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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기사는 '청년의 오늘과 내일'입니다. 작금의 청년들은 부모세대보다 못사는 유일한 세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청년세대의 오늘은 너무나 무기력하고, 미래는 암담하고 절망적입니다. 믿는 이들도 마찬가지이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더 절망적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청년들이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모든 책임을 기성세대에게 돌리면서 분노하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작은 틈이라도 만들기 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청년의 오늘과 내일을 위해 함께 마음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 편집자 주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대화와 토론의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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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복 목사

(세종시장로교회 담임)

 

 

 

서론

 

   정치와 신앙의 문제는 매우 해묵은 과제이다. 어떤 사람이 두꺼운 정치 신학책과 여러 가지 정치학 교과서를 탐독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정치적 의견이 바를 것이라고 여길 수 없다. 정치적 입장은 어떤 아슬아슬함이 있을 수 있다. 정치적 이야기를 하다가 다툴 위험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교회의 영역에서 정치적 토론을 하는 것에 대하여 난색을 표시한다. 실제로 교회가 정치적 의제를 내세울 때에는 위험한 측면이 존재한다. 최근에 개혁정론에서는 [교회의 정치화, 위험하다]는 기획 기사를 연재한 바 있다.

 

   교회의 정치화는 위험하다 하더라도, 정치적 사안에 관한 대화와 토론조차 그만둘 수는 없다. 정치적 사안에 관한 대화와 토론은 마치 비무장지대에서 지뢰를 제거하는 것과 같다.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정치적 토론이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은 교회에서 자유롭게 정치적 이야기를 얼마든지 해도 좋다는 주장만큼이나 어리석다. 사실 어떤 정치적 의제에 찬성하거나, 혹은 반대하거나, 혹은 대화하지 않고 침묵하는 행위조차 이미 정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화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의 양식은 늘 정치와 연결되어 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나, 외교 정책, 혹은 교육 정책에 대하여 찬성하거나, 반대하거나, 혹 침묵한다 하더라도 이미 그 문제에 발을 담그고 있다.

 

   물론 교회 안에 정치 선동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그런 의미는 아니다. 다만 성도들의 바른 정치적 대화와 토론을 피할 수만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개혁정론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동시에 이 사회의 시민으로서 어떻게 투표해야 하는지, [총선]에 대한 기획 기사도 연재한 바 있다. 이 기획을 통해 극단적인 견해들을 경계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은 장려하고자 했다.

 

   기획기사를 통하여 이미 언급한 사안을 몇 가지 말하자면, 교회는 이 세상에서 생각하기 어려운 상상력을 성도들에게 불어 넣는 일을 할 수 있다(“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상상과 정치참여” 참조).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갖지 못한 특별한 상상력의 토대를 가지고 있는데, 바로 말씀과 성령이다. 이것은 교회가 가진 무한한 정치적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성경‘만’ 가지고 있지는 않다. 교회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떤 정치인을 지지하고, 어떤 정책을 지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도 얻을 수 있다. 진보의 가치도 발견할 수 있고, 보수의 가치도 발견할 수 있다(“하나님 나라, 체제 그리고 4.15총선” 참조).

 

   그런데 현실을 되돌아보면 어떤가? 정치적 대화와 토론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하소연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보수와 진보의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서로 내편 니편 하는 상황 속에서 마음이 답답한 청년들이 많아지고 고민은 점점 더 깊어져간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먼저 필요한 것은 건강한 정치적 대화와 토론이다. 그런데 정치적 대화와 토론에는 반드시 기초가 필요하다. 이 글은 그 기초가 무엇인지 다루고자 한다.

 

 

세상 권위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

 

   신자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이 세상을 살아간다. 신자의 삶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랑하라는 계명은 포괄적인 명령이긴 하지만, 십계명을 통해 우리는 그 구체적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정치적 대화와 토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글에서는 정치적 대화와 토론의 기초로서 5계명을 주목해 보고자 한다.

 

   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이다. 하지만 5계명의 대상은 단순한 생물학적 부모만은 아니다. 5계명은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권세와 권위의 관계 속에서 공경과 순종의 태도를 나타낼 것을 명령한다. 우리는 가정에서는 부모를 공경하고, 교회에서는 직분자를 부모처럼 공경하고, 직장에서는 고용주를 공경하고, 사회에서는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국가 공무원이나, 선출직 공무원을 공경하라는 의미로 5계명을 확장시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모든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말씀은 5계명 이해의 기초이다. 이미 세워진 법과 제도, 국가 공직자들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이 모든 대화와 토론의 출발이어야 한다. 특히 로마서 13장 1절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고 가르친다. 위에 있는 권세들은 국가 공직자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이자 일꾼들(롬 13:4, 6)이다. 그런데 이 기초적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대화와 토론의 가장 기초적인 원칙은 하나님께서 위에 있는 권세자들을 통하여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다. 비록 존경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국가 공직자에 대해 이야기하더라도, 우리는 그의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정치 혐오는 확실히 그리스도인이 취할 자세는 아니다. 확실한 근거 없이 국가 공직자를 비난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의 대화와 토론은 확실히 네거티브 공세가 난무하는 세상의 정치적 토론과 달라야 한다.

 

   왜 이 기초를 모두가 인정하지 않을까? 국가 공직자 역시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을 통해 세상을 다스리신다. 하나님께서 왜 그토록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통해 이 사회를 다스리시는지 우리는 다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그 이유를 인내를 가르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내 위에 있는 모든 권위에 모든 공경과 사랑과 신실함을 나타내고 그들의 모든 좋은 가르침과 징계에 대해 합당한 순종을 하며, 또한 그들의 약점과 부족에 대해서는 인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손을 통해 우리를 다스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식은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정치적 대화와 토론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분명 정당한 권위에 대하여 순종해야 할 임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공통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심지어 악한 권위에 대해서조차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인내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건전한 비판과 합법적인 저항

 

   물론 위에 있는 권위자의 명령에는 무조건적인 순종을 해야 한다고 하면 그 이상의 대화와 토론이 무의미한 것이 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무조건적인 순종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 그친다면, 기독교는 금새 권력을 유지하는 통치 도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국가 공직자에게 권위를 주신 목적을 사도 바울은 ‘선을 장려하고 악을 벌하여 질서를 세우는 것’이라고 규정한다(로마서 13:3-4). 이 정치 본연의 임무를 기억하고,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우리 스스로의 지평을 확장시키고, 우리 자녀들에게도 생각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정치 본연의 기능을 모색하는 대화와 토론이 교회 안에서 필요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정부가 악한 일을 하도록 요구할 때에는 그것을 거절하고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권위자 위에 계심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권위를 인정하는 이유가 하나님이라면, 권위에 대한 불복종과 저항의 이유도 하나님이어야 한다.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권위를 세우시는 분임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비판의식도 함양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근대사를 되돌아 볼 때, 우리 국민들이 참으로 오랜 세월동안 잘못된 권위와 싸워야만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 할아버지 세대는 일본의 제국주의 세력과 싸워야 했다. 지금도 위안부 할머니들은 악한 일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국가 권력과 싸우는 중이다. 또한 국가 권력을 침탈하려는 북한 공산당과도 싸워야 했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부정선거로 권력을 유지하려는 부패한 이승만 정권과도 싸워야 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불의한 권력과 싸우다가 희생당했다. 이후에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 독재가 있었다. 쿠데타로 국가 권력을 침탈한 전직 대통령은 아직까지도 건강하게 지내면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불과 몇 년 전에도 우리 국민들은 불의하게 권위를 남용하는 국정농단 세력과 싸워야만 했다. 지금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합법적인 정부가 세워져 있지만 아직도 많은 영역에서 그와 유사한 위법한 권세의 사용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이 모든 정치적 사안은 결코 교회와 동떨어진 일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그동안 교회는 사회 정의를 세우기 위한 대화와 토론을 하지 못했다. 무엇이 정의인가 라는 논의조차 바르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로마서 13장의 말씀을 절대적인 순종의 원리로 이해하거나, 혹은 아예 독재 정권을 옹호하기 위하여 이용하며 침묵을 미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정치적 행동만을 강조하는 극단에 치우치기도 했다. 서로를 악으로 규정하며 대화와 토론의 기회로 삼지 못한 것이다. 특히 보수 교단에 속한 교회는 악한 정부와 독재자를 비판하지 못했다. 권위에 순종하라고 말하는 사람은 반드시 권위의 잘못된 사용에 대하여 비판하는 반대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다시 대화와 토론의 자리를 모색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회 성도들 사이에 건강한 대화와 토론이 일어나야 한다.

 

   물론 교회에서는 다른 성도들을 향해 혁명에 참여하라고 선동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정부에 대한 저항 정신은 그리스도인의 덕목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대화와 토론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일은 지금 시작해야 한다.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사람들, 국가의 불의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우리 모두가 지금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또 합법적인 저항의 방법이 있다면 그 일에 동참할 수도 있다. 더 이상 그와 같은 국가 폭력이나 권위의 남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작은 일에 힘을 보탤 뿐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서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해야 할 것이다.

 

 

선한 양심

 

   이렇게 대화와 토론을 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정치적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나, 신학자들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모든 사람이 대화와 토론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선한 양심을 장려하기 위해서이다. 성경은 세상에서 신자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살아갈 것을 강조한다. 정치적 대화와 토론을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로 ‘선한 양심’을 세우는 것이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도 다양한 정치적 양심을 가지고 있다. 물론 자신에게 유리한 경우에는 양심적인 행동을 강조하고,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내로남불 할 수 있다. 물론 양심이 다른 사람보다 높아서 매우 희생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선을 장려하고 악을 억제하는 그 시대의 법과 도덕이 사람들의 양심을 형성하는데, 때로는 평균적인 사람들의 양심의 수준보다 아주 높은 양심을 가진 사람이 등장하곤 한다. 이처럼 높은 양심을 가진 사람은 낮은 양심을 가진 사람이 있을 때, 정치 영역에서도 자정효과가 일어난다. 역사 속에서 이런 일들은 종종 일어난다. 그런데 이것은 교회 안에서 일상이 되어야 한다.

 

   선한 양심은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특별한 선물이다. 물론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 선한 양심을 가지도록 격려해야만 한다. 베드로전서 3:16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모든 성도들을 향하여 이렇게 권한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세상 사람들의 양심은 대부분 악을 행하지 않는 것에 그친다. 그것도 악을 억제하는 대단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교회는 단순히 악을 억제하는 정도가 아니라, 선을 장려하는 양심을 가지도록 하는 기관이다. 복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복음 전파를 통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당장의 보상이 없더라도, 오히려 고난이 예상되더라도 선한 일에 힘쓰며 살아가도록 장려해야 한다. 정치적 대화와 토론의 목표는 바로 이런 선한 양심을 위한 것이다.

 

 

결언

 

   오늘날 교회가 오히려 세상의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소위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을 듣고 있다. 그렇다고 세상에 무관심할 수 없다. 세상에서 꼭 필요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대를 잘 알아야 한다. 물론 정치적 대화와 토론을 한다고 교회가 곧바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험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정치적인 대화와 토론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는 해결책이 없다는 것일 수 있다. 결국 복음을 더 열심히 전해야 한다는 식상해 보이는(?) 당연한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내하면서 정치적 대화와 토론을 지속해야 한다. 먼저 세상의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고, 선행을 장려하고 악을 벌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서로 다른 의견과 비판점들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더 높은 양심을 가지도록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서로를 권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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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표현’ 못지않게 중요한 것... 2
삼일운동 100주년 기념, 빌린 돈부...
실력에 속지 말라
[사설] 남북정상회담에서 평화협정... 1
칼럼
가정 예배: 청교도로부터 배우기(2)
가정 예배: 청교도로부터 배우기 (1)
우리는 실천적 아르미니우스주의자...
[해외칼럼] 편향된 선지자, 제사장, 왕
과학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1
하나님 없이 우리는 선할 수 있는가
예배를 통해 도르트 총회 400주년 ...
도르트 신경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도르트 신경과 그 역사적 배경
[해외칼럼]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의 삶
기고
총회재판국 판결에 나타난 절차적 문제 2
정부의 교회 소모임 금지명령은 정...
코로나 19 사태와 이에 따른 목회환...
코로나 사태, 교회의 체질을 근본적...
“인터넷 성찬”이 가능한가?
코로나19에 대해 전문가에게 묻다
그 무엇도 방해하지 못하는 복음
국가적 비상상황과 공예배에 대한 ...
성경이 나를 읽어내고, 나의 삶으로...
네덜란드 자매교회 총회를 참석하고
논문
장로교 정치원리 하에서의 각종 단...
목사와 장로, 그 역할과 관계와 갈...
성경적 장로교 정치원리 (서울포럼 ...
[논문] 작은 교회 성도들은 행복한가?
한국 장로제도의 반성과 개혁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유산과 한국...
장로회정치원리에 비추어 본 노회 실태
고령화 시대, 선교현장을 섬기는 교...
개혁주의 교회설립에 대한 새로운 비전
KPM선교의 내일을 향한 준비 (김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