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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2017.08.11 13:05

[제자] 제자도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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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기사는 제자입니다. 한국교회에서 유행하던 제자훈련을 비판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과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사는지, 또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에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한국교회가 경건의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시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제자들이 많아져야 하겠습니다. 아니, 모든 신자가 다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지를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 편집자 주 -

  

 

제자도의 함정

 

 

임경근.png

 

임경근 목사

(다우리교회)

 

 

제자도의 오용!

 

  “진정한 제자는 또 다른 제자를 낳는다.”

  “생명은 생명을 낳고 제자는 제자를 낳는다.”

  “구원의 목적은 제자를 낳는 것이다!”

  “알을 낳지 못하는 닭은 폐닭이다!”

 

  이런 말은 선교 단체에서 주로 사용한다. 이 제자도의 관점을 교회에 적용한 것이 소위 ‘제자훈련 운동’이다. 뿐만 아니라, 근래에 유행하고 있는 최영기 목사가 미국 휴스턴에서 개발한 ‘가정교회 운동’에서 주장하는 키워드다.

 

  과연 진정한 제자는 또 다른 제자를 낳는 자일까? ‘알을 낳지 못하는 닭은 폐닭이다’는 구호는 마치 전도를 하지 못하는 교인은 진정한 제자로 보기 어렵다고 말하는 듯하다. ‘폐닭’이 불필요한 것처럼 전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교회에 불필요하다는 것을 연상시킨다. 교인들은 참 제자가 되기 위해 전도 현장으로 나아간다. 이 구호는 교인들로 하여금 전도하게 하는 좋은 도구로 활용된다. 전도를 많이 하는 선교단체와 성장을 추구하는 교회에서 자주 사용하는 구호다.

 

  ‘영혼구원’과 ‘교회성장’이라는 대의명분을 이루기 위한 좋은 도구로 사용되는 구호지만, 과연 성경적일까? 이런 구호가 과연 성경의 지지를 얻을까?

  이 글에서는 ‘낳는다’는 의미를 살펴보고 성경이 말하는 ‘제자’의 의미를 추적해보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제자가 제자를 낳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명을 낳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제자는 새로운 생명을 얻은 자로서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 실천하는 자다. 그러므로 제자의 정의를 제자를 재생산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성경적인 지지를 얻기 어렵다.

 

 

누가 제자를 낳나? 

 

  성경에 보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복음으로 낳았다’(고전 4:15)고 말하며 오네시모는 ‘바울이 낳은 아들’이라고 표현한다(몬 1:10). 성도가 복음을 전함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생겨날 때 그를 ‘영적으로 낳는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은유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신자를 낳는 것은 전도자가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신자는 하나님께서 낳으심으로 태어난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과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 3:8)에서도 분명하다.

 

  생명을 낳는 것은 하나님이시지만, 복음을 전함으로 구원을 얻게 했다면 ‘제자를 낳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말할 수 있다. 전도해 성도가 된 사람을 ‘영적인 자녀’라고 표현할 수 있고 바울의 표현처럼 ‘영적으로 낳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표현은 성경적으로 가능하다.

 

  제자를 낳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구호를 따르면 ‘제자를 낳지 못하면 폐닭’에 불과하다. 전도하지 못하는 성도는 교회에 필요 없다. 폐닭처럼 폐기처분되어야 할 대상일까? 생명을 재생산하지 못하는 성도는 진정한 제자가 아닌가? 이 부분에 대해 성경은 뭐라고 말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성경은 그 어디에서도 제자를 낳지 못하는 제자를 폐닭과 같다고 말하지 않는다.

 

  종교개혁 신앙을 따르는 교회는 성경이 말하면 가고 말하지 않으면 멈춘다. 성경보다 더 나가는 것은 인간의 열심일 뿐이고 자칫 거짓 복음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제자에게 지우시는 짐보다 더 가혹한 짐을 성도에게 지울 수 있다.

 

 

마 29:19-20에 나타난 제자도

 

  성경에 나타난 대표적인 제자도는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 나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문장에서 명령어는 하나 밖에 없다. 그것은 ‘제자 삼으라’(make disciples)이다. 나머지 명령어(가라/세례 주라/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모두 분사구문으로 제자를 만드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가서 세례주고 가르쳐 지키게 함으로 제자를 만들라’는 명령이다. 이 명령을 보면 제자는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아 배우고 지키는 자’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워 실천하는 자가 참 제자라는 말이다.

  더구나 이 명령은 한 개인에게 준 것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주셨다. 제자들은 교회를 세울 자들이다. 그들은 교회의 기둥들이다. 제자들은 가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 ‘가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받게 하는 것’은 단순한 개인 전도를 넘어 교회적 사역을 의미한다. 성령님은 교회 목사들의 설교(선포 <= “전도”)라는 미련한 방법을 통해(고전 1:21) 제자를 만드신다. 교회에서 세례를 통해 제자가 된 자들은 제자로서 태어나 비로소 삶을 시작한다. 제자는 앞으로 제자로 성장해간다. 제자로서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에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가르침’은 교회의 설교와 요리문답을 의미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제자도는 그 범위가 훨씬 광범위하며 배우고 실천하는 삶 전체를 향한다. 단순히 전도 잘하는 자나 혹은 제자훈련을 1-2년 받은 자가 제자가 아니라, 세례 받고 성도가 되어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자가 바로 제자임을 알 수 있다.

 

 

‘제자’라는 단어

 

  제자라는 영어 단어는 ‘디사이플’(Disciple)이다. 이 단어는 ‘배우다’라는 뜻의 라틴어 ‘디스커러’(Discere)에서 왔다. 제자는 우선 배우는 자라는 의미가 있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모든 말씀을 배워야 한다. 이 배움은 단순히 이론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삶으로 이어진다. ‘훈련’ 혹은 ‘훈계’ 또는 ‘권징’에 해당하는 ‘디스플린’(Discipline)이라는 단어도 ‘디스커러’(Discere)에서 유래했다. 그러므로 ‘제자’는 배우는 자이며, 배움은 훈련과 실천의 단계에서 완성된다고 연결시킬 수 있다. 이 ‘제자’와 ‘훈련’이라는 영어와 라틴어 의미를 봐도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 나오는 제자도의 ‘배워 지키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제자란 또 다른 제자를 재생산하는 자’라는 주장은 성경이 가르치는 것 제자도와 많이 차이가 날뿐 아니라 맞지 않다.

 

 

전도는 복음 설교!

 

  그러면 전도를 강조하지 말라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전도는 중요하다. 전도는 명령이다. 성도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 하지만 성도 개인은 복음을 온전하게 전하기 쉽지 않다. 성도는 불신자를 교회에 데리고 와 복음을 듣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참 ‘전도’는 말씀의 선포인 설교를 통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전도’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가 있다면 고린도전서 1장 21절이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이 구절 때문에 전도는 미련하고 무식하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여기에서 “전도”라고 번역된 단어는 ‘선포’라고 번역해야 옳다. 하나님께서는 철학적이고 합리적인 설득이나 토론을 통해 구원하시지 않고 ‘말씀의 선포’라는 방법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설교를 미련하게 보며 싫어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선포’, 곧 ‘설교’라는 방법으로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제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태어나 성장하는 자!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 과도한 구호를 만들어 전도를 부추기고 성도를 동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재생산하는 신자가 참 제자라는 말은 복음의 자유와 평안을 빼앗을 수 있다. 생명을 거듭나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복음이 전해지지만 듣지 않고 거부하는 것은 인간의 악함 때문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때문이다. 전도자의 잘못이 아니다. 이와 동시에 전도해 새 생명을 얻은 것도 복음 전도자의 열심과 지혜 때문이 아니다. 생명의 탄생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이렇게 중생한 자는 그리스도의 제자이다. 제자는 태어난다. 태어난 제자는 광야에 내버려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정원에 심겨진 식물과 같다(고전 3:7). 교회는 직분적 섬김을 통해 태어난 제자들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물을 준다. 하지만,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낳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기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전도사와 설교자는 아무 것도 아니다.

 

 

제자는 사랑으로 교회를 통해 전도해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랑의 제자도’를 가르치셨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4:34-35)

 

  이 제자도의 자격은 교인 가운데 특별한 부류를 향하지 않는다. 전도 잘하는 사람이거나 혹은 소위 '제자훈련'을 받은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이 제자의 조건은 모든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기본이며 전부이다. ‘사랑이 율법의 완성’(롬 13:10)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랑은 복음전도를 위한 기본이다. 교회는 사랑으로 복음을 선포하며 전해야 한다. 이것이 제자로서의 모습이 아닐까?

 

 

나가며

 

  이 글에서 밝히고자 한 것은 전도를 강조하기 위해 과도한 제자도(‘재생산하지 않는 제자는 제자가 아니다’)를 요구하는 것이 문제라는 점이다. 전도는 교회에서 직분적 사역을 통해 이루어진다. 특히 설교를 통해 복음이 선포됨으로 제자가 되고 제자로 자라간다. 소위 개인적 전도가 유일한 기준이 되는 제자도는 성경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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