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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기사는 성령론입니다. 시대마다 신학주제에 대한 관심이 달라졌는데 현대는 성령론이 가장 핫한 이슈입니다. 오순절운동과 오순절파 교회의 거대한 성장이 성령론을 뜨거운 이슈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한편, 불건전한 성령운동과 은사운동이 교회를 망치거나 신앙생활을 왜곡시키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에 바른 성령론 정립이 필수적입니다. 성령을 아는 지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보증해 주시고, 최종구원의 날까지 우리를 지키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 편집장

 

 

그리스도와 성령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성령의 열매이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열매이신 성령-

 

 

성희찬.jpg

 

성희찬 목사

(마산제일교회) 

 

 

 

들어가는 말: 오늘날 교회에서 성령이 경시되거나 오해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성령이 역사해서 금가루가 뿌려지고 사람이 쓰러지고 기이한 치료가 나타난다며 상당수의 교인들이 혼란에 빠지기도 하였다. 이를 성령의 나타나심, 성령의 나누어주심이라고 하고 초대교회의 역사를 재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성령에 대한 이 같은 태도는 교회역사에서 항상 있어왔다. 고대 교회 뿐 아니라 500년 전 종교개혁 당시에도 있었다. 당시 로마교회는 성례를 통해 자동으로 성령이 임한다고 가르쳤고, 과격한 개혁을 주창한 재세례파는 교회의 직분과 제도는 성령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들은 소위 영파, 신령파였다. 그릇된 성령운동은 이 시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릇된 성령운동을 보면 성령의 총괄적인 사역에 대해서 무지한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성령의 창조와 재창조의 사역이나 회개와 성화의 사역, 심지어 직분과 교회 가운데 일하시는 성령에 대해서는 거의 편향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이들이 성령운동을 말할 때 초대교회의 역사를 예로 제시하지만 사실 초대교회에 임한 성령의 역사를 보면 아주 다양하고 총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거기에는 성령의 역사로 회개와 성도의 교제, 사랑의 역사, 전도의 열매, 직분이 세워지는 일들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성령을 말할 때 여기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배제시킬 수 없다. 그리스도와 성령은 서로 분리할 수 없거나 이 둘을 동일시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와 성령은 도대체 서로 어떤 관계에 있을까? 헤르만 리델보스(H.N. Ridderbos)가 그리스도와 성령의 관계에 대해 아주 분명하게 지적하였다. 즉 그리스도와 성령의 관계는 추상적인 개념이나 삼위일체의 관점이 아니라 구속사(救贖史)와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하였다. 퍼스테이흐(J.P. Versteeg) 역시 성경은 오직 구속사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와 성령의 관계를 한 노선이 아니라 두 노선에서 설명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즉 첫째 노선은 성령이 주체가 되고 그리스도가 대상이 되는 노선이며, 둘째 노선은 그리스도가 주체가 되고 성령이 대상이 되는 노선이라고 하였다.    

 

 

구약성경: 성령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의 열매이다.

 

   구약성경은 그리스도를 증거 할 때 어떤 분으로 말씀하고 있을까? 무엇보다도 성령이 임한 자, 성령이 부어진 자로 증거하고 있다. 다음을 보라: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이사야 11장 2절)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이사야 42: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이사야 61:1)

  

   장차 구원의 시대가 올 때에 그리스도 외에는 성령이 이렇게 임할 자가 없다. 위 말씀은 모든 신자에게 주실 성령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에게 임할 성령을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가 과연 성령이 임하고 성령이 부어진 자로 오셨는가? 그렇다. 마태복음 12장 17절은 위에서 언급한 이사야 42장 1절을 인용하고 있으며, 누가복음 4장 17절 이하는 이사야 61장을 인용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구원의 시대를 가져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이 임한 자, 성령이 부어진 자로 약속의 성취로서 오셨다. 

 

   로마서 1장 4절 역시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있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하셨고, 공사역을 앞두고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셨으며, 모든 사역에서 성령으로 충만하셨다. 이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무이한 성령의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구약교회의 성도가 기다린 구원의 시대가 임하였고 또 종말(말세)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님은 성령의 열매라 할 수 있다.

 

 

신약성경: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령에게로: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열매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신자에게 성령을 보내셨다!

 

 위 약속은 사실 구약성경에서 이미 예언되었다: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이사야 44:3)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요엘 2:28)

 

 특히 신약성경 바울서신과 요한복음에서 여러 곳에서 예언되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한복음 7:39)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한복음 14:26)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한복음 20:22)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로마서 8:9)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빌립보서 1:29)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라디아서 4:9)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린도후서 3:17)

 

   무엇보다 요한복음 16장 13-14절은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와 성령의 관계를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여기 나오는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는 무슨 뜻일까? 성령은 나를 향하시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를 그렇게 하신다는 뜻이다. 즉 성령은 예수님을 통해서 나에게 오신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현실을 보라.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것이 드러나지 않는 소위 성령의 역사가 얼마나 많은지. 성령의 역사가 있다는 거기에 과연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사랑, 은혜, 그리스도의 복음과 진리가 얼마나 드러나고 있을까?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는 성령의 역사가 얼마나 많은지.

 

   개혁가 칼빈은 그의 저작, 기독교강요 제3권 1장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기 자신과 효과적으로 연합시키시는 끈이시라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것이 되시고 또한 우리 속에 거하셔야만 비로소 그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신 축복들을 우리와 함께 나누실 수 있게 된다. 칼빈은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를 가리켜 “우리의 머리”(엡 4:15)요, 또한 ”많은 형제 중의 맏아들“(롬 8:29)이라 부르며 우리에 대해서는 그에게 ”접붙임“이 되었다고 말하며(롬 11:17), 또한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갈 3:27)고 말씀하고 있다고 하였다.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과 소교리문답 역시 그리스도의 은혜와 축복이 성령의 신비한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적용되고 전달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하였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획득하신 은덕들에게 어떻게 참여하는 자가 됩니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획득하신 은덕들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역을 통해 은덕들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대교리문답 제58문답)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사신 구속에 어떻게 참여하는 자가 됩니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획득하신 구속을 자기의 성령으로 우리에게 구속을 효력 있게 적용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구속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소교리문답 제29문답)

 

   이와 같이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오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역사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에 집중하지 않는 것은 크게 그릇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예수님보다도 성부 즉 하나님 아버지에게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특히 현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하나님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성령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잘 모르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부 중심, 성령 중심의 신앙생활은 종교혼합주의로 갈 가능성이 많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성부 중심, 성령 중심의 신앙은 타 종교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예수님이 드러나지 않는 성령운동, 예수님을 통하지 않는 성부 중심의 신앙생활은 아주 위험하다.

 

 

그리스도는 성령과 동일시 할 수 없다

 

   그리스도와 성령의 관계가 이렇게 밀접하여 서로 분리할 수 없다면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곧 성령이시라는 말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고린도후서 3: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에서 말씀한 것처럼 그리스도는 부활 후에 항상 영으로만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다. 이는 큰 오해이다. 그리스도는 여전히 하늘에서 신성과 인성을 가지고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중보자의 사역을 하시고 있다(롬 8:34, 히 7:25, 8:1). 고린도전서 12:3은 그리스도와 성령을 동일시하는 이들에게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나가는 말: 예수님은 성령의 열매, 성령은 예수님의 열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기에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을 받는다(갈 3:2). 우리가 왜 성령을 구하는가? 그리스도의 것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모든 은혜와 은덕과 복을 얻기 위해서이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고 연합하여 우리가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모든 것이 나와 상관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성령을 분리하거나 혹은 동일시한다면 이 두 경우 모두에서 성령은 그리스도의 신격과 사역에서 분리되며, 또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복된 구원 역시 가능할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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