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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주석

(사도행전 2:1-13)

 

 

황원하.jpg

 

황원하 목사

(산성교회 담임)

 

 

   누가는 그의 첫 번째 책인 누가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성령이 오실 것이라고 예언하신 일을 기록하였다(참고. 눅 24:47-49). 그리고 그는 그의 두 번째 책인 사도행전의 앞부분에서 오순절에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신 일을 언급한다. 그는 성령의 오심이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예언하신 것의 성취임을 드러낸다. 사도행전 2장에서 누가는 성령이 오시는 과정을 세밀히 묘사하고 베드로의 입을 빌어 성령의 오심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설명한다.

 

1) 성령이 임하심(2:1-4)

   오순절 날이 이르렀다(1절a). 오순절(펜테코스테)은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다. 이 날은 유월절 후 일곱 주가 지난 때라고 하여 칠칠절이라고도 하였는데(참고. 신 16:9-10), 구약에서 추수한 보리의 처음 것을 바치는 절기로서 맥추의 초실절이라 불린다(참고. 출 23:16; 34:22; 레 23:15-21; 민 28:26-31). 따라서 오순절은 추수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이다. 이제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교회는 영적인 추수를 시작할 것이 예상된다. 실제로 누가는 성령이 오심으로 이 날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 3,000명이나 되었다고 진술함으로 영적인 추수가 실현되었음을 알려준다(참고. 41절).

 

   오순절에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다(1절b). “그들이 다같이”라는 표현은 1:13-14에 나오는 제자들을 포함하여, 1:15에 나오는 약 120명의 무리들을 가리킨다. “한 곳”(토 아우토)이란 2절에 나오는 “집”(톤 오이콘)과 같은 장소인데,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알려지지 않지만, 관사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제자들이 잘 아는 장소이다. 이곳은 1:13-14에 나오는 ‘다락방’일 수도 있고, 1:15-26의 사건이 일어난 곳일 수도 있다. 어쩌면 1:13-14의 일과 1:15-26의 일과 본문의 일이 모두 ‘한 곳’에서 일어났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곳을 일반적인 가정집이라고 보면 문제가 생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발생한 현상을 눈으로 보고 모여들었는데, 가정집처럼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그렇게 많이 모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곳을 ‘성전’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제는 누가가 그의 책에서 성전을 가리키는 용어로 히에론을 줄곧 사용했고, 오이코스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 이 때문에 이곳을 성전이라고 보는 견해는 보편적으로 수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비록 누가가 히에론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곳을 성전이라고 보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이코스가 건물을 뜻하기 때문에 성전을 가리킨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더욱이 당시의 역사가 요세푸스는 성전과 성전에 딸린 방들을 가리킬 때 오이코스를 사용한 적이 있다(참고. Ant. 8.65.). 게다가 오순절은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는 날인데, 여전히 유대의 규례를 존중하던 사도들과 제자들이 이날 가정집보다는 성전에 머물러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오순절에 120명의 제자 공동체는 성전에서 기도모임을 가지다가 성령의 강림을 체험했을 것이다. 필시 성령께서 오시는 장소로 가장 적합한 곳은 바로 그분의 ‘집’이신 성전이 아니겠는가?

 

드디어 성령이 강림하신다. 성령이 강림하실 것이라는 사실은 구약성경(참고. 욜 2:28-32; 사 32:15; 겔 36:27; 민 11:29 등), 세례 요한(참고. 눅 3:16 등), 그리고 예수님(참고. 눅 11:13; 12:12; 24:49; 행 1:4-5 등)에 의해서 이미 예언되었던 일이다. 즉 성령의 오심은 구속사의 일정에 포함되어 있던 일이다. 그러다가 이제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자 그 일이 실현된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지 10일 만에 성령이 오신다. 그런데 성령은 대단히 극적인 현상과 함께 오신다. 즉 성령의 오심은 모든 사람에게 공개된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분명한 징표와 함께 나타나시는데, 이는 자신이 나타나신 것을 그분의 백성들에게 분명히 알게 해 주시기 위해서이다. 마찬가지로 성령도 하나님이시기에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징표와 함께 오신다. 누가는 성령이 임하실 때 나타난 징표들을 두 가지로 언급하는데, 하나는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a sound like the rush of a violent wind)이고, 다른 하나는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divided tongues, as of fire)이다(2-3절). 이 상징들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먼저, ‘바람’은 성령과 같은 어원을 가진다. 히브리어 루아흐와 헬라어 프뉴마는 ‘바람’이나 ‘영’을 의미한다. 그리고 헬라어에서도 바람을 의미하는 프노에와 성령을 의미하는 프뉴마는 밀접하게 연관된 개념이다. 다음으로, ‘큰 소리’는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현현(theophany)하신 것을 연상시킨다(참고. 출 19:16-19). 마지막으로, ‘불’은 출애굽기 3:2-5에서 하나님이 불붙는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신 것과 출애굽기 13:21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에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것을 통하여 유대의 전통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해 왔다. 특히 복음서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하면서 성령과 불을 관련지었다(참고. 눅 3:16). 실로 구약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종종 강한 바람과 불같은 것이 동반되었다(참고. 창 15:17; 출 3:2-5; 13:21-22; 신 4:11-12, 33, 36; 겔 1:25-28; 단 7:9-14; 요 3:7-8; 특히 엘리야의 경우, 왕상 19:11-12).

 

성령이 임하시자 두 가지 현상이 발생한다(4절). 첫째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여기서 “충만함”이란 1:5와 11:16의 성령의 세례, 2:17-18과 10:45의 성령을 부어주심, 그리고 10:47의 성령을 받음과 비슷하다. 둘째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다. “다른 언어들”(헤테라이스 글로싸이스)이란 고린도전서 12-14장에 나오는 방언과 같은 것이 아니다(참고. 민 11:25-26; 삼상 10:6, 10; 19:20, 23). 왜냐하면, 본문에서의 방언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었지만,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의 방언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것으로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언어는 3절의 “혀”(글로사이)와 연관되는데, 제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여러 나라의 말로 여러 민족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게 되었다(참고. 4-11절).

 

한편, 여기서 누가는 그 집에 모인 사람들 모두에게 성령이 임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는 1절의 “그들이 다같이(판테스) 한 곳에 모였더니”, 2절의 “그들이 앉은 온 집에(호론 톤 오이콘) 가득하며”, 3절의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헤나 헤카스톤 아우톤)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리고 4절의 “그들이 다(판테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다. 구약 시대에 성령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임하셨으나 이제 신약 시대에 성령은 모든 사람에게 임하신다. 이러한 보편성은 ‘급하고 강하다’는 표현과도 연관되어 모여 있는 모든 사람이 성령의 오심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음이 드러난다.

 

2) 사람들의 반응(2:5-13)

누가는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라고 기록한다(5절). 이것은 여러 지역과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오순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찾았다는 뜻이다. “경건한 유대인들”(devout Jews)이란 유대의 규례를 잘 지키는 신실한 유대인들(faithful Jews)을 의미한다. “천하각국”(every nation under heaven)이란 당시에 통용되던 표현인데, 9-11절에 나오는 지중해 연안의 나라들을 가리킨다(참고. 신 2:25; 9:14; 29:20). 유대인들은 이 나라들에 흩어져서 살고 있었는데, 유대의 3대 명절 중 하나인 오순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것이다(참고. 출 23:14-17; Antiquities 14.337; 17:254). 또한 당시 외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Diaspora Jews) 중에는 나이가 들어서 예루살렘에서 정착해 살기 위해 돌아온 이들도 있었다(참고. 6:9; Wars 1.397, 437, 672).

 

6절의 “이 소리”는 아마도 이어지는 구절들을 참고할 때 2절의 “바람 같은 소리”가 아니라 4절의 “다른 언어들”일 것이다. 그들은 소리를 듣고 모였는데, 제자들이 “자기의 방언으로”(테 이디아 디아렉토, in his own language)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한다. 즉 그들은 제자들이 말할 때에 자기들이 살고 있는 나라의 말로 알아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단히 놀라며 신기해한다(7절a). 사람들은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라고 말한다(7절b). “갈릴리 사람”이라는 표현에는 교육을 받지 못해서 외국어를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놓여 있다(참고. 4:13; 막 14:70). 사람들은 또한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라고 말한다(8절).

 

9-11절에는 오순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민족들의 목록이 나온다. 여기에는 사람들(바대인, 메대인, 엘람인, 로마인, 그레데인, 아라비아인)과 땅들(메소보다미아, 유대,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브루기아, 밤빌리아, 이집트, 리비야)이 섞여 있다. 이 목록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겨가는데, 당시에 동쪽과 서쪽에서 각각 가장 강한 나라였던 바대인들과 로마인들만 예외적으로 제일 앞과 끝에 있다(참고. Wars II.16.4). 특히 이들 중에서 로마에서 온 사람들이 비교적 상세히 언급되는데, 이는 바울이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에서 로마에 가는 것과 연관되는 것으로 보인다. 로마에서 온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이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 ‘개종자들’(proselytes)을 가리킨다.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God-fearers) 보다 더 적극적으로 유대교를 믿었다.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은 자신들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것을 들었다.

 

한편, 오순절에 성령이 오심으로 사람들의 언어가 서로 일치하는 일이 일어난 것은 창세기 11장에서 바벨탑 사건으로 인하여 갈라졌던 언어가 이제 성령의 오심으로 회복된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생각은 9-11절에 나오는 민족들의 목록이 창세기 10장의 셈, 함, 야벳으로 대표되는 민족들의 목록을 연상하게 하는데 서도 분명해진다. 여기서 누가가 민족들의 목록을 의도적으로 기술한 것은 독자들이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으로 인한 언어의 혼잡이 성령의 오심으로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려 함이다. 즉 인간들이 바벨탑을 쌓음으로 하나님의 저주를 샀던 일이 이제 성령의 오심으로 해소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제 인류는 성령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하나의 공동체(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되었다. 이것은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는 것을 예시한다(참고. 계 7:9).

 

12-13절에는 성령의 강림 현상을 접한 사람들의 두 가지 반응을 말하는데, 12절은 긍정적인 반응(놀람)을 말하고, 13절은 부정적인 반응(조롱)을 말한다. 먼저, 12절에 있는 긍정적인 감정은 이미 6절과 7절에 나온 것들이다. “놀라며”에 해당하는 엑시스탄토라는 단어는 7절에서 나왔다. 그리고 “당황하여”에 해당하는 디에포룬은 6절에 있는 “소동하여”에 해당하는 쉬네퀴데와 동의어이다. 그들은 “이 어찌 된 일이냐?”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들은 지금 일어난 일들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다음으로, 13절에 나오는 부정적인 반응은 성령의 오심을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는 죄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무리 중에서 일부는 조롱하면서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말한다. “새 술”은 강한 술이다. 따라서 새 술에 취했다는 것은 많이 취했다는 뜻이다. 이는 성령에 의해 지배당한 사람의 모습이 마치 강한 술에 취한 것 같이 보였음을 알려준다.

 

교훈과 적용

 

1. 성령이 오심으로 모든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으며, 다른 언어로 말함으로써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를 확인하였다. 이제는 성령이 더욱 활발하고 왕성하게 역사하시는 시대이다. 우리는 이 땅에 오신 성령으로 날마다 충만해져야 한다. 성령의 충만함 여부는 신자의 삶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한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성령의 충만함이 있도록 기도하자. 연약한 우리에게 강한 능력을 주시도록 간구하자. 성령 충만한 사람, 성령 충만한 가정,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자. 특히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2. 성령의 충만함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이 항상 가시적이고 체험적인 어떤 현상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성령은 때로는 뜨겁고 강렬하게, 그러나 때로는 조용히 아무런 느낌 없이 오신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신비적이고 체험적인 요소를 강조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다양하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오늘날 신비주의와 열광주의에 빠진 자들은 신비하고 황홀한 체험을 지나치게 중시하여 성령에 관해 잘못 이해하고 있다.

 

3. 성령이 분명한 가시적 증거와 함께 오셨지만, 여전히 그것을 믿지 않고 오히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을 조롱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것은 사탄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사탄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은 너무나 완악하고 철저히 불신앙적이다. 그런 사람들이 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계하며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말씀과 성령으로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기를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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