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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은 잔인한 달

- 세월호 1주기 팽목항을 방문하고-

염덕균 목사(마산제일교회)


2015416일 새벽 527,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을 향해 운전대를 잡았다. ‘세월호 1주기를 맞이하여, 현장의 상황과 분위기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방문 목적 때문이었을까. 따스해야 할 4월 중순이었지만, 여전히 새벽 공기와 안개는 차갑게만 느껴졌다.

 

한참 고속도로를 달려서 섬진강을 건너자 안개는 걷히었고, 봄기운 충만한 전남(전라남도)의 너른 평야와 낮은 언덕들이 나타났다. 평지를 가득 채운 초록빛 잔디, 길가에 늘어선 분홍빛 철쭉, 만개한 노란 유채꽃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 아름다운 전경에 이곳을 방문하는 목적과 마음을 잠시 잊을 뻔했다.

 

하지만 팽목항에 가까워질수록 노란 유채꽃 대신, 노란 깃발과 리본, 그리고 현수막들이 곳곳마다 펄럭이고 있었고, 때마침 앞서 가는 트럭에는,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하얀 국화로 만든 화환이 실려 있었다. 봄날의 아름다움이 인위적인 것들로 인해 가리어지는 것은 아쉬웠지만, 그로 인해 스스로가 이곳에 온 이유를 되새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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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도군 길기에 걸려 있는 현수막 ⓒ 염덕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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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환을 옮기는 트럭 ⓒ 염덕균 

 

마산에서 출발한지 네 시간여 만에 도착한 팽목항에는, 이미 많은 (그러나 생각보다는 많지 않은) 추모객들이 도착해 있었고, 그 추모객들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경찰들이 대기 중에 있었다. 이미 진도에 들어서면서부터 길가에 드문드문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며 괜스레 긴장이 됐었는데, 팽목항 주차장에 대기 중인 경찰들을 보고나니, 잘못하다 큰 소동에 말려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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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 중에 있는 경찰들 ⓒ 염덕균 

 

하지만 막상 추모식장은 생각보다 차분했다. 아니, 차분했다기 보다는 경상도 말로 찹찹했다고 해야겠다. 추모식장 입구에서는 추모객들에게 노란모자와 함께 노란리본모양의 목도리(?)를 나눠주고 있었고, 추모식장 무대에서는 추모식이 이제 막 시작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추모식을 앞둔 추모객들의 얼굴과 표정에는, 슬픔과 애도라는 말만으로 담아 낼 수 없는 무언가가 함께 드리워져 있었다. 이제껏 수많은 장례식에 참여해 봤지만, 어느 장례식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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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식장 입구 ⓒ 염덕균 

 

추모식장을 지나 팽목항 부둣가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방송사와 신문사의 차량들과 부스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고, 커다란 카메라와 장비를 들고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며, ‘세월호 1주기를 소위 기사 거리를 찾는데 이용하는 것 같아 얄밉게 느껴졌지만, 이내 내 자신도 그들과 다를 바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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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사들의 차량 ⓒ 염덕균 

 

팽목항 부둣가 양편으로는 수많은 노란리본과 현수막, 그리고 애도의 메시지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고, 여러 종교 단체들이 추모식을 준비하거나 진행 중에 있었다. 노란리본 사이로 걸려 있는 풍경소리를 들으며, 적혀있는 글귀와 이름들 하나하나 읽어 나가다 보니, 어느새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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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리본과 수많은 메시지들 ⓒ 염덕균 


지난 1, 단 하루라도 세월호 관련 기사와 글들을 읽지 않은 날들이 있었던가? 이제는 식상하고 덤덤해져 버린 글귀들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1년 전 아까운 목숨들을 앗아간 바다와 부둣가에 일렁이는 노란 물결, 그리고 그에 반해 너무나도 잔잔한 파도와 맑은 하늘은 오히려 야속하게 느껴졌고, 그렇게 보내버린 목숨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증폭시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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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리본과 수많은 메시지들 ⓒ 염덕균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며 부둣가를 떠나 분향소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분향소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져 있었고, 출입구도 폐쇄되어 있었다. 추모객들이 옆에서 진행되는 추모식에 참여하느라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라디오를 통해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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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쇄되어버린 분향소 ⓒ 염덕균 


당일(416) 새벽. 현 대통령이 조문을 위해 팽목항에 들렀는데, 유가족들이 대통령의 조문을 거부하며 분향소를 폐쇄했다는 것이다. 그제야 추모객들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던 것이, 슬픔과 애도를 넘어, 분노와 실망감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해결되지도, 좁혀지지도 않은 국가와 유가족간의 관계를 바라보며, 이것이 세월호 사건 이후, 지난 1년간 변하지 않은, 아니 어쩌면 더 퇴보해 버린,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추모식장을 빠져나와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무리가 걸어오고 있었다. 순간 단원고학생들인가 생각했지만, 다시 보니 진도에 어느 고등학교 학생들이었다. 왼쪽 가슴에 조그마한 노란리본을 달고 추모식장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들 속에서,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무시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학창시절부터 훈련되고 길러지고 있는듯한 기분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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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팽목항을 방문하는 학생들의 행렬 ⓒ 염덕균 

 

팽목항 방문 일정을 마무리 짓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번 방문이 지니는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정치·사회·교육·종교 등과 관련 된 여러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무엇보다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더 많이 울어줄 수 있고, 더 깊이 안타까워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 아닐까?

 

이곳을 방문한 여러 사람들 - 시민들, 학생들, 공직자들, 기자들, 경찰들, 종교단체들 등 - 이 각기 다른 목적, 다른 동기, 다른 배경에 의해 이곳을 방문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희생자들을 위해 함께 울어줄 수 있다면, 그럴 마음을 품고 있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추모식, 더 나은 우리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타인의 슬픔과 고통과 아픔을 나의 것으로 삼을 수 있는, 그들의 고난을 함께 져 줄 수 있는, 그런 사회, 그런 문화가 우리 가운데 뿌리 내리고 열매 맺을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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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팽목항 기다림의 의자 ⓒ 염덕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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