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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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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기사는 신앙생활지도입니다. 교회가 신자의 신앙생활전반을 지도한다는 것이 시대착오적일지 모르겠습니다. 현대교인들은 각자가 옳은대로 생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지도를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신자들에게 교회의 지도라는 것을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냐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 하나님, 한 구원주, 한 성령님을 믿기에 한 삶의 방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어떻게 언약신앙에 근거하여 살아가야 할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 편집자 주

 

 

 

 

 

교회봉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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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교인들이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봉사하면서 마음이 상하고, 다투기도 하고,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개척교회 같은 경우에는 봉사할 사람이 많지 않다보니 몇몇 사람이 이런 저런 봉사를 도맡아해야 한다. 쉬고 싶은데 쉴 수가 없다. 주일이 안식하는 날이 아니라 저녁 늦게까지 힘들게 봉사하기 때문에 파김치가 된다. 월요일부터 직장이나 삶의 터전에서 일해야 하는데 그럴 힘마저 남아있지 않다. 너무 힘든데 봉사를 부탁해 오면 이중 삼중의 일을 할 수밖에 없다. ‘할 수 없다’는 말을 할 수 없다. 지쳐서 나가떨어지기 쉽다. 기본적으로 봉사는 모든 교인들이 다 해야 한다. 교회 일은 몇몇 사람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 소위 말하는 몰아주기를 해서는 안 된다. 봉사가 무엇인지, 어떻게 봉사해야 하는지를 잘 훈련해야 한다.

 

 

봉사는 성도의 교제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교회봉사가 성도의 교제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교회는 거룩한 공교회이고, 그 거룩한 공교회가 지상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성도의 교제다. 즉, 지역교회는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 모습을 이 세상 가운데 드러낸다. 성도의 교제가 아니고서는 교회가 숨겨진 채로 있을 것이다. 교회봉사가 성도의 교제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세상적인 방식으로 봉사하게 될 것이다. 시간이 있는 사람은 몸으로 떼우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시간이 없고, 몸으로 떼울 수 없으면 돈으로 떼우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교회봉사는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봉사를 재능과 능력의 관점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 봉사는 성도의 교제이기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섬기셨듯이 우리도 서로를 섬긴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55문)은 성도의 교제를 두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하는데 먼저 강조하는 것이 ‘신자는 모두 또한 각각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주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그의 모든 부요와 은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봉사하기 전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의식하고 그리스도와 친밀하게 교제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봉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 교회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스도와 깊이 교제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스도로부터 공급받는 것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것이 봉사로 나타나게 되어 있지만 말이다.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의 모든 부요함과 은사에 참여해야 한다. 그리스도와 교제하면서 그 분의 모든 부요함, 그리고 은사에 참여하는 신자만이 제대로 봉사할 수 있다.

   우리는 나의 만족을 위해 봉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서 언급하는 성도의 교제의 두 번째 측면은 다음과 같다. “각 신자는 자기의 은사를 다른 지체의 유익과 복을 위하여 기꺼이 그리고 즐거이 사용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지체의 유익과 복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심으로 인해 얻으신 은덕을 나누어주신다. 그 부요함과 은사를 받은 신자는 다른 성도들의 유익과 복을 위해서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교제이다. 그리스도를 받아 그리스도를 나누는 것이 성도의 교제이다. 우리의 교제와 봉사에는 항상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그리스도가 중심에 계시지 않으면 교제도 봉사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은사와 직분으로 봉사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타고난 재능과 갈고닦은 수완으로 봉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봉사는 본능이 아니라 은혜다. 봉사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바로 ‘은사’이다. 우리는 종종 은사를 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은사는 철저히 섬기기 위한 것이다. 은사는 봉사를 위한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각종 은사를 주셔서 교회를 봉사하게 하신다. 은사를 주셔서 성도들을 섬기게 하신다. 은사는 나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섬기기 위한 것이다. 은사는 철저하게 이타적인 것이다. 특정은사가 없이는 구원받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방언을 하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한 것이라는 말만큼 잘못된 말이 없다. 방언만이 은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자는 성령님으로부터 은사를 받았다. 은사를 받지 않은 신자가 없다. 은사가 없으면 신자가 아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신자에게 교회를 섬기기 위해 필요한 은사를 주신다.

   그러면, 직분은 무엇일까? 직분은 은사와 대립된 것이 아니다. 은사를 공식화한 것이 직분이다. 은사 없이 직분 없다. 받은 은사를 공적으로 사용하도록 세워주신 것이 직분이기 때문이다. 종종 우리 주위에서 은사 없이 직분을 받아 수행하기에 자신에게도 교회에도 복이 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목사를 ‘말씀의 봉사자’라고 부른다. 목사는 말씀으로 섬기는 자라는 뜻이다. 성경말씀을 잘 풀어서 가르쳐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사람이 목사이다. 말씀의 은사가 없이는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장로는 ‘다스림의 봉사자’라고 부른다. 장로는 다스리는 은사가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 마음씨가 좋다고 장로가 되면 안 된다. 교회의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고 해서 장로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장로는 교인들을 돌아보아야 할 뿐만 아니라 훈계하고 권면할 수 있어야 한다.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집사와 권사는 ‘긍휼의 봉사자’이다. 집사와 권사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커야 한다. 긍휼의 은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은사를 공식화한 직분이야말로 교회 봉사의 핵심이다. 직분자가 직분사역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봉사이다. 그 봉사를 통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우뚝 서고,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봉사의 일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준비된다. 직분자는 앞서 가면서 봉사의 본을 보이는 자이다.

 

   교회에서 봉사할 때 유의할 점들을 몇 가지 살펴보자

- 자발적으로 봉사하도록 한다

교회봉사는 무엇보다 자발적이어야 한다. 은사와 직분으로 봉사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말이다. 모든 교인들에게 교회에서 한 가지 이상씩 봉사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일 잘하는 이들에게 각종 일을 한꺼번에 맡겨서는 안 된다. 일을 맡겼으면 그 사람의 봉사에 대해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특히 재정을 사용하는 것에 있어서 투명해야 하지만, 어떤 경우에서는 허비가 된다고 생각하더라도 지켜보는 것이 좋을 수 있다. 지나치게 간섭해서 이것저것을 요구하면 봉사하는 이들이 힘이 빠지기 때문이다. 교회 일은 효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세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 식탁봉사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

교회의 모든 분쟁은 주방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주방봉사를 하는 부인들의 다툼이 남편들의 싸움으로 옮겨간다. 심지어 ‘우리 아이가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부모의 싸움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기성세대는 주일에 잘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젊은 세대는 요즘 다이어트를 위해서라도 끼니를 거르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주일의 식사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주방에서 봉사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떤 교회는 개척을 시작하면서부터 각 가정에서 도시락을 싸 오도록 했고, 지금까지 그렇게 하고 있다. 도시락을 싸올 수 없는 청년들을 배려해서 조금만 더 여유있게 싸 와서 함께 나누어 먹는다고 한다. 매 주일마다 어떤 반찬을 싸 와야 하는지 걱정이고, 다른 가정과 비교되기 때문에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교회는 각 가정에서 밥만 싸오고 반찬은 반찬가게에서 사 와서 식사하기도 한다. 주일에 무조건 잘 먹어야 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주일의 식탁봉사에 대한 시간과 부담을 줄여서 성도의 교제를 풍성하게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 찬양대가 비대해지면 안 된다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찬양대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척교회라서 교인들이 몇 명 되지 않는데도 찬양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몇 명으로 찬양대가 시작하더라도 계속해서 그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교사로 일해야 할 교인이 찬양대에 앉아 있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주일 봉사시간이 겹칠 때가 많기 때문에 찬양대가 다른 봉사를 제한시키기도 한다. 교사와 찬양대원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고 물을 필요가 없이 받은 은사대로 섬겨야 한다.

   그런데 찬양대는 예배를 도와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대원을 계속해서 모으려고 한다. 심지어는 세례를 받지 않은 이들을 대원으로 세우기도 하고, 오케스트라를 만든다고 교인 아닌 사람을 동원해서 사례비를 지불하기도 한다. 이것은 예배를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배를 망치는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만족과 자랑이 가득차게 만든다.

- 부모가 교사를 해야 한다

개혁교회로 세우려면 처음부터 모든 세대가 함께 예배하는 것이 좋겠다. 교회가 성장하면 어쩔 수 없이 세대통합예배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약적인 신앙에 근거하여 모든 세대가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오전에 함께 예배하고, 오후에 자녀들을 위해 교회학교시간을 따로 가진다면 교사가 필요하다. 요즘은 교사모집도 큰 어려움이 있다. 교사로 봉사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청년들에게 교사봉사를 맡기는데,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청년들은 말씀으로 먼저 배우고 훈련받아야 한다. 배우는 것이 없이 무조건 봉사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 교사는 부모가 하는 것이 좋다. 교회에까지 와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냐고 말해서는 안 된다. 자녀교육의 일차적인 책임은 부모에게 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주일학교가 잘 되어 있는 교회를 찾아가서 교인으로 등록하고, 그 주일학교에 자기 자녀들을 맡겨 버리지만 이것이야말로 잘못된 것이다. 교회는 학부모가 가정에서만이 아니라 교회에서 교사로 일하도록 잘 훈련해야 한다.

- 봉사하는 이들을 알아주어야 한다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봉사하고 자기를 알아봐 주기를 바란다. 봉사한 것을 알아주지는 않고 무조건 봉사하라고 하면 너무나 잔인한(?) 것이 아닌가? 교회에서 사람을 실컷 부려먹기만 하고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한 것이니 잔말 말고 더 봉사하라고 하면 되겠는가? 주님께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데 교회가 신자들에게 과도한 헌신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보자. 찬양대에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서 일일이 사례비를 주는 것은 합당하지 않겠지만 교회봉사를 위해 시간을 내고 물질을 쓰는데 무조건 희생하라고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일과시간에 불러서 봉사하게 한다면 그것에 상응하는 댓가를 지불해야 하고, 차량을 사용했으면 기름값을 주어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봉사하는 이들을 알아주어야 한다.


* 그리스도께서는 성령님을 보내셔서 모든 신자에게 필요한 은사를 주신다. 은사를 받지 않은 성도가 없다. 모든 신자가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부요함과 은사에 참여하는 것 없이 교회에서 봉사하려고 하면 지칠 수밖에 없고 불평하고 시험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세상적인 지식이나 기술이나 능력으로 봉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잘하는 것이 있어서,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교회에서 이런 일을 하겠다고 해서는 안 된다. 은사로 섬겨야 한다. 또한 성령께서는 은사가 활성화된 직분사역을 통해 말씀이 선포되고, 말씀으로 다스리고 돌아보게 하셔서 교회와 교인들을 온전하게 세우신다. 직분자는 공직자라는 말이다. 이렇듯 교회에서는 오직 은사와 직분으로 봉사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어 주셨듯이(막 10:45) 우리도 자신을 내어놓아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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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회정치원리에 비추어 본 노회 실태
고령화 시대, 선교현장을 섬기는 교...
개혁주의 교회설립에 대한 새로운 비전
KPM선교의 내일을 향한 준비 (김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