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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벨기에 신앙고백서 강해 출간을 기념하여 더 워드(The Word)가 2019년 7월 8일에 주최한 특별 신학강좌에서 발표한 것입니다. - 편집자 주


 

 

벨기에 신앙고백서의 구원론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벨기에 신앙고백서 강해』 저자

 

 

https://youtu.be/yrcFd8TA95Q

 

 

필자와 벨기에 신앙고백서

 

   필자는 그동안 사도신경, 십계명, 설교듣기, 예배, 칭의 등의 책에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를 빠지지 않고 다뤘다. 첫 책 『십계명, 언약의 10가지 말씀』에서는 제1, 7, 10, 24, 25, 30, 31, 32, 36조를 다뤘고,[1] 두 번째 책 『사도신경, 12문장에 담긴 기독교 신앙』에서는 제1, 8-11, 13, 18, 19, 26, 27, 28, 37조를,[2] 『설교, 어떻게 들을 것인가?』에서는 제29조와 31조를 언급했고,[3] 『특강 예배모범』에서는 제13조를 언급했고,[4] 『나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있을까?』에서는 제22, 24조를 다뤘다.[5]

   이에서 보듯이 이번에 나온 『벨기에 신앙고백서 강해』(디다스코, 2019)는 오랜 연구의 결과물이다. 부연하면, 벨기에 신앙고백서 자체만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그에 관한 교리 전반에 대한 깊은 연구가 집약된 것이다.

 

 

소외당하는 벨기에 신앙고백서의 구원론

 

   벨기에 신앙고백서 하면, 단연 성경론과 교회론이다.[6] 고신교회 안에서도 오래 전부터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29조에 근거하여 고신교회가 과연 참 교회냐 거짓 교회냐 하는 것을 논하기도 했고, 벨기에 신앙고백서의 교회론에 관한 논의는 많다. 그러나 구원론에 대한 논의는 적다.

   2015년 11월 21일(토) 한국장로교신학회는 잠실중앙교회당에서 “벨직신앙고백서와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제26회 학술발표회를 가졌는데, 여기에서도 성경론(이남규), 교회론(이승구), 종말론(이상웅)은 다뤘지만, 구원론은 다루지 않았다.

   벨기에 신앙고백서 자체도 주목받지 못하지만, 특히 구원론은 더욱 주목받지 못한다.

 

 

벨기에 신앙고백서와 구원론

 

   하지만, 벨기에 신앙고백서의 구원론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매우 잘 설명하고 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에서 구원론은 제22조부터 제24조까지 나온다. 각 조(條)의 제목을 보면,[7] 제22조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우리의 칭의(Our Justification Through Faith in Christ), 제23조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 (Our Righteousness Before God), 제24조는 우리의 성화와 선행(Our Sanctification and Good Works)이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이를 다루기에 앞서 사람의 창조와 타락(14조), 그리스도의 속죄(21조)를 다룬다. 그리고는 22조에서부터 칭의와 성화를 다룬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오늘날 개혁주의 구원론에서 당연히 다루는 부르심(소명), 거듭남(중생) 등을 다루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후크마가 잘 말한 바 있다. 후크마에 따르면, 초기 개혁신학에 있어서 중생이라는 단어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보다 훨씬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예컨대, 칼뱅은 중생을 우리가 전적으로 새롭게 되는 것-돌이킴과 성화를 포함하여-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Institutes, III. iii). 벨기에 신앙고백서 역시 중생을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한다. 대부분의 17세기 신학자들 역시 중생을 돌이킴(conversion)과 동일시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와서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좁은 의미의 중생과 넓은 의미의 중생을 구별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8]

 

 

칭의를 강조하는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의 구원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칭의다. 여기에서 우리는 벨기에 신앙고백서가 작성된 시기가 종교개혁 직후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신칭의 교리가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던 때였기에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칭의론이 구원론의 전부인 것처럼 다루고 있다.

   예컨대, 각 조의 제목을 보면 제22조만이 칭의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23, 24조도 칭의를 다룬다. 특히 제24조의 경우 제목 “우리의 성화와 선행”(Our Sanctification and Good Works)을 보면 ‘성화와 선행’을 다루는 것 같다. 그러나 24조의 본문을 자세히 보면, 24조가 다루고자 하는 핵심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 ‘선행’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는 것에 있고, 신자의 성화와 선행은 의롭게 하는 믿음에 근거하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에 있다.[9]

 

 

칭의를 다루는 조항의 위치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제22조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우리의 칭의”(Our Justification Through Faith in Christ)라는 제목으로 칭의를 다룬다. 제21조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속죄”를 다루고 제20조에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다루는데, 칭의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역에 기초를 두고 있고, 칭의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함께 나타난다는 점에서 매우 논리적인 전개를 따르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10]

 

 

벨기에 신앙고백서가 생각하는 믿음의 성격

 

   칭의의 수단인 믿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경우 지식과 신뢰를 말한다(제21문답).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믿음에 있어서 신뢰에 해당하는 부분을 받아들이고, 나의 것으로 만들고, 그분만을 구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22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우리의 칭의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위대한 신비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우리 마음속에 참된 믿음을 일으켜 주셨음을 믿습니다.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분의 모든 공로와 함께 받아들이고, 그분을 우리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 그분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없거나 아니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믿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사람은 완전한 구원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 반드시 따라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분 외에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엄청난 불경죄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반쪽짜리 구주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칭의에서 믿음이 단지 수단에 불과함을 강조함[11]

 

   벨기에 신앙고백서의 칭의론에 있는 여러 가지 특징 중 하나는 믿음을 강조하면서도 믿음이 수단임을 분명히 지적한다는 사실이다.[12]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22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우리의 칭의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위대한 신비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우리 마음속에 참된 믿음을 일으켜 주셨음을 믿습니다.1)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분의 모든 공로와 함께 받아들이고, 그분을 우리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 그분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2)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없거나 아니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믿음을 통하여through faith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사람은 완전한 구원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 반드시 따라와야 하기 때문입니다.3) 그러므로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분 외에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엄청난 불경죄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반쪽짜리 구주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과 함께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되느니라(롬 3:28)고 분명하게 말합니다.4) 동시에 엄격히 말하자면 믿음 그 자체가 우리를 의롭게 해 준다는 뜻은 아닙니다.5) 왜냐하면 믿음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의로 받아들이는데 사용된 수단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모든 공로로 당신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행하신 많은 거룩한 사역들을 우리에게 전가하셨습니다.6)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의이고, 믿음은 우리가 그분의 모든 혜택들 안에서 그분과 교제하게 하는 수단입니다. 이 혜택들이 우리의 것이 될 때에, 그것들은 우리의 죄를 면해 주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1) 요 16:14; 고전 2:12; 엡 1:17-18   2) 요 14:6; 행 4:12; 갈 2:21   3) 시 32:1; 마 1:21; 눅 1:77; 행 13:38-39; 롬 8:1   4) 롬 3:19-4:8; 10:4-11; 갈 2:16; 빌 3:9; 딛 3:5   5) 고전 4:7   6) 렘 23:6; 마 20:28; 롬 8:33; 고전 1:30-31; 고후 5:21; 요일 4:10

 

 

   이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말이 가지는 오해를 미리 염두에 둔 표현이다. 믿음은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 도구다. 믿음은 칭의의 근거가 아니라 수단이다. 믿음은 그 자체로 의롭다 함을 얻게 하지 않는다. 칭의의 근거는 하나님의 의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의다. ‘믿음 덕분에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덕분에 의롭게 되는 것’이다.[13]

   참고로, 믿음이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대한 강조는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73문답이 잘 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73문: 믿음이 어떻게 죄인을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합니까?

  답: 믿음이 죄인을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하는 것은 믿음에 항상 수반하는 다른 은혜들이나 믿음의 열매인 선행 때문이 아니며,1) 믿음의 은혜나 믿음에서 난 그 어떤 행위가 칭의를 위해서 죄인에게 전가되기 때문도 아닙니다.2) 다만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받아들이고 적용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3)

 

1) 갈 3:11; 롬 3:28   2) 롬 4:5; 10:10   3) 요 1:12; 빌 3:9; 갈 2:16

 

 

   요컨대,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제22조에서 다루고 있는 ‘오직 믿음’ 조차도 오해될 소지가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믿음’은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서 구원은 오직 ‘은혜’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처럼 ‘오직 믿음’(Sola Fide)은 ‘오직 은혜’(Sola Gratia)과 함께 이해될 때 바르게 취급될 수 있다.[14]

 

 

칭의에 있어서 은혜를 강조함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믿음’을 강조할 때, 더불어 ‘오직 은혜’를 중요하게 여겼다.[15] 믿음조차도 하나님의 선물이요, 믿음이 도달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에 있기 때문이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이 사실을 제23조에서 잘 드러낸다.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23조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

 

   우리는 우리의 행복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우리 죄의 용서에 있고, 다윗과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도 그 죄의 용서에 있음을 믿습니다.1) 다윗과 바울은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해 선포합니다(롬 4:6; 시 32:1). 사도는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말합니다(롬 3:24).2)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이 확고한 근거를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하고,3)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손해야 하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하여 어떤 것 혹은 우리의 공로를 주장하지 않고,4)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만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5) 그리스도의 순종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우리의 것이 됩니다.6)

   이 진리는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가도록 확신을 주며, 우리의 양심을 두려움과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기에 충분하므로, 우리로 하여금 두려워 떨면서 숨으려 했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기 자신을 덮으려 했던 우리의 첫 조상 아담의 본보기를 따르지 않게 합니다.7) 정말로 우리가 조금이라도 우리 자신이나 혹은 다른 어떤 피조물들을 의지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타난다면, 우리에게 화가 있을진저! 우리는 소멸될 것입니다.8)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다윗과 함께 “오 여호와여,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시 143:2).

 

1) 요일 2:1   2) 고후 5:18-19; 엡 2:8; 딤전 2:6   3) 시 115:1; 계 7:10-12   4) 고전 4:4; 약 2:10   5) 행 4:12; 히 10:20   6) 롬 4:23-25   7) 창 3:7; 슥 3:11; 히 4:16; 요일 4:17-19   8) 눅 16:15; 빌 3:4-9

 

 

칭의 교리의 유익을 강조함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23조는 칭의 교리의 유익을 다룬다.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어준다. 둘째, 하나님께 가까이 가도록 확신을 준다. 셋째, 우리의 양심을 두려움과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아담처럼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23조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

 

   우리는 우리의 행복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우리 죄의 용서에 있고, 다윗과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도 그 죄의 용서에 있음을 믿습니다.1) 다윗과 바울은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해 선포합니다(롬 4:6; 시 32:1). 사도는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말합니다(롬 3:24).2)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이 확고한 근거를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하고,3)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손해야 하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하여 어떤 것 혹은 우리의 공로를 주장하지 않고,4)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만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5) 그리스도의 순종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우리의 것이 됩니다.6)

   이 진리는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가도록 확신을 주며, 우리의 양심을 두려움과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기에 충분하므로, 우리로 하여금 두려워 떨면서 숨으려 했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기 자신을 덮으려 했던 우리의 첫 조상 아담의 본보기를 따르지 않게 합니다.7) 정말로 우리가 조금이라도 우리 자신이나 혹은 다른 어떤 피조물들을 의지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타난다면, 우리에게 화가 있을진저! 우리는 소멸될 것입니다.8)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다윗과 함께 “오 여호와여,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시 143:2).

 

1) 요일 2:1   2) 고후 5:18-19; 엡 2:8; 딤전 2:6   3) 시 115:1; 계 7:10-12   4) 고전 4:4; 약 2:10   5) 행 4:12; 히 10:20   6) 롬 4:23-25   7) 창 3:7; 슥 3:11; 히 4:16; 요일 4:17-19   8) 눅 16:15; 빌 3:4-9

 

 

믿음에 따라오는 행함을 강조함[16]

 

   참된 믿음 뒤에는 반드시 행함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진정으로 믿는 자는 행함을 무가치하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행함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직 은혜로 주어지는 것인데, 그 믿음은 우리를 의롭다 칭해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나아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는 근원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한다. 믿음을 강조하면 행위가 등한히 되지 않겠느냐는 오해다. 종교개혁 당시에도 그러한 오해가 많았다.[17]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그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제24조에서 성화를 다룬다.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24조 우리의 성화와 선행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과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1) 사람 안에 생기는 이 참된 믿음이 그 사람을 중생하게 하여 새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을 믿습니다.2) 이 참된 믿음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살게 하며 죄의 노예 됨에서 자유롭게 해 줍니다.3) 그러므로 이 의롭게 하는 믿음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선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데 무관심하게 만든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4) 오히려 의롭게 하는 믿음이 없이는 그 누구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5) 다만 자기 사랑이나 정죄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어떤 일을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믿음이 사람 안에서 작용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헛된 믿음에 대해 말하지 않고 성경이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갈 5:6)이라 일컫는 것에 대해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에서 명령하신 행위들을 자신에게 적용시키도록 사람을 권유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뿌리로부터 나온 이 행위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행위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들은 우리의 칭의에 이바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심지어 우리가 어떤 선도 행하기 전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우리는 의롭게 되기 때문입니다.6) 그렇지 않으면 나무 그 자체가 선하지 않고서 그 나무의 열매가 선할 수 없는 것 이상으로 그 행위들이 선한 것일 수 없습니다.7)

   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행하지만, 공로로 삼기 위해서 행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공로로 내세울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행하는 선행에 대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빚지고 있다기보다 차라리 우리가 하나님께 빚지고 있습니다.8) 왜냐하면 우리 안에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빌 2:13). 우리가 다음과 같이 기록된 말씀에 유의합시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행을 보상하신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9)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물들을 주시는 것은 당신의 은혜에 의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선을 행할지라도, 우리는 그 선행에 우리의 구원의 근거를 두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체로 더럽혀지지 않고 마땅히 형벌을 받지 않는 단 하나의 행위도 할 수 없습니다.10) 설령 우리가 한 가지 선행을 보여줄 수 있다하더라도, 한 가지 죄에 대한 기억만으로도 하나님께서 그 선행을 거절하시기에 충분합니다.11) 따라서 우리가 우리 구주의 고난과 죽음의 공로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항상 의심에 가득차서 어떤 확신도 갖지 못한 채 방황하게 될 것이고, 우리의 가련한 양심은 끊임없이 괴로워할 것입니다.12)

 

1) 행 16:14; 롬 10:17; 고전 12:3   2) 겔 36:26-27; 요 1:12-13; 3:5; 엡 2:4-6; 딛 3:5; 벧전 1:23   3) 요 5:24; 8:36; 롬 6:4-6; 요일 3:9   4) 갈 5:22; 딛 2:12   5) 요 15:5; 롬 14:23; 딤전 1:5; 히 11:4,6   6) 롬 4:5   7) 마 7:17   8) 고전 1:30-31; 4:7; 엡 2:10   9) 롬 2:6-7; 고전 3:14; 요이 8; 계 2:23   10) 롬 7:21   11) 약 2:10   12) 합 2:4; 마 11:28; 롬 10:11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24조는 특별히 믿음에 따라 오는 행함에 대하여 “우리의 칭의에 이바지하지 않습니다”라고 단서를 분명히 달아둔다. 행함이 중요하지만, 의롭다 칭함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행함은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그 어떤 공로도 될 수 없다.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24조는 칭의에 있어서 행함이 등한히 될 것을 강조하면서 특별히 믿음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참된 믿음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살게 하며 죄의 노예 됨에서 자유롭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이 의롭게 하는 믿음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선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데 무관심하게 만든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는 부분과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에서 명령하신 행위들을 자신에게 적용시키도록 사람을 권유하는 것입니다.”라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칭의에 의존하는 성화와 선행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제24조에서 성화와 선행에 대해 다룬다. 그런데 그 내용이 철저히 칭의에 의존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성화와 선행을 독립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칭의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다루고 있다. 칭의의 믿음은 반드시 죄인을 새 사람으로 만드는 성화와 선행의 믿음임을 보여준다.[18] 이를 통해 우리는  벨기에 신앙고백서가 생각하는 성화와 선행이 무엇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이미 ‘결정적 성화’(Definitive Sanctification)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 모른다.[19]

 

 

선행의 비공로성을 강조함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당시 선행을 공로로 여기는 로마가톨릭을 염두에 두고 제24조에서 선행에 공로가 없음을 강조한다.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24조 우리의 성화와 선행

 

(전략)...

   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행하지만, 공로로 삼기 위해서 행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공로로 내세울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행하는 선행에 대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빚지고 있다기보다 차라리 우리가 하나님께 빚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빌 2:13). 우리가 다음과 같이 기록된 말씀에 유의합시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행을 보상하신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물들을 주시는 것은 당신의 은혜에 의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선을 행할지라도, 우리는 그 선행에 우리의 구원의 근거를 두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체로 더럽혀지지 않고 마땅히 형벌을 받지 않는 단 하나의 행위도 할 수 없습니다. 설령 우리가 한 가지 선행을 보여줄 수 있다하더라도, 한 가지 죄에 대한 기억만으로도 하나님께서 그 선행을 거절하시기에 충분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구주의 고난과 죽음의 공로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항상 의심에 가득차서 어떤 확신도 갖지 못한 채 방황하게 될 것이고, 우리의 가련한 양심은 끊임없이 괴로워할 것입니다.

 

 

   우리가 선행을 하는 이유는 공로(merit)로 삼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선행을 행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공로가 된다고 여겨서도 안 되고 그것을 했으니 하나님께서 당연히 우리에게 무언가를 갚아주셔야 한다는 마음을 가져서도 안 된다. 그러면서도 기억할 것은, 비록 선행이 공로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행을 행해야 한다. 우리가 선행을 하는 것은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하는 것이다.[20]

 

 

 


[1] 손재익, 『십계명, 언약의 10가지 말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대소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벨기에 신앙고백서로 보는 십계명 해설서』(서울: 디다스코, 2016), 8.

[2] 손재익, 『사도신경, 12문장에 담긴 기독교 신앙: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대소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벨기에 신앙고백서로 보는 사도신경 해설서』(서울: 디다스코, 2017), 38, 43, 46, 57, 81, 95, 110, 135, 140, 228-229, 241, 253, 256-257.

[3] 손재익, 『설교, 어떻게 들을 것인가?』(서울: 좋은씨앗, 2018), 60, 166.

[4] 손재익, 『특강 예배모범』(서울: 흑곰북스, 2018), 31. 원래의 원고에는 더 많은 내용이 담겨 있었으나, 책의 두께 등을 고려하여 부득이 생략한 내용이 많다.

[5] 손재익, 『나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있을까?』(서울: 좋은씨앗, 2019),

[6]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제27조에서부터 제32조까지 ‘교회’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게다가 제33조에서부터 제35조까지에서 다루는 내용이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은혜의 방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총 37개 조항 중에 무려 9개의 조항이 교회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성경에 관한 내용을 제2조에서부터 제7조까지 6개 조항을 사용하고, 하나님에 관한 내용을 제1-2, 8-13조에서 다룸으로써 8개 조항을 사용하며, 구원에 관한 내용을 제16-17, 22-26조에서 다룸으로써 7개 조항을 사용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교회에 대한 고백을 가장 많이 다루고 있다. 이런 점에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교회에 대한 고백’을 아주 강조함을 알 수 있으며, 이는 특히 당시 교회의 상황을 잘 반영해 준다. 손재익, 『벨기에 신앙고백서 강해 (해설서)』(서울: 디다스코, 2019), p.326, n.164.

[7] 필자는 벨기에 신앙고백서의 각 부분을 ‘조’(條)라고 번역했다. 이는 영어 Article을 번역한 것인데, 한글번역에서 조, 항, 호는 각각 Article, Paragraph, Clause (혹은 Item)의 번역어라는 점에 기초했다. 참고로 Chapter는 장(章), verse 혹은 section은 절(節)로 함이 바람직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Chapter라고 되어 있으므로, 장과 절로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다음 순서는 항, 목이다.

[8] Anthony A. Hoekema, Saved by Grace (Grand Rapids: Eerdmans, 1988), 이용중 역, 『개혁주의 구원론』(서울: 부흥과개혁사, 2012), 136.

[9] 손재익, 『벨기에 신앙고백서 강해 (해설서)』, p.264, n.128.

[10] 손재익, 『벨기에 신앙고백서 강해 (해설서)』, p.262, n.125.

[11] 이 부분은 손재익, 『나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있을까?』(서울: 좋은씨앗, 2019), 66-70을 주로 인용했다.

[12] 손재익, 『벨기에 신앙고백서 강해 (해설서)』, 272; 신호섭, 『벨직 신앙고백서 강해』(서울: 좋은씨앗, 2019), 323-325, 330.

[13] 손재익, 『벨기에 신앙고백서 강해 (해설서)』, 272; 신호섭, 『벨직 신앙고백서 강해』, 330.

[14] 손재익, 『벨기에 신앙고백서 강해 (해설서)』, p.278, n.138.

[15] 손재익, 『벨기에 신앙고백서 강해 (해설서)』, 279.

[16] 이 부분은 손재익, 『나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있을까?』(서울: 좋은씨앗, 2019), 74-79를 주로 인용했다.

[17] 손재익, 『벨기에 신앙고백서 강해 (해설서)』, 290; 김용주, 『칭의, 루터에게 묻다』(서울: 좋은씨앗, 2017), 78. 당시 그러한 비판이 있었음은 칼뱅의 기독교강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기독교강요』, 3권 16장 1절.

[18] 신호섭, 『벨직 신앙고백서 강해』, 344.

[19] 이와 관련해 손재익, 『성화, 이미와 아직의 은혜』(서울: 좋은씨앗, 2019), 20-22를 보라.

[20] 손재익, 『벨기에 신앙고백서 강해 (해설서)』,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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