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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원하 목사
산성교회 담임목사
고신총회 인재풀운영위원회 전문위원(서기)


도덕법으로서의 4계명

십계명은 도덕법으로서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신약시대의 모든 신자들이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영속적 법도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십계명 가운데 윤리적인 성격을 가진 규범들, 이를 테면, 도둑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등의 명령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지켜야 하는 것으로 보는 반면에, 4계명인 안식일 규정에 대해서는 의식법이나 시민법으로 취급하여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는 것으로 본다. 하지만 십계명 전체를 도덕법으로 본다면 4계명도 도덕법으로 보아야지 그것만 따로 떼어서 의식법이나 시민법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분명히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키라는 4계명을 계속해서 지켜야 한다.

4계명은 예배를 언제 드릴 것인가 하는 ‘예배의 시기’에 대한 명령이다. 4계명은 다음과 같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1). 구약에는 안식일 준수에 대한 명령이 빈번하게 발견된다. 구약에서 안식일은 매우 중요했고 엄하게 시행되어야 했다.

안식일과 한국교회

오늘날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안식일(토요일) 대신에 주일(일요일)을 지킨다. 그런데 우리나라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을 안식일처럼 생각하여 이 날을 지키는 것에 대하여 매우 엄격한 입장을 견지해왔다. 상당수의 우리나라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과 주일을 같은 것으로 보아서 주일에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날에 장년들은 생업을 중단했으며 학생들은 공부를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운동회 같은 것도 금하였다. 오늘날 이런 입장이 다소 사라진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주일에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과 주일을 전혀 다른 날이라고 생각하여 주일에 일하거나 공부해도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제 안식일이란 폐지되고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주일을 안식일처럼 지키는 것을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적 전통을 답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안식일에 대한 논의는 그리 단순하지가 않고 상당히 복잡하다. 기독교에서는 구약의 안식일과 신약의 주일이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에 대해서 상당히 오랫동안 논쟁을 벌여왔다. 그리고 주일을 성수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서도 매우 다양한 견해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성경적인 이유를 살펴보아야 하며,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의 주일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를 정립한 후에, 우리가 어떻게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안식일이 영원히 지켜져야 하는 영속적 규범임을 알아야 하는데, 그 안식일 규정이 다른 모든 구약의 규정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적으로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지를 분별하여야 한다. 즉 그리스도 중심적인 안식일 이해가 필요하다. 분명히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그리스도이신데,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의 성취자이시며 주인이시다.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1): 창조

구약에서 십계명은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각각 나온다. 출애굽기와 신명기는 약 40년의 시간 차이를 가지는데, 십계명 가운데 유독 4계명이 두 책에서 다르게 나온다. 출애굽기 20장에서는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이유가 창조와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신명기 5장에서는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이유가 구속과 연관되어 있다. 먼저 출애굽기에서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11).

창세기 2:2-3에 이런 말씀이 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나님은 여섯 날 동안 창조사역을 하시고, 이제 일곱째 날이 이르자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셨다. 하나님은 이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다. 따라서 일곱째 날은 복된 날이며 거룩한 날이다. 이 날은 다른 날들과 구별된다. 이 날은 특별한 날이다.

그런데 일곱째 날에는 창조사역을 하시던 앞선 여섯 날과 달리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문구가 없다. 이것은 일곱째 날의 무제한성, 곧 영원성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사람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과 더불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신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안식이 창조의 완성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모든 피조물을 만드신 후에 사람을 만드셨는데, 사람을 만드신 것이 창조의 완성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과 모든 피조물들이 안식을 누리는 것이 창조의 완성이다. 따라서 인생의 목표는 분명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실로 사람이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도록 초청받은 것은 놀라운 은혜이다.

이처럼 최초의 사람인 아담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해 주신 안식의 특권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세상을 가꾸고 돌보면서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궁극적인 목표인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야 했다. 아담은 에덴 한 가운데 있던 생명나무를 바라보면서 생명의 근원이신 구원자 그리스도를 사모하고 그분과 더불어 교제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더욱 긴밀히 교통하면서 안식을 향유해야 했다. 이것은 아담이 이미 안식 가운데 있었지만 보다 완전한 안식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였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것을 원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안식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자 완성이기 때문이다.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2): 구속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이러한 안식의 은혜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안식을 잃어버린 인간을 구원하시는데, 이러한 구원은 과거에 출애굽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하게 하신 사건은 단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애굽이라는 나라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역사적 사실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탄의 수중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경험한 구원사적인 사건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신자들)이 애굽(사탄)에서 안식을 누릴 수 없었는데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해 주신 것이다. 즉 출애굽 사건은 궁극적으로 메시아를 통한 구원을 예표 한다.

우리는 출애굽의 구속사적인 의의를 생각하면서 십계명을 담고 있는 또 다른 본문인 신명기 5장을 읽어야 한다. 신명기 본문에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과 더불어 그 명령을 지켜야 하는 이유로 구원이 언급되어 있다. 즉 출애굽기 본문에는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이유가 창조이지만 신명기 본문에는 그 이유가 구원인 것이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2-15). 하나님은 억압받던 자들을 구원하셔서 안식을 주셨다. 따라서 그 백성들은 구원을 감사하면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0장에서 출애굽 1세대들에게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관련하여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지만, 신명기 5장에서 출애굽 2세대들에게 하나님의 구속사역과 관련하여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신다. 이러한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2세대들이 애굽의 노예생활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하나님은 그들이 애굽의 노예생활의 끔찍함을 기억하게 하시면서 안식의 귀중함을 가르치려 하셨다. 즉 1세대의 후손들로서의 2세대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셨다. 2세대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들로서 아브라함의 언약을 계승한 후손들임을 알아야 했다. 하나님은 그들의 조상들에게 나타나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셨다.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3): 언약

출애굽기 31장에 안식일에 대한 말씀이 있는데, 31:12-13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 여기서 “대대의 표징”이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하다. 이와 유사한 표현이 이어지는 16-17절에서 “영원한 언약”과 “영원한 표징”으로 나온다. 이러한 표현은 안식일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맺어진 언약의 조건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지키면 복을 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복을 주시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이어서 출애굽기 31:14-15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 하나님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게 주어질 엄중한 형벌을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죽음, 곧 생명의 끊어짐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경고는 안식일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안식일 준수는 어떤 종교적 절차 하나를 지키고 지키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유지에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을 지키면서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교제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시리아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 안식일을 잘 지킨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안식일을 위반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깨뜨린 형벌로 그들이 이웃 나라의 포로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며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어떤 일이라도 하지 말고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함 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 그들은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그 목을 곧게 하여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였느니라”(렘 17:21-23).

안식일과 주일의 관계

이제 안식일과 주일의 관계를 살펴보자. 안식일은 구약의 다른 절기나 규례와 마찬가지로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시며(참고. 막 2:28), 안식 그 자체이시다(참고. 마 11:28). 구약에는 안식일 외에도 안식년과 희년이 있는데, ‘안식’과 관련된 모든 규례들은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진정한 안식’을 바라본다. 예수님은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시고 공적인 생애를 사시다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 예수님은 구속사역을 완전히 이루심으로 우리를 다시 창조하셨고, 구원하셨으며, 하나님과 우리가 영원한 언약 가운데 있게 하셨다. 즉 위에서 언급한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세 가지 이유를 충족하셨다.

구약의 절기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 4:9-11). 여기서 ‘날과 달과 절기와 해’는 제사시간을 가리키는데,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구약시대의 제사시간들을 다시 지킴으로써 그리스도가 단번에 이루신 희생제사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염려한다. 또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6-17). 바울은 그리스도가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셨기에 더 이상 율법조항에 얽매이지 말라고 한다.

그러므로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문자적인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참된 안식일을 이미 지키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 즉 안식일이 전망하는 메시아를 믿지 않는 자를 죽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식일 후 첫날, 즉 일요일에 부활하셨으며, 부활하신 이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도 반드시 일요일에 나타나셨다. 이처럼 예수님이 일요일에 부활하셨고 일요일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일요일이 가지는 특별한 가치를 드러낸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조의 사역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사역을 마치시고 안식일 후 첫날에 안식하신 것을 보여준다. 즉 이제는 안식일 다음날이 안식일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그리하여 사도들과 초대교회 교인들은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하며 교제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사도행전 20:7의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라는 언급과 고린도전서 16:2의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라는 언급에 잘 나와 있다. 이후에 요한은 이 날을 ‘주의 날’(주일)이라고 불렀고(참고. 계 1:10), 이후부터 교회도 이 날을 ‘주일’이라고 불렀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안식일 대신 주일에 모이라고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자기계시와 사도들의 모범을 따라 이제 주일에 모인다. 즉 구약의 교회는 토요일(안식일)에 모였지만, 신약의 교회는 일요일(주일)에 모이는 것이다.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즉 하나님께서는 4계명에서 무엇을 원하시는가? 우리는 주일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이를 ‘주일성수’(主日聖守)라고 부른다. 각자 흩어져 생활하던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이 되면 각자 하던 일을 멈추고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하며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즐거운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 이 날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날이며, 형제자매들과 함께 즐거움을 누리는 날이고, 천국에서 주어질 영원한 안식을 미리 맛보는 날이다. 참으로 이 날은 복되고 거룩하며 따라서 이 날을 지키는 것은 특권이요 은혜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일을 지켜야 한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공부함

하나님께서 주일에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공부하는 일이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공부하는 일은 언제 어디서나 시행되어야 하지만 특별히 주일에 교회에서 시행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직분자를 세우셔서 교회를 다스리게 하신다. 하나님은 목사를 세우셔서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장로를 세우셔서 교인들이 말씀을 듣고 실천하게 하시며, 집사를 세우셔서 교인들이 말씀을 실천하는 과정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살피게 하신다. 특히 목사는 하나님께서 개체교회 회중들에게 하실 말씀이 무엇인지를 잘 분별해서 전해야 한다. 목사의 가장 주된 업무는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다. 목사는 이를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

2. 하나님께 예배드림

우리는 주일에 교회에 모여서 주님께 예배드려야 한다(참고. 사 66:23). 우리는 예배드리면서 말씀을 배워야 하고 성례(세례와 성찬)에 참여해야 하며 주님께 공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교회에서 주일에 행해지는 일 중에 예배를 대체할 그 어떠한 일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교회에서 예배보다 다른 잡다한 프로그램들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현상은 교회의 타락을 가속화할 것이다. 게다가 예배가 성경적 본질에서 벗어나서 사람들의 구미에 맞추어지는 모습은 안타깝다. 또한 우리는 예배를 드릴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가난한 자들에게 기독교적인 자선을 베풀어야 한다. 이러한 자선은 예배 시간에 헌금(연보)을 함으로써 가능하다(참고. 고전 16:2).

3. 영원한 안식을 바라봄

하나님께서는 주일에 우리 생애의 모든 날 동안 악한 행위들을 멈추며 주께서 주의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서 일하시게 하고 그럼으로써 영원한 안식이 이생에서부터 시작되기를 원하신다. 히브리서 4:3에는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라는 말씀이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히브리서 4:9에는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원한 안식의 순간이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영원한 안식은 주 예수님의 재림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땅에서 주일을 지킴으로 영원한 안식을 미리 맛보면서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영원한 안식의 실현을 열렬히 사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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