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하 목사
산성교회 담임목사
고신총회 인재풀운영위원회 전문위원(서기)
제목: 예배, 교회의 얼굴
저자: 안재경
출판사: 그라티아(2014. 1. 8 발행)
A. 예배에 대한 고민
나는 신대원을 졸업한 후 오랫동안 ‘예배’에 관한 책을 읽지 않았다. 그것은 예배에 관한 책들이 대부분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얼마 전까지는 부교역자였기에 예배에 대해서 공부한들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담임목사가 되고 나서 가장 고민되는 일들 중 하나가 예배였다. 어떻게 예배의 순서를 구성하며 어떤 식으로 예배를 인도할 지가 큰 관심사였다. 그래서 예배에 관한 자료들을 탐독했으며 여러 동료들과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한 노력이 도움이 되기는 했고 예배에 대하여 어느 정도 입장을 가지게는 했지만, 아직 구체화시키지는 못하고 있으며 실천에 옮기지도 못하고 있다. 그것은 예배에 대한 충분한 신학적 확신을 가지지 못한 채 예배의 순서를 정하는 것이 교회에 큰 혼란을 줄 수 있었고, 더군다나 전통을 중시하는 기성교회에서 예배순서를 다시 만들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다른 사안들도 그렇지만 예배의 순서를 구성하는 일은 장로들을 비롯한 교인들 전체의 공감을 얻은 후에 이루어져야 한다. 괜히 함부로 손댔다가는 큰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B. 책의 내용과 평가
그런 고민 가운데 『예배, 교회의 얼굴』을 읽은 것은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우선 책 제목 『예배, 교회의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책 제목 그대로 ‘예배’는 ‘교회의 얼굴’이다. 분명히 교회가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예배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전반적인 느낌은 실제적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한국의 목회자가 예배에 대해서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서 우리의 현실, 즉 우리의 예배장소, 우리의 예배시간, 우리의 정서와 역사 등을 감안해서 썼기 때문에 우리의 공감대를 사기에 충분하다. 책의 두께가 적당하고, 편집이 잘 되어서 가독성이 좋으며, 내용이 알차고, 문장 하나하나가 새겨들을 만한 가치를 가진다. 책 뒤에 있는 부록도 대단히 유익하다. 단지 눈에 거슬리는 점은 군데군데 발견되는 오자들과 탈자들과 부정확한 표현들인데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제 책의 순서를 따라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겠다.
1. 공예배: 예배 시간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첫 장에서 저자는 예배가 무엇이며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예배에 대한 저자의 통찰은 빛난다. 그는 예배가 세상을 향해 열려있기 전에 하늘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하며, 따라서 참된 예배는 하늘을 향해 ‘열린 예배’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우리가 예배할 때 오직 하나님께 예배해야 하지만, 동시에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대로 예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십계명의 1계명이 하나님께 예배하라는 것이며, 2계명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방식대로 예배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오늘날 일부 목사나 교인들이 예전을 무시하는 것이 못마땅했는데 이 책이 그런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면 좋겠다.
2. 신자들의 준비: 예배 준비, 어떻게 할까?
2장에서 저자는 예배에 대해서 말하고, 예배를 준비하고 참여하는 과정에 대해서 말한다. 이 장에서 저자는 부모와 자녀가 따로 예배하는 모습이 신자가 한 언약백성으로 부름 받았음을, 신자의 가정이 언약가정으로 부름 받았음을 고백하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우리 교회가 우선적으로 고쳐야 할 부분이다. 오늘날 자녀들과 함께 예배드리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들을 예배의 방해거리로 생각하는 습성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3. 직분자들의 준비: 예배 전에 하는 직분자들의 악수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곤란함을 느꼈던 부분이 바로 이 장이다. 저자는 직분이 예배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직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일종의 의식 혹은 상징으로서 직분자가 예배 전에 예배 준비실에 모여서 함께 기도한 후에 예배당에 입장하면서 회중석을 가로질러 걸어가고 이때 회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직분자들의 행진을 맞이하라고 하는데, 이것은 적용하기가 다소 부담스럽다. 그리고 예배 전에 장로와 목사가 악수를 나누면서 목사가 개인 자격으로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강단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절차를 언급하는데, 그런 절차가 굳이 필요하겠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교인들에게 말로 그 의미를 가르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4. 예배로의 부름: 누가 누구를 부르는가?
4장에서 저자는 예배의 시작에 대해서 다룬다. 저자는 전통적으로 초대교회로부터 예배 시작 순서를 ‘예배로의 부름’이라고 불렀음을 언급하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예배로 불러주신다는 사실을 말한다. 즉 구원받은 백성이라도 하나님이 불러주지 않으시면 예배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지극히 옳다. 하지만 저자가 ‘예배로의 부름’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한정적으로 말한 것은 아쉽다. 저자는 칼뱅과 그의 추종자들이 시편 124:8의 문구를 사용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이 문구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나는 이 문구만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 문구만 외우면 지루할 가능성이 높다. 이 문구와 더불어 유사한 의미를 가진 다양한 성구들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대체로 2-3개월에 한 번씩 문구를 바꾸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교회력이나 기념(특별) 주일을 가지고 있으니까 기념 주일에는 그에 적합한 문구를 사용하면 될 것이다.
5. 기원: 하나님이 인사하신다고?
저자는 예배의 서두에 하나님의 복을 선언(기원)하고 예배가 끝날 때에 또 한 번의 복 선언(강복선언)이 있어서 예배는 복의 선언으로 시작하고 복의 선언으로 마친다고 한다. 이것은 옳은 말이다. 그리고 목사가 설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배 전체를 인도해야 한다고 한다. 요즘 대형교회에서 사회를 부목사에게 시키고 담임목사는 설교만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것에도 나는 동의한다. 저자는 예배 때 목사가 회중의 대표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을 대리하여 온 회중을 향하여 하나님의 복을 선언해야 한다고 바르게 말한다. 다만 저자는 회중이 이 복 선언의 인사를 자신들의 귀로 들을 뿐만 아니라 눈으로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목사는 손을 높이 들어서 인사말을 하는 것이 좋고 교인들은 그것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하지 않았던 일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대인들이 눈을 뜨고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기도하지만 우리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하듯이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의미를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6. 신앙고백: 고백이 꼭 필요한가?
6장에서 저자는 사도신경에 대하여 설명한다. 그는 사도신경을 비롯하여 여러 신앙고백서들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정확하게 설명한다. 사실 이 책 전체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성경적, 교리적, 역사적 안목은 대단히 뛰어나다. 예배 때 사도신경을 고백해야 한다는 사실은 침례교회와 같은 일부 교단을 제외하고 대부분 공감하기에 문제가 없다. 다만 문제는 예배에서 신앙고백의 위치가 어디냐 하는 것인데, 저자의 말대로 역사적으로 신앙고백의 위치가 예배순서 여러 곳에 다양하게 있어왔으니 개교회의 현실을 고려하여 배치하면 되겠다.
7. 십계명: 왜 율법을 낭독하는가?
예배 시간에 십계명을 낭독해야 한다는 주장은 대단히 적절하다. 내가 봉사했던 교회들에서는 그런 순서가 없었는데, 이제 나는 시무하는 교회에서 이를 시행하려고 한다. 그런데 십계명을 어디에 넣을지가 관건이다. 십계명(율법)의 기능에 따라 설교 전에 넣을 수도 있고, 설교 후에 넣을 수도 있다. 1년 중 절반은 설교 전에, 절반은 설교 후에 배치시키면 어떨까 생각한다.
8. 죄 고백과 사죄 선언: 고해성사의 잔재일까?
이 부분을 읽을 때도 나는 난감함을 느꼈다. 저자는 성경의 구절들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이 순서의 정당성을 옹호하지만 나는 이것이 성경신학적 근거를 충분히 가지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저자는 어떤 죄에 대해서 공적인 회개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웃에게 잘못한 것에 대해서 직접 찾아가서 용서를 구해야 하는 사안이지 예배 시간에 공적으로 사죄해야 할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좀 더 연구해 보아야겠다.
9. 찬송: 어떤 찬송이 합당한가?
예배 때 부를 찬송을 고르는 문제는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한국 교회가 사용하는 찬송가에 불만이 많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의 찬송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기에 온 회중이 다같이 고백하고 노래할 수 없는 가사들이 종종 있다. 그래서 저자는 시편찬송을 제시한다. 나도 그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찬송가를 새로 구입해야 하는 경제적인 부담감이 있고 그것이 보편적이지 않다보니 이웃교회와의 교류에도 문제가 생긴다. 총회 차원에서 우리가 부를 만한 찬송을 제대로 만들어서 보급해주면 좋겠다. 저자는 이어서 성가대 문제를 거론한다. 그런데 성가대 문제는 단순하지가 않다. 하지만 성가대는 회중의 찬양을 도우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고, 그것을 유일한 일로 생각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저자가 이 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찬송을 어떤 주제에 따라 선택할 것인지를 제시한 것은 매우 적절하며 실제적인 도움이 된다.
10. 기도: 누가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는 기도가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불문가지의 사실이라고 말하면서 이 장을 시작한다. 저자는 중세로마교회는 예배를 미사로 바꾸면서 회중의 입에서 찬양뿐만 아니라 기도를 빼앗아갔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것의 회복을 주장한다. 그래서 저자는 직분자가 회중을 대표하여 기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배를 위해서 직분을 세우셨기 때문이다. 저자는 예배 시간에 몇 번의 기도순서를 넣어야 할지에 대해서 말하면서 개혁가들이 기본적으로 세 번의 중요한 기도를 배치했다는 사실을 소개한다. 그것은 ‘죄 고백의 기도’와 설교 전에 하는 ‘조명을 위한 기도’와 설교 후에 하는 ‘중보하는 기도’이다. 저자의 주장은 모두 합당하며 개교회에서 당장 적용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다.
11. 성경봉독과 설교: 지금도 말씀하시는가?
성경봉독(설교와 다른)에 대해서는 저자의 말대로 개혁교회의 전통을 따라 교회력을 근거로 하여 만든 렉시오나리를 사용하면 되겠다. 저자는 직분자들이 돌아가면서 성경을 읽는 방법을 추천한다. 그렇다면 나는 찬송가 뒤에 있는 교독문을 활용하는 방법이 없는지가 궁금하다. 상당수의 교회는 교독문을 활용하여 성경봉독을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면 좋겠다. 저자는 설교에 대해서 말하면서, 개혁교회가 주일 오전에 자유로운 본문으로 설교하고, 오후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근거한 성경구절로 설교하도록 함으로써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개한다. 나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데, 다른 목사들도 그렇게 하면 좋겠다.
12. 성찬: 왜 자주 시행하지 않는가?
12장에서 저자는 성찬의 순서가 중요한데, 말씀이 선포되고 난 후에 성례가 와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성례 직전에 간단히 성례의 의미를 설명한다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성례 이후에 본격적인 설교를 하면 된다. 비록 말씀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생기고 성례를 통해 그 믿음이 강화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평소 예배에서 그 순서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저자는 성찬을 가급적 자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을 자주 시행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작은 교회라면 몰라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교회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자주 시행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자주 시행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빠르고 편리하게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13. 헌금: 헌금시간이 왜 사라졌는가?
헌금은 예민한 부분이다. 헌금을 드려야 할 이유는 분명하지만 그것의 방법적인 문제가 워낙 다양하고 민감해서 딱히 정하기가 쉽지 않다. 저자는 헌금을 ‘연보’라고 부르는 것이 헌금의 의미를 분명하게 담고 있다고 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이미 오랫동안 사용해 온 명칭을 변경하는 일이 기성교회에서는 만만치 않다. 그냥 헌금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헌금을 드리는 방법에 대해서 저자는 예배 시간에 헌금을 해야 하며 헌금함을 사용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나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는 헌금한 것을 밝히고 주보에 싣는 것을 삼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데, 이것에는 동의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헌금한 사람의 이름을 밝히는 일은 재정관리의 투명성을 확보해 주고(특히 큰 교회일수록), 감사헌금을 드릴 때 내용을 읽어주면 모든 교인이 같이 감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헌금방법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은 개교회의 형편과 정서를 고려하여 정하되 교인들에게 그 의미를 충분히 가르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 장에는 헌금과 관련하여 읽을거리와 고민거리가 많다. 저자가 헌금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연구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14. 마침순서들: 끝인가, 아니면 절정인가?
저자는 예배 마침의 순서가 예배 시작의 순서들과 호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끝이 시작을 아름답게 이어받아 새로운 시작을 예상한다는 것이다. 그는 예배의 마침 순서들을 하나님의 임재를 새롭게 간구하고, 노래하고, 확신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면서 마침 기도와 마침 찬송과 강복선언을 언급한다. 저자의 제안은 모두 타당하며 적용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다. 특히 저자는 ‘축도’(축복기도)보다 ‘강복선언’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주장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적용하기가 쉬울까 싶다. 그리고 이때 눈을 뜨고 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데 이는 두 손을 드는 것이 두 눈으로 보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이걸 적용하는 일도 쉽지가 않다. 그냥 원래 하던 대로 눈을 감되 의미를 충분히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광고가 예배순서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은근히 골치 아픈 논쟁거리인데, 저자는 분명한 입장을 제시하지 않지만, 나는 예배를 모두 마치고 광고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C. 책 읽기와 실천
우리는 예배에 대해서 많이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예배를 계속해서 발전시켜야 한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이 시대와 문화의 영광을 예배 속에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구현해 내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교회적으로 이 책을 상세히 읽고 토론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담임목사와 교역자들이 이 책을 읽고서 예배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는 것이 좋겠다. 그런 후에는 장로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목사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때 독서토론회를 통하여 충분히 대화한다면 서로의 생각들의 지평이 넓어지고 부족한 부분이 보완되어 더욱 완성도 있는 예배순서를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직분자들과 나아가서 온 성도들이 이 책을 읽음으로 목사와 장로들이 가진 생각에 동참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회의 현실을 고려하여 예배순서를 제대로 만들 수 있을 것이고 교인들이 이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지지 않고 수용할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결코 이 책을 읽고서 깨달음으로 끝나면 안 된다.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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