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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개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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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교인들은 개척교회 목사의 관심을 부담스럽게 느낍니다. 물론 관심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오래도록 등록하지 않고, 예배가 끝나기 직전에 총총걸음으로 예배당을 나와 목사님과 마주치지 않은 데 대해 안도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도 하고 성경도 읽지만 교회 주변을 맴도는 데 만족하면서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 만큼은 부담스러워 합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개인주의가 만연하기 때문이라고 치부해 버리기도 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봉사하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교회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적극적으로 '내 교회'처럼 행동하고 목사님을 도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스타일'과 맞지 않으면 금새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이처럼 개척교회에는 사람들이 정착하기가 쉽지 않고, 정착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쉽게 떠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성도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기뻐하다가 어느새 쉬이 떠나가는 성도들을 보면서 속수무책 당하는(?) 개척 사역자들을 보면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1.일할 사람을 찾는 교회?

 

개척 사역이 힘든 이유는 한 사람이 1인 다역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한동안은 목사님과 사모님이 그 일을 감당합니다. 쉬지 않고 1년동안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철야, 주일예배, 성경공부와 전도 등에 모든 에너지를 쏟게 됩니다. 그러다가 한 두 교인이 목사님을 돕겠다고 나서면 보람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점점 교회에 열심히 나오는 성도들을 중심으로 목사님이 매고 있던 짐이 내려오게 됩니다. 어쩌면 성도들 스스로 ‘내 교회’라는 의식이 생기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순수하고 좋은 마음으로 목사님, 사모님의 짐을 덜어드리고자 ‘사랑의 짐’을 지기로 하나님 앞에 결단하고 좋은 마음으로 봉사하고자 합니다. 목사님은 그런 성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를 얻습니다. 그렇게 봉사에 많은 사람들이 유익을 얻고, 신앙이 지속적으로 성숙하게 되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이 지속되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어떤가요? 목사님과 사모님에 대해 실망하는 부분이 생기거나 교인들 사이에 이상기류가 흐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꾹 참고 얼마간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묵묵히 감당하다가는 점차로 ‘이사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경험을 한 번 이상 하게 되면 그 이후부터는 개척교회에 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일종의 실연의 상처입니다.

 

2. 부담 주는 교회?

 

개척교회에 새로운 방문자가 오면 어떨까요? 조금 썰렁했던 예배 공간에 한사람, 두사람이 새로 들어오면 기존의 성도들도 긴장을 하고 목회자도 긴장을 합니다. 그래서 새로 나온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고 자연히 그 긴장감이 전달되고 방문자는 당연히 부담감을 느끼게 됩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는 현대인 상당수는 개척교회 그 자체가 부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아마 상당수는 그 부담감을 이기고 지속적으로 예배에 출석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 같아 보입니다. 그렇다고 새로 온 방문자를 대할 때에 무관심하게 대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역자 혼자 일하면서 모든 일을 사역자 홀로 담당하는 것은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모든 것을 다 퍼주고, 온갖 좋은 것들을 갖다 주며 분위기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아마 사역자 자신이 금새 탈진해 버리고 말 것 같습니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면 개척사역이란 오직 힘들고 험난한 가시밭길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처음에는 가까운 동료 목사님들에게 하소연하고 기도부탁을 하다가 점차 불만이 쌓입니다. 목회자도 인간이기에 그렇습니다. 문제는 목회자가 이런 탈진을 경험하면 기존에 나오던 성도들조차 이상 기류를 눈치 챕니다. 만족하고 교회를 다니던 기존 성도들도 마음이 무거워지고, 어느덧 영적인 고갈을 경험하게 됩니다. 메마른 마음에 좋다는 다른 교회를 기웃거리며 부러워하게 되고, 비교하다보니 우리 목사님에 대한 실망감도 가지게 됩니다. 상황이 이쯤 흘러오면 목회자도 다른 돌파구를 찾고자 여러가지를 도입하게 되고, 성도들은 목사님이 처음에 순수했던 모습에서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은혜의 선순환을 잃어버리고 실망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특히 잘 나오던 성도 한 두 사람이 이탈하고 나면 목회자도 힘들어지고 남겨진 성도들도 대단한 침체를 겪게 됩니다. 한 사람이 더 와도 부족할 판에 한 사람이 나가면 우리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사라지고, 전도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도 우리교회에 데리고 올 의욕이 상실됩니다. 깊은 수렁을 만나고 맙니다.

 

중요한 것은 함부로 사람을 세우지 말고, 사람들에게 일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대신 예배를 향한 부담감은 유지해야 합니다.

 

3. 예배에 집중하는 교회!

 

악순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사역자는 본래 맡은 직분인 “말씀과 기도”에 집중해야 합니다. 말씀의 사역자에게 주신 가장 합당한 사역의 장은 예배입니다. 예배에서 하나되고, 예배에서 참된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성도들을 성장시키는 가장 최고의 방법이야말로 예배입니다. 예배의 주인이신 삼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만나시고 그들을 부르시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훈육하시고 성장시키시는 만남의 장이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장입니다. 봉사의 일을 감당할 직분자를 선물로 주시고 모든 은사에 부요한 것으로 성도들을 채워주시는 시간도 역시 공예배입니다. 공예배에서 주어지는 은혜의 방편을 통하여 삶의 예배가 ‘진행형’이 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온 세상 모든 열방이 예배하는 것을 소망하며 영광스러운 그 날을 미리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활동을 예배를 중심으로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역자는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공예배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습니다. 교회가 침체하는 것은 새벽기도회를 안해서 그렇다고 말하고, 또 철야기도회를 안해서 그렇다고도 하고 전도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세상이 악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큰 교회건 작은 교회건 사역자가 맞부닥치는 어려움은 본인 스스로가 예배를 제대로 드리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오전에 방송실을 맡고, 찬양팀을 맡고, 곧이어 주일학교 부서를 맡고, 오후에는 각종 상담과 회의, 바쁜 일정으로 하루가 마무리 됩니다. 예배를 통해 안식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통해 사역자의 마음이 공허해집니다. 작은 교회 역시 비슷합니다. 정작 사역자 자신은 예배를 인도하느라 온전히 예배를 드리지 못합니다. 이러한 습관을 버리지 못하다보면 사역자 스스로 극복할 힘을 얻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인도자인 동시에 예배자라는 것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선포하는 나 자신이 설교의 청중의 한 사람입니다. 내가 전하는 설교가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사역자 자신이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만을 갈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히 연구하면서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배에서 맛보는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말씀을 준비하니, 말씀 연구에 힘이 나며, 사역을 통해 도리어 격려를 얻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많이 바뀌게 됩니다. 설교가 오늘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면 두렵기 짝이 없고, 하나님 앞에서 납작 업드러지게 됩니다. 목회자 자신이 누구보다도 더 많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됩니다.

 

예배를 도구로 삼아 교회를 성장시키려는 것은 예배 인도자나 참여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해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목회자도 예배에 집중하고 말씀 전하는 일에 집중한다면 예배가 더 없이 기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한 주간 기도와 연구와 묵상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탈진은 커녕 주안에서 경건의 능력이 점점 자라갈 것이며, 성도들 역시 그것을 느끼고 질적으로 성장하는 우리 교회에 자부심을 가질 것입니다.

 

과감히 공예배에 집중한다면 목회자가 자신의 가정을 돌보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습니다. 사모와 아이들이 1차적인 목회의 대상이니만큼 더욱 언행심사에 조심하며 하나님 앞에서 경건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과 기도, 예배에 집중하는 개척 사역이야말로 목회자 자신에게 유익이 됩니다. 작은 교회라고 해도 더 당당하고 기쁠 수 있습니다. 교세가 작다고 목사님들이 모인 곳에서 기 죽지 않습니다. 이렇게 작은 회중에게도 여전히 자기 자신을 주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쁘고 그것이 사모됩니다. 그러한 은혜를 사모하며 다른 부수적 사역은 내려놓고 말씀 연구에 집중하게 되니 목회자 스스로 성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구조입니다. 예배에 집중하니 다른 봉사를 강요하지 않고, 성도들과 함께 기쁨을 누립니다.

 

너무 당연한 귀결인가요? 요점은 예배에 대한 거룩한 부담이야말로 사역자와 성도 모두를 살리는 것입니다. 그 외에 모든 부담은 부담일 뿐입니다. 예배에 집중할 때 작은 교회라도 아주 강하고 단단한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이기 위한 외적 사역보다는 참된 경건의 훈련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5장 4항은 교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공교회는 때로는 더 잘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덜 보이기도 하였다. 개체 교회는 이 공교회의 일원으로서 더 또는 덜 순수하게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고 수용하고 규례를 집행하며 공예배를 드리는 정도에 따라 더 또는 덜 순수하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더 분명하게 우리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참' 입니다.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예배야말로 나도 살리고 성도들도 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사역자 자신의 심령도 성도들과 함께 가난해집니다. 여전히 신실하게 갈급한 마음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때마다 그렇게 돌보시는 언약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커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예배에 집중하고, 말씀에 집중하는 사역이 얼마나 행복한지!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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