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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초창기 한국장로교회(1884년-1945년)의 교회법

 

 

성희찬 목사

(작은빛교회)

 

 

서론

 

   교회법은 법 조항들로 이루어진 교회론이다. 본 글은 한국장로교회 초창기, 즉 선교사가 처음으로 입국한 1884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로 국한하여 이 기간에 교회법이 어떠했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이 기간에 나타난 교회법은 첫째, 미국 북 장로교회 선교사들이 작성한 『미국 북 장로교회 선교회 규범과 세칙』(1891년), 둘째, 1907년 9월 한국장로교회 독노회가 세워지고 채택한 최초 헌법(신경과 교회정치), 셋째 1912년 9월 총회 설립 이후 1922년 9월에 한국장로교회가 최초로 채택한 완전한 헌법(12신경, 웨스트민스터소요리문답, 교회정치, 교회권징, 예배지침). 넷째, 관리표준 일부 조항을 개정한 1929년 헌법과 1934년 도리상(교리표준) 헌법 개역이 이루어지면서 발행된 헌법이다. 이 헌법은 조선예수교장로회가 분열되기 전에 가지고 있던 마지막 헌법이다.

 

 

1. 미국 북 장로교회 선교회 규범과 세칙(Presbyterian Northern Mission Rules and By-Laws)(1891년)[1]

 

   미국 남 장로교회 선교사들과 함께 선교사 공의회를 구성하기 전 미국 북 장로교회 선교사들이 만든 『북 장로교 선교회 규범과 세칙』(1891년)은 이후 한국 장로교회가 제정해 온 『교회정치』의 가장 최초 형태다. 1884년 첫 선교사 내한 이후 1890년 당시 선교사들은 모두 미국 북 장로교회 소속으로서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당시 미국 북 장로교회 소속으로 중국에서 이미 25년 동안 선교사역을 하던 선교사 네비우스(Nevius) 박사를 한국에 두 주간 초청하여 선교 방법론을 배워서 1891년 첫 연례집회에서 일련의 규범과 세칙을 채택하는데 그것이 바로 『북 장로교 선교회 규범과 세칙』(Presbyterian Northern Mission Rules and By-Laws)(1891년)이다. 이 규범 거의 모든 항목에서 네비우스의 영향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어떤 경우에는 그의 책에서 직접 인용한 구절도 있다.[2] 선교회 규범과 세칙은 모두 7조 59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A항은 선교회가 관할하는 지회를 언급하는데 여기서 영수라는 직책이 처음 나온다: “각 지회는 가능하다면 교인들이 선출하거나 담당 선교사가 임명한 영수(들)를 가진다”고 하였다. “영수의 임무는 조사나 다른 담당자가 없을 경우 주일 예배를 주관하는 것이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영수들은 선교회로부터 사례금을 받지 않으며 만일 받을 경우에는 선교회 전원의 찬성에 의한다”고 하였다.[3] 사실 영수는 장로로 임직받지 않을 뿐 다스리는 장로의 직무를 대신하는 자였다. 그런데 선교사들이 왜 장로를 곧장 세우지 않고 영수를 세우기를 원하였을까? 이는 충분한 자격을 갖추어서 책임을 지고 권위 있는 장로를 세우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창기 내한 선교사들은 네비우스의 방법을 따라서 각 교회에 영수를 세운다.

    B항에서 현지 대리인(Native Agents)을 다루는데 여기에 영수(Leader)가 가장 먼저 나오고 목사가 가장 나중에 나오는 것이 돋보인다. 그만큼 당시에는 영수의 역할이 중요하였다. 심지어 선교사의 임무 중에서 영수의 선출과 임무 부과를 가장 큰 것으로 말하고 있다: “4. 영수의 선출을 지정 혹은 배려하며 그들에게 임무를 가르친다. 5. 영수들과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기타 한두 사람을 권면하여 집과 가장 가까운 데서 실시되는 신학 수업에 참여하게 하며, 그들의 참석을 강권하고, 수업을 맡은 선교사에게 앞으로 올 수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보고하게 한다.”

   둘째, B항에서는 현지 대리인(Native Agents)을 다루는데 여기에는 영수(Leader), 장로(Elder), 집사(Deacon), 조사(Helper), 전도부인(Bible Woman), 강도사(Licentiate), 전도사(Evangelist), 목사(Pastor) 등이 포함된다. B항의 3조와 9조에서 목사, 장로, 집사만이 ‘성경에 규정되었고, 장로교회 정치형태에서 제시된 대로 정식 직분’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들 세 직분과 함께 영수, 조사, 전도부인, 강도사, 전도자, 매서인 등도 열거되고 있다. 매서인은 “서적과 소책자의 배포자 혹은 판매자이다. 이들은 지부의 가결에 의해서만 임명된다. 그리고 기독교적 인격과 배포할 서적들에 대한 지식, 그 사역에 대한 열성과 만족스런 증거를 보인 자라야 한다.”라고 하였다. 매서인에 대한 통계는 1907년 독노회 설립 당시부터 노회에 보고되었는데, 1906년은 51명으로 나와 있다. 당시 목사와 조사가 46명, 105명일 때 이만한 수가 되었다는 것은 이들이 당시 선교와 전도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4] 전도부인은 “기독교 서적을 배포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는 그리스도교인 여성이다. 그러한 여성들은 지부의 가결에 의해서만 임명된다”고 하였고, 조사는 “선교사 사역의 특별한 보조자로서 선교사에게 부속되는 그리스도교인이다”고 하였으며, 전도자는 “특정 지역 안에서 복음을 전하도록 지부에 의해 임명된 자이다”고 하였다.

 셋째, 특히 장로와 집사를 아주 엄격하게 세울 것을 규정했다. 즉 ‘교회에서 만장일치로 선출되고 선교지부의 승인을 받아 그 뒤 6개월 동안 시험과 가르침을 받은 연후에야 안수를 받는다’고 하였으며, 이들은 또한 사례금을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곽안련은 이는 상급 치리회에 의한 감독을 미국 어느 장로교단보다 훨씬 더 강도 높게 규정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5] 

   넷째, 본 규범과 세칙은 몇 번에 걸쳐 부가되는데 1896년 B항 <현지 대리인> 항목에 부가된 것을 보면, 3조에서 서리집사가 나온다. 이들은 “지회의 교인들이 선출하거나 담당 선교사가 임명한 현지 기독교인으로 한다. 이들은 안수받지 않고 일시적으로 집사의 직분을 수행한다”고 하였다. 이같이 선교사들은 아직 장로와 집사의 자격이 있는 신자가 없는 상태에서 영수를 세워서 장로의 직무를 대신하게 한 것처럼, 서리집사를 세워서 집사의 직무를 대신하기를 원하였다.

   다섯째, 한편 미국 북 장로교회 선교사들은 A항에서 선교사의 임무를 열거하면서 “징계를 집행하고 교회에 입교할 후보자를 심사하며 그 후보자를, 해당 지회 소재에 대한 관할권을 가진 선교사 치리회 혹은 교단 치리회에 보고한다.”[6]라고 하였다. 이로써 이들은 초창기부터 권징을 시행하는 교단 치리회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2. 『대한예수교장로회 규측』(1907년)

 

   1907년 9월 17일 대한예수교 장로회 독노회가 설립되었다. 무엇보다 제1회 독노회는 공의회가 준비한 신경과 『대한예수교장로회 규측』을 채용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규측』은 총4조 14항, 세칙 7조로 아주 간단하다. 제1조는 교회, 제2조는 예배절차, 제3조는 직원, 제4조는 교회 치리를 다룬다.

   그런데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가 독노회 설립을 준비하면서 본래 의도한 교회정치는 이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1906년에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에 제출한 교회정치는 “웨스트민스터 정치모범대로 완전히 제정한 정치 즉 각 노회, 당회, 집사회, 기타 각항 사건에 관한 정치”였다.[7] 그런데 이듬해에 모인 이 공의회는 이를 폐기하고 대신 짧고 간단한 헌법을 통과시킨다. 웨스트민스터 정치모범이 사울의 갑옷처럼 유아기에 해당하는 한국장로교회에는 너무 무겁다고 생각한 것이다: “너무 중한 짐이 되어 연약한 교회가 감당키 난하니 맛당히 만국장로회의 보통원리에 터하야 간단히 제정 사용하다가 몇 개년 후 교회가 성장하여 장로회 교회에 한숙하게 된 후에 교회가 자기의 형편에 적당한 정치를 제정하 것이 합당하다.”[8]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두는 조항은 제3조 직원(6항)과 세칙 7조이다. 이것으로 1907년 『교회정치』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직원을 목사-장로-집사로 셋으로 보지 않고, 장로와 집사 둘로 보고 있다. 그래서 “강도함과 치리함을 겸한 자를 흔히 목사라 칭하고, 다만 치리만 하는 자를 장로로 한다”고 하였다. 이는 미국 남 장로교회의 영향으로 보인다.

   둘째, 목사는 “노회의 안수함으로 세움을 받는다”고 할 뿐 치리하는 장로는 여기서 배제한다는 자세한 규정은 없는 것으로 보아, 장로도 노회 일원으로서 목사 안수에 참여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 역시 미국 남 장로교회의 영향인 듯하다.

   셋째, 목사 칭호를 보면, 지교회 목사와 전도 목사만 나오고 있다. 즉 “목사는 노회의 안수함으로 세움을 받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며 성례를 베풀며 교회를 다스리나니, 혹 한두 지교회나 여러 지교회를 총찰하난 자를 지교회 목사라 하고, 노회에서 직분을 맡아 두루 다니며 전도하는 자를 전도목사라 칭하니라”라 하였다. 그래서 1907년 한국 목사 7인이 임직한 후에 길선주 목사는 장대현교회 지교회 목사로 청빙을 받고, 이기풍 목사는 제주도로 선교사로 파송되고, 나머지 5인 목사는 모두 전도목사로 파송하기로 결정되었다.[9]

   넷째, 장로와 집사에 대해서는, 장로는 목사에게 안수함으로 세움을 받아 목사와 더불어 지교회의 신령한 일을 살펴 다스리는 자라고 하였고, 집사는 목사에게 안수함으로 세움을 받아 목사와 장로로 더불어 병인과 궁핍한 자를 돌아보며, 지교회 연보전을 받기도 하고 쓰기도 한다고 하였다.

   다섯째, 한편 노회에서 강도하는 인허를 받고 노회의 인도함을 좇아 일하며 노회가 작정한 목사 앞에서 혹 조사가 된다고 하였다.

   여섯째, 『교회정치』에서 영수, 서리집사, 여전도인, 매서인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1907년 『교회정치』가 원리적으로만 규정한 간단한 정치임을 보여준다. 실제로는 각 개체교회에서 이들이 교회의 사역자로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회가 없는 대부분 미조직교회에서 영수의 권한은 이미 실제적이고 막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규정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일곱째, 세칙 5조를 보면 장로와 집사 선출과 안수를 규정하는데, 우선 장로와 집사는 목사와 당회뿐 아니라 혹은 노회에서도 안수를 받을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다: “장로와 집사를 택하려면 택하기 전 주일에 미리 공포하고 성찬 먹는 회원이 택할지니 목사와 당회가 안수 위임하거나 혹 로회가 안수 위임하되 안수하기 전에 장로와 집사될 자들이 신경과 규측과 세측을 준행하기로 허락할지니라”고 하였다.

 

 

3. 『교회정치』(1922년, 1929년, 1934년)

 

 1) 1922년 교회헌법(12신경, 웨스트민스터소요리문답, 교회정치, 교회권징, 예배지침)

   1912년 9월 1일에 한국장로교회는 총회를 구성하고 제2회 총회(1913년)는 정치개정을 위하여 위원을 선정했다. 1907년 『대한예수교장로회 규측』은 의도적으로 간결하게 뼈대만 만든 것이기에 적절한 때가 오면 완벽한 새 헌법을 작성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차례 과정을 거쳐 제11회 총회(1922년)는 조선예수교장로회 최초로 완전하게 구성된 헌법을 발간한다. 이 헌법은 한국장로교회가 최초로 채택한 완전한 헌법이다: 첫째, 12신조와 인가식, 둘째, 107개로 된 『성경요리문답』 셋째, 24장과 부록으로 된 『정치』 넷째, 19장으로 이루어진 『예배모범』, 다섯째, 14장으로 된 『권징조례』. 1922년 『교회정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1922년 헌법제정에는 누구보다도 곽안련 선교사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10] 특히 『교회정치』 목차를 보면 곽안련 선교사가 번역하여 출간한 J.A. Hodge의 『교회정치문답조례』(1917년)에 나타난 순서와 거의 동일하다.

   둘째, 1907년 『교회정치』처럼 교회에 영존할 교회직원 즉 항존 직원은 성경에 근거하여 오직 두 종류, 장로(감독)과 집사가 있다고 하였다.

   셋째, 제6회 총회(1917년)가 목사의 호칭(① 전임목사 ② 동사목사(위임목사, 임시목사) ③ 임시목사 ④ 무임목사 ⑤ 피택목사 ⑥ 이명목사 ⑦ 전도목사 ⑧ 선교사 ⑨ 지방목사 ⑩ 양로목사 ⑪ 은퇴목사 ⑫ 부목사(유안))을 결정했음에도 1922년 『교회정치』는 이를 담지 못하였다. 단지 목사 직무를 설명하면서 목사가 지교회 뿐 아니라 신학교와 대학교에서 혹은 선교지에서 혹은 종교상 신문이나 서적의 일에 종사할 수 있음을 언급하는 정도에 그쳤다.

   넷째, 제5장 치리장로 제4조 장로 직무를 보면 이후 개정에서 볼 수 없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무엇보다 “치리장로는 목사들과 협동하여 치리와 권징의 사를 관리하며 지교회 혹 전국교회의 신령적 관계를 통솔하나니라”고 하였다. 즉 장로의 직무 중 주된 것은 ‘치리’와 ‘권징’이라고 했다. 그런데 여기 쓰인 ‘치리’라는 용어는 나중 1929년 개정에서 수정되어 ‘행정’으로 바뀐다. 이는 치리회의 본질적인 직무가 치리임을 크게 약화시키는 결과인데 적어도 1922년까지는 그래도 ‘치리’ 용어를 고수했다.

   다섯째, 제5장 제3조가 장로 자격을 말할 때 연령과 무흠(無欠)의 기준은 언급하지 않는다. 이 기준은 1929년 개정에서 비로소 나타난다. 즉 장로는 “행위가 선량하고 신앙이 진실하고 지혜와 분별력이 있으며 언행이 성결함으로 전 교회의 모범이 될 자라야 가합하니라(벧전 5:3)”고 하며 그 자격을 그냥 일반적으로 제시하였다.

   여섯째, 제6장 집사 제3조에서 집사 직무를 ‘목사 장로와 합력하여 궁핍 빈궁한 자를 권애하며 교회에서 연보한 구제비를 수납 지출하는 것이니라’고 하였다. 특별히 다음의 문구가 눈에 띈다: “교회가 원하면 전 교회 재정에 관한 사와 증명서류를 제직회에 위임하여 관리케 하되 당회 관리하에 있어 할 것이라(행 6:3-5).” 여기서 ‘교회가 원하면’ 모든 교회 재정의 일을 맡길 수 있다는 것과 ‘집사의 직무가 당회의 관리하에 있다’는 문구다. 이 문구는 결국 1929년 개정에서는 삭제가 된다.

   일곱째, 제6장 제4조(제직회)에서 제직회를 ‘집사회의 대변’으로 언급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나아가 본 조항은 당회가 제직회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당분간’ 서리집사와 조사, 영수에게 제직회원 권리를 줄 수 있다고 하면서 교회정치에서 제직회를 다룰 때 처음으로 ‘서리집사’ ‘조사’ ‘영수’가 나오고 있다. 이들은 항존 직원은 아니나 각기 형편에 의하여 ‘당분간’ 즉 임시로 제직회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세우는 자들이라 할 수 있다. 미조직교회는 아직 당회가 구성되지 않은 교회이기에 목사와 함께 조사 영수 서리집사 등이 해 제직회의 사무를 임시로 집행한다고 하였다. 1929년 『교회정치』 개정 시에 조사, 영수, 서리집사는 임시직원으로 분류되어서 규정되었다.

   여덟째, 제6장 4조 제직회 직무 중에서 “본 교회의 가결과 노회의 허락이 없으면 제직회가 본 교회의 가옥과 토지를 전집, 출책하지 못하니라”고 하여 제직회가 가진 한계에 대해 못박고 있다. 교회 가옥과 토지를 전집(典執, 전당을 잡히는 것을 뜻함)하거나 출책하고자 할 때 교회의 가결뿐 아니라 노회의 허락까지 얻도록 하였다.

   아홉째, 제6장 제5조에서 여 집사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이들 직무를 보면 오늘날 권사의 직무에 해당한다. “당회가 여 집사를 선택할 경우에는 그 직무는 환자, 수인자, 과부, 고아, 기타 환난당한 자를 위로하며 권고하되 하사든지 당회 감독하에 행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였다. 한편 여 집사 선거에 대해서는 오늘날처럼 투표 방식으로 하지 않고 당회가 ‘진실하고 성결한 여인 중에서 자벽 선정’하였고, 기도로 임직하고 안수식은 행하지 않았다(제13장 장로 집사 선거급 임직 제9조 여집사 선거).

   열째, 장로 및 집사 선거와 임직에 대해서는 제13장에서 다루고 있는데 성찬에 참여하는 회원이 투표 선거하되 투표수는 장로는 2/3와 집사는 과반수로 선정한다고 하였다. 특별히 장로의 경우 투표수의 2/3는 제4회 총회(1915년)에서 결정한 기준이다.[11] 1922년 『교회정치』는 장로 선택과 임직에 대해 대체로 까다롭다. 장로 선택뿐 아니라 장립도 각각 노회 승인을 얻도록 하고 있다. 즉 노회 직무를 설명할 때 “장로 선택하기를 허하기도 하고, 피택한 장로를 문답하여 장립하기를 허하기도 하며”(제10장 제7조 제2항) 라고 하였고, 또 치리 장로나 집사를 선거한 후에도 노회가 승인하도록 규정하였고(집사는 예외), 또 피선된 본인도 승낙한 후에 임직하도록 하였다(제13장). 그러나 이 문구는 1929년 개정에서 삭제된다.

   열한 번째, 제13장 제5조는 원칙적으로 이들은 종신 항직이기에 본인이 임의로 사면하지 못하며, 또 사면할 일 외에 교회 역시 시무를 해제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열두 번째, 1922년 『교회정치』는 장로와 집사의 시무반차(제8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치리장로 급 집사 집사의 직은 종신 항직인즉 본인이 임의로 사면하지 못할 것이오 사면할 사(事) 외에난 교회도 임의로 해제하지 못할 것이니라 하 지교회서던지 무흠한 세례교인 과반수의 투표로 장로급 집사의 시무기한과 반차를 정할 수 있난데, 그 규례는 좌(左)와 여하니라

 (一) 기한은 3개년 이상으로 할 것

 (二) 반은 3반으로 분하고 매년에 일반씩 교체할 것

 (三) 기의 임직한 장로난 시무기한이 만료되고 다시 치리하난 직무를 받지 못할지라도 그 직은 항존할 것인즉 당회 혹 노회에 선거를 받아서 상회에 총대로 파송될 수 있나니라”(8. 시무반차)

 이 조항은 약간 개정이 되기는 하지만 그 골격을 유지한 1929년 『교회정치』에서 계속 이어진다: “치리장로급 집사의 직은 종신직이니라. 단 3년 일차씩 시무를 투표할 수 있고, 그 표결 수는 과반을 요하느니라”(제13장 장로 집사 선거급 임직 제4조 임기). 이 조항은 1955년 『교회정치』까지 이어지다가 이후 기장 측은 1967년부터 통합은 1971년부터 고신은 각각 1992년부터 삭제한다.

 

 2) 1929년 『교회정치』

   제16회 총회(1927년)는 헌법을 수정하자는 일부 노회의 청원을 가결하고 헌법수정위원 16인을 선정하여 이 일을 맡겼다.[12] 1929년 수정(개정) 『교회정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직원을 항존직원과 임시직원, 준직원으로 구분하고 ‘임시직원’(제3조) ‘준직원’(제4조)을 신설했다(제3장 교회직원). 특히 제3조 임시직원을 ‘교회사정에 의하여 좌기 직원을 안수 없이 임시로 설치’한 직원으로 정의하고 전도사, 전도인, 영수, 남녀서리집사를 포함했다.

   ‘전도사’는 남성에게 국한되지 않았다: “남녀전도사를 당회의(당회가 없는 곳에는 지방목사) 추천으로 노회가 인가하여 유급교역자로 당회나 목사의 관리하는 지교회 사무를 방조케 하는 자이니라.”. 이들 권한은 당시로는 지대했다: “장로 아닌 전도사가 해 당회의 회원은 되지 못하나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언권방청이 되고, 미조직교회에서는 목사의 허락으로 제직회 임시회장이 되고, 노회의 허락으로 학습문답권을 받을 수 있다.” 이는 목사 수 부족으로 인한 현상으로 보인다.

   ‘남녀 전도인’은 “유급교역자로 불신자에게 전도하는 자이니 그 사업 상황을 선정 파송한 기관에 보고하고, 타지방에서 전도에 착수할 것이면 해 구역 감독기관에 협의하여 보고할 것이니라”고 하였다. 지금의 ‘전도목사’와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목사 수에 비해 전도의 범위가 너무 넓다 보니 전도를 목적으로 하는 전도인을 교회나 기관에서 파송했다. 형편에 따라 여 전도인에게도 당회의 허락으로 강도할 권한을 부여하였다.[13] 영수는 “당회가 조직될 때까지 교회 혹은 목사가 선발하야 지교회를 인도하게 하되, 임기는 1년간이니라”고 하였고, 남녀서리집사는 “교회 혹은 목사나 당회가 신실한 남녀로 선정하야 집사의 직무를 하게 하는 자니 그 임기는 1년간이니라”고 하였다.

   둘째, 제4장 목사 직무에서 두 개 조항이 신설되는데 하나는 기독교 학교에 종사하는 ‘교목’에 해당하는 목사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학을 졸업한 자가 신학교와 대학교의 교수의 직무, 종교상 신문이나 서적 일에 종사하는 직무, 종교교육 기관에서 종사하는 직무를 할 시에는 지금의 ‘기관목사’로 임직하도록 했다.

   셋째, 제4장 4조(목사 칭호)를 신설하여 목사의 시무와 형편을 따라 칭호를 구분했다: (1) 위임목사, (2) 임시목사 (3) 동사목사, (4) 원로목사, (5) 공로목사, (6) 무임목사, (7) 전도목사, (8) 지방목사, (9) 선교사. 특별히 ‘원로목사’와 ‘공로목사’가 새로 생겨난 것이 눈에 띈다. 원로목사는 “동일한 지 교회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목사가 만년에 이르러 노회에 시무사면을 제출할 시에 본 교회에서 명예적 관계를 보전코자 하면 정식 공동의회를 소집하고 봉급을 작정하여 원로목사로 투표한 후 노회의 승낙을 득하야 명예 지위를 수여하는 것이니라”고 하였다. 지금 원로목사와 같은 내용이다. 불행하게도 이때부터 원로목사 제도로 인해 교회에 갈등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공로목사는 원로목사가 되지 못한 은퇴목사를 가리킨다: “목사가 다년간 지교회에 근무하다가 신병 혹 연로함을 인하야 노회에 사직을 제출할 시는 그 공로를 기념키 위하여 노회는 공로목사의 명예직을 수여하나니라. 단, 원로급 공로목사는 본 지교회의 직무와 치리권은 없으나 상회권을 향유할 것이요, 이런 목사가 다시 지교회 시무를 담임하게 되면 명예 명부에서 시무명부로 이록(移錄)할 것이니라.”

   위임목사는 지금처럼 만 70세까지 시무한다는 조건이 없고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그 담임한 교회를 종신 시무할 것이니라”고 하였다(제4장 제4조 제1항). 지방목사는 우리에게 생소한데, “노회가 그 관할 지방 내에 다수한 약한 교회가 있어서 목사를 자담(自擔)치 못하는 경우에 그 교회를 권고키 위하여 파송하는 목사니, 노회의 결의로 행하며 당회장권을 허여(許與)할지니라”고 규정하였다. 지방목사는 지금의 ‘임시당회장’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넷째, 장로 자격에서 연령 및 무흠 규정을 기준으로 제한을 두기 시작했다. 즉 “27세 이상 남자 중 입교인으로 무흠히 5년을 경과하고, 상당한 식견과 통솔의 기능이 있으며, 딤전 3:1-7에 해당한 자로 할 것이니라”고 하였다.

   다섯째, 이전 『교회정치』에서 노회 구성은 목사 3인, 장로 2인으로 회집하여 개회성수가 될 수 있었으나, 1929년부터는 목사와 총대 장로 각 3인 이상이 회집해야 개회 성수가 되었다. 즉 목사와 총대 장로 수가 동일하게 바뀌게 되었다.

   여섯째, 목사임직도 장로나 집사임직도 마찬가지로 노회에서 6개월 동안 훈련을 받은 다음에 하도록 규정하였다: “...각 노회가 신학 졸업생을 시취하여 강도사로 인허한 후 해 강도사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6개월 이상 노회 지도하에서 본직의 경험을 수양할 것이니라”고 하였다(제14장 목사후보생급 강도사 제1조 양성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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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1934년 헌법

   1929년 헌법은 정치, 권징조례, 예배모범[14] 등 소위 관리(管理)상 헌법을 중심으로 한 개정이라면 1934년 헌법은 신경, 요리문 등 소위 도리(道理)상 헌법을 개정한 것이었다.[15] 그래서 1934년 헌법개정은 엄밀한 의미에서 개정이라기보다 인도장로교회 12신조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 나오는 것을 각각 번역한 것으로 ‘개역’(改譯)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개정은 노회 수의 과정도 없고 공포 과정도 없었다. 1934년 1월에 출판하였다. 이로써 1927년부터 시작된 헌법개정이 완료되었다.

 

 

결론

 

   지금까지 초창기 한국장로교회에서 헌법개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1884년에서 1945년까지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살폈다. 이 토대에서 한국장로교회에서 이루어진 헌법의 형성, 개정과 변천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미국 북 장로교회 선교회 규범과 세칙』은 교회정치와 관련하여 한국에서 장로교회를 세우는 첫 『교회정치』라 불릴 만큼 이후 1907년, 1922년, 1929년 1934년 『교회정치』에 기틀을 마련하였다. 무엇보다 중국 선교사 네비우스가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 특히 자치(自治)의 관점에서 미국 북 장로교회 선교사들은 네비우스의 조언을 따라서 목사 장로 집사가 성경과 『교회정치』에서 규정하는 직분이라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또 이를 위해서 이 직분을 엄격하게 세우기를 바랐다고 할지라도(교회에서 만장일치의 선교지부의 승인, 6개월 동안의 시험과 가르침 이후 안수를 강조), 이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목사 장로 집사의 서리에 해당하는 조사, 영수, 서리집사를 각각 개체교회 사역자로 먼저 세웠다. 이들은 말 그대로 선교사를 돕는 ‘현지 대리인’(native agents)으로서 회중 선출과 무관하였고 선교사와 지방목사의 임명으로 일할 수 있었다. 이 중에서 영수와 조사는 매서인, 전도부인 등과 함께 선교사들과 협력하여 유급 사역자로 일하였다. 그런데 이들이 각 교회 현장에서 실제로 권한을 가지고 영향을 끼친 직책임에도 불구하고 영수와 매서인에 대한 공식 교회 통계는 1907년 노회 보고서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더구나 『교회정치』에 나타나는 것은 영수와 서리집사 경우는 자세한 설명 없이 1922년 『교회정치』에서 제직회를 규정하는 곳에서 잠시 언급될 뿐이고, 1929년 『교회정치』에 가서야 비로소 교회 현실이 반영되어 목사 장로 집사와 같은 항존 직원과 함께 임시직원으로서 전도사, 전도인과 함께 영수와 서리집사가 등장한다. 그러다가 영수는 해방 이후 한국 장로교회에서 사라지고 반면 서리집사는 지금까지 교파와 교단을 초월하여 한국교회에 중요한 직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장로 임직 경우 상급 치리회에 의한 감독을 강조한 것도 네비우스 정책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1907년 『규측』은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의 설립과 함께 신경과 더불어 노회가 채택한 것인데 당시 한국 장로교회 현실을 염두에 두고 기본 원리만 적시한 총 4개조 14개항, 세칙 7개조로 구성된 ‘간단한’ 『교회정치』이다. 본래는 독노회에서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에 기반을 둔 미국장로교회 『교회정치』를 번역하여 이를 채택하려고 하였으나 공의회에서 이것이 부결되고 그 대신 간단한 규측이 작성되었다. 여기에서 항존 직원을 장로와 집사로 분류한 것이나 목사를 노회의 안수함으로 세운다는 규칙은 미국 남 장로교회 영향으로 보인다.

   1922년 『교회정치』는 1912년 총회 설립 이후 1907년 『교회정치』 기본골격은 유지하면서 이를 대신한 것인데, 미국 북 장로교회 소속 곽안련 선교사가 미국 북 장로교회 교회정치를 반영한 J. A. Hodge의 책, “What is Presbyterian Law?”(1882)을 번역한 『교회정치문답조례』(경성, 1917년)가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1922년 『교회정치』 목차와 1919년에 총회에서 참고서로 채택된 『교회정치문답조례』 목차는 거의 대동소이하다. 실제로 곽안련 선교사는 1922년 『교회정치』 개정에 깊숙이 관여했고 당시 신학 잡지 <신학지남>을 통해 『교회정치』를 포함하여 교회헌법 전반을 소개하고 해설을 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1922년 『교회정치』는 미국 북 장로교회 『교회정치』를 번역 혹은 대변한 『교회정치』이며, 곽안련 선교사의 『교회정치』라 부를 수 있다. 그래서 1922년 『교회정치』가 한국교회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번역 교회정치 수준에 머문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1907년 『교회정치』 기본골격, 예를 들어 항존 직원을 두 직분으로 본 것과 목사의 임직 시 노회의 안수로 가능하도록 한 점 등을 유지한 1922년 『교회정치』는 항존 직원을 세 직분으로 보고 목사 임직에 장로가 노회원이라고 할지라도 참여할 수 없다든지 노회 개회 성수에 목사만으로 가능하다고 해설한 『교회정치문답조례』와 상충되는 결과를 빚게 된다.

 1929년 『교회정치』는 1922년 번역 『교회정치』에다 당시 한국 장로교회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목사의 직무에 따라서 구분한 목사의 칭호(위임목사, 임시목사, 동사목사, 전도목사 등)를 신설한 것이라든지, 교회의 임시직원으로서 영수와 서리집사 등을 규정한 것이라든지, 장로의 수가 급증하는 현실에서 장로의 자격을 연령과 무흠 기간을 기준으로 제한한 규정 등이다. 위 규정은 세계 교회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한국 토양에서 나타난 것이다. 교리표준을 새롭게 번역하여 출간한 1934년 헌법은 해방 이전 한국장로교회가 가지고 있던 마지막 헌법이다.

 

   한국의 모든 장로교회는 적어도 1945년 해방 직후까지 약 40년 동안 조선예수교장로회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교회로서 하나의 헌법을 가졌다. 1945년 해방 이후 교회 분열이 서서히 이루어지면서 이와 함께 각 교단의 교회법 역시 각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과 각 교단이 추구하는 교회관과 교회 질서를 따라 더불어 변천을 겪게 되었다. 한국장로교회가 40년 동안 하나의 헌법을 가진 것은 지금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다. 이를 토대로 한국장로교회의 여러 교단이 어떻게 다시 하나가 되며 연합할 수 있는지를 함께 논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곽안련 저, 박용규 김춘섭 역, 한국교회와 네비우스 선교정책(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4), 99-109. C.A. Clark, The Korean Church and the Nevius Methods of Korea(New York, Chicago: Flemmiing H. Revell, 1930), 75.

[2] 곽안련, 한국교회와 네비우스 선교정책, 99.

[3] 영수에 관한 조항은 Nevius의 책, 『Planting and Development of Missionary Churches』(1889), 34-35에서 볼 수 있다(곽안련의 『한국교회와 네비우스 선교정책』, 32-33에서 재인용).

[4] 제1회 독노회록(1907), 42.

[5] 곽안련, 한국교회와 네비우스 선교정책, 228.

[6] 곽안련, 한국교회와 네비우스 선교정책, 101.

[7] 이때 제출한 『교회정치』, 아마도 번역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어떤 내용을 담은 『교회정치』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추정할 수밖에 없다. 17세기 『웨스트민스터교회정치』를 가리키는지 혹은 미국 장로교회의 초창기 『교회정치』를 가리키는지 혹은 북 장로교회의 『교회정치』를 가리키는지 아니면 1917년에 곽안련 선교사가 번역한 『교회정치문답조례』를 가리키는지 명확하지 않다. 이에 대한 연구가 면밀하게 필요하다.

[8] 곽안련, 전휘집(1918), 44.

[9] 제1회 독노회록(1907), 18-19.

[10] 전재홍의 다음 논문을 참고하라: 초기 한국장로교회에 있어서 헌법의 형성과정 및 내용에 대한 연구-곽안련 선교사의 역할을 중심으로(계명대학교 박사논문, 2008).

[11] 제4회 총회록(1915), 33.

[12] 제16회 총회록(1927), 37-38.

[13] 제18회 총회록(1929), 44.

[14] 이 개정에서 중요한 것은 예배모범과 권징의 순서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1922년 헌법은 에배모범이 앞에 있고, 권징이 뒤에 있었지만, 1929년 헌법은 권징조례가 앞에 오고 예배모범은 맨 뒤로 가게 되었다. 상징적인 의미이지만, 그만큼 권징이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5] 관리상 헌법, 도리상 헌법이라는 용어는 곽안련 선교사가 신학지남 제6호(1919년 7월)에 기고한 “조선예수교장로회 헌법”이라는 글에서 새 헌법의 해설을 중에 처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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