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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글은 필자 성희찬 목사가 <바른 신앙> 2011년 7월호에 기고한 글을 일부 편집 및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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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찬 목사
마산제일교회 담임목사
예장 고신총회 헌법해설위원회 (서기)


최근 한국교회에 교리공부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다. 아직도 소수이지만 교리를 공부하는 교회가 점점 늘어가고 있고, 주로 목회자와 후보생들이 애독하는 <목회와 신학>을 비롯하여 기독교 관련 잡지에서 심심찮게 교리를 강조하는 글이 실리고 있다.

지난 1980년부터 성행한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이 성도의 신앙생활에 여러모로 유익을 가져왔다고 할지라도 이제 서서히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일까? 무엇보다 그 배경에는 성행하는 이단의 공격과 도를 넘는 은사운동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긍정적인 배경으로는 보다 성숙하고 균형이 잡힌 신앙생활을 하려는 갈망과 상대주의 시대에서 기독 신앙을 분명하고 견고히 하려는 갈망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바람이 그냥 스쳐가는 바람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차제에 본 글은 교리공부의 의의와 방법에 대해서 잠시 생각하고자 한다. 


1. 이런 이유로 교리공부를 한다

1)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1563년) 서문이 말하는 교리공부의 이유

“경건한 성도들은 모두 교회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집과 학교와 교회에서 자기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가르쳐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녀들에게 제때에 유익한 교리를 가르치지 않으면, 그 교리를 행하지 않게 되고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부패성이 급속히 그를 장악하여 마침내 교회와 국가에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강조하시며 부모에게 이것을 지시하셨기 때문이다. 특별히 다음의 말씀에서 볼 수 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6-7).

셋째,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할례를 받은 후 성장하여 이해력을 가지게 되었을 때 언약의 표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은 것처럼, 우리의 자녀들도 이와 같이 그들이 받은 세례와 관련하여 또 기독교의 신앙과 회개에 대하여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는 장차 이들이 교회 앞에서 자기들의 신앙을 고백하고 주의 상으로 나갈 수 있기 위해서이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크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위해서이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우리 안에 있는 부패성과 악을 제어하기 위하여, 둘째, 자녀의 경우 세례 이후 바른 고백으로 성찬에 나아가기 위해서, 세례신자의 경우 세례의 바른 의미를 깨닫고 성찬에 가기 위해서이다. 

2) 모든 성경과 교리공부

오직 성경(Sola Scriptura)과 더불어 모든 성경(Tota Scriptura)은 개혁주의에서 중요한 원리이다. 그런데 교리를 공부하는 것은 모든 성경을 온전히 아는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대개 성경을 공부할 때 자기의 관심사나 한계,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위험이 있다. 심지어 설교자조차도 개인의 한계와 성향에 국한되어서 성경본문을 확정하여 설교할 때가 있다. 바울 사도가 이야기한 ‘하나님의 모든 도(道)’를 전하고(행 20:27), 또 주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기 위해서(마 28:19) 교리를 공부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3) 교회정치와 교리공부

종교개혁의 신앙 전통을 이은 개혁주의 문서 중에 <팔츠 교회정치>(1563년)라는 것이 있다. 팔츠는 당시 독일의 한 지방 이름이고, 이 지방의 프리드리히 선제후(1559-1576)의 주도아래 작성되었기에 그렇게 이름이 부쳐졌다. 이 사람은 <경건한 자>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당시 개혁교회를 위해서 크게 헌신한 자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팔츠 교회정치>라는 이름의 책에 우리가 잘 아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수록되었다는 점이다. 어떤 이는 이로써 팔츠의 종교개혁이 완성되었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사도신경과 주기도, 십계명을 해설한 것으로 질문과 대답의 형식으로 129문답에 걸쳐서 성경의 교리를 잘 요약한 신앙고백서이다. 

여기서 <교회정치>에 <요리문답>이 실렸다는 점에 주목하자. 팔츠교회정치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설교-세례-요리문답-성찬-권징-구제 등.

여기서 볼 수 있는 대로 교회정치의 목적은 목사의 설교가 전파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제일 먼저 설교가 나온다. 설교가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언약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언약의 표와 인인 세례가 나온다. 이를 위해 교리(=요리문답)를 가르친다. 이는 성찬의 상에서 이루어지는 예수님과의 교제를 목표로 한다. 그러나 성찬은 공적인 신앙고백 후에 주어진다. 즉 요리문답 교육은 세례에서 출발하여 성찬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점에서 교회정치는 교회 교육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 교회정치의 신앙고백적 성격과 동시에 신앙고백의 교회정치적 성격을 지적할 수 있다. 

교회정치에 요리문답이 실린 것은 무슨 뜻을 가지고 있을까? 이는 요리문답을 통해서 신앙과 교리를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첫째는 예배의 질서와 무관하지 않으며 나아가 교회의 바른 질서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 세례와 성찬 사이에 요리문답이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신자의 자녀가 (유아)세례를 받은 이후 성찬에 나가기 전까지 요리문답을 통해서 세례의 의미, 즉 성경을 요약한 복음의 약속이 무엇인가를 배우게 되고, 그리할 때 성찬 이후에 나오는 권징이 바르게 기능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모든 질서는 사실 구원의 질서에서 나온 것이다. 즉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고 구원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롬 10:9-10). 여기서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공적인 신앙고백을 가리킨다. 

이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미국교회의 전통을 따라서 '교회정치'라는 용어보다는 '교회헌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그 안에 교회정치를 비롯하여 권징조례, 예배지침을 수록하고 있지만 지금도 유럽과 세계의 개혁교회는 <교회정치> 에서 직분과 치리회, 예배와 권징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요리문답을 가르치는 것이 교회정치의 중요한 요소라고 본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 받고 있다. 교회에서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고전14:40) 하려는 것에서 요리문답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말하고 있다. 
(참고로 예장 고신 교회는 <교회헌법> 안에 교리표준으로서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을, 관리표준으로서 교회정치 / 예배지침 / 권징조례를 두고 있다)

왜 교리공부를 하며, 그 유익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교회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교리공부는 예배의 질서와 무관하지 않으며, 나아가 교회의 질서를 세우는 것이며, 신앙고백의 문제이기도 하다.

4) 교회의 일치와 교리공부

가끔 ‘고신교회에 속한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본다. 물론 우리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성령께서 하나가 되게 한 것을 힘써 지키기 위하여 서로 겸손히 행동하고 서로 용납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보다 더 근본적인 공동의 토대가 있다고 믿고 있다. 즉 동일한 신조라는 공동의 토대이다. 진정한 하나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일 것이다.

고신교회가 채택한 신조에는 삼대 공교회적 신경인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 외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이 있다. 누구나 성경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누구나 성경을 믿는다고 말하고, 누구나 성경을 읽고 성경을 묵상한다고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느 노선과 어떤 중심에서 성경을 보고, 읽고,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가 가진 공동의 신조는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를 이루어가는 데 중요한 잣대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교리공부를 하는 이유와 유익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진리 안에서 진정한 연합과 하나를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교회 뿐 아니라 집에서도 모두가 함께 한 목소리로 신앙고백을 하기 위해서 교리공부는 아주 중요하다. 

5) 우리 시대와 교리공부

우리 시대의 특성을 생각할 때 교리공부는 필수불가결하다. 잘 아는 대로 우리 시대는 감성주의와 반지성주의, 상대주의가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더욱이 이단의 거센 공격과 차세대 신앙 전수의 요청 앞에서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WCC 총회의 부산 개최와 한기총 사례 등을 두고 교회연합과 교단의 의미를 생각하는 때 교리공부는 우리에게 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2. 이렇게 교리를 공부한다

1) 머리와 가슴과 손을 사용하라

교리를 공부한다고 할 때 공부한다는 행위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이론적인 학습을 가리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신앙에는 여러 영역이 있다. 신앙의 내용에 대한 지식의 측면 이외에도, 신앙은 주관적으로 확신되어야 하기에 확신의 측면, 또 신앙의 체험, 신앙의 결과(열매), 신앙의 윤리적 측면 등이 모두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교리를 공부할 때 머리는 물론이고 가슴과 손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죽어 있는 문서를 공부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교리를 공부하는 우선 목표는 생활에서 나의 위로를 위해서이다. 이 점에서 교리공부는 실존적이다. 교리공부를 통해서 나의 비참과 죄를 더욱 알아가고,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를 알아가고, 구원 받은 이후 어떻게 감사하며 살 것인가를 알아가는 것이며, 이로써 주께서 주시는 위로를 내가 얻는 것이다.

2) 공교회가 채택한 신앙고백서를 충분히 활용하라

교리공부를 하려고 할 때 공교회가 확정한 신앙고백서를 활용하는 것, 이것만큼 좋은 자료가 없다. 장로교회의 경우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교리문답, 소교리문답(1643-1647)은 물론이고, 그 이전부터 서방교회가 채택한 에큐메니칼 신앙고백서인 사도신경, 니케아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을 공부하는 것이다. 특히 아타나시우스신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힘있게 고백하고 있는데 삼위일체 교리를 가르치고 확신을 주는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다. 이외에도 개혁교회에서 채택하고 있는 벨기에신앙고백서(1561년), 하이델베르크교리문답(1563년), 도르트 신경(1618-1619)이 있다. 벨기에신앙고백서 27-32조는 교회에 대해서 아름다운 고백을 하고 있고, 하이델베르크교리문답은 다음 세대 신앙교육을 위한 훌륭한 교재이며, 도르트 신경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 사람의 전적인 부패와 같은 개혁주의의 핵심 교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위에서 언급한 신앙고백서나 교리문답은 모두 성경을 잘 요약한 것이며, 사도신경과 주기도, 십계명을 중심으로 성경을 해설하고 있어서 성경과 설교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것들은 성경을 대체할 수 없으며, 성경 위는 물론 성경과 나란히 둘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좋은 번역본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이 좋다.

3) 각 신앙고백서나 요리문답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구조를 알고 공부하면 아주 유익하다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은 전체 내용이 하나의 체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그 특성과 구조를 알고 접근하면 논리적으로도 이해하기 쉽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다. 상당히 긴 분량의 신앙고백서나 요리문답의 경우에도 구조를 알고 난 후 신앙고백이나 요리문답의 각 내용이 이 구조 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염두에 두고 보면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다.

4) 나아가 위 문서들에서 공교회가 교리를 확정하기까지 그 배경에 대해서 알면 더욱 유익하다

각 교리는 순탄한 환경에서 주어지지 않았다. 박해와 오해가 있었고, 그래서 논박과 신앙의 싸움이 있었다.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웨스터민스터 문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벨기에 신앙고백서, 도르트 신경 등 모두 나름대로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5) 묵상과 기도와 함께, 그리고 암송을 하라

신앙고백서나 요리문답이 작성자들의 삶에서 태동하였기에 교리는 신자의 삶에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교리서는 속독으로 읽을 책이 아니며 정독으로도 부족하다. 한 조항 한 문답을 읽을 뿐 아니라 그 내용은 기억되어야 할 것이며 생활에서 온몸으로 체득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신앙고백서들은 입으로만 아니라 온몸으로 개혁 신앙과 신학을 체험하고 그것을 모범으로 보여 주었을 뿐 아니라 신자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리는 설교되고 가르쳐지고 낭독되고 기억될 뿐 아니라 묵상과 기도가 병행되어야 할 책이라 할 수 있다.

6) 각 교리의 토대가 되는 성경본문을 공부하는 것을 잊지 말라

자칫 본문 내용에만 집중을 하다가 본문의 근거가 되는 성경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은 신앙의 선조들이 성경을 깊이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읽는 독자들 역시 항상 신앙고백의 토대인 성경을 깊이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성경 본문에도 집중해야 한다. 주석을 참고할 경우 고전 주석 중에는 칼빈의 주석이 좋은데 최근에 신약 주석이 조금씩 번역 및 출간되고 있다.

7) 좋은 해설서와 설교집을 참고하라

교리설교를 듣는 것이 제일 좋은 일이지만, 아직 교회마다 그렇게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관련 서적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서 웨스터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서로는 최낙재 목사의 <소요리문답 강해>(크리스챤다이제스트), 황희상 교사의 <특강 소요리문답>(흑곰북스) 등이 좋으며,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해설서로는 본 요리문답 작성자 중 한 사람인 우르시누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크리스챤다이제스트)와 김헌수 목사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성약), 이성호 목사의 <특강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흑곰북스) 등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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