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획기사는 다시 코로나다. 코로나 19는 우리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고, 지금까지 견지해왔던 우리의 모든 경제생활과 사회생활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하라는 사인이다. 신앙생활도 예외가 아니다. 작금에 국가와 교회의 관계, 예배 자체에 대한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교회의 부실함과 신앙인의 어리석음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차제에 이 사태가 드러내고 있는 우리의 속살을 하나씩 꺼내놓고 문제제기를 해 보면서 향후 교회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 보려고 한다. 코로나 사태는 이번으로 끝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 편집자 주 |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예배논쟁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
- (Not 비난, But 화평과 덕!)
임경근
(다우리교회 목사)
2020년 봄이 이미 왔지만, 그것을 느낄 여유도 없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출현과 확산으로 온 나라와 세계가 혼돈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다. 바이러스가 가져다 준 지구촌의 변화는 대단하다. 국가 간의 교통과 사람 간의 소통을 막고 있다. 생물도 무생물도 아닌 한낱 미물인 바이러스가 만물의 영장인 인간 삶을 교란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주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인 성도와 그분의 몸인 교회까지 뒤 흔들어 놓고 있다.
1. 예배논쟁의 결론?
정부는 바이러스 확산방지를 위해 교회에 예방적 예배 자제 혹은 일시 중단 권고를 했고 일부 교회에 예배를 제한했다. 물론 예배를 전면금지한 것은 아니다. 조건적으로 예배를 허용하고 있다. 만약 예방조치를 하지 않고 예배를 강행했을 때 문제가 발생하면 그 피해에 대해 구상권(求償權)을 청구하겠다는 말들이 들린다.
한국 개신교회는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 강요로 인해 정상적으로 예배하기 어려웠지만, 예배 자체를 중단하지는 않았다. 해방 후 한국전쟁 때 예외적으로 교회 문을 닫아야 했던 비상한 시기도 있었지만, 그 외에는 예배를 중단한 적이 없다. 그러니, 교회로서는 이번 상황이 상당히 큰 충격일 수 있다. 2020년 3월 22일 <연합뉴스> 기사를 보면 그 상황을 느낄 수 있다.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이 계속되는 가운데 개신교회의 예배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최근 경기도와 서울시가 종교집회 금지 명령까지 거론하며 압박하고 급기야 21일에는 정부가 나서 15일간 종교시설 운영중단을 권고했지만, 정부 요청대로 전국 모든 교회의 문이 닫힐 것으로 보는 이는 많지 않다. 최대 6만개로 추산되는 전국 개신교회가 일치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데에는 현장 예배를 받아들이는 교계 내 시각차와 함께 이견을 조율해야 할 개신교 연합기관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데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https://www.msn.com/ko-kr/news/national/온라인-예배-둘러싼-불협화음…개신교계-컨트롤타워가-없다/ar-BB11wKrQ)
인터넷 공간에서도 논쟁이 뜨겁다. 한 쪽에서는 ‘예배를 절대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른 쪽에서는 ‘불가피할 경우 꼭 예배당이 아니라, 가정이나 다른 장소에서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예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전자는 후자를 교회의 세속화이며 타락(?)이라는 눈으로 바라보며 비판의 소리를 높인다. 하나를 양보하면 줄줄이 양보하게 되어 신앙을 잃게 될 것이라고 예측(단)하며 경고한다. 예배당에서의 예배 금지 명령을 ‘예배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는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말하며 믿어온 한국교회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 예배당에서의 예배금지 조치를 ‘종교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현 정부에 대한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후자도 전자를 향해 골통 율법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비난한다.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것이지, 한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교회당에서 온 성도가 모여 예배하지만, 예외적 상황도 있다고 주장한다. 감염방지를 위한 정부의 예배자제 권고는 종교탄압이나 예배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교회는 정부의 감염병 확산 방지에 적극 협조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다.
이 논쟁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다. 교회마다, 목사마다, 성도들마다 제각기 생각이 다르다. 교회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2. 정부에게 복종해도 되나?
성도나 교회가 세속 정부에게 복종해도 될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정부가 주일 예배를 금지할 때 교회는 받아들여도 될까? 다른 것도 아니고 예배를 중단하라고 하는 데 따라도 되는 것일까? 왜 이런 질문을 던질까? 성도는 세속 정부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민감하고 중요한 주제이다.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오래된 주제이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각 정통마다 차이가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그 역사와 입장을 다루지 않으련다. 대신 로마서 13장을 가지고 생각해 보려 한다.
로마서 13장의 권고는 너무나 노골적이라 우리가 덥석 받아들여도 되나 하며 주저하게 될 정도이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 13:1)
가히 충격적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박해할 가능성이 있는 로마제국의 권세(자)에게 복종할 것을 명령한다(1-7절). 왜 그럴까? 이 말씀을 이 시대에 적용해도 될까?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13장을 다 읽어보면 바울이 제시하는 그리스도인의 세상을 향한 자세는 통이 크다. 불신자가 통치하는 국가와 정부 지도자를 하나님이 세운 “하나님의 사역자”(롬 13:4) 혹은 “하나님의 일꾼”(롬 13:6)으로 인정하니 말이다.
이와 비슷한 상황은 이미 구약 다니엘의 시대에도 있었다. 바빌론과 로마는 제국주의 국가였다. 불신 국가와 정부가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거나 다스리는 상황에서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 바울은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고 말했고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명했다.
물론 바울의 이 명령에는 예외가 없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3. 교회 내부에서 비난하고 싸워도 될까?
문제는 교회 외부로부터 오지 않고 오히려 내부로부터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교회와 성도가 서로 싸우고 있다. 예배 때문에 비판하고 비난한다. 이래도 될까? 현재 개신교회는 예배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컨트롤타워가 없다고 한다. 늘 그래왔던 현상이기도 하다. 이것이 개신교회의 약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점은 개신교회의 강점이 아니던가? 개신교회는 신학과 신앙양심에 따라 본질이 아닌 부분에서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말이다.
자 그러면, 교회내의 성도간의 비난과 싸움에 대해 바울이 로마서 14장에서 가르치는 교훈을 살펴보자. 로마교회 안에는 유대인의 율법, 곧 ‘음식 법’과 ‘날’과 ‘절기’를 지킬 의무와 관련된 만만치 않은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 ‘율법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의 대립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서로 비난하며 싸웠다. 구약의 율법을 지켜야만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측이 있었다. 율법주의에 빠지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다름없으니,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주어진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측도 있었다. 두 측은 팽팽하게 대립했다. 바울이 로마교회의 두 쟁점을 이렇게 요약했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롬 14:2)
로마교회의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율법에 금지된 음식들, 예를 들면 고기를 먹지 못하고 채소만 먹었다. 일반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코로나19 사태의 예배논쟁에 비유하면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교회당 예배를 고수하는 측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교회의 “믿음이 강한 사람”은 율법에 금지된 음식을 먹었다. 예를 들면 복음 안에서 자유함으로 고기를 마음대로 먹었다. 일반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코로나19 사태의 예배논쟁에 적용하면 “믿음이 강한 사람”은 꼭 예배당에서 예배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가정에서 가정예배를 하든 혹은 인터넷으로 동 시간에 혹은 다른 시간에 예배를 할 수 있다고 자유롭게 여긴다.
로마교회에는 안식일 문제도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긴 것이다(롬 14:5). 꼭 안식일이 아니어도 모든 날이 중요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 중에 주님의 부활 일인 “안식 후 첫날”인 주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는 것이 교회 역사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여기에도 바울은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의 대립으로 보았다.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측과 그렇지 않고 주일과 모든 날이 중요하다고 하는 측의 갈등은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바울은 이 두 문제를 아래의 말로 최종 교통(?) 정리했다.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 14:5-10)
바울은 “주를 위하여” 모든 것들을 상대화 시켜야 한다고 본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주일예배에 대한 상반된 의견들이 교회 내외에 오가며 비난과 싸움으로 번져간다. 주일 공예배를 취소하고 가정예배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안식일과 주일 예배의 한시적 취소가 신앙생활에서 큰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반대로 주일 공예배를 취소하는 것은 교회가 스스로 빗장을 풀어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입장이다. 주일 공예배를 양보하면 배교와 같은 것으로 보는 입장은 로마교회의 율법을 따라 살아야(고기를 먹지 않고 안식일을 엄수)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주일 예배당에서의 공예배를 잠시 쉬고 가정에서 예배할 수 있다는 입장은 로마교회의 복음이 주는 자유를 사용해도 된다(고기를 먹고 다른 날인 주일에 예배)는 입장과 비슷하다.
이제 바울의 권면에 귀 기울 때가 되었다. 성도는 다른 사람이 자신과 의견이나 입장이 다르다고 “형제를 비판”(롬 14:10)하거나 “형제를 업신여기”(롬 14:10)는 것은 죄이다. 왜냐하면 비판하고 업신여기는 대상이 바로 주님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교회에는 음식이나 절기나 날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이다. 성도는 교회를 세워야 하는 명령을 받고 있다. 그런데 서로 화평하지 못하고 싸운다면 교회를 세우기는커녕 무너뜨리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롬 14:18-20)
정답은 나왔다. 성도는 형제를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생각이 다른 형제를 업신여기며 비난 할 수 없다. 성도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한다. 성도가 예배로 서로 비난하며 싸우면 모두 패배자일 뿐이다. 승리는 사탄이 가지고 갈 것이다.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주를 위하여 형제를 용납하며 화평의 일을 도모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 덕을 세워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 내부에는 이 바울의 권면이 참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성도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할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다. 현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고 상당한 불신을 받고 있다. 오해도 많지만, 부끄러운 모습도 많다. 본래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받기 어렵지만, 본질이 아닌 것에서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 코로나19 사태는 교회를 사칭한 이단 신천지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 일반사회는 신천지와 교회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런데 교회가 예배 관련한 정부의 요청과 권면과 지침에 적극 따르지 않는다면, 사회로부터 칭찬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4. 집합 예배중지 권고, 신사참배 강요 데자뷰?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정부의 집합 예배중지 권고는 일제식민지 시대의 흑역사였던 신사참배 강요에 굴복했던 것의 데자뷰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 당시 한국교회는 신사참배를 국가행사로 규정하고 주일 예배 전에 동방요배를 해야 했고 노회를 열기 전에 먼저 신사참배를 하도록 강요당했다. 한국교회는 공식적으로 신사참배를 가결했다. 분명히 뼈아픈 흑역사 였다. 한국교회에게는 어쩌면 이 흑역사가 데자뷰로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살펴보면, 한국교회의 위기는 외부로부터 오는 위협보다 내부로부터 오는 것이 더 많고 크지 않을까? 교회는 영적 무기력과 신앙의 세속화를 염려해야 하지 않을까? 저출산과 저성장, 교회의 고령화의 문제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5. 성도가 자유를 누릴 수 없을까?
그리스도인에게는 복음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기독교’라는 종교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성전’으로 믿곤 하는 ‘예배당 건물’에 갇힐 하등의 이유도 없다. 복음은 종교와 장소를 초월한다. 복음의 능력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만큼 넓고 위대하다. 바울의 말을 들어보자.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롬 14:22)
이 양심의 자유는 각 개인에게 주어졌지만, 교회적으로 결정하면 좋겠다. 각 교회의 당회는 현 사태를 직시하고 성도의 영적 성장을 위해 예배를 어떻게 할 것인지 의논하고 토론한 후 기도로 결정할 것이다. 성도는 당회의 결정을 믿고 따라야 한다. 혹 성도가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님이 당회에 부여한 권위를 인정하고 받아야 한다. 그것이 화평과 덕을 따르는 것이며, 주님의 영광을 위한 행위이며,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교회는 이렇게 결정하고 다른 교회는 저렇게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시기와 장소와 상황과 여건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 당회가 의논하고 기도한 결정은 복되다. 복음 안에서 주어진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자유를 누려라!
어려운 비상한 때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그리스도인의 직무를 잘 지켜갈 수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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