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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설립일 기산(起算)과 교단 설립 기념행사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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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찬 목사

(작은빛교회 담임)

 

 

 

   제62회 총회(2012년 9월)에 부산서부노회(노회장 서병수 목사)에서 상정한 안건이 하나 제출되었다. 1952년(1952년 9월 11일 총노회가 조직된 날)을 고신 역사 기점으로 공식화해달라는 청원이었다. 제27회 총회(1977년 9월)가 일찍이 1946년 12월 3일을 고신교단의 창립시일로 결정한 바가 있는데, 이를 다시 고신교회가 독노회로 출범한 1952년으로 수정해달라는 것이었다.

 

   1946년 12월 3일은 도대체 어떤 날이었을까? 제27회 총회는 왜 이날을 고신 역사의 기점으로 인정하고 결정하였을까? 이날을 고신 역사의 기점으로 여긴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해방 이후 지난날 신사참배 반대로 문을 닫게 된 평양의 “장로회신학교”의 보수적 개혁주의를 잇기 위해 1946년 6월에 진해에서 신학 강좌가 열리고(6월 23일-8월 20일, 강사: 박윤선 목사) 동년 9월에 고려신학교가 부산에서 개교하였다. 그리고 동년 12월 3일에 진주에서 열린 제48회 경남노회(장소: 진주 봉래동 교회)에서 한상동 목사가 노회의 불법처사에 항거하게 되는데 이때 여러 교회들이 이에 호응을 하는 일이 있었다. 그 직전까지 경남노회는 일제 강점기에 제27회 총회(1938년)가 공적으로 결정한 신사참배 건에 대한 회개와 교회쇄신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으나, 대표적 친일 인사인 김길창 목사가 사전선거운동으로 노회장이 되면서 신사참배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거론하지 못하도록 가결하고 특히 고려신학교의 인정 취소론을 제기하고 신학생 추천도 취소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교회쇄신을 요구하는 인사를 압박하였고, 교회쇄신의 요구는 심각한 반대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한상동 목사는 “불손한 태도를 고침이 없이 그대로 나아가는 경남노회가 바로 설 때까지 탈퇴한다”고 선언하고 퇴장하였다. 그의 탈퇴는 “바로 설 때까지”라는 시한부 탈퇴였으므로 경고의 의미가 있었다. 한상동 목사의 탈퇴선언은 큰 반향을 일으켜 시대착오적인 노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항거하기로 하고, 1947년 1월 3일자로 6개 교회가 연합하여 성명서를 발표하고, 부산노회 소속 67개 교회 역시 제48회 경남노회의 결의에 항거하고 한상동 목사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부산의 초량교회에서는 신도대회를 열어 주상수 장로를 회장으로 선출하고 회개운동을 전개하는 등 교회개혁을 요구하는 평신도들의 항의가 계속되었다. 제27회 총회는 바로 이러한 프로테스탄트 정신, 항의 정신을 고신교회의 시작으로 기념하고자 했다.

 

   그런데 부산서부노회가 1946년 12월 3일이 아니라 1952년 9월 11일로 고신 역사의 기점으로 수정하여 공식화해달라는 청원을 올린 제62회 총회(2012년 9월)는 총회 개회 3개월 전인 2012년 6월 14일(목)에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13,000명의 교인이 모여 총회 차원에서 교단설립 60주년 기념행사를 치른 직후에 열린 총회였다. 더욱이 이 교단설립 60주년 행사를 1년 전에 기획함으로 제61회 총회(2011년 9월)가 묵시적으로 교단 설립 시점을 1952년으로 기산하고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지만, 그럼에도 이는 1946년 12월 3일을 교단 설립 시점으로 인정한 제27회 총회의 결정과는 분명히 상치되는 것이기에 총회는 부산서부노회의 헌의안을 받아들여서 이번 기회에 고신 역사 기산을 다시 재정립하자는 취지로 연구위원을 세워 1년간 연구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1년 후 제63회 총회(2003년 9월)에서 <고신역사기점에 관한 연구위원회>(위원장 이상규 교수)는 고신역사의 기점을 후일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로 발전해 가는 총노회 조직일인 1952년 9월 11일(당시는 목사 50명, 장로 37명 참석)로 확정하는 것이 타당하며 따라서 제27회(1977년 9월) 총회가 결의한 1946년 12월 3일은 매우 부당하다는 것을 보고하였고 총회는 이를 받게 되었다. 이로써 고신교회(교단) 설립 기산을 둘러싼 논란은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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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혁운동 10주년 행사(제6회 총회, 1956년 9월 20일)

 

   고신 교회 설립 직후 믿음의 선진들은 교단 설립보다는 오히려 그 배경이 되는 개혁운동과 진리운동을 기념하기를 원하였다.

   1952년 9월 11일에 총노회로 시작한 고신교회는 1956년 4월 17일에 제5회 총노회에서 이제 총회로 개편하기로 결의하고, 이를 같은 해 9월 20일 부산 남교회당에서 회집하여 하기로 했다. 그리고 경북노회, 전라노회 외에 경남노회를 부산, 경남, 진주 세 노회로 분립하기로 결의하였다.

   한편 1956년은 고려신학교를 설립(1946년 9. 20)함으로써 시작된 개혁운동 10주년을 맞는 해였다 그래서 제5회 총노회는 경남노회(노회장 한상동 목사)의 청원으로 총회로 개편과 함께 개혁운동 10주년 행사를 하기로 결정하고, 경남노회 임원, 경북, 경기노회장, 고려신학교 교수 전원과 송상석 목사를 이 행사를 위한 준비위원으로 위촉했다. 이같이 고신교회 설립은 고려신학교 개교의 배경이 되는 개혁운동과 진리운동을 떠나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1956년 9월 20일에 제6회 총회가 열렸지만, 개혁운동 10주년 행사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총회록에서 찾을 수 없다. 다만 총회 개회 직후 총회규칙을 제정하고 총회임원을 선출한 이후 박윤선 목사가 우리 총회가 개혁운동 10주년을 맞아 총회로 출발함에 있어서 과거 10년을 회고하면서 잘못된 것을 시정하자고 다음 몇 가지를 제언하였다:

   첫째, 예배당 쟁탈 문제, 둘째, 교회질서에 대한 문제, 셋째, 기독교보에 대한 문제, 넷째, 신학교에 대한 재정 문제. 총회록에는 이에 대해 한상동 목사가 해명하고 찬송가 366장을 합창하고 회무를 계속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개혁운동 10주년 행사내용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제6회 총회에서 박윤선 목사가 제안한 내용에서 우리는 개혁된 교회는 정체되지 않고 항상 개혁되어야 하는 개혁운동의 참 정신을 보게 된다.

   이같이 고신교회의 선진들은 교단 설립 자체보다는 그 배경이 되는 ‘개혁운동’에 더욱 역점을 두었다. 그러나 초기 고신의 사람들에게 생명과 같았던 ‘개혁운동’ ‘진리운동’이라는 용어는 시간이 지나면서 적어도 약 20년 동안은 고신교회에서 공적으로 총회록 기록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고신교회와 총회는 이후 ‘총회 10주년’ 혹은 ‘교단 설립 10주년’을 맞아 이를 어떤 식으로든 총회 설립과 교단 설립을 기념하였을까? 총회 10주년이 되는 제10회 총회(1960년 9월 20일)는 총회 개회 2개월 전인 8월에 승동 측 목사들과 비공식적인 만남을 시작을 계기로 승동측과의 합동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합동을 추진하기로 결정한 만큼 총회 10주년을 기념할 만한 여유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또 교단 설립 10주년을 맞게 되는 1962년 9월은 이미 승동측과 합동을 한 상태에서 제47회 총회(고신은 제12회 총회)가 1962년 9월 10-26일에 걸쳐 서울 승동교회당에서 열렸기에 교단 설립 10주년 기념 역시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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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교단 20주년’ 화보 편찬(제20회 총회, 1970년 9월 24-29일)

 

   고신교회가 승동 측과 합동한지 약 3년 만에 다시 환원(제13회 환원총회, 1963년 9월 17-19일)한 이후 7년 뒤에 열린 제20회 총회(1970년 9월 24-29일)는 출판부에서 요청한 “교단 20주년 기념 화보”를 발간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즉 제20회 총회는 ‘총회 20주년’이 아니라 ‘교단 20주년’이라고 하였다. ‘총회 20주년’이 왜 ‘교단 20주년’으로 명명되었을까? 교단 설립 20주년은 아직 2년이 더 남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 1952년 9월 11일 총노회(제1회 총노회)가 조직된 그 날이 곧 고신교회 혹은 고신교단의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회=교단’으로 보는 것은 장로회 정치원리에는 전혀 맞지 않는다. 총회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회의체요 치리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단설립 20주년은 1952년 9월 11일을 기점으로 기산할 때 1970년 9월이 아니라 1972년 9월으로 보는 것이 맞다. ‘총회=교단’으로 보는 인식은 1973년 8월 15일자로 제22회 총회록을 편찬하면서 총회장 손명복 목사가 해당 총회록 서문에 “우리 교단이 발족한지 벌서 22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라고 한 말에서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교단 발족 22주년’은 1974년 9월이지, 1972년 9월이 될 수 없다.

 

 

3. 30주년(교단창립 제30주년 기념 대성회: 순교정신 계승하자, 1977년. 8월 15-19일)

 

   1977년 8월 15일부터 시작하여 19일까지 총회 교육부 주관(후원: 수난성도 기념사업회)으로 “순교정신 계승하자”라는 표제로 교단 창립 제30주년 기념 대성회가 성대하게 열렸다.

   먼저 생각할 것은 1977년이 교단 창립 30주년이라면 도대체 교단 창립을 언제로 기산한 것일까? 당시 30주년 기념 대성회 자료집을 보면 다행히 그 시점의 기준을 명확하게 언급하였다. 즉 한상동 목사가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와 교회쇄신 운동을 억압하는 경남노회의 불법적인 처사에 항거하여 “불손한 태도를 고침이 없이 그대로 나아가는 경남노회가 바로 설 때까지 탈퇴한다”고 선언하고 이어서 많은 교회들이 함께 지지한 그때를 시점으로 정한다고 밝혔다.

 

   대회사에서 대회장 박치덕 목사는 ‘교단 30년 만에 처음으로 대성회’를 가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다음은 대회사 전문이다:

 

   “할렐루야, 전국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교단 30년 만에 처음으로 대성회를 가지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한국교회가 일찍이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순결을 지키지 못한 결과 절망과 혼란에 빠졌으나,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는 그 속에서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신앙의 순결을 파수하던 진리의 사자들은 그 무서운 악형과 고문을 받아 옥중에서 순교하시거나 민족의 해방과 함께 죽음 직전에서 이 땅에 남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신앙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성도들은 산중에서나 암혈 속에서 진리의 소리를 발해 왔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소리를 발한 우리 교단은 냉대와 멸시, 조롱을 받는 중에도 한국교회를 향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또한 원치 않았던 시험의 바람 앞에 적지 않은 타격도 입었습니다. 밖으로는 찢어지는 아픔이 있었고, 안으로는 해이와 안일의 중병을 앓아 왔습니다. 즉 개혁주의, 진리운동의 기치를 내걸고 그 아래서 잠을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자 합니다. 온 이스라엘이 미스바로 모여 회개운동을 한 것과 같이 우리도 금번에 다 함께 모여 회개하여 새 힘을 얻고자 합니다.

   모이십시오! 우리 다 함께 진리의 동산에. 그리하여 교단 제2세대를 향한 힘찬 행진을 시작합시다. 1977.8.15.”

 

 

   그런데 교단 창립 30주년 기념 대성회가 마친지 1개월 후에 열린 제27회 총회(1977.9)에는 기념 대성회와 관련한 안건 세 건이 진주노회(노회장 최연석 목사)에서 올라왔다. 하나는 이번에 교단 기념성회를 거행하게 된 경위에 대한 문의이고, 둘째는 기념성회를 후원한 수난성도 기념사업회관 단체와 본 교단의 관계 및 해 단체의 법적 지위에 대한 문의이며, 셋째는 동 교단 창립 30주년의 기산은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지에 대한 문의였다.

   이에 대해 총회는 교단 창립 30주년의 기산 근거로 “한상동 목사가 경남노회를 탈퇴 선언하고 67개 교회가 호응한 때가 창립정신의 기준이 되므로 1946년 12월 3일을 교단 창립 기산일로” 하기로 가결하였다.

   사실 이번 교단 30주년 기념 대성회는 본래 1977년 3월 4일에 수난성도 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제1차 사업계획으로 <8.15-19 대성회>를 예정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본 사업을 총회교육부가 넘겨받아 주관하고 수난성도 기념사업회는 후원하기로 하면서 1977년 6월 29일에 열린 총회운영위원회에서 이 대성회 사업의 인준을 받고 추진하다가, 이 대성회의 명칭을 <교단 창립 30주년 기념 대성회>로 확정하면서 ‘교단 창립 30주년’을 한상동 목사가 경남노회의 불법적 처사에 항거하며 일시적으로 노회를 탈퇴한다고 선언한 날을 기점으로 기산한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여기에 다소 문제가 있다. 즉 처음부터 교단 창립의 기산에 대해 총회가 충분히 연구하고 결정한 후에 총회가 주관하여 교단 창립 기념 대성회를 연 것이 아니라, 수난성도 기념사업회가 기획한 대성회를 총회교육부가 넘겨받아 치르면서 명칭도 <교단 창립 30주년 기념 대성회>로 확정하여 이 행사를 먼저 치르고 그런 후에 총회가 불가피하게 교단 창립의 기산을 추인한 인상을 받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교단 창립 30주년 기념 대성회는 그동안 고신교회에서 잊혀버린 두 단어가 다시 소환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1956년 9월에 개회된 제6회 총회는 10주년을 맞은 진리운동 개혁주의(개혁운동)을 기념하였는데, 그 이후 20년 만에 다시 고신교회에 이 용어가 공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대회장 박치덕 목사는 대회사에서 지금 우리 교단이 원치 않았던 시험의 바람 앞에 적잖은 타격도 입어 밖으로는 찢어지는 아픔이 있고, 안으로는 해이와 안일의 중병을 앓으며 개혁주의, 진리운동의 기치를 내걸고 그 아래서 잠을 자고 있었지만 이제 다시 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교단 제2세대를 향한 힘찬 행진을 시작하자고 하였다. 비록 고신 설립 시점 기산 방법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지만, 당시 교회 안팎의 상황에서 큰 위기를 느끼고 수난성도 기념사업회와 총회교육부를 중심으로 고신의 많은 성도와 교회가 ‘교단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며 교단 설립의 배경이자 정신인 진리운동, 개혁운동으로, 또 부당한 교권에 용기 있게 대항하는 프로테스탄트 항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서 교단을 새롭게 하여 제2세대를 맞기를 간절히 열망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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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교단 주일 제정과 신사참배가결 50주년 상기 기도회(제38회 총회, 1988년 9월)

 

   결국 고신 설립 기산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검토 없이 치른 행사였기에 <교단 창립 30주년 기념 대성회>가 있은 지 10년이 지난 1987년이 되었으나 이때 교단 설립 40주년 행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총회는 그 대신 9월 둘째 주일을 교단 주일로 지키는 것을 결정하게 된다.

   1987년 9월에 열린 제37회 총회는 교단 발전과 운영을 위해 교단발전연구위원회(위원장 총회장, 서기 박종수, 회계 손창희, 위원: 박두욱 박창환 이금도 오병세 이금조 조긍천 조재태 김정남 박현진)를 구성하게 되는데, 동 위원회는 2000년대를 바라보며 교단의 정책 수립 중에 하나로 9월 둘째 주일(총 노회 조직 1952년 9월 11일)을 교단 주일로 매년 지키는 것과 또 신사참배가결 50주년을 맞는 1988년 9월 13일(화)에 회개운동을 위한 특별기도회를 가지는 것을 다음 총회 안건으로 상정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제38회 총회(1988년 9월)는 교단발전연구위원회의 이 보고를 받아서 9월 둘째 주일을 교단주일로 지키기는 것과 신사참배가결 50주년 상기 기도회를 1988년 9월 13일(화) 오후 2시에 부산삼일교회당에서 갖는 것을 결정하였다.

   이때부터 고신 교단 설립 시점은 총노회가 조직된 날인 1952년 9월 11일로 굳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교단 설립 40주년 기념행사는 1987년이 아니라 1992년에 이루어지게 되었다.

 

 

5. 교단 40주년 기념주간(1992년 9월)

 

   제42회 총회(1992.9.21.-25)는 교단발전연구위원회(위원장 오병세 목사)의 건의로 올해가 본 교단이 40주년이 되는 해(1952. 9.11. 총노회 조직일)이므로 총회 차원에서 기념하도록 결정하였다. 한 주간을 총회 설립 40주년 기념주간으로 선포하고, 기념집회는 노회별로 기념 성회를 1일씩 갖도록 하였다. 그래서 교단의 40년 역사를 돌아보고 현재의 위상을 정립하며, 교단의 미래상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교단발전연구위원회는 동시에 3년 후에 맞을 해방(광복) 50주년 기념행사를 대대로 시행하도록 건의하고 총회가 이를 결정하였다. 왜냐하면 광복(해방)은 특히 순교자를 배출하고 순교정신을 계승하기를 바라는 고신교회에는 남다른 신앙의 자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념예배와 집회뿐 아니라, 세미나와 음악회와 함께 순교자 유가족 등을 위로하는 위로회, 교단 역사자료 전시회, 노회별 기념 개척교회 설립 등을 사업으로 제시하였다.

   제43회 총회(1993년 9월)는 교단발전연구위원회(위원장 오병세 목사)의 건의를 받아서 9월 2차 주일인 교단주일을 지키기 위해 월간고신, 기독교보가 중심이 되어 그날의 취지를 홍보해 설교자료를 지면으로 알리는 것을 제도화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같이 제38회 총회(1988년 9월)가 매년 9월 둘째 주일을 교단 주일로 지키는 것을 제도화하고 제42회 총회(1992년 9월)가 노회별로 교단 설립 행사를 시행하도록 독려하고, 제43회 총회(1993년 9월) 총회는 교단지 언론을 통해 그날의 취지를 홍보하고 설교자료를 올리는 등의 제도적 조치를 취했지만, 이 모든 시도에도 교단 설립의 취지가 전국교회가 충분히 공감되도록 전달되지 못하고 교회 안에 다시 개혁운동, 진리운동, 프로테스탄트 항의 정신의 불꽃을 일으키는 것으로는 나아가지 못하였다. 이후 열리는 교단 설립 기념행사는 점점 개혁운동, 진리 운동, 항의 정신의 고취보다는 외적인 행사에 더욱 치중하게 되었다. 개혁운동과 진리운동, 항의 정신이 역동적이지 않은 가운데 매년 교단 주일을 지키고 적절한 때가 되어 교단 설립 기념행사를 하는 것은 참으로 공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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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교단설립 50주년 기념대회(제52회 총회, 2002년 9월 24일)

 

   제52회 총회는 무엇보다 교단설립 50주년을 맞아 기념대회(주제: 복음 조국 사랑, 대회장: 박종수 목사, 준비위원장: 곽삼찬 목사)를 회기 동안에 가졌다. 총회 둘째 날인 9월 24일(화) 저녁 6시부터 1부 음악회, 2부 기념예배(총회장 이 선 목사가 레위기 25장 8절에서 12절을 본문으로 ‘50주년을 거룩하기 위해’로 설교하였다), 3부 기념대회(고신 50주년 영상물 시청과 기념사, 축사, 교단 21세기 선언문 낭독)의 순서를 가졌다. 그리고 바로 이 총회에서부터 총회의 총대 수가 500명 이상을 넘어섰다(총대 수 512명-목사 총대 256명 장로 총대 256명, 34개 노회, 교회 수 1591개, 목사 수 2435명, 장로 수 3764명, 세례교인 수 213,746명). 특히 총회는 고신교단 50주년 기념 화보집을 출간하였다(2004년 1월 15일 발행, 약 1250페이지).

   교단 설립 50년은 그 자체로 보면 50년 만에 모든 억눌린 것에서 해방이 되어 희년을 맞는 것처럼 뜻깊은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교단 설립 50주년, 진리 안에서 자유와 해방을 기념하는 희년의 감동이 채 식기도 전에 고신교회는 2003년 5월 9일자로 교단 산하기관인 복음병원이 부도가 나고 고려학원 이사회에 관선이사가 파송되면서 고신교회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교회의 바벨론 포로를 경험하게 되었다. 50주년 기념대회에서 총회장 이 선 목사는 희년 절기에 대해 언급하는 레위기 25장 8절에서 12절을 가지고 ‘50주년을 거룩하기 위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다. 그의 설교대로 고신의 50년 곧 희년을 경축하고 기념하며 이러한 희년을 허락하신 주님을 기쁨으로 노래하고 고신의 50년을 거룩하게 한 교회에 주님께서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바벨론의 멍에를 주셔서 왜 목사를 양성하는 신학교가 형식적으로 세상이 파송한 관선이사의 지도를 받게 하여 세상으로부터 수치를 당하게 하시고 우리 입에서 기쁨의 노래를 빼앗아 가셨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사람이 비록 하나님의 기이한 섭리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총회는 이 사태의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백서를 발간하기로 결의하였으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교단 설립 70년을 맞는 지금까지 이 백서는 발간되지 못하고 있다.

 

 

7. 제60회 총회(2010년 9월 29일) 기념행사

 

   1952년에 총노회로 발회하여 제60회 총회를 맞아 총회 제3일인 2010년 9월 29일(수) 저녁에 모든 총대들은 기념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금도 목사가 교단설립에서 환원까지, 전은상 목사가 환원에서 1980년까지, 오병세 목사가 1981년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를 전망하는 말씀을 전하였고, 특히 산돌 손양원 목사 순교 60주년(2010년 9월 28일)을 맞아 손양원 기념사업회를 위해 헌금하는 순서를 가졌다. 한편 1년 후에 열린 제61회 총회(2011년 9월)는 미래정책위원회(오세우 목사)가 청원한 “고신총회 60주년 기념 표준주석 편찬”을 허락하였다.

   한편 제60회 총회는 2년 후인 2012년에 교단 설립 제60주년을 맞아 60주년 기념행사를 하기로 하고, “6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를 조직하기로 하며 그 조직은 임원회에 일임하였다. 그리고 제주노회(노회장 김대룡 목사)가 청원한 교단 설립 제60주년 기념교회설립을 허락하였다.

 

 

8. 교단 설립 60주년 기념행사(2012년 6월 14일)

 

   교단 설립 6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위원장 정근두 목사)는 “6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 과거를 돌아보며 교단 설립 이후 60년간 하나님께서 교단에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며, 그동안의 사역을 정리하는 뜻과 현재 교계와 사회를 향한 감사의 섬김을 다짐하며 또 미래를 향하여 다음 세대 양성과 기념교회 개척을 행사내용으로 2012년 8월 15일(수요일)에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에서 대회를 개최하려고 준비하였으나, 사정이 변경되어 2012년 6월 14일(목) 오후 1시-5시에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약 13,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게 되었다.

   제62회 총회(2016년 9월)는 다음과 같이 교단설립 60주년 기념행사 보고를 행사추진위원회(위원장 박정원 목사)에게서 받았다. 즉 2012년 6월 14일(목) 오후 1시-5시에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약 13,000명이 참석한 행사는 감사예배, 음악회, 역사의 발자취, 섬김과 봉사(장기기증 협약식, 헌혈증서 전달, 탈북자 교회 지원)로 이어졌으며, 기념사업으로는 교단 내 미조직교회 실태조사와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드림학교 지원을 하고, 또 기념교회 개척기금(약 9천만 원)을 마련하였다는 보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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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교단 설립 70년을 맞는다. 과거에 어떻게 교단 설립과 관련하여 행사를 해왔는지를 간단하게 살폈다. 다가오는 교단 설립 70년을 어떻게 기념하는가 하는 문제는 이제 우리에게 달려 있다. 단순하게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기념행사, 잠시 반짝이는 행사를 하는 것에 치중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전국교회가 교단 설립의 본래 정신인 진리운동, 개혁운동, 항의 정신으로 돌아갈지를 염두에 두고 지난 역사를 재평가하며 앞으로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다짐하며 70년 행사를 맞이하면 좋겠다. 약 20년 전 교회 50주년, 희년을 거룩하게 한 행사를 치른 직후에 교회가 수치스러운 바벨론 포로를 경험하였으나, 지금까지도 왜 그러한 일을 겪었는지 총회가 결정한 관련 백서를 발간하지 못하고 그 원인을 아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지금이라도 속히 이 일을 추진해야 한다. 70년은 포로 생활이 끝나고 회복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기쁨의 시간이지만, 지난 과거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회개 없이는 주님은 결코 우리에게 진정한 회복을 주시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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