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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맹세는 가능한가?

-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01-102문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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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원하 목

산성교회 담임목사

고신총회 인재풀 운영위원회 전문위원

   


제3계명의 의미

 

3계명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명령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의 태도를 가르쳐준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로서 그분의 인격과 모든 속성을 대변한다.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히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그래서 주기도문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문구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영원히 높여야 하며 그분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게 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분의 이름을 높이는 자들에게 큰 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사탄의 사주를 받아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며 그분의 이름을 모독하고 저주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나 불필요한 맹세를 하고 그분의 이름을 가지고 욕설을 만들거나 농담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거나 저주하는 자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심히 진노하신다.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예수님은 이와 유사하게 다음의 말씀을 주셨다.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3:29). 하나님은 그분의 이름을 저주하는 자들을 다음과 같이 처리하라고 명령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그의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담당할 것이요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24:15-16).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일을 극히 주의해야 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들에 맞서서 싸워야 하고, 침묵이나 방관으로 그들에게 동조하지 말아야 한다. 실로 이 문제에 관한 한 어떠한 양보나 타협도 있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아예 부르지 말아야 하며 그분의 이름으로 어떠한 맹세도 하지 말아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 그렇다고 대답하는 자들은 마태복음 5:30-37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든다. 그러나 우리가 이 구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해한다면 그런 대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마태복음 5:33-37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마태복음 5:33-37 해석

 

예수님은 맹세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5:33-37). 여기서 예수님은 맹세를 아예 하지 말라고 하시는가? 아니라면 여기서 그분은 과연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마태복음 5:21-48은 일반적으로 반제 단락’(antithesis section)이라고 불린다. 이 단락에서 예수님은 살인, 간음, 이혼, 맹세, 복수,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여기서 예수님은 당시의 유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서 잘못 해석되고 적용되었던 율법조항들을 바르게 해석해 주신다. 예수님은 옛 사람에게 말한 바 .... 너희가 들었으나”(21, 27, 33, 38, 43)라는 어구를 반복해서 사용하시는데, 이것은 구약을 부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구약에 대한 유대인들의 피상적이고 왜곡된 해석을 고쳐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어구를 자주 사용하시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율법의 의미를 원래의 의미와 다르게 해석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율법을 만드시고 수여해신 율법의 주인으로서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먼저, 예수님은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라고 말씀하신다(33). 이 말씀은 맹세에 대한 구약의 가르침들의 종합이다(참고. 19:12; 30:2; 23:21-23; 8:17). 구약은 맹세를 중요하게 여기며 맹세한 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민수기 30:2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라고 권면한다. 그리고 시편 15:4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라고 언급한다. 참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서 지키지 않는 것은 매우 심각한 범죄(신성모독죄)이며, 이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큰 진노를 살 수 있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신다(34a). 필시 연약한 인간들에게 맹세는 자기주장의 도구로 사용된다. 맹세에는 평소 자신의 말에 진실성이 없다는 암시가 들어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믿어달라고 힘주어 말할 때 맹세를 사용한다. 이에 예수님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이를 강조하시기 위해, 하늘로도, 땅으로도, 예루살렘으로도, 자신의 머리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다(34b-36). 그리고는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라고만 하라 하시는데(37),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잡하거나 모호하게 말하지 말아야 하며, 단순하고 분명하고 정직하게 말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맹세를 금하신 뜻

 

본문을 피상적으로 읽으면 예수님이 맹세를 아예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이 된다. 그렇게 읽으면 예수님의 말씀은 맹세를 허용하는(그러나 신중히 하라는) 구약의 명령과 충돌하게 된다. 예를 들어, 구약에는 이런 명령이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6: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라”(10:20). 그렇지만 예수님은 마태복음 5:17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구약의 맹세 명령을 금하거나 폐하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함부로 맹세하며, 맹세한 것을 지키지도 않는 것을 경고하시면서 주신 말씀이다. 유대인들은 살인, 간음, 이혼, 맹세, 복수, 사랑 등에 대하여 피상적이고 왜곡된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율법을 교묘하게 비틀어서 자신들의 형편에 맞추었으며 결국 자신들이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본 일반인들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예수님은 아직 영적으로 미숙한 자들을 향하여 아예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중세시대에 재세례파 사람들은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적용하여 어떤 맹세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로마천주교인들이 수많은 성인들과 피조물들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을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그들이 맹세를 거부했던 정황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재세례파 교인들은 성경을 잘못 이해하였기 때문에 맹세를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이다. 비록 그들의 관점이 역사적으로 이해할 만한 맥락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즉 로마천주교의 맹세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반작용으로 맹세를 거부한 것이라는 점을 참작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적어도 성경을 문자적으로(문맥과 상황을 무시한 채) 해석함으로 오류를 범한 것은 분명하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은 가능한가?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이에 대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안녕을 위해 신뢰와 진리를 보존하고 증진하는 수단으로써 반드시 필요할 경우에는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자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살아가며 주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이긴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보존해야 하고, 그분의 이름을 거룩하고 존귀하게 사용해야 하며,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그분의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

 

이렇게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것이며, 구약과 신약의 성도들에 의하여 정당하게 사용되었던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을 허용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6: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라”(10:20). 그리고 구약과 신약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정당하게 사용하였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1:9).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고후 1:23).

 

천사나 성인이나 피조물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 없음

 

그렇지만 맹세에 대해서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성인들이나 다른 피조물들로 맹세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맹세에 대해서 비판하시면서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라고 말씀하셨다(23:16). 그리고 그들의 행태에 대해서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라고 지적하였다(23:18).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바리새인들의 마음속을 해부해 보면 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아니라 죽은 우상과 헛된 미신을 따라는 자들이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세월이 흘렀어도 바리새인들의 맹세 인습은 없어지지 않았고 계승되었다. 중세시대에 로마천주교 교인들은 여러 성인들과 천사들의 이름으로 맹세하였다. 그들은 수많은 성인들과 천사들이 각기 독특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하여 맹세의 대상과 목적에 따라 각기 다양한 성인들과 천사들의 이름을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바리새인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정당한 맹세란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인데, 진리의 유일한 참 통달자이신 하나님께서 증거를 친히 제시하실 것이다. 어떠한 천사나 성인이나 피조물이라도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끼어들 수 없다.

 

맹세한 것을 반드시 지켜야 함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고 이웃의 안녕을 도모해야 하겠지만 맹세한 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거짓으로 맹세할 경우에 하나님은 우리를 징벌하실 것이다. 다음의 말씀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네가 서원하지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리라 그러나 네 입으로 말한 것은 그대로 실행하도록 유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23: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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