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개척하기 전부터 개혁주의 신앙고백을 가지고 교회를 세우겠다고 주위의 지인들께 말하였습니다. 무슨 자신감으로 그렇게 당당히 이야기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작 교회에서 공부를 해보니 신앙고백서의 깊이가 대단히 깊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그 깊이를 저의 얄팍한 해설로 다 까먹을까봐 민망한 마음까지 듭니다. 우리는 이토록 깊은 선배들의 성경해석을 왜 이렇게 무시하고 있었을까 의구심도 듭니다. "다 아는 재미없는 것"이나 "딱딱한 교리를 들이대는 것 아닌가"하는 걱정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신앙고백서가 전해주는 그 ‘맛’부터 봐야 합니다.
흔히들 성경은 어린이도 물장구치며 놀 수 있고, 코끼리도 헤엄칠 수 있는 것으로 비유하곤 합니다. 교리교육 역시 성경의 핵심적인 내용을 요약한 것이기 때문에 쉽게 그리고 깊이 가르칠 수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몇 개월만 해보아도 이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가르침을 원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리교육이 곧 성경을 가장 포괄적이고 확실하게 제대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신뢰할만한 가장 확실한 성경공부 교재입니다. 10대로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헤엄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다른 성경공부 교재를 보면 솔직히 너무나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신앙고백서는 누가 뭐라해도 개척교회 목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입니다. 그야말로 난쟁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수많은 개척교회 목사들이 신앙고백서는 별 관심이 없을까요? 제가 사역하는 지역인 세종시에 있는 대다수의 개척교회들이 별로 신앙고백에 관심이 없으니까 필자는 더욱 더 사명감을 느낍니다.
개혁주의의 보화라 할 수 있는 승천 교리를 예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승천에 관해 몇 번 설교했는데, 많은 분들이 “이런 내용은 처음 듣는다”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49문은 그리스도의 승천이 주는 유익을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표현합니다. 기독론과 성령론, 구원론과 교회론, 종말론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깊이가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언자로서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그의 아버지 앞에서 간구하십니다.
둘째,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있으며,
이것은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지체인 우리를
그에게로 이끌어 올리실 것에 대한 확실한 보증입니다.
셋째, 그리스도는 그 보증으로 그의 성신을 우리에게 보내시며,
우리는 성신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위의 것을 구하고 땅의 것을 구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승천 교리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의 의미를 새로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땅의 것을 구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 그 따뜻함을 잃지 않으면서 경고와 권면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성경 해석에 대한 탁월한 견해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에베소서, 골로새서, 히브리서, 요한계시록에서 승천은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본문들을 읽으면서 승천 교리를 배운 신자들은 아무리 혹독한 시련의 계절을 맞이한다고 해도 이겨낼 힘과 위로를 주는 "말씀의 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실 뿐 아니라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온 세상과 모든 교회들을 돌보고 계시기 때문에 더 거룩하고 정결하게 살아야 할 이유를 얻게 됩니다.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며 하늘과 땅을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승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서 캄캄한 어둠이 닥쳐오더라도 결국 빛이 밝아오리라는 믿음으로 설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신앙고백서에 대한 좋은 해설서도 출간되고 있어서 신학교에서 성실히 공부했다면 누구나 이 무기를 쥘 수 있을텐데, 많은 개척교회들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러한 보화를 묵혀두고 있는 사역자 자신과 그것을 배우지 못하는 성도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플지 짐작이 됩니다. 좀 더 나아가 우리는 신앙고백서나 요리문답서의 전체 구도를 통하여 가르치는 기술과 수사법도 배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이델베르크 49문에 대한 답변은 그 자체로 훌륭한 3대지 설교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그렇게 하라고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우리들은 선배들의 성경해석을 배우는 즐거움으로 성도들을 안내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를 통해 혼란스러운 한국 교회에 기준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수준 높고 넉넉하고 푸근한 선배들의 경건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Soli Deo Glo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