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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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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기사는 신론입니다. 교의학 각론은 주로 신론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신론이라고 하지만 삼위일체론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 다같이 유일신론을 가지고 있지만 너무나 다른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칼빈 선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사람을 아는 것이 연결되어 있고, 이 두 가지 지식이 가장 고상한 지식이라고 했습니다. 신이 없다고 하는 시대에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일까요? 하나님이 하신 일이 어떤 것이고, 하나님이 하실 일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 시대에 하나님은 어떤 의미를 줄까요? - 편집장

  

 

바람직한 창조 신앙

 

손재익.jpg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서론

 

   그리스도인은 매주 사도신경을 통해 “천지의 창조주”를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 창조를 중요한 고백으로 삼는다. 작정, 예정, 섭리, 그리스도 파송 등의 일을 하셨지만, 그 가운데 창조를 가장 대표적인 사역으로 여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이다(창 1:1; 시 33:6; 121:2; 146:6; 사 40:26,28; 42:5; 44:24; 45:7,18; 행 4:24; 엡 3:9; 히 11:3). 창조를 믿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없다.

   창조를 믿느냐를 넘어 어떻게 믿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도인만 창조를 믿는 것이 아니라 창조를 믿는 종교는 기독교 외에도 아주 많기 때문이다. 기독교 이단들도 모두가 창조를 믿는다. 로마 가톨릭, 유대교, 이슬람교도 창조를 믿는다. 신천지, 안상홍 증인회 등도 창조를 믿는다. 심지어 ‘증산도’도 창조를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조를 ‘어떻게’ 믿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은 창조와 관련하여 어떻게 믿어야 할까?

 

 

본론

 

삼위의 사역

   창조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 사역이다. 사도신경은 창조를 성부 하나님의 사역으로 돌린다(HC 제24문답).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창조의 주체는 성부 하나님만 아니라 성자, 성령까지 포함한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창 1:2; 욥 33:4; 시 104:30; 요 1:3; 고전 8:6; 골 1:16; 히 1:2; 계 3:14; WCF 4:1). 사도신경은 성부 하나님을 대표로 내세웠을 뿐이다.1)

 

아무 것도 없는데서

   삼위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는데서of nothing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어떤 소재를 가지고 창조하지 않으셨다. 창조하실 때 아무것도 없었고 오직 삼위 하나님만 계셨다. 삼위 하나님 외에 이 세상에 존재하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창조를 시작하심으로 삼위 하나님 외에 다른 무엇이 존재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가리켜 무(無)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라고 하는데, 이 표현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다.

   무로부터의 창조를 부인하면 하나님처럼 영원히 존재하는 어떤 것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독립성, 주권, 무엇보다도 오직 하나님만이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다는 생각에 대한 도전이 된다. 하나님 외에도 하나님처럼 자존한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이 되어 버려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파괴된다. 그렇기에 무로부터의 창조를 믿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믿음과 관련된다.

 

말씀으로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창세기 1:3부터 6,9,11,14,20,24,26,29절을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라고 되어 있다. 시편 33:6에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라고, 시편 33:9에는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라고 말씀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말씀’을 매개로 창조를 하셨다. 마지막 날 사람을 창조하실 때를 제외하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이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창조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전능성을 믿는 것임을 가르쳐 준다. 다시 말해 그저 말씀만으로도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다 만드실 수 있는 하나님의 전능성을(시 33:6,9) 믿어야 함을 말한다.2)

 

선한 창조

   하나님은 이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악을 창조하신 일이 없다. 선하신 하나님에게서는 선만이 나올 뿐이다. 악은 그분과 상관없다. 창세기 1:4,10,12,18,21,25,31에서 모세는 모든 창조물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하는데, ‘좋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토브는 ‘선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4:4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창조는 선한 창조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창조하신 적이 없다. 그렇기에 영은 선하고 육과 물질은 악하다는 이원론(영지주의, 플라톤주의)은 비성경적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원래는 선한 것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것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창조하셨다. 사도신경은 이 사실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니케아 신경을 비롯한 이후의 신조들은 이 사실을 직접 언급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는 천사도 포함된다(BC 제12조; WLC 제16문답). 사두개인들은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고 하는데(행 23:8), 우리는 그러한 자들의 거짓을 조심해야 한다.

 

자유로운 창조

   하나님의 창조는 하나님께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다. 하나님께서 누군가의 외압에 의해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유로운 뜻을 따라 하셨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 안하셔도 되었다. 창조를 하지 않으셨어도 하나님이시다. 오직 하나님의 자유로운 뜻에 따라 창조 하셨을 뿐이다.

   현대의 자유주의 신학자들 중에는 “하나님은 반드시 창조하셔야만 한다.”고 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 말은 틀린 말이다. 창조는 우연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필연적인 것도 아니다. 창조할 수밖에 없어서 창조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실 수도 있고, 안하실 수도 있는 분이다. 그렇다고 해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칼 바르트는 “하나님은 반드시 창조하셔야만 한다”는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실 수도 있고, 안 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을 창조하지도 않는 하나님을 참을 수 없다.”라고 했는데, 이 말 역시도 맞는 것 같지만 틀렸다. 앞부분은 맞지만 뒷부분은 틀렸다. 창조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창조라는 사역에 매인 분이 아니다. 삼위 하나님은 각각 자기의 사역에 매여 있지 않으시다. 다만, 본질과 삼위의 관계에만 매여 있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유로운 행위였다(계 4:11).

 

6일 창조와 창조시기 논쟁

   하나님은 이 세상을 6일 동안 창조하셨다.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만으로도 이 세상을 창조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은 6일 동안에 천지만물을 지으셨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한국교회 안에 기독 지성인들이 쟁점화 하는 창조시기 논쟁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들은 전통적인 창조를 믿는 자들을 비난하고, 창조과학회의 활동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과학지상주의를 슬그머니 내놓는다. 현대과학이 밝힌 대로 창조시기가 수백억년에 이른다고 본다. 심지어 어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를 하셨지만,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셨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아가 창조시기를 짧게 보는 사람과 창조에 관해 성경계시의 문자적 의미를 강조하는 자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무식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그들의 주장도 일면 맞는 부분도 있다. 예컨대, 일부 창조과학자들이 말하는 창조시기가 지금으로부터 6,000년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이러한 주장은 제임스 어셔(Bishop James Usher, 1581-1656)3) 감독이 성경의 족보를 통해 ‘신구약의 연대표’(Annales Veteris et Novi Testamentae, 1650-1654)를 저술하면서 성경의 족보를 단순히 계산하여서 “BC 4004년 10월 23일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라고 한 주장에 근거하는데,4) 이는 잘못된 전제와 주해에 근거한 것으로 오늘날 이렇게 믿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기독지성인들은 마치 한국교회 전체가 그렇게 알고 있다는 식의 정보 퍼 나르기를 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주장은 일부 극단적인 이들의 주장일 뿐 한국교회 전체의 오해가 아니다. 또한 어셔는 과학을 몰라서 그렇게 해석한 것이 아니라 성경해석에 있어서 미숙하여서 그러했을 뿐이며, 그가 창조시기에 대해서 그러했을 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기초가 된 ‘아일랜드 신앙고백서’를 작성할 정도로 성경을 잘 아는 자였다. 그렇기에 창조시기를 짧게 보는 사람들을 무조건적으로 과학에 무지하고 성경에도 무지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창조시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이 있다. 젊은 지구론(young earth creationism)과 오랜 지구론 (old earth creationism)이 있으며, 두 주장도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다양한 입장이 있다.5) 간략히 설명하면, 젊은 지구론은 지구의 창조시기가 1억 년 내외로 보는 입장으로 지구의 나이가 젊다는 이론이며, 오랜 지구론은 지구의 창조시기가 수십억 혹은 수백억 년에 이른다는 주장으로 현대 과학의 발달에 따라 생겨난 주장이다. 젊은 지구론의 논리 중 중요하게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실 때 1세의 아기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창조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할 정도의 장성한 상태로 창조하신 것처럼, 지구 역시 이미 처음 창조하실 때부터 오래 된 지구처럼 창조하셨기 때문에 오늘날 과학으로 지구의 나이가 오래된 것처럼 보여도 사실상은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성경은 두 주장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 다만 성경은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성경적 신앙인은 다른 것에 대한 관심보다는 하나님께서 6일 동안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4장 1절,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5문답,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9문답은 6일 창조를 직접 언급하고 있다. 이 고백이 과학이 발달되기 전에 작성된 것이라 할지라도 성경의 가르침을 복창(復唱)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현대 기독 지성인들 가운데 일부는 6일 창조를 믿는 자들을 가리켜 현대과학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에 대해 오도되지 말아야 한다. 현대 신학자와 목사들도 창조시기와 관련하여 다양한 입장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 논리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에는 이 세상을 창조하실 수 없는 무능한 분으로 이해하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으로 아무리 과학적(?)이라고 해도 받아들일 수 없다.

   성경의 진리를 과학으로 해결하려는 과학지상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창조과학회나 그들을 비판하는 현대 기독 지성인들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는 흔히 “그거 과학적으로 증명된 거냐?”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이 말 속에는 “과학은 무조건 믿을 만하다”는 ‘과학지상주의’가 깔려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이라는 용어는 ‘좋고, 합리적이고, 현대적’인 것으로 생각하면서, 과학적이지 않은 것은 구식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이 믿을 게 못되는 것으로 생각한다.6) 과학에 이러한 대한 신뢰는 1960년대 이후 급속도로 발전하는 현대 과학기술과 관련 있다. 이러한 과학지상주의는 자연주의 철학에 근거한 것이며, 과학은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다는 오해와 과학만이 객관적인 학문이라는 착각7)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과학은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 않는다. 형이상학적인 문제는 과학으로 설명 불가능하다. 특히, 기적은 과학으로 설명되는 순간 기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적은 과학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창조는 한편으로 기적이요 신비이기에 이는 과학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창조시기 문제는 그 자체로 하나님의 존재와 우리의 구원을 이해하는데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므로 의미 없는 소모적 논쟁으로 기독교 신앙을 대외적으로 폄하시킬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시기 문제를 성경에 명백히 밝혀두지 않으셨음을 생각하고, 나중에 하나님 아버지 품에 안겼을 때에 여쭈어보아도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창조, 믿음의 영역

   창조는 믿음의 영역이다. 오직 믿음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 지식이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욥 34:4-6,12). 최초의 사람인 아담도 하나님의 창조를 못 봤다. 그러므로 눈으로 보아야만 창조를 믿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창조는 오직 믿음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 히브리서 11장은 소위 믿음장으로 불리는데, 믿음의 조상들을 언급하기 전에 믿음을 창조와 결부시킨다.

 

히브리서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을 배제한 채 창조를 설명하려는 어리석음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창조만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배운 자나 배우지 못한 자나 읽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기록되었다. 21세기 대한민국처럼 문맹자가 거의 없고, 대졸자가 절반을 차지하는 시대를 위해서 기록된 것이 아니다. 과학을 모르고, 지질학을 몰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었다. 성경은 지성주의를 배격하지 않지만, 지성주의를 추종하지 않는다. 믿음으로 이해할 영역을 지식으로 이해시키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창조시기 문제는 젊은 지구론과 오랜 지구론으로 대립할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성경 계시에 충실해야 하며, 창조가 역사적 사실임을 증명하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창조에 대한 잘못된 견해는 단지 창조 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창조의 주체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견해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부인하는 신성 모독을 경계해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4장 제1절

   지금까지 우리는 창조에 관해 알아야 할 몇 가지 특성들을 생각해 보았다. 삼위 하나님께서 창조의 주체이시며, 아무 것도 없는데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보이는 것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창조하셨고, 선하게 창조하셨으며, 말씀으로 6일 동안에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이 모든 특성들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4장 제1절이 잘 설명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4장 창조에 관하여

 

1.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1)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power과 지혜wisdom와 선하심goodness의 영광을 나타내시려고manifestation,2) 태초에, 아무 것도 없는데서of nothing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보이는 것들이나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6일 동안in the space of six days, 모두 매우 좋게 창조하시기를 기뻐하셨다.3)

 

1) 요 1:3; 창 1:2; 욥 26:13; 33:4; 히 1:2   2) 시 33:5-6; 104:24; 렘 10:12; 롬 1:20   3) 행 17:24; 골 1:16; 히 11:3

 

 


1) 교회 역사 속에서도 창조의 사역이 삼위일체 하나님 세 위격 모두와 관련 있음을 가르쳐 왔다. 동방에서는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3~373)와 세 명의 갑바도기아 신학자들-바실(the Great Basil, 329~379),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 329~390), 닛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 330~394)-이 그렇게 가르쳤고, 서방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가 그렇게 가르쳤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는 “온 피조 세계는 삼위일체의 흔적(vestigium trinitatis)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2) 이승구, 『기독교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서울: SFC, 2004), 109.

3) 제임스 어셔(James Usher)는 1581년의 아일랜드 더블린(Dublin)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에 그는 교회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기로 결심했고, 주님께서는 그의 결심을 기쁘게 받으셨다. 그는 18세에 그 당시 세계의 유수한 대학 중의 하나였던 더블린대학에 입학했다. 20세에 그는 더블린에서 영국국교회(Anglican Church)의 부제와 사제(a deacon and priest)로 임명되었다. 그는 26세의 약관에 극히 도달하기 어려운 영예인 더블린 대학의 신학과 학과장이 되었다. 그는 1607부터 1621까지 교수로 봉직했고, 두 번이나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Trinity College)의 부총장을 역임했다. 그는 일찍이 학생 때부터 역사 과목에 뛰어났고, 20세부터 다음 20년 동안 그의 손에 닿는 모든 역사책들을 읽었다. 그는 교회 역사에도 뛰어났고, 사도시대 이후의 아일랜드 교회와 영국 교회를 다룬 방대하고 권위 있는 여러 권의 책들을 저술했다. 그는 1625년에 아일랜드의 영국국교회의 최고 고위직인 아르마 대주교(Archbishop of Armagh)에 임명되었다. 셈족 언어(Semitic languages)의 전문가였던 그는, 구약성경의 옛 히브리어 본문의 신뢰성을 논증했고, 아시아에서의 그리스도교와 성경과 관련된 많은 주제들을 가지고 광범위한 저술활동을 했다.

4) Usher는 베드로후서 3:8의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라는 말씀을 기초로 이 세상의 총 연수가 6,000년으로 보고 A.D. 1996년에 주님이 오신다고 해석하였다. J. Usher, Annales Veteris et Novi Testamenti (1650-1654)의 것을 Roland K. Harrison,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69), 류호준, 박철현 옮김, 『구약서론 (상)』(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3), 188에서 재인용; Eugene H. Merrill, An Historical Survey of the Old Testament (Phillipsburg: P&R, 1966), 96; Grudem, 『조직신학 (상)』, 399.

5) 창조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J. P. Moreland and John Mark Reynolds ed., Three Views on Creation and Evolution (Grand Rapids: IVP, 1999), 박희주 옮김, 『창조와 진화에 대한 세 가지 견해』(서울: IVP, 2001)를 보라.

6) Lee Strobel, The Case for a Creator (Grand Rapids: Zondervan, 2004), 홍종락 옮김, 『창조설계의 비밀』(서울: 두란노, 2005), 25.

7) Phillip E. Johnson, Defeating Darwinism by Opening Minds (Downers Grove: IVP, 1997), 과기원 창조론 연구회 옮김, 『다윈주의 허물기』(서울: IVP, 200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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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병훈 2017.11.27 22:59
    목사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매우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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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정론 2017.11.29 00:58
    감사합니다. 우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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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교회 건설 두 번째 기획기사는 ‘우리가 세우려는 개혁교회’입니다. 요즘 시대는 교회론의 혼란이 극심한 시대입니다. 교회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을 하고 있고요. 개혁한 교회는 삼위 하나님께서 택하신 주의 백성들을 말씀과 성령으로 불러 ...
    Date2018.07.09 By개혁정론 Views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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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우리가 세우려는 교회] 교회의 4가지 속성

    개혁교회 건설 두 번째 기획기사는 ‘우리가 세우려는 개혁교회’입니다. 요즘 시대는 교회론의 혼란이 극심한 시대입니다. 교회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을 하고 있고요. 개혁한 교회는 삼위 하나님께서 택하신 주의 백성들을 말씀과 성령으로 불러 ...
    Date2018.07.06 By개혁정론 Views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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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우리가 세우려는 교회] 교회 세우기, 어떻게

    개혁교회 건설 두 번째 기획기사는 ‘우리가 세우려는 개혁교회’입니다. 요즘 시대는 교회론의 혼란이 극심한 시대입니다. 교회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을 하고 있고요. 개혁한 교회는 삼위 하나님께서 택하신 주의 백성들을 말씀과 성령으로 불러 ...
    Date2018.07.02 By개혁정론 Views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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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그리스도인의 혼인] 혼인과 교회

    혼인과 교회 : 혼인하는 청년들을 위한 교회의 역할 조재필 목사 (부산 연합교회) 오늘날 혼인은 다분히 사적인 문제로 여겨집니다. 혼인을 결정하는데 개인과 개인의 의사가 거의 유일한 토대입니다. 과거에는 혼인이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는 전통적 사고...
    Date2018.05.28 By개혁정론 Views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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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기획-교회개척프로세스] 교회개척사례

    이번 기획기사는 교회개척 프로세스입니다. 지금도 교회개척이 필요하냐고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교회를 개척할 필요가 없다고요. 있는 교회도 정리해야 할 판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이제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
    Date2018.05.17 By개혁정론 Views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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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기획-교회개척프로세스] 개척하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이번 기획기사는 교회개척 프로세스입니다. 지금도 교회개척이 필요하냐고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교회를 개척할 필요가 없다고요. 있는 교회도 정리해야 할 판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이제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
    Date2018.05.11 By개혁정론 Views2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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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기획-교회개척프로세스] 목사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들: 몸보다는 마음, 결과보다는 동기와 과정!

    이번 기획기사는 교회개척 프로세스입니다. 지금도 교회개척이 필요하냐고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교회를 개척할 필요가 없다고요. 있는 교회도 정리해야 할 판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이제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
    Date2018.05.07 By개혁정론 Views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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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기획-교회개척 프로세스] 교회 개척에서 재정은 현실이다

    이번 기획기사는 교회개척 프로세스입니다. 지금도 교회개척이 필요하냐고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교회를 개척할 필요가 없다고요. 있는 교회도 정리해야 할 판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이제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
    Date2018.04.25 By개혁정론 Views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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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기획-교회개척 프로세스] 교회설립까지 행정 및 법적인 절차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 기획기사는 교회개척 프로세스입니다. 지금도 교회개척이 필요하냐고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교회를 개척할 필요가 없다고요. 있는 교회도 정리해야 할 판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이제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
    Date2018.04.23 By개혁정론 Views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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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기획-교회개척 프로세스] 장로교 교회개척원리

    이번 기획기사는 교회개척 프로세스입니다. 지금도 교회개척이 필요하냐고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교회를 개척할 필요가 없다고요. 있는 교회도 정리해야 할 판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이제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
    Date2018.04.20 By개혁정론 Views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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