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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수 목사
광명교회 담임목사

교회개혁은 하나님의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오직 여호와만이 왕이심을 높이며 경배하여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 그들은 하나님의 왕이심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며 열방의 권력에 의하여 살아갔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의 지위는 잃어버리고 성전은 무너지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간다. 그 후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성벽을 재건한다.

그와 같은 포로 후의 성전재건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개혁운동에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개혁―예배의 회복―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역대기는 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멸망하였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역대기의 기자의 눈에는 그들의 잘못이 하나님 예배/성전을 훼파한 사건 즉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기고 그리고 이방의 나라에 의지하는 결과로 주어진 모습을 보여주며 잘못을 지적한다. 그런 이유로 에스라, 느헤미야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성벽을 재건하며 에스더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곧 성전건축이 이스라엘에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삶을 표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성전건축이 곧 (1) 하나님 중심, (2) 말씀 중심, (3) 교회 중심의 삶을 회복하는 길임을 알 수 있다. 

1. “하나님 중심”의 삶의 회복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표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성전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멀어짐으로 결국 주전 586년에 파괴되었다. 이제 성전을 다시금 세움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 중심”의 삶의 회복은 곧 오직 여호와만이 (1) 참 신이심을 그리고 (2) 절대적인 주권자이심을 인정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스라엘은 성전을 건축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신적 왕이심을 분명히 한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70년간 포로 생활한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긴 것이다. 가나안으로 건너가기 전에 모세는 요단동편에서 여호와만을 섬길 것을 분명히 명령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너 후에 현실적인 풍요를 기원하며 가나안의 풍요의 신―대표적으로 바알과 아세라―들을 섬겼다. 이를 호세아는 자신의 아내인 고멜의 빗대어 음란한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호 1-3장). 게다가 이스라엘은 산당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가나안 신들을 함께 섬겼다. 심지어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로 제물을 들이고 난 후에 동시에 태양을 향하여 제사를 드리고 춤을 추었다(겔 8:16).

하지만 포로시기가 끝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다니엘을 통하여서 그들은 분명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신임을 확신하게 된다(예, 단 2:46-49). 게다가 에스겔을 통하여 하나님이 마른 뼈와 같은 그들을 다시금 회복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성전건축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이었고(학개서), 성벽이 완성되었을 때에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다시금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것을 이웃 열방이 깨달을 정도였다(느 6:16).  

이스라엘의 성전 재건은 이스라엘에게 오직 그들의 통치자가  세상의 강한 국가/군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역대기 기자는 이스라엘이 패망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하나님을 주권자로 인정하지 않은 것을 분명히 한다. 대하 7:14절에 땅을 통치하는 자는 여호와이심을 확인하는 것이다(신 4장 참조). 이스라엘은 포로 전에는 여호와를 두려워하기 보다는 열방들의 힘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뜻을 찾기 보단 열방의 의지하여 모든 정치를 풀어나갔다. 심지어 앗수르의 엄청난 힘에 눌려서 왕이 직접 여호와의 성전까지 바꾸려고 한 모습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회복된 이스라엘은 하나님만을 이스라엘의 주권자라는 사실을 확신한다. 포로에 있던 이스라엘에게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명령을 내린 일은 이미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게 잘 나타난다. 게다가 포로의 기간이 70년이라는 사실은 예레미야의 예언에서 분명히 제시되었다. 실제적으로 성전을 건축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에서 나타난다. 게다가 하나님은 성전을 건축한 스룹바벨에게 다시금 이스라엘의 다윗과의 약속을 이행하시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렘 22:24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이스라엘 왕의 폐위와 그리고 학 2:23절의 다시금 세우시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주권자임은 분명해진 것이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성전/성벽의 완성은 하나님만이 최고의 신이신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미리 이 일을 바라보고선 하나님의 성전이 다시금 세워지며 그 위엄이 세상 최고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다(사 2:2-4).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교회개혁 즉 하나님의 성전재건은 하나님 중심의 삶의 회복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2. “말씀 중심”의 삶의 회복

성전재건/예배의 회복은 하나님의 말씀 중심의 삶의 회복이다. 이스라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린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언약의 백성이요, 그 언약으로 주어진 율법/말씀의 백성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과 성벽이 완성된 후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도록 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 선포는 (1)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회복이며, (2)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회개운동을 통한 영적 재무장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이 망한 가장 큰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실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예배의 황폐화를 가져왔다. 예를 들면 북왕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모스 7장에서의 선지자 아모스와 제사장 아마샤의 논쟁이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남왕국 유다의 요시야 왕은 성전수리 중에 발견한 하나님의 언약서(신명기)를 발견하고서야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왕하 23장; 대하 35장). 마찬가지로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은 스룹바벨이 지은 성전이 있었다. 하지만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돌아와서 성벽을 건축하고 율법을 낭독하기까지 제사는 드렸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느헤미야 9장에서 에스라는 하나님의 율법을 낭독하고 난 후  13:28-31절에는 말씀에 따라서 예배를 회복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복을 주시길 간구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로워질 수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그들에게 회개 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의 하나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회복하였다. 이는 출 19:5-6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 나라라는 부름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통하여 열방이 구원을 받는 통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게다가 대하 7:14절의 겸비한 언약의 백성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같은 형제자매―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자―의 아픔을 돌아보는 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는 것이 교회 갱신/회복을 의미한다. 말씀을 기억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예배가 훼파되고 변형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모습을 세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 중심의 삶의 회복은 하나님의 몸 된 교회의 회복이다.

3. 교회/신앙공동체 중심의 삶의 회복

성전재건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그와 같은 일은 하나님의 백성 모두의 일이어야 한다. 즉 모두의 마음이 하나님의 집인 성전 재건을 위한 열정이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이는 하나님의 신앙공동체로서 구성원 모두가 하나 됨을 의미한다. 즉 (1) 지도자들 (2) 참여한 모든 백성들, (3) 그리고 멀리서 참여하지 못한 백성들도 함께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성전재건은 알려주고 있다.

백성/신앙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헌신했다. 스룹바벨에게 하나님 성전을 지을 큰 뜻을 가지고 성전에 사용된 기물을 다 들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많은 고난 가운데서 성전을 완성한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이 성벽이 없음으로 인한 어려움을 듣고 눈물로서 각오를 하며 그의 모든 좋은 것을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이스라엘과 함께 성벽을 완성해 낸다. 에스라는 그는 율법/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진정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성전/성벽이 완성되었을 때에 가장 먼저 한 것이 율법을 낭독하여 참여한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운 것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이름들이 성전과 성벽을 지을 때에 언급이 되고 있다.

돌아온 5만의 모든 사람들은 회복의 역사를 시작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는 1,200km에 이르는 거리이다. 게다가 엄청난 위험과 도적이 도사리고 있는 길이다. 하지만,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다. 시편에서 저자는 바벨론 물가에서 울었다고 표현한다. 하나님이 없는 장소,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는 것 같은 환경이 그들에게는 더 없이 고통이었다. 비록 그들은 원망도 하였지만 끝까지 성전과 성벽을 건축하는 일에 동참하였고 고통을 함께하였다. 

게다가 성전의 재건/건축은 하나님의 역사의 현장에는 없었지만 예루살렘의 이스라엘과 함께 모국의 소식을 듣고, 기도하면서 자신의 정체성 곧 하나님의 백성임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이야기를 통하여 그들의 헌신이 결국 성전과 성벽을 완성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부림절). 

성전건축/재건이라는 교회갱신은 단순히 어느 한 사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 모두가 하나 된 신앙공동체임을 알았을 때에 이루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구약에서 바라보는 교회개혁은 하나님의 예배의 회복임을 알 수 있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여 바벨론으로 포로로 간 그들의 돌아와서 하는 성전재건의 일이 곧 그들을 하나님 앞에서 다시금 새롭게 하는 것이다. 이는 성전재건이 곧 오늘날 하나님의 몸 된 교회의 갱신을 보여 주는 것이며, 또한 어떻게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를 알려 주었다. 즉 교회의 개혁은 하나님 중심의 삶, 말씀 중심의 삶, 그리고 신앙공동체 중심의 삶이 되도록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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