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법철학
황영철 목사
(성의교회 담임)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성경은 나에게 늘 낯선 책이다. 성경을 연구할 때마다 나의 평소 생각과는 다른 이야기를 발견하는 까닭이다. 이상하게 성경은 그렇게 읽고 공부를 해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속되게 말하면 늘 뒤통수를 친다. 성경의 가르침이 자기 생각과 똑같다고 말하는 사람을 가끔 보는데, 사실 좀 믿어지지 않는다.
로마서를 공부하면서 사도 바울의 법에 대한 이해를 생각하다가 역시 뒤통수를 맞았다.
로마서 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이게 말이 되나? 자고로 모든 윤리학자와 사회학자들의 이상은 사람들이 법을 잘 지키는 사회였다. 이건 상식이다. 사람들은 머리를 짜고 짜서 최선의 법을 만들어 왔고,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이 법을 지키면서 살기를 원했다. 학교 교육의 최고의 목적 중의 하나는 준법정신을 함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법을 지키는 사람을 칭찬하고,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처벌했다. 결국 인간 사회의 문제는 구성원들이 법을 지키느냐 안지키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무리 좋은 법을 만들어도 하나님만큼 좋은 법을 만들지는 못한다. 모세 율법을 상세히 연구해 보면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법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법이 그리는 사회가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 사회인지 알 수 있다.
시편 119편은 율법에 대한 찬가이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자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점에서 바울의 법철학은 독특하다. 나는 사도 이외에 법에 대해 이렇게 말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모든 사람은 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지, 법이 사람들의 범죄를 더하게 하기 위해 주어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니 이런 말을 듣고 뒤통수를 맞는 것처럼 느끼지 않으면 이상하지 않은가?
대체 사도는 어디서 이런 이상한 아이디어를 얻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보면 그게 분명하다. 그 백성은 출애굽 후에 율법을 받았다. 모세는 그 법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 법인지를 알았고, 그 법을 지켰을 때에 그들이 어떤 복을 받을지에 대해서도 풍부하게 가르쳤다. 물론 그 법을 순종하지 않았을 때에 그들에게 임할 저주와 형벌에 대해서도 풍부하게 가르쳤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 법과 함께 하나의 독립된 국가 공동체로 시작했다. 긴 세월이 흐른 후에 어떤 결과가 나왔는가? 그들은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그 법을 꼼꼼하게 연구하고, 그 법이 하지 말라는 것을 충실히 행함으로 나라가 망해버린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어떻게 그렇게도 충실하게 법을 찾아서 어길 수 있었을까.
그것은 중요한 계시였다. 결국 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법을 지키게 하지 못한다. 단순히 지키게 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 법을 찾아서 어기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것이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만의 문제겠는가? 그렇지 않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법이 하나의 강제력으로 작동하는 모든 사회에서 발견되는 문제이다. 결국 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법을 지키게 하지 못한다. 도리어 법을 어기게 함으로 범죄가 더해지는 결과를 낸다. 인류의 근본적인 비극은 법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법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낸다는 것이다.
사도의 해법은 무엇인가? 사도는 율법 너머의 세계를 보고 있다. 율법이 그 세력을 상실한 나라, 그래서 더 이상 율법이 사람을 자극하여 범죄하게 만들지 못하는 나라, 사람이 율법의 세력에서 해방된 나라, 이것이 사도가 바라본 나라이다. 율법이 아무리 위대한 세계를 보여 준다고 해도 사도가 바라본 나라에는 미치지 못한다. 사도는 그 비전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특별히 그의 죽음과 부활에서 본 것이다. 그리고 죽음과 부활의 세력이 활동하는 영역, 곧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 가능성을 본 것이다.
나는 사도의 이 논리에서 전율을 느낀다. 그래서 이런 결론을 내린다. 이건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전능하고 전지한 신의 가르침이다. 따라서 그 하나님의 계시의 빛을 받지 못한 사람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라고.
로마서의 놀라운 점은 이 진리를 추상적으로 선언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내용과 그런 나라의 건설을 위한 방법론까지 상세하게 가르쳤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뒤통수를 때리는 것은 이것이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 곳에서 발생하는 일이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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