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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목사

■ 고전 14:26-33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30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 롬 13:11-14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예배는 교회의 얼굴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오늘 우리가 읽었던 마지막 구절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어디에 적용하면 좋겠습니까? 이 말씀은 예배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 그 분의 모습에 걸맞게 드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무질서가 아니라 화평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방언의 은사를 포함하여 은사가 풍성하던 고린도 교회에 이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주일에 드리는 예배는 교회의 얼굴입니다. 온 세상 가운데 드러나는 교회의 얼굴입니다. 교회가 어떤 곳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 교회의 예배를 보면 됩니다. 교회는 예배를 통해 이 세상에 그 구체적인 모습을 비로소 드러냅니다. 물론 교회건물이 일차적으로 교회의 얼굴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건물도 그 교회의 신학을 담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가려면 아직까지 멀었습니다. 교회건물보다 더 분명하게 교회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배의 의미와 순서를 잘 알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도라면 주일 예배의 순서가 왜 그렇게 짜인 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일에 드리는 예배를 우리는 공예배라고 부릅니다. 영어로 퍼블릭 워십(Public worship)이라고 부릅니다. 사적인 예배가 아니라 공적인 예배라는 말입니다. 공예배는 신자들이 다같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총회로 구성되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시간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들을 만나 주십니다. 우리는 사적으로 비밀스럽게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욕망이 강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공적으로 자기 백성을 만나주시고 공개적으로 말씀하셔서 자신의 말씀이 왜곡되지 않게 모두에게 들려지기를 원하십니다.

첫 번째 공예배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나아간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그 모임을 하나님께서는 ‘총회’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은밀한 방식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자기 백성을 전체적으로 만나주셨습니다. 우리 기독교에는 그 어떤 비밀스러운 집회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기 위해서 비밀스럽게 집회를 하는 것은 기독교의 전통과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비밀스럽게 하나님을 만나려는 시도를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공적으로 자기 백성을 만나주시는 예배시간을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예배를 통해 자기 백성에게 필요한 모든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은혜의 방편이 있는 예배가 되어야 함

예배를 예배되게 하는 요소가 무엇이겠습니까? 공예배가 다른 기타 모임들과 다른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신자들이 열심으로 모이기만 하면 예배가 됩니까? 주일 오전에 신자들이 다같이 모이자고 약속했으니 그 모임이 예배가 되는 것입니까? 예배가 다른 기타 신자들의 모임과 다른 독특성이 어디에 있습니까? 은혜의 방편이 있을 때에 그 예배가 비로소 공예배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불러주시고 은혜를 베푸셔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만든 것을 가지고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배는 우리의 공로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열립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은혜의 방편이 없는 모임은 예배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은혜의 방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을 통해서 은혜를 베푸십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은혜의 주된 방편은 말씀과 성례입니다. 말씀과 성례가 공히 있을 때에 비로소 공예배가 됩니다. 성례는 세례와 성찬입니다. 세례는 하나님을 믿기로 고백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매주 있기는 힘듭니다. 그렇다면 공예배가 공예배답기 위해서는 말씀과 성찬이 매 주일마다 있어야 합니다. 설교와 성찬이 필수적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성찬을 매주일 시행하지 않으니까 공예배로서 뭔가 모자랍니다. 이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목사의 설교만 있으면 공예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찬이 있어야 그 예배가 진정 예배다운 예배가 됩니다. 성찬이 없는 예배는 뭔가 모자란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약이 없으면 예배도 없음

우리 공예배가 기본적으로 어떤 성격의 예배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언약적인 예배라고 말하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가지시고 찾아오셔서 언약을 맺자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찾아가서 언약을 맺자고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언약을 맺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언약의 한쪽 당사자가 되었습니다. 언약은 주도권의 측면에서 보면 일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계약의 동등한 파트너가 아닙니다. 이것에 대해 기분 나빠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와 주셔서 주도적으로 언약을 맺어 주셨습니다. 얼마나 은혜로운 언약입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더불어 맺으신 모든 언약은 구원의 언약이요, 은혜로운 언약입니다. 그런데 언약을 체결하면서부터는 우리가 언약의 당사자가 되어서 언약의 요구사항 안으로 들어갑니다. 언약의 당사자들이 서로에게 신실할 것을 맹세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언약적인 요구에 신실할 때에 복이 있고, 그것에 신실하지 못할 때에 내리는 저주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언약의 요구, 언약의 복, 언약의 저주라고 부릅니다.

왜 언약 이야기를 합니까?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기본적으로 언약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찾아오셔서 우리를 언약백성으로 삼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하십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만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을 가지고 우리가 드릴 수 없습니다. 아니, 예배는 드리는 것이기 이전에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선 하나님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리는 것이 예배가 아닙니다. 다른 종교들은 신을 감동시키기 위해 온갖 푸닥거리들을 합니다. 모든 종교의식들은 신의 환심을 사기 위한 인간적인 노력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 인생이 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일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반응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제대로 된 반응이 신앙입니다. 반응한다고 하면 우리는 항상 소극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적극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에서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있어서는 우리가 주도하려고 해서는 안되고 하나님께 주도권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주도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환심을 사려고 해서는 안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선심 쓰듯이 많은 선물을 안겨드릴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해서도 안됩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전체적으로 받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교제임

예배는 일방적인 아니라 쌍방적입니다. 언약이 주도권에 있어서는 일방적이지만 체결 이후에는 쌍방성인 것과 같습니다. 예배에 있어서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배에 기여하시는 부분이 있고, 우리가 예배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나아오시는 부분이 있고,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모든 예배순서는 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것을 화살표로 표시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화살표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화살표 말입니다. 그럼 주보를 펴서 주일오전예배순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순서 앞에 화살표를 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예배의 첫 번째 파트입니다. ‘예배부름’은 화살표 방향이 어떻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부릅니다. 아래에서 위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불러야만 하나님께서 비로소 우리 가운데 찾아오시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신을 부르는 초혼 예식이 예배부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불러주셔야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제가 된 후에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는 것을 통해 시작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다”고 외칩니다. 그래서 아래에서 위입니다. ‘축복인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사를 해 오시는 것이기에 위에서 아래, ‘신앙고백’과 ‘경배찬송’은 하나님께 우리의 고백과 찬송을 올려 드리는 것이기에 아래에서 위입니다.

예배의 두 번째 파트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주님의 뜻을 우리에게 알려오시는 것이기에 위에서 아래이고, ‘죄 고백’은 하나님의 뜻을 듣고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하는 것이기에 아래에서 위이고, ‘사죄선언’은 죄 고백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예배인도자를 통해 우리에게 용서의 말씀을 선포해 주시는 것이기에 위에서 아래이고, ‘기도’와 ‘감사찬송’은 용서의 말씀을 들은 교회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것이기에 아래에서 위입니다.

이제 세 번째 파트입니다. ‘성경봉독과 설교’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지금 말씀하시는 것이기에 위에서 아래이고, 설교를 듣고 난 다음 교회가 감사함으로 찬송하기에 ‘아멘송’은 아래에서 위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파트입니다. 예배를 마치는 부분입니다. ‘헌금과 주기도송’은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는 구체적인 행위요 이웃까지 돌아보겠다는 우리의 헌신이기에 아래에서 위이고, ‘강복선언’은 하나님께서 세상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삶 전체를 향해 복을 내려주시는 것이기에 위에서 아래입니다.

예배에는 덕을 세우는 것도 있음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습니다. 예배 마침 부분에 있는 ‘성도의 교제’입니다. 흔히들 광고라고 부르는 순서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그 방향이 어디입니까? 위에서 아래입니까, 아니면 아래에서 위입니까? 위에서 아래도 아니고, 아래에서 위도 아닙니다. 수평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서로 주고받는 것입니다. 이 순서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들어올 수 있습니까? 쉽게 말하면 광고는 예배 전이나 예배 후에 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광고를 성도의 교제라고 명명한 것이 의도적인데요. 예배에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와 성도의 관계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도가 교제하는 것이 예배에서 제외된 것이 아닙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사도바울이 교회들을 향해 여러 번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데살로니가전서에 나옵니다. 사도 베드로도 입맞춤하라고 말하는데 베드로전서에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인사하라는 말이 아니라 예배 때 신자들끼리 거룩한 문안을 하라는 말입니다. 성도의 교제도 예배중의 한 부분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26절 말씀에 보면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배의 문맥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문단이 시작될 때에 ‘너희가 서로 모일 때에’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초대교회 때는 모일 때에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찬송시도 있고, 가르치는 말씀도 있고, 계시도 있고, 방언도 있고, 통역함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다양하고 풍성합니까?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또 다르게는 덕을 세우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모든 은사는 덕을 세우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고, 나를 자랑하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고, 내가 영적인 엘리트라는 것을 확증하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서로를 세우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덕을 세운다고 하는데 원문에서는 덕이라는 말이 없고 그냥 ‘세워준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건축용어입니다. 다른 말로는 ‘개발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를 개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성도를 개발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은사는 다른 성도들을 개발하고 세워주기 위한 것입니다. 은사를 받은 개인의 유익과 그 자신의 영광을 내세우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성도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자기가 받은 은사를 자랑하거나 자신이 특별한 은사를 받았으니 영적인 엘리트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모릅니다.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하니까 어떤 경우에도 인간에게 영광을 돌리면 안됩니다. 하지만 예배는 서로 덕을 세우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향해서만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켜서는 안됩니다. 서로를 보기도 해야 합니다. 예배 때 우리는 서로 덕을 세웁니다. 공예배 때는 모든 직분사역의 의미가 분명하게 실천되는데 이 직분사역도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성도의 교통을 원활히 하기 위함입니다. 직분과 은사가 성도의 교제를 방해한다면 그것을 주신 목적을 가장 크게 위반하는 것입니다. 예배 때 목사, 장로, 집사를 왜 세우셨는지 그 직분들이 왜 필요한지가 다 드러납니다. 그 모든 직분사역과 은사는 성도를 세우고, 성도를 소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한 사람도 고독 속에 홀로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모든 신자들이 다 같이 그리스도와 교통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품위 있고 질서 있게 예배해야 함

고린도전서 14장 33절 말씀에 보면 ‘예배가 무질서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당시에 황홀경 상태에 빠져서 방언하고 예언하는 것들을 지적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화평의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40절 말씀에 보면 이 모든 말씀을 총 요약하기를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품위가 있어야 하고,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게 우리가 드리는 공예배의 모습이어야 하겠고,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러해야 하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의 예배는 품위 있게 보여야 하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품위 있다는 말은 고대세계에서 단순한 관습과 예법을 대변하는 말이었습니다. 영어로 옮기면 스타일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공예배는 스타일리시해야 합니다. 언약에 근거한 분명한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로마서 13장 13절 말씀에 보면 이 표현이 성도의 삶에 적용되는데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라고 말합니다.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예배의 품위가 성도의 단정한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도의 삶은 단정한 삶이어야 하고, 교회의 예배는 품위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예배는 질서가 잘 갖추어져야 합니다. 무질서하면 안됩니다. 예배 요소가 어떤 것이어야 할지를 신중하게 정하고, 예배의 순서까지도 신중하게 정해서 예배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합니다. 은혜스럽기만 하면 어떤 순서든지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예배에는 우리의 신앙고백이 분명하게 담겨 있어야 합니다. 영성에 도움이 된다는 핑계 하에 정체불명의 이교적인 요소들까지 도입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입니다. 성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기 위한 순서를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예배의 순서는 논리적인 흐름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신앙고백적이고 신학적인 흐름이 있어야 합니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된 흐름을 따라 절정을 향해 달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에 4가지 주요한 파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십니다’ 입니다. 

예배에서 우리는 풍성한 자유를 누림

우리의 예배순서가 항상 고정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의 요소와 순서에는 많은 자유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배요소와 순서는 이래야 한다고 율법적으로 정해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약시대의 제사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회당예배와 초대교회의 예배, 그리고 교회사 전체로부터 중요한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얼마든지 창의적인 예배모습을 취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는 가장 긍정적인 의미에서 진보적이어야 합니다. 예배가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우리는 가장 긍정적인 의미에서 보수적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잘 반영한 예배여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개혁의 예배는 언약적이기에 품위 있고 질서 있게 드리되 하나님과 그 백성이 자유롭게 교제를 즐깁니다. 예배를 통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가장 크게 영광을 받으실지, 어떻게 하면 서로를 가장 크게 세우는 것이 될지 고민해야 하겠습니다. 예배는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고 개혁될 수 있습니다. 품위 있게, 질서 있게 또한 덕스럽게 예배해야 하겠습니다. 교회의 얼굴인 우리의 언약 예배가 이렇게 아름다운 예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게 되어야 하겠습니다. 큰 바위 얼굴 이야기처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받으면 우리의 삶도 마땅히 품위 있고, 질서 있고, 덕스럽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를 부르셔서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 주시고,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복을 베풀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공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모든 신령한 은혜를 믿음으로 받을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아오시는 그 모든 모습들을 믿음으로 받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또한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에 대해 우리가 감사함으로 모든 것을 주님께 올려 드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다른 이들은 어떻게 되었든지 나 자신만큼은 은혜 받고 돌아가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한 몸이 되어서 서로를 세워주며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게 하여 주옵소서. 성도를 세워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사와 직분사역이 예배를 통해 아름답게 드러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예배가 품위 있게, 질서 있게, 그리고 덕스럽게 드려져서 이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증거가 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또한 우리의 삶도 이런 증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예배를 인도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 묵상하고 나누기

1. 공예배를 다른 각종 모임과 다르게 만드는 요소가 무엇입니까?
2. 우리의 공예배는 언약적인 예배라는 의미를 말해 보세요.
3. 예배의 모든 순서에서 하나님 주도성과 신자들의 반응을 나누어 보세요.
4. 예배에서 성도들이 서로에게 덕을 세우는 요소가 포함될 수 있습니까?
5. 우리 교회의 예배순서를 설명해 보세요.
6. 예배 요소와 순서를 정할 때의 구속요건과 자유로움을 말해 보세요.
7. ‘품위 있게, 질서 있게 그리고 덕스럽게’를 신앙생활에도 적용해 봅시다.

어린이를 위한 질문

1. 예배보다 개인적인 경건이 더 중요하다, 맞습니까? 
2.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먼저다, 맞습니까?
3. 개혁의 예배는 (    )이기에 품위 있고 질서 있게 드리되 하나님과 그 백성이 자유롭게 (    )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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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14.05.31 By개혁정론 Views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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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언약 없이 예배 없다 - 예배 해설 1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목사 예배는 교회의 얼굴이다 예배는 교회의 얼굴이다. 교회는 예배를 통해 온 세상을 향해 교회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교회마다 예배의 요소와 순서를 통해 자신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만났으며, 그 하나님과 어떻게 교제하는지를...
    Date2014.05.17 By개혁정론 Views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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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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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목사도 노회원이다
[사설] 거짓 증거를 경계하자
[사설] 순장 총회와의 교류를 적극 ...
[사설] 제67회 고신총회에 바란다
[사설] 대선에서 누구를 뽑을 것인가?
[사설] 총회 직원 순환보직이 악용...
[사설] 작금의 국정농단사태, 어떻...
[사설] 역사의 교훈을 경시해서는 ...
[사설] SFC의 자발성은 최대한 보호... 1
칼럼
[해외칼럼] 찬송가 뒤에 있는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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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루터 교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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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거울 뉴런 발견자와 르네 지라르의 ...
[기고] 명성교회의 세습을 슬퍼하며
우리는 무엇을 팔고 있는가?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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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루터’를 보고 (성영은 교수) 1
“총회교육원과 출판국을 왜 통합하...
REFO500 헤르만 셀더르하위스 교수 ...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여자 직분 문...
심방 참관 소감문
여성안수와 성경해석
논문
[논문] 작은 교회 성도들은 행복한가?
한국 장로제도의 반성과 개혁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유산과 한국...
장로회정치원리에 비추어 본 노회 실태
고령화 시대, 선교현장을 섬기는 교...
개혁주의 교회설립에 대한 새로운 비전
KPM선교의 내일을 향한 준비 (김종...
여성 목사 안수에 관하여
종교개혁과 교리개혁: 사도신경을 ...
수도권의 교회연합 가능성 모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