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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목사

■ 히 12:18-24
18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19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20 이는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21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 시 122:1-9
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2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3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4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5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7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8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예배는 교회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일에 신자들이 같이 모여 예배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까? 특별한 집회 때에는 감정이 뜨거워지고 뭔가 은혜 받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주일마다 반복해서 드리는 예배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치도 여유가 없이 꽉 짜진 예배순서가 진행되는데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예배가 새로워지고 살아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어떤 예배가 새롭고 살아있는 예배입니까? 어떤 예배가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는 예배겠습니까? 예배가 군더더기 없이 물 흐르듯이 흘러가기라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예배순서가 뒤죽박죽이기 때문입니다. 기승전결도 없이 마음대로 짜인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다른 것 다 떠나서 무엇보다도 목사가 마음에 맺혔던 감정을 뻥 뚫어 주는 속 시원한 설교를 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문화, 예술행사에 참여한 것처럼 유익하고 좋은 볼거리를 제공해 주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합니다. 지상의 어떤 교회가 신자들의 이런 기대를 충족시켜 줄 수 있겠습니까?

예배의 구성요소는 무엇이어야 하며, 예배순서는 어떻게 짜야 하겠습니까? 그게 뭐 중요하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만 예배해야 하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대로 예배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예배 드리면 안됩니다. 예배요소와 순서는 심리적인 것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서 만들면 안 됩니다. 예배요소와 순서는 분명한 신앙고백을 반영하고 있어야 합니다. 예배요소와 순서는 온 세상을 향해 교회가 어떤 곳인지,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분명하게 나타내 보입니다. 성도들 자신이 교회의 얼굴이요, 교회건물도 교회얼굴일 수 있지만 예배야말로 온 세상에 나타나는 교회의 얼굴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히브리서 기자가 신약예배에 시들해진 유대 기독신자들을 향해 경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신약예배의 영광을 깊이 깨닫지 못하고 구약의 예배가 더 풍성하다고 생각해서 그 곳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 중에 기독교인이 된 후에 예배문제로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려고 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예배 장소나 예식의 장엄함 등을 비교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배 드렸던 성전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화려한 성전이었습니까? 성전 뜰, 성소, 지성소로 각각 나누어져 있고 그 곳에 들어갈 사람들이 지정되어 있었고, 그곳에 있던 거룩한 기구들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성전에서 행했던 다양한 제사의식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기독교회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번제단도 없고, 등대나 떡상이나 향단도 없습니다. 지성소에 있던 법궤는 말할 것도 없지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두루마리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드리던 예배는 순서에 있어서도 너무나 단순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유대 기독교인들이 자기들이 예전에 행했던 성전에서의 예배, 하다못해 회당에서의 예배가 더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구약신자들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곳에 이름

히브리서 기자는 작심하고 구약예배와 신약예배를 대조시킵니다. 과연 어떤 예배가 더 영광스러운 예배인지 따져 보자는 것입니다. 먼저 18절부터 21절까지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 예배한 굉장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신 후 가장 먼저 인도한 곳이 호렙산이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이 만질 만한 곳에 도착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그 호렙산에 강림하십니다. 출애굽기 19장과 20장에 그 역사적인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본문은 그 역사적인 장면에 대한 해설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그 산에 내려 오셨을 때에 온 산이 불붙는 것 같았습니다. 반면 침침함과 흑암도 온 산을 덮었습니다. 빛과 어둠이 산 전체를 가득 덮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폭풍이 온 산을 휘몰아칩니다. 폭풍 속에 나팔 소리가 점차 크게 울려 퍼지면서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온 산이 들썩거립니다. 온 산이 막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마치 지진이 나서 온 땅으로 퍼져가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호렙산, 즉 시내산에서 만나 주셨습니다. 최초로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부르시고 만나주신 장면입니다. 신명기 4장 10절부터의 말씀에 보면 모세가 40년 전의 바로 이 사건을 회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을 모으라고 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네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주어 그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를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리라’ 하시매 너희가 가까이 나아와서 산 아래에 서니 그 산에 불이 붙어 불길이 충천하고 어둠과 구름과 흑암이 덮였는데 여호와께서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뿐이므로 너희가 그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백성을 모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부름으로 인해 어중이떠중이 같던 이스라엘은 비로소 하나님의 회중, 하나님의 총회가 되었습니다. 이 회중, 총회라는 말이 70인역에서는 대부분 교회라는 말로 번역됩니다. 하나님의 회중, 하나님의 총회는 자발적인 결사단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불러 모음에서 나왔습니다. 이 모임, 회중, 총회라는 말에서 신약의 ‘예배’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회중과 총회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무리를 말합니다. 신자들이 다같이 하나님 앞에 모이는 것이 곧 예배요, 그때 비로소 그들은 하나님의 회중과 총회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모으라고 하셨지만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무턱대고 나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강림하실 그 산 주위에 아무도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도 그 산에 가까이 하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짐승이 그 산에 가까이 가면 그 짐승을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가까이 하지 못할 하나님 같으면 하늘에 그냥 계시지 왜 이 땅에 내려 오셨을까요? 이스라엘을 겁주기 위해 오셨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장차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실 날을 미리 준비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이라는 것만 절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나 겁이 나서 하나님께서 더 이상 자기들에게 직접 말씀하지 말기를 구했습니다.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들에게 전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 겁이 나서 떨었던 것만이 아닙니다. 모세조차도 심히 무서워했습니다.

신약교회가 예배할 때 하늘에까지 이름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예배한 이런 경험과 비교할만한 것이 있겠습니까? 이것보다 더 큰 영광, 신비한 체험이 있겠습니까? 이런 체험이 다시 반복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도 이런 체험을 바라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예배 때 이런 체험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이런 체험과 예배보다 더 굉장한 체험과 예배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약시대의 예배입니다. 신약시대의 예배가 훨씬 더 영광스러운 예배요, 훨씬 더 굉장한 체험입니다. 말씀을 믿으십시오. 22절부터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신약교회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이르게 되는 곳은 광야의 시내산이 아니라 약속의 땅에 있는 시온산, 그 산을 둘러싸고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신약성도들이 이른 곳은 팔레스틴에 있는 시온산, 예루살렘이 아닙니다. 이것은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그 시온 산, 예루살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신약성도들이 이른 시온산과 예루살렘은 이 지상의 장소가 아니라 하늘성전을 가리킵니다. 시온산과 예루살렘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것이 천상의 실제에 대한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도들이 예배할 때 이르게 되는 곳은 이 지상의 어떤 곳이 아닌 하늘입니다. 그 하늘은 우리가 만질 수 없는 곳이 아닙니까? 이런 대조를 염두에 두고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 성도들이 이른 곳은 만질 수 있는 곳이었다고 먼저 말했습니다. 신약성도들이 예배할 때는 신자들은 손으로 만질 수 없는 하늘에까지 올라갑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로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의지하여 예배하는 곳에는 하늘이 펼쳐집니다.

신자들이 예배할 때 이르게 되는 그 시온산, 예루살렘에는 축제를 벌이고 있는 수많은 천사들이 있습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원문에 보면 이들 천사들이 축제를 벌인다고 되어 있습니다. 천사들이 축제를 벌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 좋겠다! 참 좋겠다!” 라고 말하면서 덩달아 축제를 벌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범죄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피 흘려 주셔서 그들이 구속 받아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리에 선 그 구속의 비밀이 너무나 궁금했던 것입니다. 성자께서 범죄한 이들을 위해 피 흘려 주신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범죄하지 않았던 천사들이 범죄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러워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교부 어거스틴의 고백처럼 “행복한 죄책이여!” 라고 외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죄를 미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 예수님이 피 흘려 주셨으니 그 죄악조차도 행복한 것처럼 보인다는 말입니다.

신약교회가 예배하면서 이르게 된 곳은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교회가 있는 곳입니다.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이 누구입니까? 원래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장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장자요, 하나님의 처음 교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면서 “내 아들, 내 장자를 내어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장자가 된 것은 참 이상합니다. 이삭의 첫 아들은 에서였는데 하나님께서는 에서 대신에 거짓말쟁이 야곱을 장자로 삼으시고 그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제는 신약교회가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교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아브라함의 참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이방인들이 참 이스라엘이 되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들의 이름이 하늘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 중에서도 예수님 믿는 이들만이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총회가 됩니다.

신자들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감

신자들이 예배하면서 이르는 하늘에는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공의로 심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도 동일한 심판을 받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받아주십니다.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 바로 다음에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온전하게 될 것이지만 그리스도로 인해 이미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예배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계속해서 들어갑니다. 신자들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되어도 의롭다는 선포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모든 것 중심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하늘나라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새 언약의 중보자입니다. 구약의 모든 언약을 완성하는 새로운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구약의 어떤 언약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참된 복이 되지 못한 것은 그 언약을 위해 중보할 자들의 역할이 충분치 못했기 때문입니다. 왕들도 참된 중보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도 참된 중보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선지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이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신 것은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피를 뿌리셨기 때문입니다. 아벨은 형 가인에게 돌에 맞아 죽었지만 그 피가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자신의 의로움을 받아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피의 호소를 들으시고 가인을 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는 아벨보다 더 나은 피입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는 더 나은 것을 호소합니다. 그 피는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복수해 달라고 호소하는 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을 의롭게 해 달라고 호소하는 피였습니다.

신약의 하나님의 회중, 하나님을 예배하는 총회는 예수님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고난 당하실 때 예수님이 읊조리며 묵상하셨던 시편 22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놀라운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고난 당하시면서 형제들이 생겨나게 될 것, 하나님의 회중이 일어나게 될 것을 내다 보셨습니다. 십자가 지심으로 하나님의 회중들을 만드신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그 회중 가운데로 가셔서 그들의 예배를 이끄십니다. 예수님이 예배의 인도자가 되십니다.

신자는 주일을 중심한 신앙생활을 해야 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일에 어떤 마음으로 교회에 오십니까? 요즘 교회 올 때마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등산하러 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등산복장과 장비를 갖추어서 등산하러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얼마나 가볍고 경쾌해 보입니까? 요즘 한국에서 제일 부흥하는 종교가 있는데 그것은 ‘등산교’입니다. 그들이 예배 드리러 가는 우리들을 초라하고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습니까? 여러분 스스로도 ‘내가 주일마다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나?’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혹 우리 어린 친구들도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까? 친구들 생일파티나, 주일에 있는 좋은 행사 같은 것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이 속상하지는 않습니까? 그런데 신약교회가 주일에 예배드릴 때 가장 높은 산에 오르는 것입니다. 시내산에 오르는 것 정도가 아닙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산에 오르는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때 우리는 지상의 가장 높은 산을 넘어 하늘에까지 이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배할 때 우리는 손으로 만질 수 없는 하늘에까지 이릅니다.

신자는 주일을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한 주 내내 주일을 기다립니다. 우리 교회 모토 중에 하나가 ‘주일을 중심한 신앙생활’입니다. 주일을 중심한 신앙생활은 일주일 내내, 특히 토요일에 주일을 준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구체적인 모습은 토요일에 가족이 식탁에서 주일을 위해 같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일을 통해 하늘의 안식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형제 자매된 성도들과 교제하게 해 주신 것을 기뻐하십시오. 예배에 믿음으로 참여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좋은 복을 누리게 해 주심에 감사하십시오. 시편 16편 3절에서 시인이 이런 사모함을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주일에 성도들을 만난 생각을 하니 너무나 기쁘다는 것입니다. 시편 122편 1절에는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하나님을 예배하러 가는 소리를 듣는 것이 큰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감사와 기쁨과 소망으로 주일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주일을 잘 준비한 성도와 가정은 예배하는 자리가 이 세상 그 어떤 자리보다 귀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하는 자리를 떠나 다른 곳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자들이 모여 주의 거룩한 몸을 이루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서는 것이 이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천상의 영광스러운 표현들이 바로 이 땅에서 드리는 예배를 통해 사실이 되고, 실제가 됩니다. 그래서 자기가 너무나 하고 싶은 일이 주일에만 열리기에 평생 그 일을 할 수 없어도 아쉬움이 없습니다. 주일마다 가장 높은 산을 넘어 하늘에까지 오르는데 이런 경험을 마다하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신자는 예배를 통해 천상의 실제를 누리게 됨

예배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예배 환경도 참 중요한데, 이 예배당에 시선을 끌만한 것이 있습니까? 예배당에 들어오기만 해도 경건한 분위기를 불러 일으키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습니까? 이 예배당을 둘러 보십시오. 이 예배당 안에 무엇이 있습니까? 무슨 특별한 기구가 있습니까? 특별한 것이라곤 이 앞에 달랑 있는 두 개의 단입니다. 설교단과 성찬상입니다. 하지만 이 곳은 성전과 비교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이 곳이 하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이 곳에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이 곳에는 성전에 있던 거룩한 기구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없는 것이 더 풍성하고, 더 위대한 것을 보여줍니다.

특히 예배당에는 성전에 있던 휘장이 없습니다. 예배당에는 성소와 바깥뜰을 나누는 휘장,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휘장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시므로 그 휘장을 찢어 주셨습니다. 이제 예배 드리는 이 곳은 열린 휘장을 통해, 그리스도의 찢어진 몸을 통과해서 하늘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배드릴 때 우리는 하늘 성전에서 섬기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이릅니다. 신자들은 하늘의 구름을 뚫고 하늘 보좌에까지 나아갑니다. 에베소서 2장 6절에서 말씀합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고, 그리스도와 함께 승천했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았다고 말입니다. 어떻게 이게 사실일 수 있겠습니까? 미래에 일어날 일을 이미 발생한 것처럼 표현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신자들이 주일에 같이 모일 때 이 영광스러운 선포가 사실이 됩니다.

신자들이 주일에 같이 모여 예배할 때 삼위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만나 주십니다. 예배 때 신자는 천상의 실체를 누립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신중하게 기획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예배순서조차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신앙고백이 가장 잘 반영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오직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예배가 됩니다. 예배는 훌륭한 문화행사가 아닙니다. 예배는 전도집회도 아닙니다. 예배는 우선적으로 하나님과 자기 백성의 만남입니다.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하나님은 뒷전이고 사람들이 기분 내고,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되어간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얼마나 열광적으로 예배를 드렸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배에 참석한 신자들이 얼마만큼 은혜를 받았느냐가 예배의 일차적인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삼위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셔야 합니다.

주일에 신자들이 주의 거룩한 몸을 이루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이 공예배야말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만나주시는 주된 방편입니다. 교회는 무엇보다 예배에 집중해야 합니다. 예배 안에 직분봉사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교회의 신앙고백이 분명하게 고백되고, 하나님의 복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예배에 목숨을 걸라’는 자극적인 구호가 있기는 하지만 주일에 드리는 공예배가 정말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공적으로 자기 백성을 만나주시는 길을 주셨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사사로이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을 우습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예배의 의미를 바르게 알고, 예배의 요소와 순서를 제대로 알고 하나님을 풍성히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불러 주심을 감사합니다. 온갖 우상을 섬기던 우리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으니 하나님의 크신 은혜일 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일에 신자들이 모여 예배할 때 하늘이 우리 가운데 펼쳐지고 그 하늘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땅을 살고, 이 땅에 매일 수 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열린 하늘을 보여 주시고, 그 하늘의 실체를 예배를 통해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지하여, 성령의 자유롭게 하는 능력에 의지하여 하늘 아버지께 나아가오니 우리를 만나 주옵소서. 우리가 아무리 인간적인 열정을 쏟아 예배를 드려도 그 예배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음을 압니다. 인간적인 몸부림을 내려놓고 예배를 통해 삼위 하나님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성자의 은덕을 받게 하시고, 성령의 조명을 따르게 하시고, 성부의 크신 사랑을 받게 하옵소서. 삼위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서 이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시고, 이 세상에서 삼위 하나님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도록 하옵소서. 우리에게 주일을 주시고, 예배와 성도의 교제를 주심에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 묵상하고 나누기

1. 예배에 대해 평상시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까?

2.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구약예배의 모습을 설명해 보세요.

3. 신약교회가 이른 곳은 어디입니까?

4. 천상의 실제를 묘사하기 위해 등장시킨 것들이 무엇입니까?

5. 예배당 안에는 어떤 기구들이 있습니까?(성전기구들과 비교해 보세요.)

6. 주일을 중심한 신앙생활이란 어떤 것일까요?

7. 공예배의 중요성을 나누어 봅시다.

어린이를 위한 질문

1. 시내산에 하나님이 내려오셨다, 맞습니까?

2.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배할 때 신자는 하늘에 이른다, 맞습니까?

3. 신자들이 (    )에 같이 모여 (     )할 때 삼위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     )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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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하나님의 임재가 넘쳐나는 예배시작 - 예배 해설 05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목사 ■ 시 124:1-8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2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3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
    Date2014.11.20 By개혁정론 Views2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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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예배 직전에 있는 일들 - 예배 해설 4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목사 ■ 시 22:22–31 22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2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
    Date2014.11.05 By개혁정론 Views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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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예배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 예배 해설 3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목사 ■ 히 12:18-24 18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19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20 이는 짐승이라도 ...
    Date2014.06.30 By개혁정론 Views1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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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품위 있게, 질서 있게 그리고 덕스럽게 - 예배 해설 2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목사 ■ 고전 14:26-33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
    Date2014.06.21 By개혁정론 Views1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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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교회절기] '성령 강림절'을 기념하는 교회

    부제: 구속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공교회적 절기 지키기 염덕균 강도사 마산제일교회 성령 강림절이라고? 제가 ‘성령 강림절’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공교롭게도 현재 섬기고 있는 교회 담임목사(성희찬 목사, 마산제일교회)의 헬라어 강독 시간이었습니다....
    Date2014.06.02 By개혁정론 Views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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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교회절기] 승천주일을 지키자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목사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49문: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오르심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답: 첫째,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언자로서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그의 아버지 앞에서 간구하십니다. 둘째,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 안...
    Date2014.05.31 By개혁정론 Views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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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언약 없이 예배 없다 - 예배 해설 1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목사 예배는 교회의 얼굴이다 예배는 교회의 얼굴이다. 교회는 예배를 통해 온 세상을 향해 교회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교회마다 예배의 요소와 순서를 통해 자신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만났으며, 그 하나님과 어떻게 교제하는지를...
    Date2014.05.17 By개혁정론 Views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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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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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총회 직원 순환보직이 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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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루터 교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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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오직 은혜로
종교개혁의 하나로 묶어주는 힘: 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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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명성교회의 세습을 슬퍼하며
우리는 무엇을 팔고 있는가? (재미...
이신칭의에 대한 고려신학대학원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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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교육원과 출판국을 왜 통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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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여자 직분 문...
심방 참관 소감문
여성안수와 성경해석
주일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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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작은 교회 성도들은 행복한가?
한국 장로제도의 반성과 개혁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유산과 한국...
장로회정치원리에 비추어 본 노회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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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M선교의 내일을 향한 준비 (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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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과 교리개혁: 사도신경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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