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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글은 필자 C. J. Haak 교수의 「선교지평」 2006년 1월호에 실린 글을 「선교지평」의 허락을 받아 편집 후 게재한 것입니다.

C. J. Haak
전 캄펀 신학교 선교학 교수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증인의 수를 명확히 한정하고 있다. 사도행전 10:41을 통해서 하나님은 12제자를 미리 택했음을 알 수 있다. 후에 바울이 이 특수한 증인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 증인들은 오늘날 우리와 우리 교회의 증인됨과는 차별되는 성격을 가진다.

반복되지 않지만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사도들의 증거

직접 목격한 증인은 신약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의 12제자와 바울에 한정된다. 이들 증인들은 천국의 ‘열쇠’를 받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진 첫 세대에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훈계하며, 어떻게 인도하고 이끌어야 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바로 그들의 증거와 선지자의 증거 위에 신약의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에 의해서 이루어졌던 것과 같은 그러한 증거는 역사상 다시 일어나지 않으며, 후대의 어떠한 것도 이와 비교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신 모든 말씀을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말한 대상도 바로 이들이다(요 14:26). 성령께서 ‘온전한 진리’로 이들을 이끄셨던 것이다(요 16:13). 성령께서는 이들을 통해서 미래의 역사적 교회의 모습을 디자인하셨다. 한두 명의 사도, 혹은 전체 사도들에 의해 이루어진 모든 결정은 모든 시대의 교회에게 적용되는 결정이었다. 이 사도들만이 예수님과 그의 사역, 그의 말씀, 십자가에 달리심, 부활, 그리고 승천에 관해 정확 무오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사도들은 그들의 생애 내내 그리스도를 증거했다. 그들은 또한 말씀이 기록되도록 했다. 신약성경 전체는 바로 성령의 산물이다. 이 말의 의미는 ① 사도들은 특수한 방법으로 성령에 의해 인도를 받았으며, ② 신약성경의 기록 전체는 동일한 한 성령에 의해 영감 받았다는 것이다. 즉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12제자와 바울을 인도하신 성령사역의 성취이자 완성된 산물인 것이다.

예수님의 직접 목격자들의 고유한 위치에 관해서는 요한일서 1:1-4의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이들만이 그들의 손으로 직접 예수를 만졌으며, 그들의 귀로 그의 음성을 들었으며, 그의 몸짓을 보았으며 그의 부활하신 몸을 보았다. 그러므로 그들만이 예수님의 합법적인 증인이 될 수 있었다. 오직 이들이 복음을 세상으로 들고 나가는 첫 번째로 선택된 ‘군사’들이었다. 이들의 증거에 의해 교회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베드로, 도마, 요한,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의 특수한 행적들은 역사상 되풀이되지 않는다. 아시아, 아프리카, 로마의 유대인들에게 전한 그들의 처음 메시지 역시 역사상 되풀이되지 않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오늘날 어느 누구도 사도들과 동일한 의미에서의 증인이 될 수 없다. 오늘날 교회에서나 어디서든 우리의 자의적(恣意的)인 증거에 대해서는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계속되는 증거

그렇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가 중단된 것이 아니다. 신약성경을 통해서 예수에 관한 증거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속될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자의적인 증거가 아닌, 사도들의 증거에 근거한 오늘날의 증거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일까?

1) 증거의 합법성에 대하여

예수님에 대한 증거의 내용은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에 관한 모든 말씀과 예수님의 삶, 죽음, 부활, 말씀들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약성경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선포되고, 설교되고, 가르치고, 실천하기 위한 메신저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말씀 선포는 신약성경의 가르침과 부합할 때, 그것의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본질에 대한 합법적 증거의 유일한 근거는 바로 신약성경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 증거는 변질되어서도, 과장되어서도, 생략되어서도 안 된다. 가감(加減) 없이 있는 그대로 선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에 의해 영감된 유일한 진리가 바로 신약성경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2) 증거의 구조에 대하여

하나님의 대심판이 가지고 있는 법정(法廷)구조가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이에 근거해서 오늘날 모든 증인들이 기억해야 할 증거의 속성은 ① 죄악된 세상을 고발하고, ② 불신자를 불러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서게 하고, ③ 청중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도록 선포하며, ④ 창조주이며 재판관이신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모든 증인은 죄악된 세상을 고소하는 법정 고소인인 동시에, 거짓증인에 의해 재판정에 선 교회에 대한 법정변호인이다.

이러한 법정구조에서 증인들에 의해 선언되는 모든 말은 가장 핵심적이고 결정적인 것들이어야 한다. 그 증거는 회개하는 자를 ‘죄의 감옥’에서 구원할 것이며, 믿지 않는 자를 하나님과의 영원한 단절상태로 정죄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오늘날 우리의 ‘증거’는 신약성경의 증거에 온전히 기초해야만 한다. 

이러한 증거의 법률적 특성을 생각해볼 때, 우리의 증거가 개인적 견해, 사적(私的)이고 주관적인 감정에 의해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의 말씀선포는 우리의 감정이나 추측에 근거해서는 안 되며, 오직 성경말씀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어야만 한다. 증인은 제기된 범죄에 대한 고소가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하는 공정한 증거를 제시하도록 보냄 받은 자이다. 즉,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청중을 재판관이자 구원자이신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이다.

3) 증거의 목적에 대하여

우리의 증거는 죄와 불신에 대한 정죄의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증인들은 죄인을 정죄할 뿐 아니라 죄인을 죄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진리에 대하여 증거한다. 그러므로 증거의 목적은 불신자의 회심, 믿는 자들의 성화, 죄 용서의 자각, 그리고 다가오는 새 왕국의 준비이다. 증거의 메시지는 세상을 변화시켜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며 세상을 하나님의 심판대에 세운다. 그러므로 증거는 신문이나 잡지의 리포트처럼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차원이 아니다. 증거는 청중들을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법정에 세우는 것이다.

4) 증인이 증거의 내용에 참여함에 대하여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증인 스스로가 증거의 내용을 완전히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드로, 요한, 바울처럼 모든 증인은 증거를 드러내는 일에 참여해야 하는데, 이 증거는 가장 심오하고 소중한 메시지이다. 증인은 그의 증거의 내용을 완전히 신뢰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그리스도를 믿는 참 신자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증거의 내용이 증인의 마음 속에 충만해야 한다. 증거가 녹음기를 통해 반복되는 듯한 양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확신에 찬 증거이어야 한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즉 증인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의 내용 속에 온전히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5) 증인이 받는 고난에 대하여

고난은 증인에게 자동적으로 수반되는 것이다. 신약성경 전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모든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써 고난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요한복음 16:2에서 예수님이 예견한 바 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黜會)할 뿐 아니라...”

사도들에 대해 가장 먼저 적의를 품은 행동은 유대인 종교지도자들로부터 나타났다. 그들이 본디오 빌라도로 하여금 예수님을 못 박게 했듯이, 또한 성전 지키는 자와 헤롯으로 하여금 ‘예수운동’을 박해하도록 했다.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자. 베드로와 요한이 감옥에 갇혔다가 하나님의 기적을 통해 풀려났지만, 야고보는 죽음을 맞이했다.

바울은 핍박받아 돌에 맞고 감옥에 갇혔으며 사슬에 묶였다. 바울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 14:22)”고 말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 할 터이요...(요 15:20)”라고 하셨다. 모든 진정한 예수님의 증인들은 이와 같은 일을 겪을 것이다.

예수님의 증인들이 광신적 종교지도자들에 의해서(심지어 교회 지도자), 정부에 의해서, 혹은 사회로부터 핍박을 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출회(黜會) 당하며, 감옥에 갇히게 될 때, 우리는 전혀 놀랄 필요가 없다.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고난 받을 준비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는 핍박 받을 일이 없다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주의하자! 쉬운 길을 택하는 증인들은 경멸당하고, 거절당하고,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했던 예수님의 진정한 증인이 될 수 없다.

우리가 교회사를 통해 알듯이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달렸다. 아마 바울은 로마 황제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요한은 밧모섬으로 추방되었다. 많은 그리스도인과 증인들은 교회 역사의 처음 3세기동안 심한 박해 아래 있었다. 교회의 씨앗이 된 것은 바로 순교자들의 피였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에는 항상 뒤따르는 질문이 있다. “나는 기꺼이 예수님을 위해 고난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증인은 전쟁 중에 있는 군인이며, 모든 불신자들의 죄를 궁극적으로 고소하는 자이다. 우리 주 예수님은 그의 증인들을 위험과 죽음으로부터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그들과 함께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일상에서, 재판 중에, 감옥에서, 형집행장에서 그의 증인들과 함께 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결코 그의 증인들에게 평탄한 삶, 좋은 직업, 충분한 수입, 훌륭한 사회적 지위를 약속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것은, 진정한 증인이신 목자장이 삶과 죽음의 재판관으로 나타나실 때의 영원한 삶의 보상과 영광의 면류관이다(벧 5:4).

6) 증거의 방법에 대하여

증거하는 방법 또한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듯이, 신약성경의 증인들은 예수님을 증거할 때, 예수님의 한 가지 이름만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상황, 말씀이 미치는 영향력, 청중의 감정 상태에 따라 예수님의 명칭을 선택했다. 그들은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매우 창의적이었다. 이러한 방법은 오늘날에도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는 힘 있고, 세상에 대적할 수 있는 말과 메시지를 찾아내야한다. 이를 통하여 이교도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대적하여, 이방종교에 대적하여, 정치적 이데올로기, 철학적 관념, 근대 물질주의, 과학기술, 비윤리적 행위에 대적하여, 전통종교의 유혹에 대적하여, 조상숭배에 대적하여, 신비적 치유, 마술적 행위에 대적하여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 

7) 조직화에 대하여

예수님의 증거는 열두 제자와 바울의 손에 맡겨졌다. 그들은 그들의 증거가 신약성경으로 기록되도록 했으며, 교회의 장로들, 지도자들, 교사들, 선지자들을 임명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거룩한 증거가 말씀 선포를 통해서, 가르침에 의해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에 의해서 보존되도록 했다. 그러므로 증거는 교회역사에 나타나는 몇몇 선구자적인 인물의 개인적인 일이 아닌 교회의 임무인 것이다.

교회는 새로운 교사들, 사역자들, 설교자들, 지도자들을 임명할 책임이 있으며, 끊임없이 세상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할 책임이 있다. 고백, 선언, 교회질서 등에 의해서 (조직화된) 교회는 증거의 내용을 보호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해 나가야한다. 

증인으로서의 교회

교회의 설립은 예수그리스도의 증인됨의 결정적 요소이다. 증인됨을 이해하는 진정한 자료가 되는 것은 신약성경이다.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많은 사람들, 설교, 말씀, 그리고 행동들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사도들이 이 세상을 떠난 후에 그 역할을 다하도록 한 것은 바로 교회였다. 그러므로 교회의 믿음, 고백, 행동, 사랑, 소망, 기도, 표시를 통해 교회는 증거해야 한다.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교회의 다음 세대를 향하여, 새 신자와 이미 신자 된 자를 향하여,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향하여, 교육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향하여 끊임없이 증거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교회는 교회의 존재에 관하여 세상에 증명해야 한다. 이 땅에서의 교회의 존재가 단순히 종교기관, 일종의 종교단체, 혹은 종교 운동이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교회는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나타내 보이는 도구이다. 교회는 교회의 주시요, 구주시요, 생명에 대한 진정한 증인이신 그리스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단지 일반적인 사람들이 만든 단체 정도로 이해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성령의 기적인 것이다. 

바울의 말과 같이 부활이 없으면 우리는 거짓 증인이며, 소망이 이 세상에 대한 것이라면 믿음은 헛된 것이다(고전 15:12-19). 그러므로 항상 죽은 자로부터의 부활(먼저는 그리스도요 훗날 심판 때 모든 성도들의 부활)을 선포해야 하는 것이 바로 교회이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장사지낸 후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소망은 온 민족을 위한 대속으로 선포되었으며, 그 소망은 증인으로서의 교회를 개혁하고 소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C. J. Haak / C. J. Haak은 1975년부터 1989년까지 파푸아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파푸아개혁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89년 이래로 현재까지 네덜란드 캄펀 신학교에서 선교학을 가르치다 최근에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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