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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글은 필자 C. J. Haak 교수의 「선교지평」 2005년 9월호에 실린 글을 「선교지평」의 허락을 받아 편집 후 게재한 것입니다.

C. J. Haak
전 캄펀 신학교 선교학 교수

누구를 증인으로 세우셨는가?

증인들을 지목하신 이는 바로 예수님 자신이다. 요한복음 15:26-27에서 예수님은 그 자신에 대해 증거할 보혜사 진리의 영을 약속하신다. 그리고 “너희도(예수님의 12제자) 또한 처음부터(예수님께서 공사역을 시작하시며 세례를 받은 이래로)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 하여야 할 것임”을 말씀하신다. 여기서 예수님은 죽음에 앞서, ‘열두 제자’를 그의 부활 승천 후 ‘그의 증인’이 되도록 지명하시고 계신 것이다. 베드로 역시 사도행전 2:32에서 “우리(유다의 공석을 대신한 맛디아를 포함한 12사도)가 모두 그 일(예수님의 부활과 하늘로 승천)의 증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의 진정한 증인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은 바로 ‘열두 제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처음부터’ 예수님과 함께한 자들이었다(요 15:27). 사도행전 1:21-22에서 새로 뽑히게 될 사도의 자격을 말하면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함께 한 자들이어야 함”을 언급하고 있다. 이들 중에 한명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나머지 사도들과 함께 증인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고넬료에게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하기 위해서 미리 열둘을 선택하셨다”고 했던 베드로의 말에서 ‘그 열둘’의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 열둘’은 바로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 음식을 함께 먹었던 자들이었다(행 10:41-42). 예수님께서 부활 후에 친히 그 ‘열둘’에게 나타나셨던 것은 ‘그의 증인’을 특별히 ‘훈련’시키기 위함이었다. 마태복음 28장, 마가복음 16장, 누가복음 24장, 요한복음 20-21장에서 이러한 정황을 명백히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도행전 1:1-5에서도 예수님은 저희에게 확실한 여러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셨음을 말하고 있다.

왜 예수님께서는 ‘열둘’을 그의 ‘증인’으로 삼으셨을까? 그 이유는 그 열두 제자의 가르침이야말로 진정한 ‘사실’에 기초하고 있음을 확증하기 위해서이다. 그 사실이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죄 용서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을 말한다(요 20:23). 예수님이 부활하던 바로 그 시간, 그의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이 그들에게 나타나셨던 의미와 후에 제자들의 증거는 더욱 강한 의미를 가진다. 바로 그러한 그의 제자들을 확신시키기 위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셔서 그의 손을 보이시고, 옆구리를 보이셨으며, 함께 물고기를 드시기까지 하신 것이다(눅 24:42, 요 20:20). 처음에 믿지 않았던 도마까지도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한 고백에서 절정을 이루듯이, 그들은 이제 예수님의 다시 사심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살아나신 예수님의 모습을 직접 보았을 때 사도들은 그의 살아나심에 대해 완전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증거에 대해서,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에 대한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누가가 그의 복음서를 시작할 때, 조심스럽게 서술의 역사적 근거를 밝힌다(눅 1:1-4). 요한도 다음과 같은 말로 그의 복음서를 끝낸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줄 아노라”(요 21:24).

그러므로 예수님의 증인은 예수님이 하늘로 들려 올라가실 때까지 이 땅에서의 그의 삶을 눈과 귀로 목격했던 그 ‘열두’ 사도에 한정된다. 예수님의 삶, 죽음, 부활의 사실, 그리고 그를 믿음으로써 죄 용서를 받고 영생을 얻는다는 사실에 대한 그들의 증거만이 진리로써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또 한 명이 이 증인의 숫자에 추가된다. 바로 바울이다. 그는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함께 하지는 않았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을 실제로 보고 들은 사람이다(행 9:3-9, 15-16; 22:6-21; 26:12-18). 바울과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한 증거에서 완전히 일치했었다(고전 15:1-11,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열두 제자]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오늘날 그 어느 누구도 이들과 동등한 증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파할 때, 사도들이 증거 했던 내용에 완전히 부합해야 만이 그것이 합법적이고 정당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을 증거하도록 하셨는가

열두 제자와 바울에게 증인이 되라고 하신 명령의 내용은 예수님과 그의 복음, 그의 왕국, 그의 지상에서의 생애와 말씀과 업적에 관한 ‘사실’들에 관한 것이다. 예수님이 그의 증인들에게 무엇을 증거하도록 말씀하셨는가 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요한복음 15:26-27의 말씀은 아주 중요하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변호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할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 여기서 ‘진리’라는 단어를 눈여겨보자. 이것은 법정이나 재판의 분위기를 나타내 보여준다. ‘진리란 무엇인가?’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철학적 사상으로서의 진리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어떤 사건, 역사, 개인, 그리고 언행에 관한 사실로서의 진리이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법정에서 진실인지 거짓인지 질문 받는 내용이며 재판관들이 판단하는 것들이다. 예컨대 그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아닌지? 이 사건, 말 그리고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예수님에 대한 가장 중심 되는 것은 무엇인지? 이러한 것들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바로 예수님 공생애의 시작부터 예수님과 함께했던 제자들이다.

그러므로 증인은 예수님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그의 말씀에 대한 증언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증언이란 사적인 견해나 생각, 사실에 대한 추측, 개인의 통찰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조사에 의해 증명될 수 있는 사실, 데이터, 그리고 이야기인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님에 대한 모든 사실을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려면, 요한복음 21:25에서 보듯이 엄청난 분량일 것이다. 그러므로 증거는 예수님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알 수 있게 하는 정돈되고 조직적인 것이어야 한다. 예수님자신이 이러한 조직적인 말씀을 누가복음 24:46-49에서, 자신의 삶과 죽음을 구약성경과 비교하시면서 보여주셨다.

그가 사도들의 마음을 여셨으므로 그들이 구약성경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아야 할 것과 죽음에서 살아나야 할 것, 그리고 민족들이 회개하고 죄 용서 받기 위해 그리스도가 선포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약성경과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사도적 문서로서의 신약성경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증거의 강령은 단순한 자료의 수집물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누구였고 지금 누구인지, 그의 삶과 죽음의 의미가 무엇이었으며 지금 무엇인지에 관한 잘 정비된 시각이다. 여기에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의 성취이며 영생이라는 중요한 맥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의 의미는 예수님은 죄에 대한, 죽음에 대한, 거짓에 대한, 부정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답변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새로운 낙원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인 것이다.

사도들은 이러한 구원의 유일한 길인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했다. 증거의 내용이 되는 예수님의 모든 언행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방향지워져야 한다. 1) 속죄를 위한 십자가에서의 고난의 필요성, 2) 부활을 통함으로써 죽음과 무덤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 3) 죄의 용서를 통하여 영원한 형벌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심판의 선포. 오직 이러한 방법으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될 수 있으며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될 수 있다.

물론 지상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전(全)우주의 회복에 관한 완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그 밖의 많은 내용들 역시 증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세 가지(십자가, 부활, 죄 용서)는 예수를 증거하는 핵심이다. 다음 부분에서 살펴볼 것이지만, 이 강령의 실천은 여러 가지 방법, 여러 가지 언어, 여러 가지 행동, 여러 가지 반응으로 행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어떠한 다양한 상황 속에서도 위의 세 가지가 증거의 가장 필수적인 요소임은 명백하다. 즉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십자가 죽음으로부터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셨다.

증거(증인)의 목적은 무엇인가

증거의 목적은 요한복음 20:31에 명백히 나타나고 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이 증거는 어떤 뉴스거리에 대한 단순히 기자의 보고서가 아니다. 또는 도서관이나 박물관의 선반에 수많은 세월의 먼지로 덮여 있는 두툼한 서류뭉치도 아니다. 그 증거는 인간이 구원받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부르심이다. 예수님의 증거는 선교의 방아쇠이므로 사람이 회개하도록 하며, 그리스도를 알게 하며, 생명의 왕에게 굴복하게 하며 모든 사람을 훈계하여 하나님과 화목케 한다.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님에 대한 증거는 마치 다이너마이트와 같아서 모든 거짓 종교와 거짓 소망, 인간이 처해있는 모든 잘못된 생각을 날려 버린다. 이 증거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대심판의 최종 문서이자 결정적인 증거이다.

이 증거는 세계 선교의 굳건한 기초가 된다. 이것이 뒤로 팽개쳐져 있어도 안 되고 사도들의 마음에서 잊혀져서도 안 되는 것들이었다. 그것은 드러나야 하며 인류 역사에서 선포되어야 했다.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오해와 거짓들이 잘못되었음을 입증할 것이다. 이것이 세계 역사와 세계의 종교들, 그리고 세계의 운동을 전복시킬 것이다. 이 증거가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법정, 집회, 모임에 침투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불신자들이 거짓 재판관이며 거짓 증인이며 하나님의 대심판에서 유죄임을 밝힐 것이다.

이 증거는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부인할만한 여지를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이 증거는 유죄인지 무죄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영원한 죽음인지 영원한 생명인지를 판단하는 궁극적 근거가 된다. 이 증거는 이 세상 끝까지 우주의 구석구석까지 외치는 하나님의 메아리와도 같다. “아담아, 너는 어디 있느냐? 너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라.”

증인들의 안내자로서의 성령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를 그의 증인으로 부르셨을 때, 성령이 그들과 함께 있을 것임을 또한 약속하셨다(눅 24:49, 행 1:8). 요한복음 15:26에서 그리스도는 예수님에 대해 증거할 ‘보혜사’, ‘진리의 영’의 오심을 선포했다. ‘보혜사’(Counselor)라는 말은 법정에서 사용하는 법률 용어이다. 보혜사 혹은 ‘변호사’는 법정에서 피고인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다. ‘변호사’로서의 성령은 매우 강력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가(보혜사 성령)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세상의 죄를 드러내시리라)(요 16:8). 이것은 주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주신 가장 특별한 선물이다. 제자들이 거짓으로 고소를 당할 때마다 성령이 그들의 곁에 있을 것이었다(막 13:11, 눅 21:14). 그리스도의 성령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을 이해하도록 제자들을 가르칠 것이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12제자)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12제자)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즉 성령께서 사도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역사에 관한 성경적 관점을 이해하도록 하신다. 그리고 이것은 오순절 사건으로 성취되었다(행 2장). 부활 후 예수님의 특별한 가르침과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도록 무장되었다. 사도들이 고소를 당하여 재판관 앞에, 산헤드린 앞에, 왕들 앞에, 로마의 황제 앞에 설 때마다 그들이 스스로를 방어하고 그리스도를 선포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은 바로 성령님이셨다. 실제로 법정에서 진행되는 사건을 역전시킨 이가 바로 성령님이시다. 사도들이 고발을 당하는 대신에 오히려 재판관들 자신이 그들의 불신앙과 부정에 의해 고발을 당하며 하나님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사도들 스스로는 용기를 가지지도 않았으며 그들을 방어할 말도 알지 못했지만,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을 때, 그들은 용기를 가질 수 있었고, 대담히 말할 수 있었다. 비록 왕들과 권력자들 앞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또한 성령은 신약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들이 교회를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주셨다. 예수님의 성령의 강력한 활동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신약성경의 ‘탄생’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아버지에 의해 보내진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역사, 그리고 그 의미에 관해서 신적 권능으로 증거하신 것이다.

요한복음 16:13-14에서 말씀하시기를, “그가(성령) 너희를(12제자)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내(예수님)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예수님) 것을 가지고 너희(12제자)에게 알리겠음이라.”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보혜사 성령께서 ‘예수님에 관한 송사’를 방어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12제자와 바울에게 주어진 지혜와 지식의 특별한 선물이었다. 사도들을 통해서 성령은 예수님에 관한 모든 진리를 밝히신 것이다. 성령을 통한 12제자와 바울의 증거는 신약성경으로 명백히 문서화되었다. 

이 성령은 실제로 사도들이 그들의 삶 가운데, 예수님을 증거하고, 죄 용서에 관해 선포하도록 인도하셨다. 그리고 구주시요 왕이시요 그리스도시며 주인 중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사수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 이러한 신약성경의 증거는 심판 날까지 계속될 것이며, 하나님은 사도들의 증거에 의해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C. J. Haak / C. J. Haak은 1975년부터 1989년까지 파푸아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파푸아개혁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89년 이래로 현재까지 네덜란드 캄펀 신학교에서 선교학을 가르치다 최근에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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