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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원하 목사

산성교회 담임목사

고신총회 인재풀운영위원회 전문위원(서기)

 

1. 2:13-22의 문맥

 

요한복음의 거시 문맥(macro context)에서 볼 때, 요한복음 1장은 서론, 2-12장은 표적의 책, 13-20장은 영광의 책, 21장은 결론이다(Brown). 표적의 책인 2-12장에는 7개의 표적(signs)이 기록되어 있으며, 표적들의 배치와 함께 세 부분으로 나뉘어서, 2-4장에는 2개의 취임표적들, 5-10장에는 4개의 심화표적들, 11-12장에는 1개의 절정표적이 있다(Hwang). 본문이 위치한 2-4장에 나오는 두 개의 취임 표적들은 2:1-11의 ‘첫 번째 표적’(물로 포도주를 만드심)과 4:46-54의 ‘두 번째 표적’(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이다.

 

요한복음 2-4장을 세분하면 다음과 같다. 2:1-11은 첫 번째 표적이며, 2:12은 연결 구절이고, 2:13-22는 성전을 정화하신 일이고, 2:23-25는 연결 구절이다. 또한 3:1-12는 니고데모와의 대화이며, 3:13-21은 구원과 심판에 관한 교훈이고, 3:22-30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찬양한 것이고, 3:31-36은 예수님의 신적 기원에 관한 언급이다. 그리고 4:1-42는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이며, 4:43-45는 연결 구절이고, 4:46-53은 두 번째 표적이다. 이렇게 2-4장의 내러티브는 두 개의 표적을 시작과 끝으로 하는 하나의 단위(unit)를 구성한다.

 

요한복음 2-4장의 내러티브 단위가 드러내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으로 가장 측근의 유대인 제자들에게 믿음을 주시고, 이어서 성전을 정화하시며, 이후에 유대인과 대화하시면서 생명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인의 혼혈인인 사마리아인과 대화하시면서 예배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이어서 이방인의 아들을 고쳐주심으로 이방인에게 믿음을 주신다. 그리하여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시작되어 이방인에게로 확장된다는 사실(참고. 3:16) 가운데, 성전과 생명과 예배에 대한 말씀을 주신다.

 

2. 2:13-22의 주해

 

1) 배경(13절)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이 오자 예수님은 유월절을 지키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13절). 공관복음에는 예수님이 유월절을 한 번 지키신 것으로 되어 있지만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유월절을 세 번 지키신 것으로 되어 있다(참고. 2:13; 6:4; 11:55). 요한이 ‘유대인의 유월절’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유대의 관습을 모르는 이방 독자들을 배려한 것이며, ‘올라가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예루살렘이 유대의 중심 도시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여느 유대인 성인 남자처럼 유월절을 보내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

 

2) 성전을 정화하심(14-17절)

 

예수님은 성전을 정화하신다(14-16절a).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신다. 여기서 ‘성전’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히에론’으로 성전 건물 자체(나오스)가 아니라 성전 구내(temple precincts)를 가리킨다(참고. 히에론: 2:14, 15; 5:14; 7:14, 28; 8:20, 59; 10:23; 11:56; 18:20; 나오스: 2:19, 20, 21). 성전 구내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제일 안쪽 부분은 유대인 남자들의 뜰로서 혈통적 유대인 남자들과 할례를 받은 이방인 개종자들이 들어갈 수 있었다. 가운데 부분은 유대인 여자들의 뜰로서 유대인 여자들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제일 바깥쪽 부분은 이방인들의 뜰로서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아직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성전의 바깥쪽에 위치한 이방인들의 뜰을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사실 당시에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동물을 파는 것과 환전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소, 양, 비둘기는 성전에서 번제를 드리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동물들이었다(참고. 레 1, 3장). 그러나 먼 거리에서 오는 사람들은 동물을 직접 끌고 오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성전에서 동물을 샀다. 그리고 성전에 바칠 수 있는 돈은 튀리안(Tyrian) 주화와 테트라드라쿰(Tetradrachum) 주화였다. 따라서 디아스포로 유대인들과 멀리서 온 이방인들은 어쩔 수 없이 환전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방인들의 뜰에서 환전을 함으로써 이방인들은 성전에 들어올 수 없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지나치게 이러한 일에 신경을 쓰면서 성전제사가 순수하지 않고 변질되어 버렸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신다(16절b). 예수님이 성전을 향하여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의 신적인 자기 인식을 보여준다. 즉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인식하고 계셨다. 이것은 누가복음 2:49에서 어린 예수님이 성전에 대하여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연결된다. ‘집’이라는 언급은 요한복음의 가정은유(family metaphor)에서 비롯된 것인데, 구원이 하나님의 가정에 소속되는 것임을 시사한다. ‘장사하는 집’은 ‘아버지의 집’과 대조를 이루어서 성전이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타락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성전이 이미 ‘아버지의 집’, 즉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아니라 ‘장사하는 집’, 즉 사람들이 거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신다.

 

제자들은 이 사건을 시편 69:9과 연관시켜 이해한다(17절). 물론 이러한 깨달음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보혜사 성령께서 오심으로 가능한 일이었다(참고. 2:22; 14:16-17, 25-26; 15:26-27; 16:7-15).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은 직역하면 ‘당신의 집에 대한 열심’(zeal for your house)이다. 요한복음에서 ‘아버지의 집’은 14:2의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라는 말을 떠올린다. 이것은 가정은유와 종말론적인 관점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14:3의 ‘거처’와 연결되는 것이고 14:23의 ‘거처’와도 연결되는 것으로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를 지칭한다.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라는 시편 69:9은 주의 집에 대한 열성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예수님이 성전정화사건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셨음을 제자들이 나중에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3) 예수님과 유대인들의 대화(18-19절)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주장을 표적으로써 증명해 보이라고 요구한다(18절). 여기에 언급된 유대인들은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을 의미한다(참고. 19:31). 요한은 종종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을 단순히 유대인들이라고 표기한다. 유대인들은 표적에 관심이 많았다(참고. 2:23; 막 11;27 이하). 그리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입증할 만한 표적을 보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믿음을 위한 증거로서의 표적을 요구하는 것을 불신앙 혹은 미성숙한 믿음으로 간주한다(참고. 4:48; 6:2, 14). 따라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온전히 믿지 않고 있음이 드러난다.

 

유대인들의 요구에 대하여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대답하신다(19절). 여기서 언어유희가 발견된다. 공관복음에는 ‘건축하다’라는 동사에서 실제 건축을 나타내는 용어인 ‘오이코도메오’가 사용되었지만, 이곳에는 건물건축과 아울러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키는 ‘에게이로’가 사용되었다(참고. 마 26:32; 행 13:37). 그러므로 예수님은 성전 건물을 다시 세우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암시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결국 예수님은 성전과 자신의 육체를 같은 것으로 간주하신다.

 

4) 교훈: 참 성전이신 예수님(20-22절)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라고 반문한다(20절). 유대인들은 건물 성전을 말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를 말씀하셨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그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이렇게 묻는다. 이처럼 불신앙은 오해를 가져온다. 믿지 않는 자는 깨닫지 못한다. ‘삼 일’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기간이다. 예수님은 이미 자신이 죽으실 것과 부활하실 것을 자세히 알고 계셨다. 이러한 ‘삼 일’ 언급은 2:1의 ‘사흘째 되던 날’과 연결되어 2-4장 내러티브 단위의 부활 메시지를 연계한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요한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미를 설명한다(21절). 이처럼 요한복음에는 사람들의 무지와 오해가 더 깊은 설명을 가능하게 하는 문학적 장치가 많이 있다. 요한은 예수님이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셨다고 설명한다. 즉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의 육체였다. 이것은 성전정화사건의 기독론적 이해를 촉구한다. 예수님이 성전을 정화하신 것은 자신이 바로 참된 성전이시라는 기독론적 정체를 드러내시는 사건이다. 즉 구약시대에 만들어진 성전은 실상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모형론적 건축물이었던 것이다.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의 말씀의 정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였다(22절).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야 비로소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보혜사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셨다(참고. 14:16-17, 25-26; 15:26-27; 16:7-15). 이는 오늘날에도 절대적인 진리이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셔야만 비로소 계시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다. 성령이 일하시지 않으면 결코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인 정체와 그 정체를 점점 밝히 드러낸 구속사적인 계시의 진전을 아는 것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 가능하다.

 

3. 2:13-22의 신학적 메시지

 

요한복음에 기록된 성전정화 사건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것을 철저히 계시역사적인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이 사건을 단순히 종교적 차원이나 윤리 도덕적인 차원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새 성전이신 예수님이 옛 성전을 대체하는 대 변혁사건으로 보아야 한다(참고. 슥 14:21).

 

1) 예수님이 참 성전이심을 선언하심

 

성전은 하나님과 인간을 중재하는 장소이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인간을 중재하시는 중보자이시다. 예수님이 진정한 성전이시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새 성전이 옛 성전을 찾아오신 사건이다. 예수님은 옛 성전을 찾아오심으로 옛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신다. 예수님은 성전정화를 통하여 성전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신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참고. 14:6).

 

2) 유대주의의 패망을 선언하심

 

유대인들은 율법의 의미를 오해하였다. 그들은 성전의 진정한 가치를 몰랐다. 그들은 오로지 외형과 의식과 물질에만 신경을 썼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정화하신 것은 유대주의이다. 첫 번째 표적(2:1-11)이 옛 질서가 채워주지 못하는 것을 새 질서가 채워 준다는 메시지를 암시적으로 조용히 전한 것이라면, 성전정화사건은 그러한 메시지를 명시적으로 강경하게(극적으로) 전한 것이다. 사실 옛 질서의 몰락과 새 질서의 도래라는 메시지는 요한복음 전체에서 발견되는데 예수님은 그것을 사역의 시초에서 분명히 전하신다.

 

3) 이방인들의 회복을 선언하심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의 뜰을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이방인들은 성전에 들어올 수 없었다. 유대인들은 선민주의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이방인들을 배려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사역의 시초(요한의 관점에서 볼 때, 참고. 특주)에 이방인들의 뜰을 정화하신 일은 의미심장하다. 예수님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게 하심으로 구원의 우주성을 드러내신다. 즉 구원은 유대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신다. 이러한 구원의 확장은 4장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는 것과 4장 말미에서 이방인의 아들을 고쳐주시는 표적을 통하여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특주: 성전정화사건은 한번 있었는가 아니면 두 번 있었는가?

 

성전정화사건은 요한복음뿐만 아니라 공관복음에도 나온다(참고. 마 21:12-13; 막 11:15-19; 눅 19:45-48). 그런데 공관복음에는 예수님의 사역 말기에 성전정화사건이 있으나 요한복음에는 사역 초기에 그것이 있다. 이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성전정화사건이 한번 있었는데 요한이 그것을 예수님의 사역 앞부분에 배치한 것이라고 보는 반면에, 어떤 학자들은 성전정화사건이 예수님의 생애 초기와 후기에 각각 한 번씩 모두 두 번 있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생애 동안 성전을 정화한 사건은 한번 있었는가 아니면 두 번 있었는가? 이에 대한 답을 찾기란 대단히 어렵다. 이 일이 두 번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기사 사이의 다음과 같은 두드러진 차이를 근거로 제시한다: 1) 요한복음에는 황소와 양과 회초리 등 공관복음에 없는 내용들이 실려 있다. 2) 공관복음은 이사야 56:7과 예레미야 7:11을 인용하나, 요한복음은 스가랴 14:21과 시편 69:9을 인용한다. 3)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에 나오는 ‘기도하는 집’과 ‘강도의 소굴’에 대한 언급이 없다. 4) 요한복음에는 성전 무너뜨림/다시 일으킴(예수님의 죽음/부활)에 대한 언급(2:18-22)이 나오지만 공관복음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성전 정화 사건이 한 번 일어났다고 보는 학자들은 요한이 메시아로 말미암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라는 신학적 의도를 강조하기 위해 예수님의 생애 말기에 있었던 성전정화사건을 사역 초기에 배치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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