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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개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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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복? 그러나 드러나는 갈등

 

2년전(2014년) 여름은 좀 편안했던 시기였습니다. 저희 집 첫째와 둘째가 함께 노는 시간이 제법 길어진 것입니다. 둘째 녀석이 누나를 졸졸 쫓아다니며 노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지요. 둘째가 제법 아기티를 벗으니 우리 부부도 좀 더 대화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좋았습니다. 게다가 저는 방학이 되어 아이들을 데리고 시에서 운영하는 야외 수영장에 자주 데리고 놀러 갔습니다. 서울과 비교해 볼 때 값도 저렴하고 사람도 많지 않아서 자주 즐겁게 놀았습니다. ‘언제 또 이런 날이 오려나’ 생각하면서, 오랜만에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었던 뿌듯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신학대학원에 입학한 지 1년 반만에 모처럼 여유를 찾은 것입니다. 여유가 생기자 아내와 대화할 기회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던 중에 우리 두 사람의 생각이 많은 부분에서 엇박자를 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부가 더 가까워지는 길은 여전히 험난했습니다.

 

필자는 신학생이 되어 개혁주의 교회 개척에 대한 소망을 키워가고 있었던 반면, 아내는 남편이 신학생이 되기 이전과 신앙적으로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남편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동안 아내는 홀로 육아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지만, 신앙적인 교제와 영적 공급은 더 줄어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개혁주의 신학에 동의할 만한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배운 신학적 논제를 열심히 설명해도 시큰둥 했습니다. 필자의 렌즈를 통해 소개되는 개혁주의 신학과 교회 개척 사역에 대한 소망이 아내의 삶에는 별다른 감동으로 다가오지 못했고, 아내는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당위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역을 시작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가정예배와 신앙적 대화, 기도에 더 집중하여 서로의 생각을 맞춰가고자 했습니다.

 

2. 길을 찾아가는 어려움

 

가정예배와 대화와 기도를 통해? 그래도 여전히 서로의 생각의 차이를 발견하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개혁주의 가르침이 분명히 성경적인데, 왜 안 따라오지?’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아내를 향하여 일방적으로 설득하는 일이 많았지만, 대부분 울리는 메아리처럼 별로 힘이 없었습니다. 가정예배와 대화와 기도로 벌어진 틈을 메우려 했지만, 늘 더 큰 벽이 나타나고는 했습니다.

 

다양한 처방이 내려졌습니다. 지금은 아직 육아로 힘든 시기니까 다른 것을 기대하지 말자. 아직 교회 생활과 예배에서 그 맛을 보지 못했으니깐 서두르지 말자. 내가 아직 성숙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니 더욱 기도와 경건생활에 힘쓰자. 여성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 등등...

 

하루 하루가 참 길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개혁주의 교회 건설에 대한 저의 변호와 설득에 대해 아내는 마음을 많이 열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감정적으로 아직’이라고 결론을 내리고는 했습니다. 저의 설득의 과정이 참 미숙하고 어리석었기에 보편 교회를 향한 소망이 아내에게는 또 하나의 극단처럼 비춰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미련하게도 가정이 신학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운대로 집에서 신학을 전수하고자 했습니다. 가정은 학교는 아니었고, 교회 역시 학교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설픈 지식으로 아내를 닦달하다 보니 가정에서의 리더쉽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교회는 학교가 모델이 아니라 가정이 모델이기에 더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3. 문제 해결의 실마리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역시 내부가 아닌 외부로부터 왔습니다. 그 즈음에 하나님은 저희 부부에게 셋째를 허락하셨습니다. 셋째를 임신한 아내는 근심이 많아졌지요. 그런데 아이 넷을 키우며 교회를 개척하신 또 다른 목사님 부부와의 교제를 통해서 의미있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개혁주의 교회 건설에 대해 미심쩍은 눈초리를 가지고 있던 아내가 성경적인 ‘임신과 육아’에 대한 목사님 부부의 조언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안심하면서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사모님의 한 마디 말이 아내를 위로했습니다.

 

역시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보려고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천천히 변화되기를 기다려야 했는데, 저는 그렇게 기다리지 못했었지요. 이후로 다양한 분들과의 교제를 통해 아내는 좀 더 개혁주의 교회 건설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가지기 시작했고, 가정에도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저 역시 아내를 설득하여 바꾸어 보려는 강박적인 노력을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셋째 아이가 태어나기를 준비 하면서 우리 부부는 아이의 태명을 ‘세움’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를 ‘건설(construct)’한다는 말은 불도저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강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매우 성경적 단어입니다. 좀 더 부드러운 번역은 ‘세우다(build)’일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건설하시고 세우시는 주체는 예수님입니다(마 16:18, 요 2:20). 그리고 바울 서신에서 이 단어는 사역자와 성도들에게도 적용됩니다. 그리스도의 터 위에서(고전 3:11), 사랑(고전 8:1), 영적 은사(고전 14:12), 그리고 선한 말(엡 4:29)로 연약한 지체를 세워야 합니다. 저는 아내와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통하여 ‘교회를 건설한다’, 혹은 ‘교회를 세운다’는 것이 결코 지식만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철저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교리적 가르침과 함께 공예배와 성도간의 교제, 그리고 기다림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저는 셋째 아이의 이름이 ‘세움’으로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첫째, 둘째와 같이 ‘넉넉할 유’자를 붙여주기를 바랬기 때문에 타협안으로 ‘세울 건’자를 이름에 붙여주어 ‘유건’이라고 정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면서 개혁주의 교회 건설에 대한 소망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4. 교회 건설, 연약한 지체를 세워주는 일!

 

결국 사역자가 해야 할 일은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성도들은 말씀의 사역자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성전으로 건설되는 중입니다(엡 2:21,22). 그것은 결코 믿음을 가장한 맹신, 혹은 밀어 붙이기 식이나, 혹 지적인 설득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말’만 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기다려 주고 ‘단단히’ 다지며 이 길을 가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애당초 ‘학교식’ 방법만으로는 아내와 한 마음으로 사역에 나서는 일에 성공할 수가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도 자꾸 학교처럼 만들려는 시도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 목사님께서 저에게 조언하셨듯이 교회는 ‘학교’가 아니라 오히려 ‘식당’이어야 합니다. 가족이 더 좋겠지요. 참된 개혁주의는 매주 드리는 공예배와 매일의 삶을 통해서 천천히 맛보며, 몸과 마음, 머리까지 적시는 것이어야 합니다.

 

초자연적 기사가 나타나는 부흥집회 스타일의 사역은 어떨까요? 그런 이적들이 지금도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부흥 집회식 습관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영적 조급증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신학적, 논리적으로 탄탄하더라도 ‘내 가르침 한 방에 넘어가 주기를’ 기대하는 것 역시 또 다른 영적 조급증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굳이 성경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 조상들은 기다림의 지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급할 수록 돌아가라', '바늘 허리에 실 매어 쓰랴' 라는 속담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5. 가시적 교회, 가시적 움직임, 교회를 세우시는 하나님

 

성경적 신앙이 천천히 몸에 스며드는 과정은 그 결과가 당장 뚜렷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마음 답답할 정도로 막연한 것도 아닙니다. 성령은 세상으로부터 성도들을 ‘보이는 교회’로 불러 모으십니다. 그리고 성령은 다시 성도들을 흩어 섬김과 봉사의 일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이 봉사의 일 역시 매우 구체적이고 가시적입니다.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 둘 다 가시적 교회의 모습입니다. 모이는 교회만 강조함으로써 '집중도'를 높이고 빠른 성장을 구가할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이고 흩어지는 역동적이고 일상적인 움직임이 교회를 균형있게 성장시킵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에는 여유 있는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기다림이 답답하지 않으려면‘천천히’ 가는 길이 가장 ‘빠르게’ 교회를 정착시키는 길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기다려주고 인내하면서,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과 보조를 맞추면서 울 때 함께 울고, 웃을 때 함께 웃는 것이 교회를 질적으로 양적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일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세우는 일, 연약한 지체를 기다려주는 일, 그것이 개혁주의 교회 건설의 첫 단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 일이 어떻게 진행되어 갈까요? 아직 교회 아파트 거실에서 모이는 중인데, 그래도 정말 교회가 건립되고 있는 걸까요? 정말 이 사역이 잘 진행되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까요? 저도 정말 궁금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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