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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2017.07.12 10:50

[제자] 세례와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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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기사는 제자입니다. 한국교회에서 유행하던 제자훈련을 비판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과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사는지, 또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에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한국교회가 경건의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시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제자들이 많아져야 하겠습니다. 아니, 모든 신자가 다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지를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 편집자 주 -

  

   

 

 

 

세례와 제자

 

 

 

안재경.png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제자훈련이 한때 열풍이었을 때가 있었다. ‘평신도 제자훈련’이란 것이 한국교회에 대단한 열풍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양적인 교회성장에 매몰되어 있는 시대에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신선하다 못해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어느 순간에 제자훈련이란 것이 과연 그리스도의 제자로 제대로 훈련시킨 것인가 하는 것을 의구심이 일어났다. 제자훈련이란 것이 그리스도의 제자로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목사의 제자로 훈련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일어나고 있다. 제자훈련으로 교인들을 구분하는 문제도 심각하다. 제자훈련의 강도가 심하면 심할수록 이런 생각은 더 심해져갔다.

   지금은 그때만 못하지만 제자훈련의 열풍이 완전히 시든 것은 아니다. 수많은 교회성장 프로그램이 명멸하였지만 제자훈련은 여전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성경에서 제자라는 단어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제자훈련이란 것에 주목하고 있다.

   제자라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훈련으로 되는 것일까? 훈련이 필요하다. 성경에서도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딤전 4:6-8)고 하셨다. 제자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제자는 세례 받은 사람이 어떤 특정한 훈련을 받아서 제자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신자의 신앙은 단계적으로 성숙해갈 수 있지만 세례가 제자 됨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고대교회 최초의 예전문서인 『사도전승』을 통해 세례야말로 신자 됨의 기본일 뿐만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포괄하는 예식이라는 것을 확인해 보자. 고대 교회에서 세례를 받는 과정을 통해 제자의 의미를 유추해 보자.



1. 등록: 동기, 현재 상태와 떠나야 할 직업

사도전승에 의하면 기독교인이 되겠다고 찾아오는 이들은 먼저 그 ‘동기’에 대해 답을 해야 한다. 왜 기독교인이 되고 싶은지 솔직하게 답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을 인도한 사람은 그가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증언해야 한다. 인도자가 보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 보증은 단지 지적 능력만이 아니라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이 살핀 바를 말해야 한다. 그 다음에 그 사람의 생활 상태를 점검한다. 종이라면 주인에게 가서 종에 대해 묻는다. 그 종이 기독교인이 될 만한지 묻는다. 평상시에 주인을 잘 섬겼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결혼을 했다면 남편이나 아내에게 만족을 주는지를 확인한다. 부정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것을 정리해야 한다.

 

 

 

   다음으로 그 사람의 직업에 대해 묻는다. 기독교인이 될 수 없는 직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직업들을 예로 든다. 창녀들을 조종하는 포주, 조각가나 화가, 배우이거나 극장에서 연출을 맡고 있는 사람,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사람, 경기에 출전하거나 참여하는 기사, 검투사나 그들에게 싸우는 방법을 가르치는 사람, 사냥하는 투사나 칼싸움 경기에 종사하는 직원, 우상숭배의 제관들이나 우상들을 경비하는 사람, 칼의 권세를 갖고 있는 사람이나 자주 빛 옷을 입을 정도의 지역 통치자, 군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 매춘부나 호색가나 자해하는 사람, 마술사나 점성가나 점쟁이나 해몽가나 협잡꾼이나 화폐 위조꾼이나 부적을 만드는 사람, 정부(情婦)를 갖고 있는 남자 등이다. 이 모든 물음과 생활과 직업에 대한 점검이 끝나면 그 사람은 ‘예비자’(Catecumens)로 등록된다.

   예비자로 등록하는데 믿으려고 하는 동기, 신분, 생활상태, 직업에 대해 확인한다는 것이 너무 과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고대 교회에서는 그만큼 예비자로 등록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함부로 세례를 주지 않는 것 정도가 아니라 예비자로 등록하는 과정 자체가 그만큼 힘들었다.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세상을 떠나라고 한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살되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을 결심하고, 정리할 것을 정리하지 않으면 세례예비자로 등록도 안 해 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세례 예비자가 요즘 말하는 제자보다 훨씬 나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님께서는 친히 제자들에게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나의 제자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요 15:8).

 


2. 교육기간: 그리스도인의 삶과 교리에 대한 배움

예비자로 등록을 하면 3년 동안 말씀을 배워야 한다. 어떤 교부는 이 기간이 2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3년, 최소한 2년이라니 너무 길지 않은가?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지체하지 않고 즉시로 세례를 베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2년 이상을 세례교육의 기간으로 가지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이것은 시대적인 상황의 반영이라고 보이는데, 이방인 개종자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체계적인 세례교육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한편 당시에 핍박으로 인해 신앙을 배반하는 이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교회는 더더욱 세례교육에 대한 필요를 절감했을 것이다.

   3년, 혹은 2년 동안 어떤 교육을 했을까? 고대 교회에는 『디다케』라는 문서가 세례교육교재로 사용되었다. 이 문서는 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바른 길을 가는 것에 비유하고, 삶에서 주님을 선택하고 따라야 하는 것을 강조한다. 주일예배며 각종 성례에 대해 해설한 것을 배운다. 특이한 것은 이들 세례예비자들은 따로 특별한 교육을 받았다기보다는 다른 교인들과 함께 주일예배에 참석하고 교리공부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신자들과 유리되지 않고 그들과 함께 모든 것을 함께 한 것이다. 물론, 성찬에는 참여하지 못하였다. 성도의 온전한 교제를 누리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전문 교리교사가 이들 세례자에게 적극적으로 말씀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 내용은 신조와 성경이었다. 이들 신조와 성경을 통해 가르친 것은 한가지로 집약된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를 확신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자신들의 구원이 되었고,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이 자신들이 한 것이라고 보는 믿음을 가르친 것이었다.

   세례자로 등록할 때 인도자의 역할이 중요했던 것처럼 세례교육 중에 그 인도자는 모든 필요한 도움을 주고, 그를 잘 인도했다. 그 인도자가 영적부모역할을 한 것이다. 그 인도자는 교회 앞에서 세례예비자의 삶에 대해 증언했을 뿐만 아니라 세례교육을 받는 기간 동안 그 삶에 대해서 더 세밀하게 돌보았다. 이처럼 세례교육기간에서 중요한 것은 교리적인 지식만이 아니라 세례예비자들의 삶이 향상되도록 도우는 것이었다. 세례교육기간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굳건한 믿음의 사람으로 서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현대의 제자훈련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현대의 제자훈련은 성경을 읽거나 기도하고, 과제를 하는 것에 치중해 있다. 삶의 변화와 전도에 대한 강조도 많다. 하지만 그 신자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런 간섭이나 지원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자훈련하기 위해 모이는 시간에 간단하게 자신들의 삶에 대해서 나누는 것 외에 서로의 삶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3. 심사: 변화된 삶에 대한 증거

세례교육이 끝나면 이제 세례 받을 사람을 심사한다. 세례교육의 기간이 끝났다고 자동적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세례 받을 자를 선발한다. 선발이 되면 그 사람은 예비자가 아니라 ‘선발자’(electi)로 불린다. 세례 받을 사람 선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들의 생활이다. 세례예비자로 있는 동안 ‘성실하게 살았는지, 과부들을 공경했는지, 병자들을 방문했는지, 온갖 종류의 선행을 했는지’ 물어본다. 본인이 대답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들을 인도했던 후견인이 세례예비자에 대해 증언한다. 그 후견인은 예비자로 등록하는 과정, 세례교육을 받는 전 기간, 그리고 최종적으로 세례심사에까지 필요한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 예비자를 교육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물론, 세례 받고 난 다음에도 평생 그 세례자를 위해 필요한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로마교회에서는 세례자를 위해 대부, 대모를 세우는 것이 바로 이렇게 고대교회로부터 내려오는 세례교육방식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선발자는 집중교육을 받는다. 세례를 부활절 전야에 베풀기 때문에 사순절기간이 집중교육의 기간이다. 이 집중교육 때는 성경이며 성경의 요약인 비밀스러웠던 ‘사도신경’을 받아서 암송한다. 기독교가 삼위일체 하나님신앙이라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배우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신경 공부만 제대로 해도 우리의 믿음에 대한 분명한 기초를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도전승』에서는 세례식에 대해서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부활절 전야에 세례를 베푼다. 잘 준비했다가 수탉이 울 시간에 세례를 베푼다. 이 날은 온 교회의 잔치날이다. 세례받을 사람은 목욕으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목사가 마귀를 쫓아내는 구마식도 행하고, 기름도 바른다. 세례식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흐르는 물에 들어가서 세례를 받는다. 삼위의 각 위를 믿는지 묻고 답한다. 세례 받은 사람은 비로소 성찬에 참여한다. 이렇게 세례식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누리는 예식이요, 동시에 그 사람은 부활한 백성으로 이 세상 어둠의 일을 버리고 빛의 자녀로 살아간다.

 

   이상에서 우리는 고대 교회 세례자의 조건이 삼위 하나님에 대한 지식만이 아니라 변화된 삶이었다는 것을 확인해 보았다. 이교가 성행하는 상황에서 참된 믿음을 고백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삶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했다. 세례자의 조건이 교리적인 사실을 몇 가지 암송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참된 회개와 변화된 삶이 있어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알맹이가 현대교회의 제자훈련에서 빠진 것이 아닐까? 이 알맹이가 없으니 제자훈련은 하나의 프로그램이 되어가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흔히 교인이 세례자가 되고, 세례자가 제자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큰 오해이다. 신약시대의 신자들을 바로 제자라고 불렀다는 것을 보면 우리는 세례 받은 사람이 바로 제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성경은 교인이 곧 세례자요, 세례자가 곧 제자라고 말씀한다. 신자는 처음부터 제자로 태어난다고 말씀하고 있다. 제자의 삶은 세례를 늘 새롭게 하는 삶이다. 세례 안에 제자의 모습이 다 담겨있다. 주님은 이렇게 세례 받은 신자를 강건하게 하기 위해 성찬을 허락하셨다.

   제자훈련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세상에서도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이 그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끊임없이 보수교육을 받고 있다면 신자는, 제자는 더더욱 하나님의 말씀으로 끊임없이 훈련을 받아야 한다. 교회에서 직분의 역할이 바로 이렇게 교인들을 세상에서 봉사의 일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다(엡 4:11,12). 모든 교인들이 다 제자이며, 그 제자를 훈련시키는 것이 직분자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신자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예배를 통해, 그리고 은혜의 방편을 통해 제자의 모습을 갖추어간다. 직분자가 먼저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된 첫 주자가 되어서 신자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제자로 만들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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