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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우 목사
고신대학교 교수
개혁주의학술원 책임연구원

지금부터 497년 전, 1517년 10월 31일, 중세 로마교의 축일인 ‘모든 성인의 날’ 하루 전날, 독일 수도원의 수도사요 사제요 대학교수인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성 교회 문에 95개 조항으로 된 면죄부 반박문을 붙였는데, 그 사건이 종교개혁을 일으킨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사건이 일어난 10월 31일을 종교개혁 기념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루터는 이것이 역사를 뒤바꾸는 엄청난 사건, 즉 종교개혁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물랐습니다. 그는 그와 같은 개혁을 전혀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95개조 반박문을 붙일 때 루터의 의도는 ‘교회를 개혁해보자’는 것이 아니라, 당시 만연된 면죄부 판매가 성경적인 가르침인가 아닌가를 가려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로마교황청에서 파견된 특사 텟첼이 면죄부를 팔기 위해 전 유럽을 순회하며 설교를 했는데, 루터는 그가 비텐베르크 근교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면죄부 판매가 성경적으로 정당한 것인지 공개토론에 붙여 시시비비를 가려보자는 의도로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던 것입니다.

‘면죄부’란 말 그대로 죄를 면제해주는 사면증서라는 뜻입니다. 면죄부는 싼 것에서부터 비싼 것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양했습니다. 죽은 부모, 형제, 자매, 친인척을 위한 면죄부, 자기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면제받을 수 있는 면죄부 등. 지금 우리의 눈에는 그런 면죄부를 팔고 산다는 것이 참으로 황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중세 신자들에게는 결코 황당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10년 뒤에 서울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입학증을 국가에서 대통령이나 교육부장관의 이름으로 판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사지 않을 부모가 있겠습니까?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기를 원하는 부모는 아마도 대부분 살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 자녀가 실력으로 당당히 서울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하는 부모라 할지라도 아마 그 입학증에 관심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의 지상대리자인 교황이 파견한 특사가 와서 지금 자신의 돌아가신 부모가 천국행이냐 지옥행이냐 하는 것이 그 종이에 달려 있다고 설교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순진한 신자들이 믿고 사지 않겠습니까!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것 자체가 대단한 사건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흔히 벌어지는 관행이었습니다. 한 신학 교수가 신학적인 의문이 생겼을 때 그 의문을 토론에 붙여 답을 얻고자 하는, 당시 일반화되어 있던 습관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예기치 않게 종교개혁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종교개혁 연구가들은 종교개혁을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돌발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합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학자로 루터연구의 세계적인 대가인 헤이코 오버르만은 루터와 루터의 종교개혁을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루터는 자신이 개혁가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았으며, 그의 운동을 종교개혁이라 부른 적도 없었다. 개혁이란 하나님의 궁극적인 개입이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하지 않았으며 할 수도 없었다.” 오버르만은 종교개혁을 “하나님의 궁극적인 개입”이라고 결론 내립니다. 즉 종교개혁이란 마르틴 루터와 같은 인간에 의해 이루어진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와 손에 의해 일어난 하나님 자신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루터 자신도 이 개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파했습니다. “교회는 개혁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개혁은 한 사람, 즉 교황의 일이 아니다. 또 많은 사람들, 즉 추기경들의 일도 아니다... 반대로 개혁은 기독교 세계 전체의 일이다. 그렇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역이다.” 교회의 개혁, 신앙의 개혁이었던 종교개혁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개혁이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의 개입 없이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루터에 의해 발생한 종교개혁의 핵심적인 내용은 로마서 1장 17절에 나오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말씀입니다. 사실 루터는 “선행으로 구원 받는다!” 하는 중세 신앙에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랄 때부터 “구원이란 자신이 쌓은 덕에 의해 좌우된다”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수도사의 신분으로 로마에 방문했을 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의 부모를 위해 면죄부를 사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그 때 루터는 면죄부를 구입하는 것이 구원에 필요한 덕을 쌓는 수단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루터가 수도사가 된 것도 고향인 만스펠트에서 자신이 공부하던 에르푸르트 대학으로 돌아가는 길에 천둥번개가 그를 덮쳤을 때, 공포에 질려 “성 안나여, 저를 도와주소서. 제가 수도사가 되겠나이다!” 하고 외쳤던 자신의 맹세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루터는 자신의 맹세를 지키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하나님의 진노의 날벼락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시 대학생, 그것도 가장 화려한 출세를 보장하는 법대생의 길을 포기하고 세상과 등진 수도사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당시 가장 엄격하다고 소문난 에르푸르트에 있던 어거스틴 수도원의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루터는 혹 덜 엄격한 수도원에 들어갔다가 자신의 마음이 변할까봐 염려스러웠기 때문에 가장 엄격한 수도원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거기서 수도사로서 자신의 덕을 쌓기 위해 수도원에서 누구보다 엄격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루터는 수도사였지만, 학문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여 1512년에 대학에서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인 신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513년부터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시편을 강의했습니다. 그리고 시편 강의가 끝난 1515년부터는 로마서를 강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서를 강의하기 전까지만 해도 루터는 로마서 1장 17절 말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말씀을 대할 때마다, ‘믿음’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하나님의 의’와 ‘의인’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 루터는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의로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의를 획득하는 의인이 되기 위해 수도사로서 쌓을 수 있는 선행이 있다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루터는 온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철야기도도 하고, 일주일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는 금식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에는 ‘나도 이제 의인이 되었구나!’하는 만족감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만족감은커녕 불안한 마음만 점점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얻기 위해 그렇게 수고하고 노력했는데, 왜 내게는 만족감이 없는 것일까?’ ‘얼마나 더 고행을 감내하고 덕을 쌓아야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루터는 자신을 괴롭히는 ‘하나님의 의’가 한없이 미웠습니다. ‘의’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의롭게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루터는 결코 ‘사랑의 하나님’으로 느낄 수 없었습니다. 무서운 진노와 형벌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으로만 느껴졌습니다.

그런 영적인 갈등과 번민 가운데 그는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로마서를 강의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리라’는 말씀을 통해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서 강의를 끝낸 1516년부터는 갈라디아서를 강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갈라디아서 강의를 하다가 드디어 갈라디아서 2장 15절에서 21절을 접했을 때,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생각한 믿음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의 의를 획득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런 믿음을 가진 자가 ‘의인’으로 불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에서는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심지어 “율법을 향해 죽었다!”라고 선언합니다. 

드디어 루터는 의인이 되는 길은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루터는 지금까지 살기 위해 발버둥치며 살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는 자신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손에 달린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의 의로운 행동이 믿음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하나님의 의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후에 루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다정한 나의 형제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배우시오. 당신 자신에게 절망하면서 그분에게 기도하기를 배우시오. 그리고 이렇게 말하시오. ‘주 예수여, 당신은 나의 의이십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죄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아니신 것을 떠맡으시고, 내가 아닌 것을 내게 주셨습니다!’ 하고 말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의를 나의 의로 만드셨고 나의 죄를 자신의 죄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만일 그분이 나의 죄를 자신의 죄로 만드셨다면 나는 이미 죄가 없으며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성도들은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입니다. 그들이 의인인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의 의가 그들을 덮고 있고 그들에게 씌워졌지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죄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율법을 완수하지 못하였으며 여전히 자기를 주장하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의사의 돌봄이 필요한 환자와 같습니다. 그들은 사실상 병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 중에서 건강합니다. 그들은 건강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미 치료되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가장 나쁜 일은 그들이 건강하다고 스스로 믿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때 그들은 보다 나쁜 상태로 병이 악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한 분만이 나의 의이시라는 사실을 믿는 것,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우리 죄의 질병을 고쳐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 이것이 종교개혁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오직 그리스도 한분만 의지할 것을 종용합니다. 즉 ‘그리스도는 우리의 전부’라는 사실을 믿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죄인의 칭의 뿐만 아니라 성화도 역시 오직 그리스도 한 분 때문에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인생 가운데 자랑할 것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 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언하는 것이 곧 종교개혁의 외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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