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총회, 낙태죄 회개문과 설교문 발표
고신총회(총회장 박영호 목사)는 오는 11월 8일을 태아생명존중주일로 정하고 지난 10월 20일 성명서를 발표한 데 이어 이번에 '회개와 용서의 선포문'도 발표했다.
제70회 총회장 박영호 목사외 총대 일동 이름으로 발표된 회개와 용서의 선포문은 태아를 살해한 낙태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를 담고 있다. 그리고 주님 앞에 회개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용서 은혜도 선포하고 있다.
-회개와 용서의 선포문-
하나님, 먼저 우리가 회개합니다.
하나님만이 생명의 창조주요 주관자임을 믿습니다. 우리가 태아를 살릴 수도, 죽게 할 수도 있다는 무지와 교만을 회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1:28)는 명령을 주셨는데도 우리의 유익과 편리에 따라 태아가 태어나기도 전에 낙태시킨 것을 회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출20:13)고 명령하셨는데도 내 마음대로 태아를 살인한 죄를 뉘우치며 회개합니다. 생명의 결정권은 하나님께 있음에도 마치 사람(여성과 남성)에게 최종적인 결정권이 있다고 착각함을 회개합니다.
낙태가 비성경적인 것이요, 살인하는 행위임을 가르치지 못한 교회의 죄를 회개합니다.
낙태한 자를 바로 지도하지 못한 것과 이들을 사랑으로 품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태아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피조물이기에 태아의 생명도 존중되며 보호받아야 할 중요한 인격체임을 인정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죄를 선포합니다. 지난 과거의 무지와, 편리를 좇아 어린 생명을 낙태케 한 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았음을 선포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태아의 생명을 존중하고 낙태 방지에 앞장서지 못한 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았음을 선포합니다. 직업이나 금전적인 욕심 또는 원치 않는 임신을 이유로 태아를 낙태케 한 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됨을 선포합니다. 이제부터는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어떤 경우에라도 태아도 보호받아야 할 귀중한 생명으로 알고 책임 있게 행동하겠습니다.
2020. 11. 8.
대한 예수교 장 로 회 고신 총회
제70회 총회장 박영호 목사외 총대 일동
또한 고신총회는 11월 8일 태아생명존중주일을 위한 공동 설교문도 발표했다. 설교문은 마태복음19:1-9을 본문으로 "이혼과 낙태 그리고 복음"이라는 제목으로 작성되었다.
2020년 11월 8일 태아생명존중 주일 설교문
성경: 마태복음 19:1-9
제목 : 이혼과 낙태 그리고 복음
작년(2019년) 4월에 헌법재판소는 현재의 낙태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렸습니다. 헌법 불합치 판정은 현재의 낙태법이 사실상 위헌임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특정 시점까지는 유효하다는 판결입니다. 그 특정 시점이 올해 말(2020년 12월 31일)입니다.
낙태죄는 1953년에 규정되었습니다. 형법상 낙태죄와 관련된 조항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자기 낙태죄'(형법 269조 1항)는 낙태한 여성을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백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동의 낙태죄'(형법 270조 1항)는 수술한 의사도 2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합니다.
이 두 가지가 위헌 판결이 나게 된 근거를 다음과 같이 명시합니다. 현재의 낙태법이 태아의 생명에 지나치게 우위를 둔 법이어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상당하게 손상시킨다는 이유입니다. 결국 태아의 생명보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더 우위에 둔 결정입니다. 이것이 헌법의 정신에 맞는다고 본 것입니다.
이 판결은 7:2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특정시점까지는 현재의 낙태법이 유효하지만 그 시점이 지나면 위헌이 되어서 무효가 됩니다. 그 시점이 올해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여러 부처와 협의하여 낙태법을 개정하는 안을 마련해서 지난 10월 7일에 고시를 했습니다. 국회가 연말 안에 이 법을 처리하여야 합니다.
개정하는 법의 내용은 다음이 핵심입니다.
14주까지는 자율적인 낙태가 허용되고, 24주까지는 24시간의 숙려기간을 거쳐서 조건부로 허용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낙태죄라는 규정이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여당 일부와 여성계 등에서는 낙태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낙태를 비범죄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여성의 자율의 결정에만 맡기도록 주장합니다.
반면에 기독교계에서는 생명은 난자와 정자가 수정된 순간부터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이 소중하지만,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모든 생명은 인간이 죽일 권리가 없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교회는 성경을 근거로 낙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야 합니다. 교회의 행위는 복음을 실천하기 때문입니다.
1. 성경은 태아를 생명으로 여깁니다.
현재 헌법불합치 판정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태아의 생명보다 우선시한 결정입니다. 그리고 태아의 생명을 여성의 장기의 일부로 보는 결정입니다. 태아를 생명으로 보지 않고 여성의 장기의 일부로 보는 것은 로마법 전통이기도 합니다. 출생 전 태아는 모태의 일부(Partus, antequam edatur, mulieris portio est vel viscerum)일뿐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한동일, 로마법수업, p.175).
실제로 오늘날 우리 법도 태아를 사람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태에서 나와서도 살 수 있는 상태가 될 때 비로소 사람의 규정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법전통과 확실히 대조됩니다.
시139:13-5절입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모태에서 '나' 즉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지은 사람입니다.
야곱과 에서가 모태에서 다투었고, 예수님이 모태의 과정을 온전히 지나시면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이 모태에서 이를 기뻐하였습니다.
성경이 낙태에 관한 규정을 별도로 두지 않는 것은 당연히 태중에 있는 태아를 생명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6계명 규정 속에 함께 낙태를 이해해왔습니다.
태아의 생명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보다 우선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남성의 책임 문제도 분명히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태아가 생명일진대 무엇이 우선이어야 하는지는 자명합니다.
과거 한국 교회는 경제개발 우선 정책아래서, 인구 조절을 한다고 산아제한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둘만 낳아 잘기르자 하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면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하나 낳아 젊게 살고 좁은 땅 넓게 살자" 등으로 하나로 축소합니다. 그러다가 1983년 이후 출생률이 2.1명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때 교회들은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에 어떤 저항도 하지 않고 교인들은 순응하여 낙태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잘살아보자는 일에 몰두했고, 교회도 기복신앙과 함께 강남의 대형교회들이 정착하고, 성장 중심의 방향을 걸어갔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인구 절벽이라 엄청난 재난 앞에 있습니다. 교회는 참된 복과 생명의 중요성이 잘 사는 것보다 우선된다는 것을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성장이 우선이었기에 낙태하는 성도들을 시벌하거나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교회가 시대를 견인하지 못하고 끌려간 어두운 역사입니다.
교회가 회개합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 개개인도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 태아생명존중주일을 선포하고 지키는 것은 현재의 낙태법 개정을 말하기에 앞서 우리의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정리하면서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교회가 생명의 복을 가르치지 못하고 시대를 분별하지 못했던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무지하게 태아의 생명을 지웠던 지난날들을 회개합니다. 우리의 부족한 인생들을 용서해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바라봅시다.
오라 우리가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사 1:18
우리는 태아가 하나님이 주신 생명임을 깊이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법 개정은 숫자의 힘에 의해서 결정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분명 태아의 생명 됨을 기억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야 합니다.
2. 낙태법 제정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입니다.
우리는 낙태가 불법인 사회가 더 건강한 사회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속은 더 숫자가 많고, 힘이 세기 때문에 결국 개정이 되게 됩니다. 개정이 아니라 세상은 아예 낙태법 자체가 없는 세상을 원하고 있습니다. 즉 낙태와 죄를 연결하지 말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교회는 성경을 통해서 낙태법이 필요함을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 19장은 낙태는 아니고 이혼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시험하면서 이혼 할 수 있는 사유가 어떤 것이 있는지를 묻습니다(3). 이때 예수님은 정답을 말씀하십니다. 4-5절입니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두 사람이 한 몸이 됩니다.
결혼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혼에 대한 대원칙을 선언하십니다. 6절입니다.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성경은 이혼은 불가하다는 것이 대원칙입니다.
이런 선언을 하시자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율법에 이혼증서를 주어서 이혼을 하도록 한 규정을 들고나옵니다. 예수님의 이해는 모세의 가르침과 충돌된다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8~9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허락된 것이지 본래는 허락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악함을 반영한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음행한 이유 외에는 아내 버림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즉 한 몸 됨을 깨는 일을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혼증서를 주어서 이혼하라는 모세의 법 규정은 원래 이혼이 잘못된 것임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법 규정은 최저점을 규정하는 마지노선입니다. 예를 들어 보복법을 봅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입니다. 그러나 이 법은 눈에는 눈만 이에는 이만 보복해야지, 그를 죽이거나 더 심하게 보복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입니다. 이런 규정은 보복하지 말고, 용서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복법을 예수님은 용서의 법이나 이웃사랑의 법으로 산상수훈에서 적용하시는 것입니다.
이혼증서라는 장애물을 두어서 이혼을 막으려는 뜻이 있고, 또한 현실적으로 합법적인 이혼을 허용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낙태에 적용해 봅시다. 낙태가 이미 만연한 현실입니다. 여기서 만연하기 때문에 낙태를 법으로 규정하지 않으면 낙태는 전혀 죄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성경의 기준은 낙태는 살인입니다. 그러한 기준을 최저선으로 규정한 것이 낙태법입니다.
개정될 낙태법이 기독교의 가치를 만족시켜주지 못할 것입니다. 14주에서 더 내려가도록 프로라이프 그룹 등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 고신교회도 성명(聲明)서를 발표했습니다. 태아의 한생명이라도 귀하게 여기는 개정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적인 발언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법 개정은 현실을 반영할 것입니다. 그래도 법이 없는 것보다 좋은 것입니다. 법이 있어야 낙태가 죄인지를 소리 지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혼증서가 이혼은 죄이고 이혼을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밝히는 것과 같습니다. 낙태법이 있어야 낙태가 죄라는 원래의 하나님의 뜻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꼭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세속법이 규정되어야만 하나님의 뜻이 서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만족스럽지 못해도 법 개정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법의 최대치를 교회와 성도들은 지켜야 합니다.
세속의 법 개정을 통해서 복음을 보는 방식입니다. 눈에는 눈이라는 보복법에서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최대한의 복음을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혼증서를 통해서 이혼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낙태법을 통해서 낙태는 죄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이며 실제적인 문제는 기독의사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지원하면 됩니다. 그리고 법이 어떻게 개정되든지 성도는 낙태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낙태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이들을 낙태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이나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면 교회와 함께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읍시다. 고신교회가 성명(聲明)만 발표하지 않고 한 주일 특별헌금을 하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도웁시다.
우리가 성경적으로 낙태법 개정을 바라보는 복음적 시각을 살펴보았습니다.
세상의 법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의 법을 볼수 있어야 복음을 가진 성도다운 것입니다.
태아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고, 낙태는 죄임을 다시 기억하여야 합니다. 샬롬
손재익 객원기자 (reformedj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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