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목사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49문: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오르심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답:
첫째,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언자로서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그의 아버지 앞에서 간구하십니다.
둘째,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있으며, 이것은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지체인 우리를 그에게로 이끌어 올리실 것에 대한 확실한 보증입니다.
셋째, 그리스도는 그 보증으로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며,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위의 것을 구하고 땅의 것을 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40일째에 승천하셨는데 올해 교회력으로는 5월 29일이 승천절이다. 우리가 자세히 계산하지 않고서는 이 승천절을 알기가 힘들다. 유럽에서는 많은 나라들이 이 승천절을 공휴일로 지정해서 지킨다. 이 날에 교인들이 교회에 모여서 승천예배를 드린다. 너무나 기쁜 날이기 때문이다. 승천절이 왜 기쁜 날인가? 예수님이 떠나버리신 날인데 왜 기쁘다는 것인가? 왜 이 날을 공휴일로까지 지정했을까? 공휴일을 하루라도 더 늘리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했을까? 예수님이 승천해 버렸으니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안 믿는 사람들이 예수라는 인물이 허구에 불과하다고 해도 별로 할 말이 없다. 성경 외에는 예수님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역사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승천해 버리셨기 때문에 실은 예수님의 부활조차도 증명할 수 없게 되었다. 예수님이 죽어 버리신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너무나 오해가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남겨 놓으신 채 예수님이 사라져 버리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에 올라가신 것은 이 땅에 오실 때 입으셨던 몸을 벗어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상에서의 할 일을 다 마쳤으니 지긋지긋한 이 땅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가 아니다. 하늘나라에 올라가셔서 마무리하셔야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던 예수님이신데, 도대체 아직까지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 있다니 무슨 말인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 땅에 계속해서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계속해서 계시면서 전 세계를 다니며 부흥회를 인도하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상상한다. 아마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까? 신학교도, 목사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늘나라로 올라가셨다.
예수님이 들어가신 곳은 어디일까? ‘바로 그 하늘’(히 9:24)이다. 예수님이 올라가신 하늘은 손으로 만든 성소가 아닌 바로 그 하늘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지상에서 드려진 모든 제사가 도달하는 곳이 바로 이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드려지는 모든 제사는 바로 이 하늘성소에 도달해야 한다. 지상의 성소는 그림자이다. 이 성소는 하늘의 성소를 본따서 만든 것이다. 실제로 죄가 씻어졌다고 선언되는 곳은 지상의 성소가 아니라 하늘의 성소이다. 지상의 성소에서 드리는 제사는 하늘성소에 올라간다. 이 하늘성소에서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으셔야 화목이 이루어진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셔서 바로 이 하늘성소에 들어가셨다. 예수님은 하늘성소에 들어가셔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다.
예수님이 하늘에 올라가신 이유는 하늘성소에 들어가사 단번에 드리신 자신의 상한 몸을 하나님께 보여드리기 위함이다. 이 과정이 남아 있었다. 이것은 이 땅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자신의 상한 몸을 보여드리기 위해 승천하셨다. 바로 이 일을 하기 위해 이 땅을 떠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확인하시고 하나님께서 만족하셨다는 증거가 있는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사역이 완성되었다고 승인하셨다는 증거가 있는가? 그것이 바로 오순절에 성령님이 오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완성되었다고 승인하셨기 때문에 성령님을 보내실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요청을 받아들이시고 이 땅에 성령님을 보내셨다.
예수님이 지상에서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신 적이 있는가? 없다. 예수님이 성전에 몇 번 들어가신 적이 있다. 성전에서 가르치기도 하셨고,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쫓기도 하셨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다 성전 마당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예수님은 제사장이 아니었기에 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 하물며 지성소에는 얼씬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하늘보좌에 직접 들어가셨다. 예수님은 직접 하늘성소에 들어가셔서 희생제물이 되신 자신의 몸을 나타내 보이셨다. 예수님이 희생제물이 되신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보여 드리신 날이 바로 승천일이다. 성탄절만큼이나 중요한 절기가 승천절이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시작된 몸의 역사가 절정에 이른 절기가 승천절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몸을 가지고 하늘에 오르셨다. 몸을 버리고 떠나신 것이 아니다. 몸을 가지고 가셨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늘 상한 몸을 보이고 계신다. 예수님은 당신의 몸으로 이루신 구속사역을 하나님께 늘 확인시켜 드리고 계신다.
몸이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몸만 좀 따라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몸이 문제이다. 몸이 너무나 쉽게 피곤해지고 지친다. 몸이 너무나 쉽게 질병에 노출되고,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기뻐하자.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처럼 변화시키실 것에 대한 보증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하늘에 올라가 계신다. 너무나 쉽게 연약해지고 질병에 걸리고 죄악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의 몸조차도 최종적인 영광을 받고 구원받을 것이 담보되어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께서는 에베소서 2장에서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도 우리도 같이 승천했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우리는 주중인 승천일에 모여서 예배 드리기 힘드니 승천절이 지난 주일을 승천주일로 지키면 좋겠다. 왜 굳이 또 하나의 기념주일을 지키자고 하는 것일까? 이 주일은 다른 기념주일과 달리 구속역사의 가장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부활과 성령강림을 이어주는 것이 바로 승천이다. 승천을 잊고 지나가는 것은 교회로서 너무나 큰 손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기뻐하자. 그리스도의 떠남을 크게(?) 기뻐하자. 우리를 위해 하늘에서 일하는 몸이 있다. 하나님께 늘 보여지는 몸이 있다.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 몸의 구속과 영광이 담보되었다. 얼마나 놀라운 위로인가? 마지막 날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같이 영광을 누릴 것이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육체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보내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육체의 온갖 질고와 고통을 다 당하시고 그 몸이 죽으셨고, 그 몸이 부활하셨고, 그 몸이 하늘나라에 올라가셨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49문에서 답하고 있듯이 이제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 안에 하늘에 있음을 감사합니다.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하늘에 오르셨으니 그의 지체인 우리를 주님께로 이끌어 올리실 것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 주어졌음을 믿고 감사합니다. 어느 누가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몸인 교회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상한 몸을 날마다 보시기에 우리의 몸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 우리의 몸도 거룩한 주님의 몸처럼 변화될 날을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저희들은 어리석어 우리의 육체를 누추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 육체를 자랑하는 인생들입니다. 우리 인생은 육체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형상됨을 드러낼 수 있음을 알게 하셔서 몸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저희들이 되도록 하옵소서. 우리와 같은 몸을 입은 채 하늘나라에 오르셔서 늘 하나님께 몸을 보이고 계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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