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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을 떠날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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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스북은 2006년에 생긴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다. 페이스북은 소셜 미디어라는 개념이 세상에 등장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하여서 오늘날 소셜 미디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 IT기업이다. 2010년에 페이스북은 9억 명의 사용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27억명의 사용자가 매월 활발하게 페이스북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는 지구 전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엄청난 수치이며, 지금도 페이스북에는 계속해서 더 많은 사용자가 유입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페이스북의 CEO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사실 이것이 내가 페이스북을 떠나야 하는지 고민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또한 몇 가지 더 우려스러운 이유들 때문에 나는 지금 페이스북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바로 그 이유들에 대하여 이 글의 독자들도 심각한 고민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친구에서 고객으로

 

   IT 기업들의 "영향력”에 대하여 나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사실 페이스북이라는 플랫폼은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 세상의 어떤 미디어 플랫폼도, 또한 어떤 사람도 완전히 중립적일 수는 없다. 우리 모두는 각자 나름대로의 세계관,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기업들도 나름의 세계관, 가치관을 가지고 사업을 한다. 페이스북의 창업자이며, CEO인 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도 마찬가지다. 그도 자신의 세계관, 가치관을 가지고 페이스북을 창업하였다. 그리고 지금도 주커버그의 신념과 관점이 페이스북을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페이스북의 사업 방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돈을 지불하는 광고주들을 위하여서 알고리즘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페이스북에 가입하여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하는 우리 같은 평범한 많은 사람들에게 광고를 많이 노출시키고 있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배후에서 우리를 분석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우리가 관심을 가질 만한 광고들을 우리의 뉴스피드에 더 많이 노출을 시킨다. 페이스북이 등장한 초창기에는 우리의 뉴스피드에 친구들의 글이 훨씬 많이 등장하였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친구들과 페이스북을 통하여서 광범위하게 소통할 수 있다고 느꼈었다. 페이스북은 말 그대로 우리가 교제하고 싶은 편한 친구들 과의 소통의 장이었다.

 

   사진들, 재미있는 일화들, 특별한 이벤트들을 페이스북 안에서 친구들과 공유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또한 우리는 친구들의 소식에 좋아요, 슬퍼요 등을 누르며 공감할 수도 있다. 우리가 친구들의 소식을 공유하거나, 친구들이 우리의 소식을 공유하면서 우리는 더 많은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페이스북을 통하여서 더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우리의 인맥은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은 점점 더 광고주들의 입맛에 맞게 변하였다. 사람들은 점점 자신들의 뉴스피드에서 친구들의 소식은 줄어들고 광고들이 더 많아진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갈수록 사람들과의 소통은 여러 가지로 제약이 생기는 것처럼 보였고, 사람들과의 소통의 장은 갈수록 좁아지는 것 같았다. 대신 우리의 뉴스 피드에는 점차 더 많은 광고와 상업적인 뉴스들로 채워졌다. 이러한 변화는 서서히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페이스북 사용자들은 점차 수많은 기업의 고객으로 변해버렸다. 사회 속에서 기업들의 고객이 되고, 수많은 광고에 노출되는 것 자체가 악하고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페이스북과 같은 IT 기업의 알고리즘에 의하여서 내가 조종당하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나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꼭 페이스북이라는 기업이 놓은 미끼에 낚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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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침해

 

   페이스북에 가입하는 것은 무료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기업이고,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커버그는 어떻게 무료로 가입하는 사람들에게서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기업은 사용자에게 있는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팔아야만 수익을 낼 수 있다. 바로 그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이 개인정보다. 사실 오늘날 구글, 유튜브, 트위터와 같은 다른 대형 IT기업들도 우리의 개인정보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IT 기업들을 통하여서 편리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우리의 개인정보들을 가져가고 있다. 우리가 가입할 때 제출하는 기본적인 정보 외에도, 우리의 습관, 관심,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에서의 우리의 사용패턴까지도 모두 이들 IT 기업들이 가져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정보는 우리를 고객으로 생각하는 광고주들의 입맛을 자극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점차 기업의 타겟이 되어버렸다. 혹시 어떤 주제의 뉴스를 읽거나, 검색을 한 후 바로 다음 날부터 비슷한 종류의 광고가 갑자기 노출되기 시작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또는 비슷한 주제의 뉴스나 글들이 자연스럽게 페이스북 뉴스피드를 채웠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알고리즘이 처음 등장하였던 2010년에는 이러한 현상이 초보적인 수준이어서, 우리가 이를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우리의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알고리즘 기술이 고도로 발전되어서 지금은 그들이 더욱 교묘하게 우리들의 정보를 이용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현상을 바라보면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랄 때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기술이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자동으로 알려준다고 좋아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스토킹 당하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그래서 나는 얼마전부터 더이상 트위터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구글 대신에 우리의 개인정보를 이용하지 않는 검색 엔진인 덕덕고(Duck-Duck-Go)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페이스북도 조만간 사용을 멈추어야 하지 않을까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무가치한 정보들

 

   페이스북이 처음에는 재미있는 우리의 일상을 공유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점차 페이스북에서 그런 컨텐츠들은 줄어들고 대신에 뉴스, 정보성 글, 그리고 우리를 유혹하는 상업적 광고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또한 우리를 자극하는 비디오 영상들도 갈수록 페이스북에 많이 노출되고 있는 중이다. 페이스북 안에서 수많은 기업들이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으려고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지금은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정보들의 양이 너무 많아서, 어느 누구도 페이스북 뉴스피드에 올라오는 모든 글들을 다 읽을 수 없다. 그럼에도 뉴스피드는 새로운 정보, 영상들로 계속해서 채워지고 있다. 나는 이런 현상을 바라보면서 예전에 수백 개의 채널에서 밤새도록 영상이 나왔던 케이블 TV가 떠올랐다. 사실 그 때에는 일주일 24시간 쉴 새 없이 많은 정보들이 TV에서 쏟아져 나왔다. 24시간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TV 프로그램을 다 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욱이 그것들은 우리에게 별로 유익하지도 않았다.

 

   지금 페이스북도 마찬가지다. 엄청나게 많은 볼 거리가 있지만, 정작 볼만한 것은 별로 없다. 정말 많은 읽을 거리가 있지만, 정작 중요한 내용은 별로 없다.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도움이 되는 글, 유익한 영상을 찾기 위하여서 페이스북에서 수많은 글과 영상들을 보았지만, 사실 대부분은 별 가치 없는 것들이 아니었는가? 그리고 그 사이에 엄청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던가? 사실 페이스북은 굉장히 중독성이 있다.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되었다. 우리가 페이스북에 접속해서 아무 생각없이 스크롤을 내리며 정보들을 읽다 보면 어느새 몇 시간이 그냥 흘러가 버리고 만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서 페이스북을 이용한 후 우리에게 무엇이 남았는가? 과연 유익한 정보들을 얻으며, 페이스북이 우리를 지혜롭게 하였는가? 그것이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는가? 일부 좋은 정보들이 우리에게 약간의 유익을 주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페이스북은 우리의 시간, 에너지, 집중력을 빼앗아가고 있다. 나는 우리가 그것들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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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

 

   페이스북뿐만 아니라 다른 거대 IT 기업들을 보면서 불쾌하고 우려스러운 또 다른 요소는 내용검열이다. 내용검열은 이런 것이다. 만약 페이스북이 우리가 쓴 글이 맘에 들지 않으면 그들은 우리가 쓴 글에 공개적으로 경고를 보내거나, 결국에는 우리의 글을 삭제할 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프로필이나 페이지도 진정으로는 우리 자신의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아마도 주커버그만이 그것이 진정으로 자기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언제든지 주커버그는 우리의 프로필, 페이지에서 자기 마음대로 글을 삭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신의 페이지에서 특별한 사유 없이 글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였다. 만약 우리가 페이스북의 가치관에 상반되는 글을 올린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페이스북에서 쫓겨날 수 있다. 최근에 트위터는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도 쫓아내 버렸다. 만약 그들이 미국의 대통령도 쫓아낼 수 있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쫓겨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적 가치관에 기반하여 글을 쓰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페이스북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상반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예전에 폴 워셔(Paul Washer) 목사의 설교가 페이스북에서 삭제된 적도 있다. 그 이유는 그가 혐오 발언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기독교인들의 풍자적인 생각을 표현하는 바빌론 비(Babylon Bee)의 페이스북 계정도 정지된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페이스북이 그들의 풍자적인 표현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의 가치관은 진보적인 좌파사상을 추구한다. 이는 그들이 동성애, 성전환, 페미니즘, 블랙라이브스매터(Black Lives Matter), 이슬람 근본주의와 같은 주제에 대하여서 비판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내용이 담긴 글들은 언제든지 페이스북의 검열 대상이 될 수 있다. 페이스북과 또 다른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이 갈수록 자신들이 원치 않는 목소리들을 차단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우리가 점점 더 여기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페이스북의 적대감이 노골적으로 드러날 때까지 우리가 기다릴 필요가 있는지를 스스로 묻게 된다.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페이스북 플랫폼 자체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였다. 그러나 페이스북을 그만두어야 하는 또 다른 문제가 우리 내면에도 존재한다. 페이스북을 사용하면서 우리는 점차 더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도 여러분도 이를 느끼셨을 수도 있다. 페이스북에는 우리가 아는 지인들, 또는 여러 관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이 사진이나 글을 올리거나 공유하면 나는 그것들 만을 보면서 그 사람들에 대하여 판단을 하게 된다. 특별히 나는 이를 주관적으로 해석하면서 그들을 평가한다. 그들이 올린 글에서 나는 그들의 정치적 성향과 신학을 유추해내기도 한다.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보지도 않고, 그들과 충분한 대화도 나누지도 않은 상황에서 나는 페이스북에 나타난 모습만을 보면서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판하였다. 다시 말해서 나는 점차 판단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정말 경솔하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태도이며, 하나님의 앞에서 결코 옳다고 할 수 없는 태도이다. 이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 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충분한 정보도 없이 페이스북에 나타난 모습만으로 어떤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페이스북을 떠나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아주 강력한 동기이기도 하다. 내 생각에는 페이스북보다는 사람을 직접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서로 우정을 나누고, 끈끈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데 훨씬 더 효과적인 것 같다.

 

 

분열적인 논쟁

 

   내가 오랜 기간에 걸쳐서 배운 한 가지 교훈은 페이스북(또는 다른 소셜 미디어) 안에서 논쟁에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안에서는 어떤 도발적인 표현이나, 사람들마다 의견이 갈리는 주제들 때문에 종종 논쟁이 발생하곤 한다. 의도하든지, 또는 의도하지 않았든지 관계없이 사람들은 너무 쉽게 공격적인 태도를 드러내며, 서로 날선 말들을 주고받게 된다. 나는 페이스북 안에서 여러 그룹에 속해 있다. 대부분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그룹이며, 어떤 것은 캐나다 개혁교회 사람들로 이루어진 그룹이기도 하다. 이런 그룹에 사람들이 올리는 글들, 또한 주고받는 질문과 대답들을 통하여서 유익한 정보들을 배우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그 속에서 날카로운 논쟁을 시작하면 분위기가 사나워진다. 서로 가시 돋친 표현들을 주고받으며, 때로는 욕설이 난무하기도 한다. 어떤 페이스북 그룹은 아주 예민하고 건조한 논쟁들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과연 이런 태도로 서로를 대하는 것이 하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한 그런 논쟁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연 페이스북에서 벌어진 논쟁으로 인해서 자신의 입장을 바꾸고 타협에 이르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러한 논쟁을 통하여서 모든 구성원들이 어떤 주제에 대하여 더 깊이 이해하고, 일치된 견해를 갖게 된 적이 있는가? 또한 논쟁을 통하여서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서로에게 다가가서 그리스도인다운 화합과 사랑에 이른 적이 있는가? 지금까지 나는 정반대의 결과만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더욱 서로에게 분노하며,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고,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폄훼하였다. 결과적으로 논쟁을 통하여서 사람들은 더 크게 분열되었다. 나는 이런 현상을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 주님은 교회가 한 몸으로 온전하게 연합하기를 간절히 열망하시지 않았는가!(요 17:20-23). 그렇기 때문에 솔직히 페이스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이 내가 페이스북을 떠나겠다고 고민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오해는 하지 않길 바란다. 우리에게 논쟁과 토론은 분명히 중요하다. 그러나 얼굴을 맞대고 만나서 하자는 것이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서로의 표정과 태도에서 나오는 숨은 표현들을 읽어가면서, 상대방의 목소리의 톤을 들으며 논쟁하고 토론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며, 서로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해야 한다는 마음을 품고 토론을 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성령님의 은혜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보다 더 잘 이해하고, 더 큰 꿈을 함께 품으며, 우리가 서로의 생각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할지라도 하나됨과 사랑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나는 지금 당장 페이스북을 떠날 것인가? 사실 아직 나는 결정하지 못하였다. 어쩌면 아직은 페이스북에 남아있어야 하는 이유가 조금은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글의 독자들이 나를 설득할 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나는 지금 거의 출구로 향하는 길의 끝에 서 있다. 당신은 지금 어디 쯤에 있는가?

 

 

"Good bye Facebook!"

 

출처 : Volume 70, No 6, publication date of March 19, 2021

번역 : 박광영 목사 (캐나다 유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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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설] 제7차 개정헌법 헌의안, 총...
[사설] 총회장은 교단의 수장이 아...
[사설] 명예집사와 명예권사, 허용...
[사설] 총회가 계파정치에 함몰되지...
[사설] 최근에 일어난 고려신학대학...
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공적 금식과 공적 기도를 선포하자
칼럼
왕처럼 살고 싶습니까? 왕처럼 나누...
푸틴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3부)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2부); 교회...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1부)
우리 악수할까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Peter Holt...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기고
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 우리가 왜...
왜 고재수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
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