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바빙크가 오늘날에도 시의적절한가?
- 제6회 교회를 위한 신학포럼(서울)이 헤르만 바빙크를 불러내다 -
2019년 12월 9일(월) 오후 2시 총회창립 100주년 기념관 4층에서 ‘제6회 교회를 위한 신학포럼(서울)’이 열렸다. 이번 포럼에서는 네덜란드의 교의학자 헤르만 바빙크를 불러내었다.
‘헤르만 바빙크의 기독교 세계관과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강영안 교수(미국 칼빈신학교 철학신학교수)가 먼저 강의했다. 강교수는 바빙크가 1902년에 자유대학교로 가서 가르치기 전에 깜쁜에서 교의학과 철학과 윤리학을 고루 가르쳤다는 것을 환기시킴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바빙크는 교의학만이 아니라 윤리학, 더 나아가 철학에 대한 관심을 평생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교수는 윤리학과 관련해서 ‘바빙크는 교의학과 윤리학의 내용으로는 구분되지만 지식의 성격과 현실 연관성에서 보면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바빙크는 바른 교리와 바른 삶을 함께 강조했다는 것이다. 강교수는 이게 한국교회에 중요한 의미를 주지 않겠냐고 말했다. 한국교회가 교리는 많이 가르치지만 삶이 따라오지 않는 부분이 많다.
‘세계관’으로 넘어가서 바빙크는 1882년에 〈우리 교회의 학문적 소명〉이란 글에서 세계관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강교수는 도대체 리폼드가 뭐냐고 물었다. 흔히들 개혁주의 고백문서들(세 일치신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바빙크에 있어서 이 신조들에서 고백하는 것은 지극히 작은 것이고, 이것들보다 훨씬 더 넓은 것을 생각하는데, 그것이 바로 세계관이라는 것이다. 바빙크는 고백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 전체에 대해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강의하는 강영안 교수 ⓒ 안재경
강교수는 세계관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보는 주체의 등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앉아있는 지점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지지 않는가? 우리는 지평을 배경으로 해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빙크는 왜 세계관을 이야기했는가? 바빙크의 자유대학교 총장 취임연설이 『기독교세계관』(곧 번역될 예정이다)인데, 바빙크는 당시 시대상을 ‘분열’(파편화)로 이해하고, 그 시대를 어떻게 통합시킬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이게 세계관이다. 슐라이어마흐를 포함하여 독일 철학자들이 19세기 말에 세계관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는데, 바빙크는 이 시대상을 신학 안으로 끌어들여 통합적 관점의 재고를 위해 ‘세계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한편, 바빙크가 세계관을 말할 때 ‘통합’만이 아니라 ‘대립’(antithesis)이라는 것이 중요했다. 기독교 세계관이 그 시대상과 대립하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마지막으로 ‘오늘 우리에게 바빙크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리했다. 첫째, 우선 무엇보다도 바빙크가 교회의 신학자임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개혁교의학』 1판에서 바빙크는 신학함이 ‘성도의 교제’라는 것을 강조했다. 교회와 신학이 얼마나 긴밀한가를 강조했다는 것인데 한국교회 상황에서 시사점이 클 것이다. 둘째로, 삶은 없고 죽은 정통만 자리잡은 상황에서 바빙크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윤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카이퍼를 ‘아버지의 윤리’(아버지의 명령을 따르는 것을 강조), 바빙크는 ‘아들의 윤리’(그리스도를 본받는 삶)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바빙크의 윤리학은 교리와 삶을 균형있게 가르친 윤리학이라는 것이다. 셋째로, 바빙크는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인 신학자이다. 바빙크는 현대적인 문제를 가지고 씨름했기 때문에 그는 교단으로부터 늘 혐의의 대상이기도 했다. 조상에게서 받은 신학을 가지고 지금 여기에서 골똘하게 씨름하면서 싸운 신학자이기 때문이다. 강교수는 ‘전통주의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죽은 신앙이요, 전통은 죽은 사람들의 살아있는 신앙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우리가 전통을 붙잡아야 하지만 현대와 씨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넷째로, 바빙크는 학제간의 학자였다는 것이다. 현대 신학자들이 교단에 갇혀서 게토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문을 열어서 시대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신학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 경청하는 참석자들 ⓒ 안재경
강의 후 질의응답시간을 가졌는데, 청중에서 바빙크의 신학이 교회를 위한 신학이라고 하는 이유를 질문했다. 강교수는 바빙크가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았다고 말했다. 이것이 교묘함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교묘함이 간사함은 아니라는 것이다. 바빙크는 자기와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진 이들을 평가할 때에 공정했고, 그 공정한 평가 후에 그들의 논의를 끌고 와서 창조적으로 개혁신학을 더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강교수는 사람들이 ‘교회를 위한 신학’이란 말을 많이 하는데, 잘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는 무엇이고,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데, 그 하나님 나라는 세상에서 펼쳐지지 않는가? 즉, 교회를 위한 신학은 우리의 삶에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를 위한 신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를 위한 신학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를 위한 삶과 유리되어 있다면 의미 없지 않겠냐고 답했다. 강교수는 바빙크를 3가지 ‘대’자로 표현했는데, 대결, 대화, 대안이 그것들이라는 것이다.
포스트모던사회에서 바빙크가 시의적절하냐고 다른 질문을 받자 강교수는 현대사회를 요약하면 ‘차이’(동일성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차이를 부각시킴)와 ‘해체’(의미가 해체되어 버리고, 진리이후에 시대에 들어섰는데 이제는 내 편이냐, 아니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짐)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우리는 게으르지 말고 치열하게 이 시대사상과 싸우면서 답을 제공해야 하지만 고대로부터 세상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에는 삶으로 보여주는 것밖에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기독교세계관을 오랫동안 가르쳐 왔다고 하는 어떤 이가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제임스 스미스 교수의 예전적인 삶에 대한 논의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어떻게 평가하냐고 질문했다. 강교수는 맞는 말이라고 하면서 바빙크를 다시 언급하면서 그가 종교의 자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묻고는, 지성이나 감정이나 마음 어느 한 군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곳에 다 있다고 말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 강의하는 박재은 교수 ⓒ 안재경
다음으로 ‘계시의 빛으로 이해하는 하나님, 나, 신학’이란 제목으로 박재은 교수(국제신대 조직신학 초빙교수)가 강의했다. 박교수는 『헤르만 바빙크 평전』에서 바빙크를 ‘목회자, 교회지도자, 정치가, 신학자’로 소개했다고 말하면서 그는 통합적인 사고를 하고 작업하고 가르쳤던 신학자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교수는 바빙크의 삶을 한마디로 포괄과 절충의 삶으로 요약했다. 또한 네덜란드 교의학자 베르까우브르의 평가를 인용하면서 ‘바빙크의 신학적 방법론, 학문적 태도, 영성 등을 보편성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바빙크의 『계시철학』(다함)을 번역하고 해제했기 때문에 이 책을 요약하기 시작했는데 ‘주관적 종교 앞에는 항상 객관적 종교가 있다’는 바빙크의 말을 강조했다.
여기서 박교수는 우리 한국교회가 너무나 주관성에 치우쳐 있다고 보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바빙크의 신학은 ‘계시중심성’이었다고 말했다. 박교수는 또한 ‘계시는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전제요 근본 토대일 뿐만 아니라 비밀 그 자체이다’라는 바빙크의 말을 강조했다. 바빙크는 이 계시중심성으로 하나님, 나, 세계를 찾아간다. 우선 바빙크는 당시에 유행하던 4가지 종류의 신들(범신, 인간적 신, 생성중, 영원의식)과 대결하면서 ‘초월적 하나님’을 변증했고, 다음으로 바빙크는 사람을 자의식, 전적의존감정, 인격, 믿음의 4가지 요소로 나누어서 ‘사람’이 자유롭게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고 설명했고, 마지막으로 바빙크는 당시에 유행하던 세계를 보던 5가지 관점인 일원론, 실용주의, 진화론, 자연과학, 역사법칙주의를 하나씩 논파하면서 ‘세계’를 하나님의 세계로 이해했다.
박교수는 마지막으로 바빙크의 『계시철학』 빛을 받아서 ‘객관적이고 참된 계시의 빛 아래서 전인으로 살아내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 마지막 발언은 첫 번째 강의를 한 강교수의 강조와 똑같았다.
이번 ‘교회를 위한 신학포럼’을 통해 교회를 위한, 더 나아가 세상을 위한 신학자 바빙크를 다시금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도서출판 〈다함〉에서 곧 바빙크의 『기독교세계관』이 출간된다고 하는데, 우리의 믿음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일관된 시선과 삶으로서의 세계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교회와 세상을 붙잡고 씨름했던 바빙크와 같이 우리도 우리 시대에서 ‘교회를 위한 신학’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목사와 교회 직분자들이 교인들과 더불어 ‘우리 시대를 위한 삶’을 제대로 살 수 있기를 간구해야 하겠다.
안재경 편집장(reformedj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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