥 한 개인이 아니라 교회에 속한 사람인데 말이다.

오프라인에서 예배할 때에도 교인을 가상의 존재로 취급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독일의 신학자 헬무트 틸리케는 가현설적인 설교를 말한 적이 있다. 가현설적인 설교는 세상에서 유리된 어떤 인간, 인간과 비슷한 인간을 향해 설교하는 것이다. 목사가 현실에서 있지 않은 인간을 향해서 설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목사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설교한다고 해 보자. 신자라면 누구든지 예외없이 이웃을 위해 무조건 희생하라고 설교한다고 해 보자. 회중에 사업을 하는 사람이 있다. 사업을 하는 그 신자의 이웃 중에 사업상 서로 경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 말은 사업을 하지 말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경우에 목사는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이 아니라 진공 속에 존재하는 인간을 향해 설교하는 것이다. 목사가 설교하고 가르치고 상담하면서 교인을 가상의 존재로 취급하기 쉽다.

교인들이 서로를 가상의 존재로 대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교인들이 상대방을 개인주의적으로 대할 때 가상의 존재로 대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형편을 동정하는 것이 도리어 그를 그리스도의 몸에서 은근슬쩍 밀어내는 것일 수 있다. 교인은 그냥 한 개인이 아니라 교회에 속한 사람이요, 서로에게 속해 있는데 말이다. 온라인 예배가 계속되고 있는 이때 우리는 더더욱 그리스도의 몸에 속해 있다는 것을 더 절실하게 느끼는 시간들이 되어야 하겠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이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마 1:21). 우리는 홀로 구원을 이룰 수 없고, 결코 홀로 살아갈 수 없다. 아니, 우리는 얼마든지 홀로 구원을 이루고, 홀로 살아가려고 한다. 코로나 19가 사람을 덮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홀로 살아가려고 했기 때문에 코로나 19가 덮쳤다. 홀로 구원을 이루고 홀로 살아가려고 할 때 우리는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속하지도 않고 이 세상에서 있지도 않는 존재가 된다.

 

 

성례야말로 가현설을 떨쳐버릴 수 있는 방편

부활절이 되었기에 온라인 성찬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코로나 19로 인한 비상시국이라 함께 모일 수 없기 때문에 온라인 성찬까지 고려하고 있는데 무슨 문제가 되는 것일까? 목사가 집례하지 않으면 예배가 아니고, 목사가 그 손으로 친히 떡과 잔을 떼고 부어서 나누어주지 않으면 성찬이 아니라고 한다면 목사는 로마가톨릭의 사제가 되는 것이고, 성찬의 요소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바뀐다고 하는 화체설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목사가 성직자라고 생각하고, 예배당이 성전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 문제는 훨씬 더 깊은 곳에 있다. 요는 목사와 회중의 관계를 넘어서 신자이면서 동시에 사람인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냐 하는 것이다.

 

온라인 성찬은 목사가 성찬을 집례하는 장면을 각 가정에서 보면서 따라하는 것이다. 하지만 회중이 한 공간에서 함께 모이지 못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무리 가상의 공간에 모였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온라인상으로 생생하게 목소리를 듣고, 활동하는 장면도 볼 수 있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할 것이다. 한국교회에서는 지교회라는 개념이 있어서 모교회에서 예배하는 실황을 지교회에서 중계해서 보면서 예배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이런 모습이 어색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심지어 목사가 사망한 이후에도 교인들이 모여서 사망한 목사의 영상을 틀어놓고 예배하는 경우마저 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것이 아무리 신앙열심을 포장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가현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믿음은 거리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기는 하지만 몸이 부딪히면서 인격적으로 교류하는 것을 무시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것만큼이나 불신의 행위이다.

 

세례식과 성찬식에서는 요소인 물질(세례식의 경우에는 물, 성찬식의 경우에는 떡과 잔)이 거기에 있다. 바로 그 자리에 회중도 물질과 다를 바가 없이 한 장소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그 물질을 통해 그리스도를 볼 수 있고, 맛까지 볼 수 있다. 평상시의 식사와 달리 성찬상에서 우리는 요소가 하나도 바뀌지 않아도 완전히 바뀐 것을 먹고 마신다. 우리의 믿음이 가상적인 것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 상에 실제적으로 임재하시기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먹고 마신다. 우리의 육이 물질을 통해 그리스도를 생생하게 보고 누린다. 이렇게 가현설을 떨쳐버릴 수 있는 생생한 은혜의 방편을 교인들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온라인으로 굳이 시행할 필요가 있을까(고전 11:18)? 몸들이 함께 모이지 않았는데 함께 먹고 마셨다고 하면 그것이 가현설에 가깝다. 이것은 개인주의적인 신앙생활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혈과 육을 가진 인간을 향해서 말하고 다가가야
 

이번 코로나 19사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바이러스를 생각해 보자. 바이러스는 물성을 가지고 있기에 몸을 가진 사람을 공격한다. 바이러스는 몸을 공격하고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는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평등하게 대한다고 하지만 가상의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바이러스는 사회적 거리두기마저 할 여유가 없는 이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더 크게 고통받고 죽음에 내몰린다. 코로나 19사태는 사람이란 가상의 존재가 아니라 살이 찢겨나가고 피를 줄줄 흘리는 육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사람이 육적인 존재라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해 주는 이 때에 우리의 반응은 너무나 영적이다. 사람이 특정한 공간에서 몸이 부딪히지 않고도 가상의 공간에서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함께 모이지 못하는 날들이 길어지고 있어서 우리는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적당하게 거리를 두고 서로 떨어져 있는 것에도 익숙해져 가고 있다. 앞으로는 사람들이 거리를 좁히는 것을 힘들어할 뿐만 아니라 거리두기를 안 하는 이들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는 속히 주일에 예배당에 모여 함께 예배하고 교제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삶의 예배라는 것이 이 공예배를 대체할 수 없고, 그 정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삶이 예배이기에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영적인 예배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말이다. 그런 말은 무책임한 것을 넘어서 사람을 가상의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다. 가현설이 바로 물질을 무시하면서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경향성이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물질적인 존재이다. 물질적인 것을 무시하는 그 어떤 것도 영적일 수가 없다.

오프라인으로 모이기만 하면 가상을 극복하고 실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가 오프라인으로 늘 모여 예배한 것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가상의 신, 즉 우상을 섬긴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구약시대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누군가가 나서서 성전문을 닫아 걸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하지 않으셨는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전을 뻔질대며 드나들었지만 사실은 가상의 공간에 나아가서, 가상의 신을 섬겼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들어주는 자판기와 같은 신을 섬겼다.

우리는 신앙을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도리어 교인이며 신앙생활을 개인주의화하거나 추상화하곤 한다. 가상의 공간이 혹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신자를 가상의 존재로, 교회를 가상의 몸으로 대해서는 안된다. 신자가 몸으로 하는 것이 분명한 실상이요, 회중이 함께 모일 때(그것이 곧 예배이다) 그리스도의 몸이 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 신앙은 만지면서 하는 것이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속해서 구원을 이루어간다. 그리스도의 몸에 속해서 서로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놓는 것이 신앙이요 구원이다. 기독교인은 가상의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여 하나됨을 생생하게 누리면서 이 세상에 나아가서 부딪히고 깨지면서 살아가는 생생한 존재이다. 무릇 교회는 이 세상과 사람을 가상의 공간과 존재로 생각하고 대하는 모든 것들과 싸워서 현실성과 물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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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나를 반석으로 이끄소서
기고
코로나 19 사태와 이에 따른 목회환...
코로나 사태, 교회의 체질을 근본적...
“인터넷 성찬”이 가능한가?
코로나19에 대해 전문가에게 묻다
그 무엇도 방해하지 못하는 복음
국가적 비상상황과 공예배에 대한 ...
성경이 나를 읽어내고, 나의 삶으로...
네덜란드 자매교회 총회를 참석하고
노회는 장로회교회의 꽃이다
[기고] 총회 개최 장소 문제에 대하여
논문
장로교 정치원리 하에서의 각종 단...
목사와 장로, 그 역할과 관계와 갈...
성경적 장로교 정치원리 (서울포럼 ...
[논문] 작은 교회 성도들은 행복한가?
한국 장로제도의 반성과 개혁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유산과 한국...
장로회정치원리에 비추어 본 노회 실태
고령화 시대, 선교현장을 섬기는 교...
개혁주의 교회설립에 대한 새로운 비전
KPM선교의 내일을 향한 준비 (김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