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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기사는 '성경'입니다. 종교개혁의 구호 '오직 성경'은 우리의 구원과 삶에 관한 필요한 모든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확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중에서 사라지는 음성이 아니라 문자로 기록된 말씀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성경말씀이 시대에 제한되어 있다는 말이 난무하는 시대에 성경이 분명한지, 성경으로 충분한지 살피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편집장

  

 

언약의 책, 성경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성희찬.jpg

성희찬 목사

(마산제일교회)

 

 

 

   어떤 자세로 성경을 대해야 할까? 또 성경은 이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구약성경 신명기를 보면 모세가 3,500년 전 젊은 세대에게 이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신명기는 ‘율법을 반복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모세는 단순히 반복하는 것 이상으로 상황에 맞게 적용을 하고 있다. 신명기 6장에서 모세는 율법이 어떤 책이라는 것을 말하면서 무엇보다 율법을 주신 분 하나님을 잊지 말라고 간절히 호소하였다.

 

 

1.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성경을 대하라

 

   모세의 호소는 다음과 같이 시작되고 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6:4).

 

   이 말씀의 핵심은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하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뜻이다. 마가복음 12장 32절에서 서기관이 예수님께 다음과 같이 말한 대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모세는 왜 하나님 여호와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을까? 장차 이스라엘의 젊은 세대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에 들어가서 거기서 많은 민족들과, 그들을 통해 그들의 신들을 접촉하게 될 것이다. 이 신들은 온갖 특성을 가지고 있는 신들이다. 그들이 사는 곳 가까이에서 얼마든지 보고 만날 수 있는 특성을 가진 신들이다. 어떤 민족은 풍요와 다산(다산)의 신을 숭배하고, 또 다른 민족은 사냥을 신을 숭배하는 식이었다. 이러한 신들이 어떻게 해서 이런 각각의 특성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추정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안한 신들이기 때문이다. 이 신들은 숭배하는 자들이 원하는 바에 따라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이스라엘의 젊은 세대는 신명기 6장에서 하나님께서 과거 시내산에서 계시하신 것을 다시 반복하여 들으면서 여호와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광야에서 강대한 민족들과 힘센 왕들을 만났지만, 자기 민족을 하나님의 손에서 건져 낸 신이 있었는가? ‘민족들의 모든 우상은 우상들이지만’(시 96:5) 여호와는 우리가 듣는 귀와 듣는 마음으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할 분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에서 진정한 순종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지금 기꺼이 나와 우리에게 말씀하시도록 하는 자세이다. 그럼에도 만약 말씀의 권위에 복종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우리가 앉아서 성경을 읽을 때에 하나님이 아니라 어떤 것이나 자신에 주목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우상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진리는 이에 대한 우리의 동의 여부에 매여 있지 않다. 아니 이와 상관없이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 자체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가지고 성경을 대해야 한다. 마태복음 19장 4-5절에서 예수님은 창세기 2장 24절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신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다른 신약성경에서도 자주 구약성경에 대해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말씀으로 소개하고 있다(특히 디모데후서 3:16-17, 베드로후서 1:21). 그래서 칼빈은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와 같은 동일한 자세를 가지고 우리가 성경을 대해야 한다고 하였다.

 

 

2. 신뢰를 가지고 성경을 대하라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첫째 자세는 경외심이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성경을 대하는 두 번째 자세를 말하라면 신뢰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경은 ‘여호와’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 ‘여호와’라는 이름은 출애굽기 3장에 가서야 주어지는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 이름으로 자신을 알리셨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

   특히 이 여호와라는 이름은 자기가 하신 약속에 대해 신실하신 하나님을 증거 하는 이름이다. 그 분은 자신이 말한 것을 실행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래서 그는 유일하신 참된 하나님이시다.

   출애굽기 3장에 가서야 이 이름이 나온다고 할지라도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는 성령에 이끌려(딤후 3:16) 이 여호와가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며, 또 특히 사람을 지으시고 언약을 맺은 것에 대해 처음부터 기록하였다. 즉 하나님은 유일하신 참된 하나님이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사람과 교제하며 언약을 맺은 하나님이시다(참고. 호 6:7).

   이제 하나님은 그때처럼 타락 이후 지금도 사람과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분으로 우리에게 항상 오시는 분이다. 이로써 하나님은 사람과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가지기를 바라신다. 여기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언약은 계약 이상의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언약은 혼인 언약과 비교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하나님은 자신과 우리의 관계가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 주신다. 즉 하나님이 자기의 언약으로 보여주시는 것은 바로 자신을 상대방에게 온전히 내어주는 내적인 사랑이다.

   아브라함의 역사가 이를 확증하고 있다. 창세기 17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약속은 어떤 것인가?(창 17:7) 무엇보다 하나님은 자기를 약속하시고 있다. 즉 언약을 세워서 그와 그의 후손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어서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온전하라’고 말씀하셨다.

   모세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의 젊은 세대에게 여기 신명기 6장에서도 말하고 있다. 즉 그 분께 너희의 마음을 드려라, 모든 사랑과 모든 삶을 드려라는 것이다.

   신명기 6장 6절에서 모세는 한 가지 명령을 더하고 있는데, 즉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고 하였다. 사실 이스라엘의 젊은 세대는 출애굽 사건과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신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모세를 통해 듣는 이 말씀이 어떤 것이며, 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했다. 무엇보다 모든 율법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에게 마음을 가지신 분으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알아야 했다. 이와 관련하여 세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세례는 곧 하나님이 자기의 말씀에 친히 인을 치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자기의 책인 성경의 저자로서 직접 친필로 서명을 하신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우리의 삶에서 순전히 인격적으로 전달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창세기 1장에서부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조의 역사를 읽을 때에 이 하나님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며 우리 아버지이심을 알게 된다. 그가 말씀하시는 것이 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신뢰할 말씀인 것이다.

 

 

3. 마음에 새기며 성경을 대하라

 

   신명기 6장에 나오는 ‘새기라’는 말은 연장이나 무기를 날카롭게 하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는 용어이다. 철일 경우에는 제때에, 나무일 경우에는 그보다 빨리 연마해야 했다. 이 두 경우에 쓸 만한 무기를 만들려면 주기적으로 대고 쳐야만 한다. 젊은 세대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낯선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바로 이와 같은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끊임없이 계속해서 우리 생활에 오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말을 통해 이미 모든 것에 대해 다 이야기하고, 우리가 무엇을 다 말한 후나, 혹은 우리가 일을 다 마친 후에 성경을 읽는 것은 때가 늦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성경 읽기는 하루 한 번으로 국한될 수 없고, 혹은 저녁 시간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이럴 경우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늦게 우리에게 찾아온다. 물론 아침에 시간이 좇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아 들으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마음을 가지신 그 분이 주시는 지혜의 말씀으로 말이다.

   모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7). 이는 무슨 뜻인가? 말씀으로 생각하고 말씀으로 생활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경외심과 신뢰로 대하는 자는 그 말씀을 마음에 새김으로써 자녀들에게 본이 되고자 한다.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8-9). 이 말씀을 따라 후대에 일부 유대인들은 문자적으로 적용하여, 신명기 6장의 말씀을 양피지에 써서 작은 가죽상자에 넣고 묶어서 몸에 지니고 다녔다. 또 문설주에도 기록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모세가 원하는 것이 정말 이것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모세가 의도한 것은 성경을 대할 때 이와 같은 외적인 모습을 정말로 문자적으로 가지라는 뜻이라기보다 성경을 우리 생활에서 이같이 중요한 위치에 두라는 것일 것이다. 이는 성경이 사랑의 언어임을 알아갈 때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성경에서 그 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자녀인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창세기 1장에서부터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책이다.

 

 

4. 함께 지체된 형제들과 형제사랑으로 성경을 대하라

 

   바로 이러한 사랑으로 주님은 우리와 함께 나누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이제 함께 그의 언약의 백성이 된 우리가 서로 이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 언약과 개인주의는 서로 양립할 수 없다. 나 혼자만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다. 성경이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 있지만 성경이 한 권이라는 것을 아는 자는 구약과 신약에 있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연합하여 성경을 읽는다. 이는 우리 각자의 지혜에 대해 우리를 지켜준다. 우리보다 앞선 수많은 성도와 함께, 또 우리 곁에 두신 많은 성도와 함께 성경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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