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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이번 기획기사는 '성경'입니다. 종교개혁의 구호 '오직 성경'은 우리의 구원과 삶에 관한 필요한 모든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확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중에서 사라지는 음성이 아니라 문자로 기록된 말씀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성경말씀이 시대에 제한되어 있다는 말이 난무하는 시대에 성경이 분명한지, 성경으로 충분한지 살피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편집장

  

 

성경에 대한 해석이 왜 이렇게 서로 다른가?

 

 

안재경.png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성경은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이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책들 중에 성경이 최고일 것이다. 기독교문화가 자리 잡은 나라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이들도 성경을 한번쯤은 보고자 하는 충동을 느낄 것이니 말이다. 작정하고 성경을 읽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성경의 일부분을 읊어대는 이들이 많다. 어떤 종교의 경전들보다도 성경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성경을 읽은 이들이 성경을 제각각 해석하는 것은 왜 그럴까? 일단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성경을 똑같이 해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성경을 읽을 때에 이미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읽기에 다 다르다. ‘성경만 읽는 사람은 성경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사실,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의 문제와 더불어 성경 자체의 문제가 있다. 성경이 문제가 많은 책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성경이 기록된 방식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경 해석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우선은 성경에서 찾지 말아야 할 것을 생각해 보고, 그 다음으로는 성경을 제대로 읽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을 제시하려고 한다.

 


1. 성경에서 찾지 말아야 할 것

1) 성경에서 무시간적인 진리를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무시간적인 진리가 기록된 책이 아니다. 무슨 말인가? 우리는 진리를 찾기 위해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닌가? 맞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을 무시간적인 진리가 담긴 책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무시간적인 종교경전이 아니다. 우리는 구약과 신약의 엄연한 차이를 잘 알아야 한다. 많은 이단들은 구약성경조차도 문자 그대로 지키려고 하는 것 때문에 생겨난다. 지금도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안식교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성경이 무시간적으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에 하나님께서 일하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성경이 역사를 다루고 있고,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일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무시간적인 진리를 선포하는 분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일하는 하나님이시다.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이 달라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다른 하나님이 아니라 동일한 하나님이시기에 성경은 통일성이 있다. 성경을 무시간적으로 보는 것, 그래서 통일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그 생생함을 제거할 수밖에 없다.

2) 성경에서 모범을 찾는 일에 골몰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도덕적인 교훈을 주기 위해 기록된 책이 아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우리는 그런 인물들의 행위를 바라보면서 본받을 만한 것이 무엇인지 찾는다. 아니면 본받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애쓴다. 이게 전형적인 도덕적인 접근이다. 성경인물들이 구체적으로 행한 것이 있기에 그것에 대해 성경이 판단하는 것이 있고, 그 판단에 대해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는 말씀으로 삼을 수 있다. 성경은 우리의 교훈을 위해서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인물들의 도덕성을 본받으라고 기록된 책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통해 영생을 찾았는데, 그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었다(요 5:39). 우리는 성경인물들을 본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리스도를 사모했다는 것을 본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성경을 통해 유익을 얻을 뿐만 아니라 구원을 누릴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범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반복될 수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우리의 구원이 되었고, 그 결과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말이다.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면 성경은 도덕교훈의 모음집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성경을 아무리 열심히 읽더라도 참 구원에 이를 수 없다. 하나의 종교인이 될 수밖에 없다.

3) 성경을 세상사에 대한 증거구절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모든 사건에 대한 증거구절로 활용되는 말씀이 아니다. 무슨 말인가? 신자라면 누구든지 성경을 읽을 때에 그 하나님께서 그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찾아내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음성과 뜻을 들으려고 해야 하지 않는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의도가 너무 강해서 모든 성경말씀을 현실의 문제에 대한 ‘증거구절’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성경을 읽는 이유는 자신의 현실에 대해서 답을 얻기 위해서이다. 자신의 현실에 답이 되는 성경구절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 말씀을 찾았다고 하면 누구 뭐라고 하든지 그 성경구절을 앵무새처럼 외쳐댄다. 이런 태도는 소위 말하는 큐티(성경묵상)가 조장하기도 한다. 성경에서 내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주는 말씀을 찾는 것 말이다.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응한 말씀이 하나씩 다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성경이 분명히 우리의 구원과 삶에 대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우리의 구체적인 상황에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기 위해서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는 뜻이다. 누구하고 결혼해야 할지를 성경구절로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것이 그런 태도이다. 성경을 그렇게 대하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점치는 무당들이 태도와 다를 바가 아니다.

 

 


2. 성경을 제대로 읽기 위한 길

1) 신앙고백의 중요성

   성경은 머리가 좋다고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성경은 자기 혼자 머리를 싸매고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나는 오직 성경만을 가지고 읽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성경주의’야말로 문제이다. 학교에서도 교과서가 있고, 그 교과서를 해설해주는 참고서가 있다. 성경이라는 교과서를 제대로 해설해주는 참고서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이다. 성경을 해설해주는 주석서며, 성경해설서들이 수많이 많지만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이다. 우리는 고백을 통해 성경을 읽어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이 신앙고백서며, 교리문답을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경을 제대로 읽기 위한 도구를 만들어 준 것이다. 그들은 성경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 다양한 고백서들을 만들었다. 우리는 그 고백을 통해 성경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을 성경처럼 떠받들 이유가 없다. 우리는 고백서들이 성경을 제대로 요약하고 있는 한 그것의 도움을 받아 성경으로 늘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종교개혁자 루터의 고백처럼 교리문답의 학생으로 남아야 있어야 할 것이다. 사람은 종교적이기에 어떤 사람도 중립적인 태도로 성경을 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입장이 중요한 것이다. 고백이 중요한 것이다.

2) 교회의 중요성

   중세로마교회가 종교개혁자들이 각 나라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그들이 성경을 해석하기 시작하는 것을 매섭게 몰아쳤다. 라틴어라는 천상의 언어가 있고, 교회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데 어떻게 성경을 번역하고, 누구나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성경해석이 달라지면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사실, 권위있는 기관이 성경해석을 해 주면 그것만큼 편한 것이 없을 것이다. 이단이 될 이유도 없고, 성경을 읽으면서 골머리를 앓을 이유도 없다. 그러면 누가 성경을 해석해 줄 것인가? 중세로마교회의 주장으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교회의 중요성을 주목해야 한다. 성경은 개인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교회에 주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교회 안에서 읽어야 한다. 공동체적 성경읽기가 제대로 된 성경읽기이다. 신앙고백이 다르고, 교파가 다르면 성경읽기가 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좋은 교회에 속해서 공적으로 선포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신자가 성경을 잘 해석할 수 있다. 좋은 교회가 좋은 해석자이다. 어떤 신자도 교회를 떠나서 스스로 성경을 해석할 수 없다. 우리는 교회에 속해서 성경을 해석한다.

3) 순종의 중요성

   성경은 지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니다. 사실, 성경을 파악해 보겠다고 하는 태도가 문제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다. 그래서 큐티 책에 보면 ‘이 말씀에서 회개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이 말씀에서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를 묻는다. 틀린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한다. 성경은 순종하겠다고 하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우리 앞에 그 속살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든지 순종하겠다고 하는 태도를 가지는 자에게 비로소 그 속살을 드러낸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성경을 주신 것은 순종하라고 주셨기 때문이다. 순종하겠다고 결심하는 좋은 신자가 성경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 성경은 파악해야 할 말씀이 아니라 순종해야 하는 말씀이다(벧전 1:2). 자신이 누구보다 성경을 잘 알고 있다고 하는 사람이 정작 성경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종교개혁자들은 누구보다 성경을 열심히 연구했지만 그들은 순종하려는 주의 자녀들이었기에 성경을 제대로 발견하고 우리에게 전달해 주었다. 순종하는 마음이 없이는 지식으로 아는 성경말씀이 오히려 우리를 정죄하는 말씀이 될 것이다. 성경은 순종하려는 이들에게만 열리는 책이다. 과연 순종하려고 하는가?



   성경은 누구나 읽을 수 있다. 성경은 문자를 안다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 성경에 대한 해석이 왜 이렇게 다른 것인가? 성경은 공적인 말씀이다. 공개적인 말씀일 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말씀이다. 성경이야말로 가장 공적인 문서이다. 비밀스러운 것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성경에 대한 해석이 다른가? 다를 수밖에 없다. 성경번역이 통일된다고 해서, 어느 누가 해석지침을 내려준다고 해서 통일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기에 동일한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만 그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신앙고백을 통해서 순종하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경을 대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에 안다고 하는 그 말씀이 우리를 정죄하는 말씀이 될 것이다(롬 14:22).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자기들에게 율법이 있다고 자랑했지만 그 율법이 자기들을 정죄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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