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구속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공교회적 절기 지키기
염덕균 강도사
마산제일교회
성령 강림절이라고?
제가 ‘성령 강림절’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공교롭게도 현재 섬기고 있는 교회 담임목사(성희찬 목사, 마산제일교회)의 헬라어 강독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목사님은 신대원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혹시 이 중에 ‘성령강림절’을 기념하여 지키는 교회에 있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볼까요?”
그때 두세 명의 학생만이 손을 들었습니다(손을 든 학생 중에 한 분은 당시에 목사님 교회의 목회자 후보생이었습니다). 저 또한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말에 순간적으로, “혹시 저분은 오순절 성령운동파인가?” 라고 의심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익숙하지 못한 단어였고, 생소한 절기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 현재 섬기는 교회로 이명을 했습니다. 청년에서 전도사로, 그리고 현재 강도사로서 만 5년간 교회가 성령 강림절을 지키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리고 지금 지난 5년을 회고하는 가운데 ‘성령 강림절’을 기념하며 든 생각에 대해 짧은 글이지만 나누고자 합니다.
성령 강림절을 지키는 모습들
저희 교회는 성령 강림절을 크게 세 가지 방법으로 지킵니다. 첫 번째는 전교인을 대상으로 한 ‘성경 암송 대회’, 두 번째는 전교인을 교육 부서를 위주로 한 ‘글짓기 및 사생대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교의 동역’입니다.
‘암송 대회’는 약 5-6주 전부터 주보에 광고를 하여 신청 및 준비할 시간을 줍니다. 성령 강림절이 다가올수록 교회 건물 여기저기서 준비하는 모습들이 보이는데 참 아름답고 귀합니다. 그리고 성령 강림절 당일 주일 오후예배 후, 2부 순서에 발표회를 가집니다. 자칫하면 ‘암송 대회’가 진부하고 재미가 없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다양한 준비와 방법으로 암송하는 모습에 전 교인이 즐겁게 화합하는 시간으로 보냅니다.
‘글짓기 및 사생대회’는 암송대회와 마찬가지로 약 5-6주 전부터 교회 전체 주보 광고에 냅니다. 또한 각 교육부서별로도 따로 광고를 하고 자체적인 행사를 진행합니다. 필자가 담당하고 있는 유년부의 경우에는 성령 강림절 당일 반별 그림 그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칫 ‘그림 그리는 날’로 기억될 우려도 들지만 ‘성령 강림절’ 자체가 생소한 한국교회 내에 아이들이 ‘성령 강림절’을 기쁘고 즐거운 날로 기억한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설교의 동역’은 성령 강림절 2-3주 전부터 모든 교역자들이 수요 기도회와 주일 오후 예배 시간에 성령님과 관련한 본문과 주제로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성령 강림절’을 단회적인 행사로 끝나지 않고, 교인들로 하여금 ‘성탄절’과 ‘부활절’과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인식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성령 강림절 기념이 주는 유익
위와 같은 방법으로 성령 강림절을 기념하여 지켜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성령 강림절을 지키면서 지난 5년간 교회가 누린 유익들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1. ‘절기’와 ‘기념주일’의 구분(구속사적 절기 이해)
성령 강림절을 기념하여 지키는 것의 첫 번째 유익은, 교인들이 ‘기념주일’과 ‘절기’를 구별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한국교회가 지키는 기념주일은 한국의 문화적 상황과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거나 받아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공교회성을 지니기보다는 한국교회만의 토속적 기념주일로 그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절기는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절기’를 지키는 것은 성경적이며, 동시에 공교회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신약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절기는 주일입니다. 하지만 기념주일에 ‘기념’이라는 의미가 더 강조되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실 가운데서, ‘구속사적 맥락’ 속에 들어 있는 절기를 기념하여 지키는 것은 한국교회에 참으로 필요하고 유익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는 유독 5월에 ‘기념주일’과 그에 수반된 행사들이 많습니다. (‘어린이 주일’, ‘어버이 주일’, ‘스승의 주일’ 등.) 그리고 그 어간에 ‘승천절’과 ‘성령강림절’이 있습니다. 이미 5월에 여러 가지 행사를 치룬 교인들 입장에서는 또 연속해서 무엇인가를 기념하고 행사를 치루는 것에 식상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리고 간혹 주일학교 아이들의 경우에도 “강도사님, 5월에는 왜 이렇게 행사가 많아요?” 라고 질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식상함과 피로감을 느끼는 성도들과 학생들에게 기념주일과 절기를 구별시켜 줌으로써 자연스럽게 성경이 말하는 ‘구속사’의 의미와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2. 편향된 십자가 중심주의를 벗어남(균형 잡힌 구속사 이해)
‘성령 강림절’을 기념하여 지키는 것의 두 번째 유익은 교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구속사역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를 돕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사역은 ‘탄생’(성탄절), ‘고난’(사순절), ‘죽음’(정사일), ‘부활’(부활절)에서 뿐만 아니라 ‘승천’(승천절)하시어 ‘성령님을 보내어 주시는 것’까지도 포함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구속 사역 중에서 ‘성탄절’과 ‘고난주간’은 크게 기념하여 지키는 반면에 ‘승천절’과 ‘성령 강림절’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성령 강림절’에 대한 이러한 빈약한 이해는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편향된 이해를 가져옵니다. ‘고난과 대속’은 예수님의 사역인 반면, ‘성령님의 강림’은 성령님의 독자적 사역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삼위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편향된 이해를 갖게 만듭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성령 강림절을 기념하여 지키는 것은 성령님의 강림하신 사건이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이라는 것과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지하도록 돕습니다. 또한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의 구속사역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를 도울 수 있습니다.
3. 말씀과 함께 임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설교 동역을 통한 균형 잡힌 성령론)
성령 강림절을 기념하여 지키는 것의 세 번째 유익은, 교인들로 하여금 성령님의 사역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를 돕는다는 것입니다. 이미 앞에서 언급했지만, 성령 강림절에 대한 구속사적 이해 없이는, 성령 강림을 성령님의 단독사역으로 이해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령 강림절과 성령론에 대한 독단적인 신학과 이해를 초래할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성령 강림절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속사의 흐름 가운데서 그것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요구되는 것이 바로 ‘설교의 동역’입니다. 저희 교회는 성령 강림절을 앞두고, 2-3주 전부터 수요 기도회와 주일 오후 예배 시간에, 교역자들이 돌아가면서 성령님과 관련된 본문으로 설교를 합니다. 이를 통해 단순히 기념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로 하여금 성령님에 대한 성경적 이해와 함께 성령 강림절을 준비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결론 - 성령 강림절을 통한 공교회성 회복
사실 저희 교회도 성령 강림절을 기념하여 지킨 역사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아직 걸음마 수준이고 시행착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짧은 역사 가운데서도 작은 열매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주일학교 아이들의 입에서 “나는 외웠는데 아빠는 아직 (성령 강림절) 요절 다 안 외웠어요!”라는 말이 나오는가 하면,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시와 그림을 제출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교회당 한쪽에서 70세 넘은 어르신들의 암송하는 소리가 들리고, 교회 게시판에는 성령 강림절과 관련한 주일학교 아이들의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조촐하고 소박해 보일지 모르지만 참 아름답고 귀한 모습입니다.
바라기는 앞으로 성령 강림절을 기념하여 지키는 교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성령 강림절을 기념하고 지키는 방법과 노하우를 서로 많이 나누고,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인위적으로 만든 기념주일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절기를 함께 지켜 나가는 가운데 “공교회성”을 더욱 돈독하고 바르게 지키고 회복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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