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획기사는 총회상정안건분석기사입니다. 고신총회가 제70회총회를 조직총회(9/22), 부회모임(9/24), 정책총회(10/6)를 순차적으로 열기로 하고, 우선 조직총회는 온라인총회로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정책총회는 온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한계가 많기에 함께 모일 수 있을때까지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총회에 상정된 안건들을 제대로 논의하기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에 총회의 논의에 도움을 주고자 상정된 몇몇 안건들에 대해 분석해 봅니다. 모두글로 김중락장로께서 쓰 주신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주-
한국 장로회 교회의 생존조건
김중락 장로
(말씀동산교회)
장로교는 장로회 교회의 줄임말이다. 장로회 교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회의체 정부(government by assemblies)다. 총회, 노회, 당회로 구성되는 회의체다. 총회의 결정은 노회와 당회가 따라야 하고, 노회의 결정은 당회가 따라야 하고, 당회의 결정은 교인들이 따라야 하는 구조다. 장로회 교회는 이 교회조직이 성경에 규정된 것이고, 하나님이 제정한 법(Jus Divinum)이라고 믿는다.
한국 개신교는 절대 다수가 장로회 교회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 장로회 정부는 오작동 중이다. 장로회 교단마다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총회의 결정은 종종 노회에서 무시되는 경우가 있고, 노회의 결정을 그대로 따르는 당회는 거의 없는 편이다. 당회 역시 권위를 잃었고 교인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교회는 이름만 장로회 교회이지 실상은 상회가 권한을 잃었으니 독립교회라고 할 수 있다. 개별교회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독립적인 권한과 자유를 누리고 있다. 개별교회가 엉터리 같은 교리를 가르치거나, 심지어 가톨릭 의식을 행해도 노회가 이를 제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다보니 같은 교단 내에서도 교리와 말씀과 성례의 통일성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개별교회의 목회자가 명백한 잘못을 저질러도 교회법정인 노회는 치리보다는 이를 감추어주거나 보호하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치리회가 교회법정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되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인가? 그것은 상회가 가지는 권력이 어디에서 나왔는지에 대한 이해부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중세 정치사상사의 대가인 월터 울만(Walter Ullmann, 1910-1983)에 따르면 중세시대 정부의 -교회정부든 세속정부든 관계없이- 권력이 어떻게 정당화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론이 존재한다. 하나는 권력이 인민으로부터 나와서 정부에 주어졌다는 “통치의 상향이론(ascending theory of government)”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왕과 교황에게 주어져서 아래로 행사된다는 “통치의 하향이론”(descending theory of government)이다. 통치의 상향이론은 그리스-로마적 기원을 지니고 있다. 권력의 원천은 인민과 공동체에 있으므로 최고의 권한은 민회와 같은 인민들의 회의체에 있으며 왕과 지도자는 이 회의체에서 선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통치자는 인민으로부터 주어지지 아니한 어떠한 권한도 행사할 수 없으며, 잘못에 대한 책임도 인민에게 져야만 한다. 반면 하향이론에 따르면 법과 통치가 하나님이 국왕이나 교황을 통해 인민에게 행사하도록 주어졌다. 통치자는 하나님으로부터 권력을 부여받았고, 지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하나님으로부터 권력을 부여받았으니 책임도 하나님께만 진다는 것이다. 인민은 단지 다스림의 대상이었다. 중세유럽의 교회정부나 세속정부 모두 이 하향 이론에 기초하여 세워졌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종교개혁이후 칼뱅파가 제시한 것은 ‘언약통치이론’이라 부를 수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통치자는 즉위 시에 하나님과 인민 앞에서, 하나님과 인민을 위해 통치하겠다고 언약에 들어간 사람이다. 왕위즉위식이 바로 언약식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인민을 통해 왕에게 권력을 부여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만일 통치자가 언약을 위반하면 하나님은 인민에게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도록 허락하셨다. 칼뱅파가 전파된 곳에 저항사상이 발달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것이 바로 위그노와 청교도 그리고 장로회 교회의 정치사상이다. ‘언약통치이론’은 모든 권력이 하나님을 통해서 나온다는 점에서 하향이론이고, 통치자의 권력이 인민을 통해서 위로 주어진다는 점에서 상향이론이기도 하다.
장로회 교회의 치리회는 이 중 어떠한 이론에 근거하고 있을까? 장로회교회의 치리회도 기본적으로 권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장로회 교회의 정부이고, 이 정부는 언약통치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많은 장로회 교회 목사와 장로들이 치리회의 권한에 대해 하향이론에 호소한다. 그들은 상회의 권한이 성도들과는 무관하게 하나님으로부터 바로 주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권력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니만큼 치리회와 목회자의 권한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주장은 원칙적으로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교회정부에 권력을 부여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이는 오류이고, 큰 문제만 야기할 뿐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난맥상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장로회교회에서 치리회를 구성하는 이들은 ‘장로’들이다. ‘교육장로’와 ‘치리장로’가 치리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장로들로 치리회가 구성되니 ‘장로회’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교육장로와 치리장로는 근본적으로 교인들에 의해 선출되는 자들이다. 교인들의 선택을 받지 않은 자는 목사도 치리장로도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권력의 피라미드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교인들로 하여금 권력의 원천이 되게 하신 것이다. 당회는 교인들에 의해 구성되고, 노회는 당회원들로 구성되고, 총회는 노회의 대표자들로 구성된다. 교인들에 의해 시작된 권한이 위계를 따라 치리회에 주어지고, 치리회는 그들에게 권한을 준 교인들을 대상으로 권력을 사용한다. 이런 점에서 치리회는 권력의 상향구조와 하향구조를 모두 포함하는 언약통치이론에 기초하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국가나 대의제 국가에서 국민이 대표를 선출하고, 다시 그 대표들이 국민이 지켜야 할 법과 세금을 결정하는 구조와 같은 개념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장로회 정부의 개념과 동일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민주주의가 성경적인 정치제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혹자는 ‘신본주의’를 민주주의와 대립하는 것으로 운운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교인들을 통해 권력을 준다는 것을 부인한다면 그 신본주의는 성경적이 아니다. 신본주의는 민주주의를 인정하는 것이다.
한국의 장로회 교회는 이 부분에서 실패한 듯하다. 많은 목회자들이 하나님이 교인들을 통해 그들에게 직분을 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교인이 없으면 목회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목회지가 없는 이, 즉 교인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 이를 목사로 안수하지 않는 장로회의 원칙이 여기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목회자들이 교인들을 하나님께서 주신 권력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할 때, 그리고 권력의 상향이론을 무시고 하향이론만 강조할 때 나타나는 것은 권위주의와 성직주의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당회가 교인들에게 군림하고, 노회가 당회 위에 군림하고, 총회가 노회 위에 군림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한국의 치리회들이 교리의 순수성을 지키고 복음을 전파하고 사회와 교인들을 섬기기보다는, 목회자들의 노동조합처럼 바뀌어 각자의 이권을 위해 싸우고 자리다툼하는 것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치리회의 피라미드에서 하층에 위치한 이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총회와 노회 그리고 당회의 권위주의와 이기적인 모습에 신물이 난 교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신뢰를 거두는 것이다. 치리회와 교인들 사이에 신뢰가 사라지면 장로회 정부는 작동을 멈추는 법이다. 노회는 당회로부터 무시당하고, 당회는 교인들로부터 배척당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장로회 교회의 존재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한국교회의 상황이다.
무엇이 해결책인가? 장로회 교회의 지도자들이 그들의 어떤 권한도 교인들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인식이 선행조건이다. 이를 인정하는 방법은 치리회가 “그들만의 리그”로 존재하는 현재의 관행을 포기해야 한다. 총회와 노회가 교인들과 소통하지 않는 한, 총회와 노회가 교인들을 섬기기는커녕 자리와 이권다툼의 수단이 되는 한, 총회와 노회가 목회자들의 노동조합으로 존재하는 한 한국 장로회 교회는 회복이 어려울 것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치리회가 교인들과 함께 호흡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모든 치리회는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의 원천인 교인들을 위해 결정하고, 치리회의 결정을 교인들에게 소상히 보고해야 한다. 총회와 노회의 소식지도 좋고, 홈페이지도 좋다. 그들에게 교단이 함께한다는 인식을 주어야 한다. 이것이 한국 장로회 교회의 생존조건이다.
손재익 객원기자 (reformedj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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