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임모세 목사
(남울산장로교회)
1. 예식에의 참여
교회는 예식을 행합니다. 가장 중요한 예식은 예배 그리고 예수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예식인 성례입니다. 성례는 두 가지인데 세례와 성찬입니다. 그리고 성례는 아니지만 중요한 예식들이 있습니다. 입교 (혹은 신앙고백), 결혼식, 임직식과 위임식, 장례식 등이 있습니다. 우리 교단에는 예배당 봉헌식도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성례와 그 외 중요한 예식을 전통적으로 거행해 왔습니다.
이 예식들은 각 성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성례를 통해 각 성도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공예배 때 말씀의 사역자인 목사가 성찬을 집례합니다(성찬을 당회가 감독하기 때문에 장로가 옆에서 돕기는 합니다). 그러나 빵과 잔은 모든 성도가 받아먹고 마십니다. 먹고 마시는 행위는 성찬이라는 예식에 직접 참여하는 것입니다. 성도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습니다.
세례식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세례식은 세례받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는 모든 성도를 위한 것입니다. 성도가 되려면 세례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세례를 받는 것을 보며 “아 나도 예전에 저랬지”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후에 자신이 받을 세례를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므로 세례식은 우리와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예식 중에서 가장 나와 멀게 보이는 예식이 있습니다. 직분자의 임직식이나 목사의 위임식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라 하더라도 모두가 직분자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임직식 때 현실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는 꽃을 들고 축하해 주러 갑니다. 회사의 임원으로 아는 사람이 취임하거나 군대에 누군가 진급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지요. 나와는 직접적으로 관계는 없지만 내가 아는 사람이 어떤 지위를 얻었기 때문에 축하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예식은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유의미합니다. 임직을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임직식을 보는 사람들도 임직식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2. 임직식
여기서 목사의 임직식은 다루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목사의 임직식은 개교회가 아니라 노회에서 거행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직접 참여하는 예식은 목사의 위임식입니다.
1) 예식의 시작
먼저 예식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살펴볼까요? 예식의 시작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목사의 위임식, 장로와 집사의 임직식이 시작되는 것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 수 있냐는 말입니다. 위임식이나 임직식의 날짜가 잡히고 당일에 예식이 시작되면 목사, 장로, 집사의 검증과 선출이 합법적인 과정을 통해 완료되었다는 뜻입니다.
목사는 이미 직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직분을 받기 위한 선출과정을 통한 검증은 이미 마친 상태지요. 그러나 목사가 임직 후에 교회를 위임받기 위해서도 선출과정이 있습니다. 위임받을 교회 성도들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성도들은 공동의회 시에 투표를 통해 동의를 표합니다. 그러므로 위임식이 시작되는 것은 위임을 위한 모든 과정이 합법적으로 끝났다는 의미입니다.
장로와 집사의 임직식도 같습니다. 장로와 집사는 당회의 결의로 (장로는 노회의 허락이 필요합니다만) 후보를 추천합니다. 당회의 결의라는 말 자체가 직분에 필요한 후보자의 자질에 대한 검증을 내포하고 있지요. 그리고 성도들은 당회의 검증을 받고 추천된 후보에 대해 투표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임직식을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위임식, 임직식에 참여한 성도들은 예식이 시작되면 후보자가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때 직분자 선출과정이 무리 없이 합법적으로 잘 진행되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2) 서약
고신헌법과 예식서의 작성자들은 목사의 위임식과 임직식에서 서약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위임식 때 위임받는 목사가 청중 앞에서 서약합니다. 서약의 형태는 질문과 답입니다. 내용은 목사직을 담임할 의지가 확고한지, 목사직을 성실히 수행할 것인지를 다루죠.
장로와 집사의 임직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출된 장로와 집사는 다섯 가지 질문을 받고 답하는 형식으로 서약합니다. 질문의 내용은 장로와 집사가 가진 교리가 바른지 그리고 직분을 성실히 섬길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서약이라는 예식 요소에 대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렇습니다. “직분자들의 서약이 예식에 참석한 교인들에게 무슨 의미인가? “참석자들은 직분자들이 서약할 때 왜 보고 있어야 하는가?”
첫째로, 서약은 검증의 역할이 있습니다. 직분자들은 이미 선출과정을 통해 검증을 받았습니다. 목사는 신학교에서 신학을, 전도사 때와 강도사 때 섬기던 교회에서 인품을 검증받았습니다. 장로와 집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당회가 이들을 검증합니다. 또한 장로는 노회가 주관하는 고시를 통과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다릅니다. 이들은 투표로써 직분자 선출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서약 때 직분자들이 각 질문에 답변하는 것을 보고 들으면서 직분자의 의지도 검증합니다. 직분자가 “예”라고 답할 때 예식에 참석한 성도들은 직분자가 직분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고 직분에 필요한 은사를 갖추었는지를 확인합니다. 사실 여기에는 직분자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됩니다. “예”라는 대답을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자들의 “예”라는 대답을 허술하게 들어서는 안 됩니다. 진심으로 대답하는지를 진중하게 들어야 합니다. 예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그런 의무가 있습니다.
둘째로, 서약은 직분자를 나의 직분자로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직분자의 서약을 마치면 그 서약을 듣고 직분자를 받은 성도들도 서약합니다. 직분자를 받는 행위가 마음에서 그치지 않고 공적인 서약으로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 장로와 집사의 임직 때 성도가 서약 시에 받는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 ) 교회 회원들이여 ( )씨를 교회 장로(집사, 권사)로 받고 성경과 교회정치에 가르친 바를 따라서 주 안에서 존경하며 위로하고 복종(집사와 권사에게는 “협조”)하기로 맹세합니까?
서약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언급한 바와 같이 첫째로 진심으로 직분자를 받는가? 둘째로 직분자를 존경하고 위로하고 복종할 것인가?
그러므로 직분자를 인정하고 받는 것은 권위를 인정하고 복종하겠다는 약속과 불가분 이어져 있습니다. 성도들은 서약 시 진심으로 직분자를 받고 그에게 복종할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 만약 직분자를 존경하지도 않고 그에게 복종하지도 않는다면 서약은 거짓이 됩니다. 서약은 직분자를 세우신 그리스도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거짓 서약은 우리 주께 거짓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3) 안수
목사의 위임식에는 안수가 없습니다. 목사는 노회에서 목사로서 임직할 때 안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로와 집사의 임직식에는 안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장로와 집사가 임직식 때 교회의 성도들은 안수를 보게 됩니다.
직분자가 받는 안수를 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려면 먼저 안수가 무엇인지 알아야겠지요? 안수는 임직식의 한 요소로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첫째로 안수는 직분자 선출과정의 마지막 단계이자 완성입니다. 검증, 투표, 서약 등 모든 과정을 거쳐 직분자의 선출이 공식적으로 확증되는 순간입니다. 절차의 한 부분인 셈이죠. 그러므로 성도들은 직분자의 머리에 목사가 손을 얹는 순간 직분자를 뽑는 모든 절차가 공식적으로 끝나는 것을 봅니다. 성도들은 모든 절차가 합법적으로 이뤄져 공식적으로 확정되는 순간에 대한 증인입니다. 그리고 안수를 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은 모든 과정에 대한 동의이기도 합니다.
둘째로 안수는 성별(聖別), 즉 바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안수에 대해서는 칼뱅이 강조한 점입니다. 하나님께 직분자를 바치는 것이지요. 직분을 위해 직분자의 생애가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분자는 평생 직분을 수행합니다. (여기에 있어서는 종교개혁 당시 국가들마다 다르긴 합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에서는 목사만이 안수를 받았기 때문에 목사만 평생 직분을 섬겼습니다). 심지어 은퇴식 이후에 맡은 직무는 내려놓지만, 직분자의 직함은 유지됩니다. 그러므로 비록 직분자와 직분이 없는 성도 간에 존재론적으로 차이는 없지만 (가톨릭은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별하며 존재론적 차이를 말하지만) 직분을 위해 성별된 차이는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안수는 왜 성도가 직분자를 존경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세우신 직분을 위해 바쳐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직분을 통해 교회를 다스리시는데, 직분자가 그 일을 위해 바쳐졌습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우리는 안수에서 직분의 존귀함을 봅니다.
셋째로 안수는 축복을 상징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안수가 세례와 성찬과 같은 수준의 성례는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예수님께서 직접 제정하셨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종교개혁자들은 안수가 성례와 같은 기능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이 안수로써 직분자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안수는 기도와 함께 거행됩니다. 축복에 있어서 핵심은 기도입니다. 직분자는 선출과정에서 직분을 행할 은사가 있는지를 검증받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선출되었다는 사실은 성령께서 그에게 은사를 주셨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은사가 있어도 하나님께서 그를 계속 도우실 때 직분을 온전히 섬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안수 시에 하나님께서 선출된 직분자에게 필요한 능력을 계속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안수는 하나님께서 직분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지요. 임직식에 참여한 성도들은 직분자의 머리에 놓인 목사의 손에서 하나님의 손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직분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을 보는 거지요. 참 감사한 순간입니다. 내가 속한 교회를 위해 하나님께서 직분자에게 은사를 주시는 것을 보며 기뻐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도들도 목사가 직분자를 위해 기도할 때 마음으로 그 기도에 동참합니다.
4) 권면
마지막으로 예식에 참여한 성도들에게 중요한 요소가 권면입니다. 권면은 직분자와 교회에 각각 행합니다.
안수 후에 목사는 직분자의 임명을 공포합니다. 그리고 권면이 따라옵니다. 목사 위임이 공표되고 장로와 집사의 임직이 공표된 이후에 권면이 온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권면이 전체 예식에서 어디에 위치하는가에 따라 권면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 때 예식서에 따라 권면의 위치가 달랐습니다).
공표 이후에 권면이 오면 직분자는 이미 직분을 받은 상태입니다. 권면을 통해 직분자는 본 교회의 직분자로서 교회에 대한 의무를 듣습니다. 교회는 자신들이 받은 직분자에 대한 의무를 듣습니다. 성도들은 서약 시에 맹세한 직분자에 대한 의무를 권면을 통해 다시 듣는 것입니다.
결론
위임식과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생각보다 성도가 참여하는 예식의 요소가 많지요? 임직식은 단순히 직분자만을 위한 예식이 아닙니다. 위임식과 임직식은 성도들이 직분자를 받는 예식이기도 합니다. 성도들도 예식의 주인공이지요 (사실 그리스도께서 임직식의 진정한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위임식과 임직식에 대한 우리의 자세도 달라져야겠지요? “누가 집사가 된다는데, 누가 장로가 된다는데 참석할까? 축하하러 갈까 말까?”이런 질문은 없어야 합니다. 위임식과 임직식은 나를 위한 예식이기 때문입니다. 참여하여 직분자의 서약을 듣고 나도 진심으로 직분자를 향한 내 의무에 대해 서약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안수에서 언급하였듯이 하나님께서 예식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성령께서 직접 직분자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참석해야 합니다.
우리는 쉽게 직분자에게 불만을 품고 비판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먼저 생각해야 할 바가 있습니다. 과연 나는 임직식 때부터 직분자를 받은 성도로서 책무를 다했는가? 나는 내 서약에 얼마나 충실한가? 이런 질문이 앞서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서약한 대로 먼저 직분자를 존경하고 위로하며 순종해야 옳습니다. 그것이 예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