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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

 

 


   지난 제69회 총회에 상정되었으나 1년간 연구하여 보고하기로 한 안건들이 제70회 총회 보고서에 실렸다.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본보는 보고서 전문을 순차적으로 싣는다.

 

1. 은퇴목사 투표권 삭제 청원에 대한 법제위원회 보고

2. SFC문제에 대한 학생신앙운동 지도위원회 보고

3. 쉬운 성경 평가 보고서 – 신대원 교수회

4. 목사 청빙 매뉴얼 - 신대원 교수회

5. “생계 대책을 위한 목사의 이중직 허락 연구” - 신대원 교수회

6. 정동수 목사의 KJV 성경 입장에 대한 연구보고서 – 신대원 교수회

7. 김용의 선교사 사상 연구보고서

8. 미주 세이연: 대표 김순관 및 이인규씨에 대한 연구 보고서 


 

 

<쉬운 성경> 평가 보고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쉬운 성경>은 2001년에 <아가페 출판사>가 발간한 원문 번역 성경이다. 간행사에 따르면, 이 성경은 히브리어 성경과 헬라어 성경의 원문을 정확하게 번역한 것이다. 아가페 출판사는 원문의 의미를 살리면서도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누구나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쉽게 번역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출판사의 주장대로, <쉬운 성경>이 한국 교회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에 비해서 읽기 쉬운 것은 사실이다. <개역개정>과 달리 현대어 체로 번역했고, 이해하기 쉬운 단어들과 표현들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쉬운 성경>은 거리와 시간 등을 현대 방식으로 표기했고(오리 - 1.5킬로미터, 십리 - 3킬로미터, 육시 - 낮 12시, 구시 - 오후 3시 등), 일부 지명들을 오늘날 통용되는 것으로 제시했다(구브로 - 키프로스, 그레데 - 크레타, 다메섹 - 다마스커스, 멜리데 - 몰타, 바사 - 페르시아, 아덴 - 아테네 등).

 

   그러나 <쉬운 성경>은 누구나 읽기 쉽게 번역하려고 하다가 원문에 충실해야 한다는 번역의 원칙을 무시하고 말았다. <아가페 출판사>는 성경의 원문을 정확하게 번역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으며, 원문과 동떨어진 내용을 삽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쉬운 성경>에는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에 없는 내용을 삽입한 경우들이 지나치게 많고, 심지어 오역한 경우들도 적지 않다. 번역이라고 할 수 없는 과도한 의역과 주해에 가까운 번역도 많다. 심지어 원문과 거리가 먼 오역들도 있다.

 

   이 보고서는 <쉬운 성경>의 번역상의 오류들을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항목으로 제시하고 평가하였다. (1) 원문에 없는 내용을 첨가한 번역, (2)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번역, (3) 원문과 다른 번역, (4) 일관성이 없는 번역, (5) 경어체 번역. 번역상의 오류들 중에서 심각한 것들은 별표(***)를 붙여 구분하였다. 이 보고서에서 제시한 예들은 <쉬운 성경>이 지닌 문제점들과 오류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I. 원문에 없는 내용을 첨가한 번역

 

1. 구약 성경

(1) 창세기 1:2

그런데 그 땅은 지금처럼 짜임새 있는 모습이 아니었고, 생물 하나 없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이 번역에서 “지금처럼 짜임새 있는”과 “생물 하나 없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성경에 없다.

 

(2) 창세기 4:26

그때부터 사람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가 없다. “여호와를 불렀다”는 말에 예배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지만, 번역에 이런 설명을 길게 첨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3) 창세기 6:4

그 무렵 땅 위에는 ‘네피림’이라는 거인들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그 때에 땅에 네피림들이 있었다고 하지만, 거인들이라는 설명은 없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향을 받은 주석가들 중에 네피림을 거인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네피림의 정체를 성경이 분명히 말하지 않고 있는데, <쉬운 성경>이 명시적으로 거인들이라고 첨가한 것은 매우 잘못되었다.

 

(4) 창세기 8:20

노아는 깨끗한 새와 짐승 가운데서 좋은 것을 골라

 

히브리어 성경은 정결한 새와 짐승 중에서 취하였다고 하며, 이들 중에 하나씩을 취하여 잡았다고 하지, 이들 중에서 좋은 것을 골랐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5) 창세기 14:1

그 때에 아므라벨이 시날 곧, 바빌로니아 왕으로 있었고

 

이 번역에서 히브리어 성경에 없는 “바빌로니아”라는 말을 첨가하였다.

 

(6) 창세기 49:10

유다에게서 왕이 끊이지 않을 것이고 … 유다는 참된 왕이 올 때까지 다스릴 것이다.

히브리어 성경은 “규” 또는 지팡이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이 지팡이는 아마도 왕이나 지도자의 지팡이일 것이다. 하지만 히브리어 성경의 비유적 표현인 지팡이를 왕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는 “실로”를 참된 왕으로 번역한 것도 부적절하다. “실로”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고 또 “참된 왕”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로의 의미는 주석과 설교를 통해 설명되어야 한다.

 

(7) 레위기 10:13-15

13 형님과 형님의 아들들은 그것을 성소에서 먹어야 합니다. 그것은 여호와께 바치는 태워 드리는 화제 가운데서 형님과 형님의 아들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내가 여호와께 받은 명령입니다.

 

이 본문은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한 말이다. <쉬운 성경>은 한국적인 배경에서 동생(모세)이 형(아론)에게 높임말을 쓴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히브리어 성경에는 없는 “형님과 형님의 아들들”을 첨가하였다.

 

(8) 민수기 13:33

우리는 그 곳에서 네피림 백성도 보았습니다. 아낙 자손은 네피림 백성의 자손일 것입니다. 그들은 거인이었습니다.

 

이 번역에서 “그들은 거인이었습니다”라는 문장은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쉬운 성경>은 “네피림”(נפלים)이라는 단어에 근거하여 아낙 자손들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 문장을 삽입하였다. 개역개정도 “아낙 자손의 거인들”이라고 번역하였다. 하지만 히브리어 성경에는 “거인들”에 해당하는 단어나 표현이 없다. 단지 “네피림”이라는 단어가 나올 뿐이다.

 

(9) 미가 1:5 ***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의 죄와 야곱의 허물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 사마리아가 아니냐? 유다가 우상들을 섬긴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 예루살렘이 아니냐?

 

히브리어 성경에 “이스라엘의 죄가 무엇이냐”로 되어 있지만, <쉬운 성경>은 “저지른 죄의 책임이”를 첨가하였다. 그리고 히브리어 성경에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냐”로 되어 있지만, <쉬운 성경>은 “우상들을 섬긴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첨가하였다. “이스라엘의 죄가 무엇이냐”와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냐”의 표현 속에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묻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만, 번역에 의미 설명을 첨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10) 미가 5:3 ***

주께서는 진통 중인 예루살렘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그 백성을 바빌론에 남겨 두실 것이다. 그런 뒤에 포로로 끌려갔던 그의 형제들이 유다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쉬운 성경>은 히브리어 성경에 전혀 없는 내용을 첨가하였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진통 중인 예루살렘이”와 “바빌론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형제들”이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인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은데도 <쉬운 성경>은 “그런 뒤에 포로로 끌려갔던”을 임의로 첨가하였다.

 

(11) 미가 5:4

그러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능력과 놀라운 이름으로 그 백성을 돌볼 것이다.

<쉬운 성경>의 번역과는 달리 히브리어 성경에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없고 3인칭 남성 단수로만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히브리어 성경에는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되어 있어서 “여호와”를 강조하는 반복법을 쉬운 성경은 유의하지 않고 삭제하였다. 그리고 “돌볼 것이다”로 번역한 히브리어는 “라아”(h['r')이며 “목양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돌볼 것이다”로 번역하면 목자이신 메시아의 이미지가 사라지게 된다.

 

(12) 하박국 1:9

그들은 모두 싸우러 온다. 그 군대는 사막의 회오리바람처럼 빠르게 행군하며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을 포로로 잡아간다.

 

<쉬운 성경>은 히브리어 성경에 없는 “그 군대는 사막의 회오리바람처럼”을 첨가하였다.

 

(13) 하박국 1:10, 12

10 바빌로니아 군인은 왕들을 조롱하고 통지차들을 비웃는다 … 12 … 주는 백성을 심판하시려고 바빌로니아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쉬운 성경>은 10절과 12절에서 히브리어 성경에 없는 “바빌로니아”를 참가하였다.

 

(14) 스바냐 1:1

“스바냐는 구시의 아들이고 구시는 그다랴의 아들이며 그다랴는 아마랴의 아들이고 아마랴는 히스기야의 아들입니다”

 

<쉬운 성경>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의 구시의 아들이었다”로 되어 있는 것을 각 사람의 관계를 아들로 표시하기 위해 각 사람의 이름을 모두 한 번씩 더 첨가하였다. 위의 번역에서 고딕체로 된 부분은 히브리어 성경에 없다.

 

(15) 스바냐 1:5

… 나 여호와를 예배하고 나의 이름으로 맹세하면서도 말감을 예배하고 맹세하는 사람들을 내가 없애겠다.

 

<쉬운 성경>은 이 본문에서 “예배하고 나의 이름으로”를 첨가하였다. 그리고 히브리어 성경에서 “말감에게 맹세하는 자”라고 한 것을 “말감을 예배하고 맹세하는”이라고 하여 “예배하는”을 첨가하였다.

 

(16) 말라기 1:6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다. “아들은 그 아버지를 존경하고, 종은 그 주인을 존경한다. 나는 아버지다. 그러나 너희가 나를 언제 존경했느냐? … 하지만 너희는 묻기를 ‘우리가 언제 주를 업신여겼습니까?’라고 한다.

 

<쉬운 성경>은 이 본문 첫 부분에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다”를 첨가하였다. 그리고 마지막부분에서 히브리어 성경에 “당신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라고 되어 있는 것을 “주를 업신여겼습니까”라고 번역하였다.

 

(17) 말라기 4:4

너희는 내 종 모세의 가르침, 곧 내가 온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명령한 율법과 규례를 기억하여라.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는 “호렙 산”을 “시내 산”으로 변경하였다.

 

(18) 말라기 4:6

엘리야가 와서 아버지가 자녀를 사랑하게 하고, 자녀가 아버지를 사랑하게 할 것이다. 그들이 사랑하지 않으면, 내가 와서 이 땅에 저주를 내리겠다.

 

이 본문에서 <쉬운 성경>은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지 않는 “엘리야가 와서”를 첨가하였다.

 

 

2. 신약 성경

(1) 요한복음 1:13 ***

좋은 가문에 태어난 사람들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어떤 사람의 계획이나 바람에 의해서, 그리고 그들의 조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들은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아버지라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헬라어 성경에 나오지 않는 내용을 많이 첨가한 지나친 의역이다. 이 번역에서 “좋은 가문에 태어난 사람들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문장과 “그리고 그들의 조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아닙니다”라는 문장은 헬라어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아버지라는 사실 때문에”라는 구절도 부당한 첨가이다. 이 본문은 아래와 같이 번역해야 한다.

이 사람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욕망으로나 사람의 뜻으로부터 나지 않았고 하나님으로부터 났습니다.

 

(2) 사도행전 9:36 ***

욥바에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그리스어로 하면 도르가인데 그 뜻은 ‘사슴’입니다.

 

이 번역에서 헬라어 성경에 없는 “그리스어로 하면”과 “그 뜻은 ‘사슴’입니다”라는 구절을 첨가하였다. 이것은 성경을 번역할 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특히 헬라어 성경에 나오지 않는 도르가라는 이름의 뜻을 제시한 것은 매우 심각한 잘못이다. 이는 주석이나 강해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이다.

 

(3) 사도행전 12:1, 19

1 이 무렵, 헤롯 아그립바 왕은 교회에 속한 몇 사람을 박해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 19 헤롯 아그립바는 철저하게 수색하여 베드로를 찾으라고 명했으나, 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쉬운 성경>은 헬라어 성경 12:1에 “헤롯 왕”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헤롯 아그립바 왕”으로, 12:19에 “헤롯”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헤롯 아그립바”로 번역하였다. 두 본문에서 “아그립바”는 헬라어 성경에 나오지 않는 이름이다. 사도행전의 본문에서 “헤롯”은 마태복음 2:1에 등장하는 “헤롯 왕”의 손자로서 이름이 “헤롯 아그립바”였다. 그러나 헬라어 성경에 나오지 않는 이름을 첨가하는 것은 잘못이다.

 

(4) 에베소서 3:6 ***

그 비밀이란 바로 이방인들도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위해 예비해두신 것들을 상속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도 유대인과 함께 한 몸을 이루는 지체가 되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함께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주신 기쁜 소식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번역이라고 하기 어려운 자의적인 작문에 가깝다. 마지막 문장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주신 기쁜 소식이 아니겠습니까?”는 헬라어 성경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번역할만한 표현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복음으로 말미암아”라는 구절을 이렇게 풀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헬라어 성경에서 “복음으로 말미암아”(διὰ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 “디아 투 유앙겔리우”)는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 함께 구원에 참여하는 수단을 알려준다. 반드시 “복음으로 말미암아”라고 번역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주신 기쁜 소식이 아니겠습니까?”라는 문장은 번역자가 제멋대로 본문에 추가한 것이다. 누가 번역자에게 이런 권리를 주었는가? 원문을 충실하게 번역해야 한다는 성경 번역의 기본 원리를 짓밟은 것이다. 이 본문은 아래와 같이 번역해야 한다.

 

그 비밀은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을 이루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5) 에베소서 3:8 ***

나는 지극히 보잘 것 없는 그리스도인 중에 하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내게 능력과 재능을 주셔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누리게 될 부요함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 복음의 부요함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만큼 크고도 놀랍습니다.

 

이 번역에서 “이 복음의 부요함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만큼 크고도 놀랍습니다”라는 문장은 헬라어 원문에 없는 것이다. 또 “능력과 재능을 주셔서”라는 구절도 없다. 이것은 “이 은혜가 주어졌다”(ἐδόθη ἡ χάρις αὕτη, “에도떼 헤 카리스 하우테”)라는 구절을 심각하게 왜곡한 것이다. 이 구절에서 “이 은혜”(ἡ χάρις αὕτη, “헤 카리스 하우테”)는 바울을 사도로 불러주신 은혜를 가리킨다. 따라서 “은혜”를 “능력과 재능”으로 번역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지극히 보잘 것 없는 그리스도인 중에 하나였으나”는 헬라어 성경에서 “모든 성도 중에서 가장 작은 자보다 작은 나에게”를 의역한 것이다. 이 본문은 아래와 같이 번역해야 한다.

 

모든 성도 중에서 가장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가 주어졌다. 그것은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함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기 위함이고

 

(6) 에베소서 4:30 ***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성령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여러분이 구원 받을 것을 보증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 번역에서 “성령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해 주시는 분입니다”라는 문장은 헬라어 성경에 없는 것이다. 또한 마지막 문장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여러분이 구원 받을 것을 보증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도 헬라어 성경에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 문장은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속량)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다”를 풀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좋은 쪽으로 이해한다고 해도 이것은 원문 번역도 아니고 주해도 아니다. 성경 원문에 대한 번역자의 횡포와 다름없다. 아래 제시한 평가자의 원문 번역과 비교해보라.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속량)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다.

 

(7) 데살로니가후서 1:10 ***

주 예수님께서 오실 그 날,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질 것이며, 우리 주님은 주님을 찬양하는 거룩한 백성에게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여러분도 우리가 전한 복음을 믿었으니 주님을 높여드리는 무리 안에 속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헬라어 성경에 없는 내용을 마구 삽입한 엉터리 번역이다. 이 번역에서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질 것이며,” “주님을 찬양하는,” “주님을 높여 드리는 무리 안에 속하게 될 것입니다”는 헬라어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이 본문은 아래와 같이 번역할 수 있다.

 

그 날에 그가 오실 때 그의 성도들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 가운데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실 것이다. 이는 우리의 증언이 너희에게 믿어졌기 때문이다.

 

(8) 디모데전서 5:23 ***

디모데여,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포도주도 약간 마시도록 하십시오. 포도주는 소화 기능을 도와주어 지금처럼 자주 아프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 번역에서 “디모데여”는 헬라어 성경에 없는 것이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포도주는 소화 기능을 도와주어”라는 구절이다. 헬라어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할 수 있는 구절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포도주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번역자가 부당하게 첨가한 것이다. 또한 <쉬운 성경>의 번역에서 “지금처럼 자주 아프지 않게 될 것입니다”라는 문장 역시 자의적인 작문에 가깝다. 이 본문은 다음과 같이 번역해야 한다.

 

더 이상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 사용하라

 

(9) 요한일서 3:9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그의 자녀로 삼으셨을 때 그 사람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삶의 씨가 그의 안에 머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계속하여 죄를 짓고 살 수 없습니다.

 

이 번역에서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그의 자녀로 삼으셨을 때”라는 구절은 헬라어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Πᾶς ὁ γεγεννημένος ἐκ τοῦ θεοῦ, “파스 호 게겐네메노스 에크 투 떼우”)라는 표현을 지나치게 의역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삶의 씨”라는 구절은 “그의 씨”(σπέρμα αὐτοῦ, “스페르마 아우투”)에 대한 과도한 의역이다. 헬라어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삶의”에 해당하는 단어나 구절이 전혀 없다. 이것은 번역자의 자의적인 삽입이다. 이 본문은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하나님)의 씨가 그의 안에 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죄를 지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났기 때문이다.

II.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번역

1. 신약성경

(1) 로마서 8:17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또한 그리스도와 공동의 상속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누리시는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 그분이 겪으신 고난에도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신자들이 그리스도가 겪으신 고난에도 참여한다고 번역한 것은 명백한 신학적 오류이다. 신자들은 그리스도가 겪으신 고난에 참여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이미 완성된 것이고, 게다가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신자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을 받을 뿐이다. 그리스도는 신자가 고난을 받을 때 함께 하신다. “그분이 겪으신 고난에도 참여하는 것입니다”라고 번역한 구절은 “그와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이다”라고 수정해야 한다.

 

(2) 데살로니가후서 1:5 ***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고난을 겪는 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하십니다.

 

이것은 헬라어 구문을 무시한 오역이며, 동시에 신학적으로 잘못된 번역이다. 고난을 겪음으로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다는 것은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성경의 가르침과 충돌을 일으킨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다고 여겨진 신자가 고난을 받는 것이다. 이 본문은 아래와 같이 번역할 수 있다.

 

이는 너희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다고 여겨지기 위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다. 너희가 또한 그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받고 있다.

(3) 디모데전서 2:5 ***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도 한 가지뿐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이것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번역은 지나친 의역이자 신학적으로 잘못된 번역이다. 헬라어 성경에 나오는 중요한 단어인 “중보자”(μεσίτης, “메시테스”)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오역하였다. “중보자”를 어떻게 이렇게 번역할 수 있는가? 예수님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중보자”이시다. 이 번역에서 “이것을 위하여”와 “이 땅에 오셨습니다”라는 표현도 헬라어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하나님과 사람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시다(εἷς γὰρ θεός, εἷς καὶ μεσίτης θεοῦ καὶ ἀνθρώπων ἄνθρωπος Χριστὸς Ἰησοῦς).

 

(4) 디도서 2:13 ***

우리의 크신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그 날까지 충성스럽게 살아갈 때, 우리의 큰 소망되신 예수님께서 영광 가운데 나타나실 것입니다.

 

이 번역에는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이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중요한 증거 구절이다. 그런데 <쉬운 성경>은 “우리의 크신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번역함으로써 더 이상 증거 구절로 사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 번역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을 구분한다. 물론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위격이 다르다. 하지만 이 본문은 성자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말한다. 헬라어 성경에서 “크신 하나님”과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있는 접속사 “카이”(καί)는 “그리고”나 “과”가 아니라 “곧”으로 번역해야 한다(μεγάλου θεοῦ καὶ σωτῆρος ἡμῶν Χριστοῦ Ἰησοῦ). 둘째, 재림과 관련하여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이 함께 오시는 것으로 번역하였다. 하지만 재림은 성자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다. 셋째, 헬라어 성경에는 “충성스럽게 살아갈 때”라고 번역할 수 있는 구절이나 표현이 없다. 이것은 잘못된 첨가이다. 이 본문은 아래와 같이 번역해야 한다.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나타남을 기다리기 위함이다.

 

(5) 갈라디아서 5:5 ***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는 이 소망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이 번역은 교리적으로 명백한 오역이다. 헬라어 성경에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고 있다”라는 구절을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는 이 소망을 간절히 기다립니다”라고 번역하였다. 이것은 헬라어 원문과 거리가 먼 번역이다. 교리적인 면에서 매우 잘못된 번역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미래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신자가 믿을 때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의 복이다. 따라서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은 신자의 소망일 수 없다. 헬라어 성경에는 “의의 소망”(ἐλπίδα δικαιοσύνης, “엘피다 디카이오쉬네스”)으로 나온다. 이것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신자의 본성이 완전히 의롭게 되는 성화의 의에 대한 소망을 가리킨다. 이 본문은 아래와 같이 번역해야 한다.

 

우리는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III. 원문과 다른 번역들

1. 구약 성경

(1) 창세기 1:6-7

6 하나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물 한 가운데 둥근 공간이 생겨 물을 둘로 나누어라.” 7 하나님께서 둥근 공간을 만드시고, 그 공간 아래의 물과 위의 물을 나누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 번역에서 “둥근 공간”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오해하게 만드는 표현이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둥근’이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

 

(2) 창세기 2:23

그러나 아담이 말했습니다. “아,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므로,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쉬운 성경>은 ‘이는’을 감탄사 “아”로 오역하였다. “이는”의 히브리어 “조트”(taOz)는 아담이 하와에 대해 하나님께 고백하는 말이며, 아담이 하와를 보고 감격하는 표현이 아니다.

 

(3) 창세기 3:20

아담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지었습니다. 이는 그녀가 모든 생명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쉬운 성경>이 “생명”로 번역한 것은 형용사 “하이”(yx)의 명사적 용법인 “살아있는 자”에 대한 오역이다. “살아있는 자”를 “생명”으로 번역하면 하와의 어머니 역할의 대상이 무엇인지 모호하게 된다. 이 표현은 “모든 살아있는 자”라고 번역해야 한다.

 

(4) 창세기 4:7

네가 좋은 마음을 품고 있다면 어찌 얼굴을 들지 못하겠느냐? 네가 좋은 마음을 품지 않으면 죄가 너를 지배하려 할 것이다.

 

<쉬운 성경>이 “좋은 마음”으로 번역한 히브리어 동사 “야타브”(bjy)의 힙일 형은 사람의 좋은 마음과 품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일 또는 좋은 일을 실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지 않은 것은 가인의 악한 마음을 비롯하여 그의 악한 행동 때문이다.

 

(5) 창세기 4:14

주께서 오늘 저를 땅에서 쫓아 내셨습니다. 저는 이제 주를 만나 뵐 수도 없을 것입니다.

 

<쉬운 성경>의 번역은 히브리어 본문에서 “나는 이제 당신 앞에서 숨게 될 것입니다”에 대한 오역이다. 이 번역은 마치 가인이 하나님을 뵙고 싶은 마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가인을 만나 주지 않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을 뵙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히브리어 성경의 의미는 가인이 하나님을 피하여 숨고 도망 다닌다는 것이다.

 

(6) 창세기 12:2

내가 너를 큰 나라로 만들어 주고, 너에게 복을 주어 너의 이름을 빛나게 할 것이다.

 

이 번역에서 “너의 이름을 빛나게 할 것이다”는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는 구절 “내가 너의 이름을 크게 할 것이다”에 대한 오역이다. 하나님의 의도는 아브라함의 이름을 널리 알려지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 번역에서 “이름을 빛나게”라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호하다.

 

(7) 창세기 18:12

그래서 사라는 속으로 웃으면서 ‘내 남편과 나는 너무 늙었는데, 어떻게 우리에게 그런 즐거운 일이 생길까?’ 하고 말했습니다.

 

이 번역에서 “어떻게 우리에게 그런 즐거운 일이 생길까?”라는 문장은 “내가 늙은 이래로 내게 즐거움이 있었는가?”라는 히브리어 본문을 의역한 것이다. 이 말은 하와가 아브라함과 동침하지 않은 기간이 오래 되었다는 뜻이다. 출산은 생각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쉬운 성경> 번역은 마치 출산의 즐거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의심하는 말로 바꾸었다.

 

(8) 출애굽기 6:3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한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내 이름을 여호와라고 알리지는 않았다.

이 번역에서 “내 이름을 여호와라고 알리지는 않았다”는 오역이다. 개역개정처럼 히브리어 본문이 의문사 “하”가 생략된 의문문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알리지 않은 것으로 번역하였다.

 

(9) 레위기 13:2

누구든지 살갗에 종기나 부스럼이나 얼룩이 생겨, 위험한 피부병에 걸린 것처럼 보이면, 그 사람을 제사장 아론이나 아론의 아들들 가운데 한 제사장에게 데려가거라.

 

<쉬운 성경>은 <개역 개정>이 “나병”으로 번역한 것을 “위험한 피부병”으로 번역하였다. 히브리어 “차라아트”(t[;r'c')는 현대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질병이며, 나병을 포함하여 전염성이 있는 위험하고 독특한 피부병을 의미한다. 이것을 “위험한 피부병”으로 번역하면 의미를 단순 피부병으로 한정시킬 수 있다.

 

(10) 레위기 13:47

모시옷이나 털옷에 곰팡이가 생길 수도 있다.

 

히브리어 성경의 “차라아트”(t[;r'c')를 <개역개정>이 “나병 색점”으로 번역하였는데, <쉬운 성경>은 “곰팡이”로 번역하였다. 레위기 13:2-46에서는 사람의 몸에 발생한 “차라아트”를 “위험한 피부병”으로 번역하였다. “차라아트”는 구약성경에서 주로 하나님의 징벌의 결과로 생겨나는 것이다. <쉬운 성경>은 “곰팡이”로 번역함으로써 너무 단순하게 만들어 버리고 있다.

 

(11) 레위기 14:44

제사장은 다시 돌아와서 그 집을 자세히 조사하여라. 만약 집에 곰팡이가 퍼졌으면 그것은 집에 퍼지는 위험한 곰팡이다. 그 집은 부정하다.

 

<쉬운 성경>은 레위기 14:33-57에서 <개역개정>이 “나병 색점”으로 번역한 히브리어 “차라아트”(t[;r'c')를 “곰팡이”로 번역하였다. 이 번역은 가정집에 생겨날 수 있는 곰팡이를 모두 죄로 생각하게 만들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12) 레위기 15:2, 30

2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여라. 어떤 남자든지 몸에서 고름이 흐르면, 그 남자는 부정하다. … 30 … 그리하여 제사장은 피를 흘리는 그 여자의 부정한 것을 여호와 앞에서 깨끗하게 하는 예식을 행하여라.

 

<쉬운 성경>은 <개역개정>이 “유출병”으로 번역한 히브리어 “조브”(bwOz)를 남자의 경우에는 “고름”으로 번역하였고(레 15:2), 여자의 경우 “부정한 것”(레 15:30, 33)으로 번역하였다. 유출병은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에 생긴 질병 때문에 흘러나오는 피나 고름이다. 만일 남자의 유출병을 “고름”으로 번역하면, 남자의 몸에서 나오는 모든 고름을 유출병으로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

            

(13) 미가 6:8

사람아! 그 분이 네게 말씀하셨다. 무엇이 선하며,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이 번역은 “사람아! 그가 네게 무엇이 선하며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 하셨나니”의 오역이다.

 

(14) 하박국 2:20

그러나 나 여호와는 나의 거룩한 성전에 있으니 온 땅은 내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히브리어 성경에 “그의 거룩한 성전”과 “그 앞에서”로 되어 있는 것을 쉬운 성경은 삼인칭을 일인칭으로 바꾸어 “나의 거룩한 성전”과 “내 앞에서”로 오역하였다.

 

(15) 하박국 3:2

… 여호와여, 우리 시대에 주의 놀라운 일을 다시 행하여 주십시오. 우리 시대에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주께서 노하셨을 때에도 잊지 마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히브리어 성경에서 “수년 안에”로 표현되어 있는 것을 <쉬운 성경>은 “우리 시대에”로 번역하였다. “수년 안에”는 가능한 빨리 하나님께서 행하시기를 기도하는 것인데 반해 “우리 시대에”는 이런 신속한 성취에 대한 소망을 희석시키게 된다.

 

(16) 스바냐 1:7 ***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을 희생 제물로 준비하시고 그들을 암살할 자들을 구별해 놓으셨다.

 

<쉬운 성경>은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는 “여호와의 날”을 “여호와의 심판의 날”로 번역하였고, “여호와께서 제사를 준비하고 그의 청할 자를 구별하였다”를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을 희생제물로 준비하시고 그들을 암살할 자들을 구별해 놓으셨다”로 오역하였다.

 

(17) 말라기 2:11

유다 백성은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성전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번역에서 “성전”은 히브리어 “코데쉬”(vd,Ko)를 번역한 것이다. 이것은 올바른 번역이지만,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오역이다. 이렇게 오역한 히브리어 동사 “할랄”(llx)은 “더럽혔다”를 뜻한다.

 

 

2. 신약 성경

(1) 마태복음 10:4

2 열두 제자의 이름은 이렇습니다. … 4 가나안 출신 시몬과 가룟 출신 유다입니다.

 

<쉬운 성경>은 개역개정에서 “가나나인 시몬”이라고 번역한 것을 “가나안 출신 시몬”이라고 번역한다. 이것은 명백한 오역이다. “시몬 호 카나나이오스”(Σίμων ὁ Καναναῖος)이다. “가나나인 시몬”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가나나인”이란 하나님과 율법에 대하여 열심을 가진 자를 의미한다. 가나안 사람이 아닌 것이다. 만일 가나안 출신이라고 번역한다면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가나안 사람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유대인 열둘을 택하여 제자로 삼으셨다.

 

(2) 마태복음 14:1

그 때, 헤롯 왕이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쉬운 성경>은 “분봉 왕 헤롯”을 “헤롯 왕”이라고 번역한다. “분봉 왕”과 “왕”은 전혀 다른 표현이다. 이 본문에서 헬라어 명사 “테트라아르케스”(τετραάρχης)는 한 나라의 영토 사분의 일을 다스리는 자로서 왕보다 지위가 낮은 통치자를 가리킨다. 이 본문에 등장하는 “헤롯”은 유대 땅 전체를 다스리는 “왕”이 아니라,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을 통치하는 “분봉 왕”이다.

 

(3) 누가복음 7:13, 14

13 … 예수님께서 아이의 어머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울지 마라.” 14 그리고 관에 손을 대시니 관을 메고 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소년아,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라!”

 

<쉬운 성경>은 헬라어 성경에 나오는 “그녀에게”를 “아이의 어머니에게”라고 의역하였다. 헬라어 성경에는 “아이”와 “어머니”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7:14에서는 개역개정에서 “청년아”라고 번역한 헬라어 “네아니스케”(Νεανίσκε)를 “소년아”라고 번역한다. 이 단어는 사춘기를 지난 젊은이(young man)를 가리킨다(막 14:51; 행 20:9; 요일 2:13, 14). “소년”이나 “아이”보다는 “청년”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쉬운 성경>도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한 사람을 “젊은 사람”으로(막 14:51),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듣다가 삼층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을 “유두고라고 하는 청년”으로 옳게 번역한다(행 20:9).

 

(4) 누가복음 19:4

그는 예수님을 보려고 앞서 달려가서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쉬운 성경>은 개역개정에서 “돌무화과나무”라고 번역한 “쉬코모레아”(συκομορέα)를 개역 한글을 따라 “뽕나무”라고 번역한다. 그러나 “쉬코모레아”는 뽕나무가 아니다. 뽕나무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쉬카미노스”(συκάμινος)이다(눅 17:6). 삭개오가 올라간 나무는 뽕나무가 아니라 “돌무화과나무”이다. 이 나무에는 무화과나무 열매와 모양은 비슷하지만, 맛이 다른 열매가 달린다.

 

(5) 사도행전 25:13

며칠이 지난 뒤, 유대의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환영 인사를 하기 위해 가이사랴로 왔습니다.

 

이 번역에서 “유대의 아그립바 왕”이라는 표현은 명백한 오역이다. 헬라어 성경에는 “유대의”라고 번역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 “아그립바 왕”은 사도행전 12:1에 등장하는 헤롯 아그립바의 아들이다. 그를 헤롯 아그립바 2세(Herod Agrippa II)라고 한다. 당시에 그는 유대의 왕이 아니라 로마 제국의 속국이었던 칼키스 왕국(Kingdom of Chalcis)의 왕이었다. 버니게는 그의 누이 동생이다.

 

(6) 로마서 3:25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내어 주셨으며, 누구든지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지은 죄에 대해 오래 참으심으로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의로우심을 보이셨습니다.

 

이 번역에서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는 헬라어 성경에 없는 구절이다. 번역자가 부당하게 첨가한 것이다. 마지막 문장을 시작하는 “이렇게 하여”라는 표현은 바로 앞에 나온 문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번역은 심각한 신학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를 심판하지 않으신 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보이신 것일 수 있는가? 죄를 심판하지 않는 것은 의로움이 아니라 불의함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세우심으로써 사람들이 전에 지은 죄에 대해 심판을 시행하셨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자기의 의로움을 입증하신 것이다. 이 본문은 아래와 같이 번역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셨기 때문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입증하시기 위함이다.

 

(7) 로마서 9:32

왜 얻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믿음에서 나오는 의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그 의가 마치 행위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의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번역은 지나친 의역이다. 두 번째 문장 “그것은 그들이 믿음에서 나오는 … 의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는 헬라어 성경에 나오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믿음에서 나오는 의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와 “그 의가 마치 행위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의를 추구했기”라는 구절도 헬라어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이 본문은 아래와 같이 번역할 수 있다.

 

어찌 그러한가?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딪힐 돌에 부딪혔다.

 

(8) 에베소서 1:6 ***

놀라운 은혜를 내려 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사랑하는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헬라어 성경에 없는 내용을 무분별하게 추가한 터무니없는 번역이다.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시고 택하신 목적을 제시한다. 그 목적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이다. <쉬운 성경>은 “사랑 받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그의 은혜”라는 구절을 다음과 같이 풀어 놓았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사랑하는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번역이 아니라 주해나 본문 해설에 가깝다. 이 본문은 아래와 같이 번역해야 한다.

 

이는 사랑 받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신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기 위함이다.

 

(9) 에베소서 1:9

우리에게 한 가지 비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뜻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지나친 의역이다. 헬라어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뜻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번역할 수 있는 구절이나 문장이 나오지 않는다. 잘못된 첨가이다. 이 본문은 다음과 같이 번역해야 한다.

 

그 안에서 계획하신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의 뜻의 비밀을 알려주셨다.

 

(10) 에베소서 1:14 ***

성령이 우리와 함께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받을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께 구속함을 받은 모든 자들에게 큰 자유를 주셔서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번역이 아니라 엉터리 작문이다. 예컨대, “성령이 우리와 함께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받을 것입니다”라는 첫째 문장이 그렇다. 헬라어 성경에는 이렇게 의역할 수 있는 구절이나 문장이 없다. “성령은 하나님께 구속함을 받은 모든 자들에게 큰 자유를 주셔서”라는 구절도 엉터리 번역이다. 헬라어 성경에는 이렇게 의역할 수 있는 구절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성경 번역자가 어떻게 이런 중대한 실수를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헬라어 성경에서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통해서 얻으신 자기 백성을 완전히 속량할 때까지 성령님이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심을 말한다. 이 본문은 다음과 같이 번역해야 한다.

 

그[성령]는 얻으신 것을 속량하기까지 우리 기업의 보증이시다. 이는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기 위함이다.

 

(11) 에베소서 1:19 ***

믿는 자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큰 능력으로

 

이것은 헬라어 성경의 내용 대부분을 누락한 심각한 오역이다. <쉬운 성경>의 번역자가 헬라어 본문을 확인했는지 의심스럽다. 아래의 원문 번역과 비교하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본문은 헬라어 성경 18절에 나온 부정사 “알다”의 목적어이다. 아래와 같이 번역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우리 곧 믿는 자들에게 베푸신 그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인지를

 

(12) 에베소서 2:14

그리스도를 통해 평안을 누리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마치 둘 사이에 벽이 가로놓여 있는 것 같았으나, 예수 그리스는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심으로써 그 마음의 벽을 허물어뜨리셨습니다.

 

이 번역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평안을 누리고”라는 구절은 엉터리 의역이다. 헬라어 원문은 “바로 그 자신이 우리의 평화이시기 때문이다”(Αὐτὸς γάρ ἐστιν ἡ εἰρήνη ἡμῶν)이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평화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평안을 누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문장을 “그리스도를 통해 평안을 누리고”라고 번역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 본문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평안을 누린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더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평화라는 사실을 선포한다. 여기서 “평화”란 신자가 누리는 마음의 평안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적대 관계를 청산한 결과,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이 누리는 관계적인 평화를 가리킨다. 헬라어 성경에서 “원수 된 것”(ἔχθρα, “엑뜨라”)은 단순히 “마음의 벽”이 아니라 서로를 원수같이 여기는 적대감을 가리킨다. 이 본문은 아래와 같이 번역해야 한다.

바로 그 자신이 우리의 평화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둘을 하나로 만드셨고 중간에 막힌 담, 즉 원수된 것을 자기 육체로 무너뜨렸다.

 

(13) 빌립보서 2:7

오히려 높은 자리를 버리시고, 낮은 곳으로 임하셨습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고 종과 같이 겸손한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이 번역에서 “높은 자리를 버리시고, 낮은 곳으로 임하셨습니다”라는 문장은 “자기를 비우다”라는 표현을 풀어놓은 것이다. 이것은 매우 부적절한 의역이다. “자기를 비우다”라는 표현이 지닌 의미를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아래와 같이 번역해야 한다.

그러나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셨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14) 빌립보서 2:11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심을 선포하며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이 번역에서 “선포하며”는 명백한 오역이다. 이렇게 오역한 “엑소몰로게오”(ἐξομολογέω)는 시인하다, 동의하다, 고백하다 등을 의미한다. “선포하다”라고 번역할 수 없다. 아래와 같이 번역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입이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실 것이다.

 

(15) 빌립보서 3:9 ***

또한 그리스도 안에 하나가 되는 기쁨을 얻었습니다. 내가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께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 믿음을 보시고 나를 의롭다 하시며 자녀 삼아 주신 것입니다.

 

이 번역은 엉터리 의역이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 하나가 되는 기쁨을 얻었습니다”는 헬라어 성경에 나오지 않는 매우 잘못된 첨가이다. 또 “하나님은 내 믿음을 보시고 나를 의롭다 하시며 자녀 삼아 주신 것입니다”라는 것도 나오지 않는다. 특히 “자녀 삼아 주신 것입니다”라는 구절은 매우 잘못된 첨가이다. 이 본문은 아래와 같이 번역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이다.

 

(16) 골로새서 1:12 ***

우리 아버지께 감사의 고백을 올려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빛 가운데 살아가는 자녀들을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이것은 헬라어 본문과 거리가 먼, 명백한 오역이다. 이 본문은 9절에서 시작된 골로새 성도들을 위한 사도 바울의 기도문에 포함된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이 성부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기도한다. 따라서 “우리 아버지께 감사의 고백을 올려드립니다”라는 번역은 헬라어 구문을 잘못 파악한 오역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빛 가운데 살아가는 자녀들을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해 두셨습니다”라는 문장도 완전히 잘못된 번역이다. 이 본문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골로새의 이방인 신자들에게 빛 가운데 있는, 즉 하늘에 있는 기업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만드셨다는 것이다. “빛 가운데 살아가는 자녀들을”이라는 번역도 헬라어 구문을 잘못 파악한 오역이다. “빛 가운데 있는 성도의 기업”(κλήρου τῶν ἁγίων ἐν τῷ φωτί)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헬라어 구문을 어느 정도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식으로 번역하지 않을 것이다. 번역자의 헬라어 실력의 수준을 의심하게 만드는 번역이 아닐 수 없다. <쉬운 성경>의 번역과 아래의 번역을 비교하라.

 

우리가 빛 가운데 있는 성도의 기업의 몫을 받을 자격을 갖게 하신 아버지께 (너희가) 감사하기를 (구한다).

 

(17) 골로새서 1:14 ***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해 아들의 피로 대신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이 번역은 헬라어 성경에 없는 내용을 첨가했을 뿐만 아니라 헬라어 구문을 왜곡한 오역이다.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해 아들의 피로 대신 값을 치르시고”는 헬라어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우리를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라는 구절은 헬라어 구문을 왜곡한 오역이다. 이 본문의 주어는 “우리”이고, 주동사는 “가지고 있다”(ἔχομεν)이다. 그리고 목적어 “구속”(ἀπολύτρωσιν)과 “죄 사함”(ἄφεσιν τῶν ἁμαρτιῶν)은 동격이다. 이 본문은 아래와 같이 번역해야 한다.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속량), 곧 죄 사함을 가지고 있다.

(ἐν ᾧ ἔχομεν τὴν ἀπολύτρωσιν, τὴν ἄφεσιν τῶν ἁμαρτιῶν)

 

(18) 골로새서 1:22 ***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하나님과 친구 사이로 화해시켜 주셨습니다. 여러분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시 위해 그분은 여러분을 아무 흠 없고 죄 없는 자로 만들어 하나님 앞에 세워 주셨습니다.

 

이 번역에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첫째, 주어를 잘못 파악하였다. 이 본문의 주어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성부 하나님이시다. 성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골로새 이방인 신자들을 하나님 자신과 화해시키셨다. 둘째, 헬라어 성경에는 “하나님께로 인도하시기 위해”라고 번역할 수 있는 구절이 없다. 셋째, “여러분을 아무 흠 없고 죄 없는 자로 만들어 하나님 앞에 세워 주셨습니다”라는 문장은 신학적으로 잘못된 번역이다. 골로새 신자들을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들로 하나님 앞에 세우시는 것은 점차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재의 성화를 포함하며, 궁극적으로 미래에 일어날 완전한 성화를 가리킨다. 넷째, 이 문장에서 “아무 흠 없고 죄 없는 자”라는 표현은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이라는 헬라어 성경의 표현에 대한 불완전한 번역이다. 이 본문은 아래와 같이 번역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의 육체의 몸으로,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해하게 하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19) 디모데전서 6:12

믿음을 지키는 것은 달리기 시합과도 같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며, 할 수 있는 한 승리할 때까지 열심히 뛰어 가십시오.

 

이것은 번역이라기보다 작문이다. 헬라어 성경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되어 있는 것을 “믿음을 지키는 것은 달리기 시합과도 같습니다”라고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바꾸어 놓았다. 헬라어 본문의 의미를 왜곡한 오역이다. 또한 “영생을 붙잡아라”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며”라고 의역한다. 헬라어 성경에는 “할 수 있는 한 승리할 때까지 열심히 뛰어 가십시오”라고 번역할 수 있는 구절이나 문장이 없다. 번역자가 자기 마음대로 첨가한 것이다. 헬라어 본문은 아래와 같이 번역할 수 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붙잡아라.

(ἀγωνίζου τὸν καλὸν ἀγῶνα τῆς πίστεως, ἐπιλαβοῦ τῆς αἰωνίου ζωῆς)

 

(20) 디도서 2:11 ***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은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번역은 헬라어 원문과 전혀 맞지 않는 잘못된 오역이다. “그 은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라는 문장은 “은혜”의 의미를 풀어 설명한 것이다. 이것은 번역이 아니라 주해나 또는 본문 해설이다. 이 본문은 아래와 같이 번역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21) 베드로전서 1:18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전에는 아무 가치도 없는 방식에 매여 살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조상이 물려 준 헛되고 쓸모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여러분은 그러한 무가치한 삶에서 구원받았습니다. 금이나 은같이 없어지고 말 어떠한 것으로 대가를 지불한 것이 아니라

 

이 번역은 헬라어 성경과 맞지 않는 지나친 의역이다. “이전에는 아무 가치도 없는 방식에 매여 살았습니다,” “쓸모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가치한,” “어떠한 것으로 대가를 지불한 것이 아니라”는 헬라어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헬라어 본문에서 “구속받았다”(ἐλυτρώθητε, “엘뤼트로떼테”)라는 중요한 단어를 “대가를 지불하다”는 식으로 그릇되게 번역하였다. 이 본문은 아래와 같이 번역할 수 있다.

 

너희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생활방식에서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구속 받지 않았음을 너희가 안다.

 

IV. 일관성이 없는 번역

1. 신약성경

(1) 들보와 통나무

마태복음 7:3

어찌하여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작은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나무토막은 보지 못하느냐?

 

누가복음 6:41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에 있는 작은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큰 통나무는 보지 못하느냐?

 

개역개정에서 “들보”라고 번역한 헬라어 명사 “도코스”(δοκός)를 마태복음 7:3에서는 “나무토막”으로 누가복음 6:41에서는 “큰 통나무”로, 6:42에서는 “통나무”로 번역한다. “도코스”는 “통나무”를 뜻하기도 한다. 하지만, 두 복음서에서는 “들보”를 가리킨다.

 

(2) 요한복음 1:1, 2

1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2 그분은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동일한 전치사구 “엔 아르케”(Ἐν ἀρχῇ)를 1절에서는 “태초에”로, 2절에서는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라고 일관성 없게 번역하였다. 두 본문에서 모두 “태초에”라고 번역해야 한다.

 

(3) 진설병

마가복음 2:26

아비아달 제사장 때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바친 빵을 먹었다.

 

마태복음 12:4

다윗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자신도 먹을 수 없고, 그 부하들도 먹을 수 없으며,

오직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먹었다.

 

<쉬운 성경>은 개역개정에서 “진설병”이라고 번역한 것을 일관성 없게 번역한다. 헬라어 성경에서는 “차려진 빵들”(ἄρτους τῆς προθέσεως)이다. 이것을 마가복음 2:26에서는 “하나님께 바친 빵”이라고 번역하는 반면에 평행 본문인 마태복음 12:4과 누가복음 6:4에서는 “진설병”이라고 번역한다.

 

(4) 아바 아버지 -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

로마서 8:15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다시 두려움에 이르게 하는, 노예로 만드는 영이 아니라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영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을 의지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6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여러분 마음에 보내 주셔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개역개정에서 “아빠 아버지”(Ἀββά ὁ πατήρ, “압바 호 파테르”)라고 일관성 있게 번역한 표현을 마가복음 14:36과 로마서 8:15에서는 “아바 아버지”라고 번역하지만, 갈라디아서 4:6에서는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라고 번역한다.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라는 번역은 “압바 아버지”라는 표현에 대한 잘못된 의역이다.

 

(5) 대속물

마태복음 20:28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하여 주려고 왔다.

ὥσπερ ὁ υἱὸς τοῦ ἀνθρώπου οὐκ ἦλθεν διακονηθῆναι ἀλλὰ διακονῆσαι

καὶ δοῦναι τὴν ψυχὴν αὐτοῦ λύτρον ἀντὶ πολλῶν.

 

마가복음 10:45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인자는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다.

κα γρ ὁ υἱὸς τοῦ ἀνθρώπου οὐκ ἦλθεν διακονηθῆναι ἀλλὰ διακονῆσαι

καὶ δοῦναι τὴν ψυχὴν αὐτοῦ λύτρον ἀντὶ πολλῶν.

 

마태복음 20:28과 마가복음 10:45의 헬라어 본문은 앞에 나오는 한, 두 단어를 제외하고는 모두 똑같다. 그런데 <쉬운 성경>은 두 본문을 위와 같이 다르게 번역한다. 가장 큰 차이점은 마태복음의 본문에 중요한 단어인 “대속물”을 빠뜨린 것이다. 대속물(代贖物)이란 속죄를 하기 위해 바쳐진 물건이나 사람을 가리킨다. 헬라어 성경에 나오는 “뤼트론”(λύτρον)을 번역한 것이다. “뤼트론”은 포로나 노예를 풀어주기 위해서 제공하는 몸값, 또는 속전(ransom)을 의미한다. 헬라어 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본문에 모두 나온다. <쉬운 성경>이 마태복음의 본문 번역에서 이 단어를 누락한 것은 매우 큰 잘못이다.

 

(6) 내가 진리를 말한다/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요한복음 3:5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진리를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마가복음 14:30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오늘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모른다고 세 전 말할 것이다.”

 

<쉬운 성경>은 개역개정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라고 번역한 예수님의 말씀을 일관성 없게 번역한다. 요한복음에서는 “내가 진리를 말한다”라고 번역하지만(요 1:51; 3:5, 11; 6:26, 32), 공관복음서에서는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라고 번역한다(마 18:3, 13; 19:23; 막 14:9, 18, 30; 눅 4:24; 18:17). 헬라어 성경에서 이 구문은 “아멘 내가 너에게 말한다”(Ἀμὴν λέγω σοι, 공관복음), “아멘 아멘 내가 너에게 말한다”(Ἀμὴν ἀμὴν λέγω σοι, 요한복음)로 나온다. 이 구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권위로 진리를 선포하심을 나타낸다.

 

(7) 하박국 2:4 인용문 번역 ***

로마서 1:17

의인은 믿음으로 인하여 살 것이다.

(Ὁ δὲ δίκαιος ἐκ πίστεως ζήσεται)

 

갈라디아서 3:11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은 사람은 살 것이다.

(Ὁ δίκαιος ἐκ πίστεως ζήσεται)

 

히브리서 10:38

나와 함께 의롭게 산 사람들은 믿음 때문에 생명을 누릴 것이다.

(ὁ δὲ δίκαιός μου ἐκ πίστεως ζήσεται)

 

<쉬운 성경>은, 위와 같이, 신약 성경에서 인용된 하박국 2:4을 각기 다르게 번역한다. 로마서 1:17과 갈라디아서 3:11에서 하박국 2:4은 똑 같다. 히브리서 10:38에서는 “나의”라는 단어가 하나 더 나올 뿐이다. <쉬운 성경>의 로마서 1:17 번역에서는 “인하여”라는 단어를 불필요하게 추가하였다. 갈라디아서 3:11의 번역에서는 “믿음으로”(ἐκ πίστεως)라는 구절을 “의인”(Ὁ δίκαιος)과 연결하여 “호 디카이오스 에크 피스테오스”(Ὁ δίκαιος ἐκ πίστεως)를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은 사람”이라고 번역하였다. 가장 심각한 것은 히브리서 10:38의 번역이다. 이 번역에서 “나와 함께 의롭게 산 사람들”은 “나의 의인”(ὁ … δίκαιός μου, “호 디카이오스 무”)이라는 표현의 오역이다(δὲ는 ‘그러나’, ‘그런데’를 뜻하는 접속사임). 이 본문에 “무”(μου)는 일인칭 소유격으로서 “나와 함께”가 아니라 “나의”이다. “호 디카이오스 무”는 “나의 의인”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그리고 “나와 함께 의롭게 산 사람들”이라는 히브리서 10:38의 번역은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은 사람”이라는 갈라디아서 3:11의 번역과 충돌을 일으킨다. 두 본문에서 “호 디카이오스”는 의롭다 여김을 받은 사람인가, 아니면 의롭게 산 사람인가? 위의 세 인용문은 아래와 같이 번역해야 한다.

 

로마서 1:17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갈라디아서 3:11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히브리서 10:38

그런데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8) 구속

로마서 3:24

그런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시는 속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는 판단을 받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에베소서 1:7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의 보혈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죄사함도 받았습니다.

 

골로새서 1:14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해 아들의 피로 대신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개역개정에서 “속량”(개역 한글: “구속”)이라고 번역한 “아폴뤼트로시스”(ἀπολύτρωσις)를 고린도전서 1:30에서는 “구속,” 로마서 8:23 “구속될 것”이라고 바르게 번역한다. 그러나 에베소서 4:30에서는 “구원 받을 것,” 로마서 3:24에서는 “속죄,” 에베소서 1:7에서는 “자유함”이라고 다양하게 번역한다. 가장 당황스러운 번역은 골로새서 1:14이다. 헬라어 성경에 없는 단어들을 추가하여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해 아들의 피로 대신 값을 치르시고”라고 과도하게 풀어 번역한다. 이것은 번역이 아니라 “아폴뤼트로시스”에 관한 해설이다. “아폴뤼트로시스”는 몸값을 지불하고 포로나 종을 사서 풀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를 “속죄,” “자유함,” “구원 받음”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속죄,” “자유함,” “구원 받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들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위의 본문들은 아래와 같이 번역할 수 있다.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에베소서 1:7

그(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가지고 있다.

 

골로새서 1:14

그(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가지고 있다.

 

 

V. 경어체 번역

<쉬운 성경>은 삼인칭으로 표현된 성경 저자의 말을 모두 경어체로 번역하였다. 경어체는 독자가 본문을 친근하게 대할 수 있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성경의 삼인칭은 성경 저자가 본문의 사람이나 사건, 또는 상황을 나타내는 표현들이며, 성경 저자로 하여금 성령의 영감을 통하여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 자신의 말씀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삼인칭으로 된 문장을 경어체로 번역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경어체로 말씀하시는 것이 되어 버린다. 우리 사회에서는 평어체와 경어체를 구분하고, 경어체를 주로 신분이나 나이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사용하거나, 상대방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사용한다. 이런 사회에서 성경을 경어체로 번역하면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쉬운 성경>에서 이 본문을 경어체로 번역한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창세기 저자 개인의 생각으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

 

사사기 21:25

그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했습니다.

 

사사기 19-21장에는 선과 악이 명확한 사건과 모호한 사건이 연속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베냐민 지파의 불량자들이 레위인의 첩을 집단 성폭행 한 사건, 이로 인해 레위인이 죽은 첩의 시체를 토막 내어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보낸 사건, 열두 지파가 군사를 모아 베냐민 지파를 거의 전멸시킨 사건, 이 군사 작전에 참여하지 않은 길르앗 야베스 주민을 죽인 사건, 베냐민 지파의 소멸을 막기 위해 실로의 처녀들을 납치하여 아내로 삼을 수 있게 한 사건이다. 사사기 21:25에서 저자는 이 모든 사건이 왕이 없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저지른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것은 저자 개인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평가이다. 그런데 이 본문을 경어체로 번역하면 독자들이 이것을 하나님의 평가가 아니라 사사기 저자 개인의 평가로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

 

 

결론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쉬운 성경>이 안고 있는 번역상의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첫째, 성경 원문에 없는 내용을 첨가한 경우가 지나치게 많다. 둘째, 성경 본문을 번역하기보다 의미를 설명하거나 단어의 뜻을 제시한 경우가 매우 많다. 이것은 성경 번역이 아니라 주해나 설교에서 할 일이다. 셋째, 성경 원문의 내용을 누락한 경우도 있다. 넷째, 번역이라고 하기 어려운 과도한 의역이 많다. 다섯째, 성경 원문을 살펴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터무니없는 오역들도 있다. 여섯째, 성경 저자의 말을 경어체로 번역함으로써 성경 본문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저자 개인의 말처럼 들리게 만들었다.

 

이런 심각한 문제점들과 오류들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쉬운 성경>을 사용한다면,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고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는 일도 일어날 것이다. 또 <쉬운 성경>에 현재 한국 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과 다른 부분들이 지나치게 많아서 교인들이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성경 본문과 관련하여 심각한 오해나 불신을 갖는 교인들도 많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쉬운 성경>을 교회에서 예배와 교육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불가하다. 읽기가 쉽다는 이유 때문에 <쉬운 성경>을 주일학교에서 사용하는 것도 금해야 한다. 심각한 문제점들과 오류들을 안고 있는 <쉬운 성경>을 성인 교인들과 주일학교 어린이들의 손에 들려주고, 그 성경을 읽으라고 권하는 것은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가?

 

<쉬운 성경>과 비교할 때 현재 한국 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이 원문에 훨씬 더 충실한 번역본이다. 목회자들은 성인 교인들과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개역개정> 성경을 읽고,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힘써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성경을 매일 읽고 묵상하도록 부단히 권고해야 한다. 하지만 <개역개정>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과 표현들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주일학교 어린이들만이 아니라 성인 교인들 중에도 <개역개정>을 읽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고신 교회의 지도자들은 다른 교단의 지도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개역개정>을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다시 개정하는 일을 논의해야 한다. 교인들에게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읽기 쉬운 성경을 안겨주는 것은 교회 지도자들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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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35개 노회, 코로나 19 와중이지만 최소화하여 개최 2020년 10월 12일 전국 35개 노회가 코로나 19로 인해 방역수칙을 최대한 지키는 가운데 최소화하여 개최되었다. 지난 4월 노회는 코로나 19로 인해 5월로 미뤘지만, 이번은 코로나 19의 장기화로 더 ...
    Date2020.10.14 Views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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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0월 정기노회를 통해 선출된 각 노회 임원 명단

    2020년 10월 정기노회를 통해 선출된 각 노회 임원 명단 2020년 10월 12일(월) 전국 35개 노회에서 아래와 같은 임원이 선출되었다. 이들은 1년간 노회를 위해 섬기게 된다.   노회 노회장 (목사)부노회장 (장로)부노회장 서 기 부서기 회록서기 부회록서기 ...
    Date2020.10.14 Views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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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서울포럼, 미래를 준비하다

    서울포럼, 미래를 준비하다 바야흐로 뉴노멀 시대다.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할 때다. 매년 중요한 이슈를 다루는 서울포럼이 제 9회를 맞이 이 문제를 다뤘다. “미래목회,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서울포럼이 2020년 10월 8일(목) ...
    Date2020.10.08 Views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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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SFC문제에 대한 학생신앙운동 지도위원회 보고

    지난 제69회 총회에 상정되었으나 1년간 연구하여 보고하기로 한 안건들이 제70회 총회 보고서에 실렸다.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본보는 보고서 전문을 순차적으로 싣는다. 1. 은퇴목사 투표권 삭제 청원에 대한 법제위원회 보고 2. SFC문제에 대한 학생신앙...
    Date2020.10.06 Views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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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목사 투표권 삭제 청원에 대한 법제위원회 보고

    지난 제69회 총회에 상정되었으나 1년간 연구하여 보고하기로 한 안건들이 제70회 총회 보고서에 실렸다.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본보는 보고서 전문을 순차적으로 싣는다. 1. 은퇴목사 투표권 삭제 청원에 대한 법제위원회 보고 2. SFC문제에 대한 학생신앙...
    Date2020.09.28 Views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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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회 총회 소식 5] 70회 총회 상비부 임원 조직

    [70회 총회 소식 5] 70회 총회 상비부 임원 조직 제70회 총회를 섬길 상비부의 임원이 아래와 같이 조직되었다. 1-행정법규부 부장 : 김종철 목사 서기 : 정영락 목사 회록서기 : 이국희 목사 1-1 행정위원회 위원장 : 허성동 목사 서기 : 김월목 목사 회계 :...
    Date2020.09.26 Views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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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70회 총회 소식 4] 총회 둘째 날 상임위원회가 4군데서 나눠서 열려  

    [70회 총회 소식 4] 총회 둘째 날 상임위원회가 4군데서 나눠서 열려 2020년 9월 22일(화) 정회했던 총회가 2020년 9월 24일(목) 대구지역 4개 교회에서 흩어져서 속회되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시작한 총회는 첫날 조직총회에 이어 둘째 날은 장...
    Date2020.09.25 Views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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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회 총회 소식 3] 교회, 목사는 늘고, 장로 및 교인은 줄었다.

    [70회 총회 소식 3] 교회, 목사는 늘고, 장로 및 교인은 줄었다. 고신총회는 매년 2월 둘째 주일을 기준으로 각 노회의 상황을 보고 받는다. 노회가 제출하는 보고서에는 각종 통계를 보고하게 되어 있다. 각 교회에서 제출한 보고는 노회를 통해 수집되어 9...
    Date2020.09.23 Views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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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공적 금식과 공적 기도를 선포하자
[사설] 어느 교회의 교단 탈퇴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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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표현’ 못지않게 중요한 것... 2
삼일운동 100주년 기념, 빌린 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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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재판국 판결에 나타난 절차적 문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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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 교회의 체질을 근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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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 정치원리 하에서의 각종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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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장로교 정치원리 (서울포럼 ...
[논문] 작은 교회 성도들은 행복한가?
한국 장로제도의 반성과 개혁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유산과 한국...
장로회정치원리에 비추어 본 노회 실태
고령화 시대, 선교현장을 섬기는 교...
개혁주의 교회설립에 대한 새로운 비전
KPM선교의 내일을 향한 준비 (김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