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총회교육원의 공과를 신뢰할 수 있는가?
성희찬 목사
마산제일교회 담임목사
예장 고신총회 헌법해설집 발간위원회 위원
본 교단 총회교육원에서는 올해 2014년 주일학교 여름성경학교 주제를 『QT 왕자, QT 공주』로 정하고 지난 주간(5월 12-13일)에 경주에서 노회강습회를 대비한 세미나를 개최하고, 또 기독교보에 교재와 재료 구입에 대한 홍보 광고를 냈다.
『QT 왕자, QT 공주』. 대단히 실망스러운 여름성경학교 주제이다. 실망을 넘어 가슴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 이는 한 개체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교회의 문제라고 여기는 만큼 그 충격의 여파는 말할 수 없다. 총회교육원이 이렇게까지 되었단 말인가? 이렇게까지 신학을 떠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큐티가 어떻게 성경학교의 주제가 될 수 있단 말인가? 큐티는 어디까지나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을 배우고 성경을 읽고 성경을 듣는 등 성경의 사람이 되기 위한 한 ‘방법’에 불과한데, 그 특정한 하나의 방법이 성경학교, 성경을 배우는 성경학교의 전체 주제가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성경학교는 말 그대로 성경을 배우는 학교이다. 그렇다면 성경 자체나 혹은 성경이 가르치는 교훈이 그 주제가 되든지 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큐티는 성경이나 신앙고백서나 교리문답에서 가르치는 내용이나 교훈은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큐티가 신앙고백서나 기타 교리문답에서 고백하는 교리나 교훈에 속한다는 말을 읽지도 듣지도 못하였다.
여름성경학교 주제는 본래 8개의 핵심 교훈을 가지고 늘 순서대로 반복하는데 올해는 ‘말씀’ 차례가 되어서 그 일환으로 본 주제가 선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말씀’이라는 개념 안에 얼마든지 좋은 하위 주제를 찾을 수 있을 터인데 왜 큐티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같이 주제 자체를 이상하게 잡다 보니 이 주제 아래 선정된 성경 본문을 보면 성경 본문과 공과 내용이 어울리지 않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예를 들어서 초등 1부의 경우 공과의 본문과 주제는 다음과 같다(초등 1부):
제1과 초대를 받았어요(여호수아 1:7-8)
제2과 큐티를 배웠어요(여호수아 6:1-5)
제3과 큐티 왕자, 큐티 공주가 되어요(여호수아 24:15).
이 중에서 제2과, 제3과를 보면 공과 주제와 해당하는 성경 본문이 전혀 맞지 않다. 여호수아 6장은 여리고 성의 함락을 말하고 있는데 이 본문과 큐티를 배웠다는 주제는 전혀 연결이 될 수 없다. 여호수아 24장 15절에서 여호수아가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한 본문에서 평생 큐티하고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교훈을 찾는 것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수 없다.
‘말씀’을 강조하기 위해 선택된 『QT 왕자, QT 공주』는 본문을 이렇게 자의적으로, 주관적으로 해석해도 무방한가? 오히려 말씀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있지 않은가? 말씀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QT 왕자, QT 공주』를 양산한다는 말인가?
어린이들이 성경을 묵상하는 것은 부모의 지도 아래에 이루어져야 한다. 가정예배에서 성경을 차근차근 읽어가면서 읽은 중요구절을 묵상할 수 있도록 부모가 돕고 지도하는 것이 마땅하다. 아니면 주일 예배에서 들은 설교의 본문이나 공과공부에서 배운 요절을 암송하고 묵상하도록 돕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지 않을까? 성경 본문과 역사를 좀 더 배우고 또 교리문답을 통해 관련되는 성경구절을 묵상하도록 하는 것이 더 좋을 터인데....
더욱 충격 받은 것은 초등부 공과해설 중에서 제3과 해설(PPT)의 일부 내용 때문이다. 다음의 내용이 나온다.
“제자냐 그리스도인이냐.”
이 표현은 마치 제자와 그리스도인이 다른 두 부류인 것처럼 전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명백히 성경적인 사상과 상충된다. 그리스도인은 곧 제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고 양보할 수 있다. 다음의 명제에서 충격 받지 않을 수 없다.
“신앙생활은 교회생활이 아니다!”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해 보아도 위 내용 그대로 틀림이 없었다. 교회생활이 신앙생활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은 이해가 되지만 신앙생활이 교회생활이 아니라니?! 나는 그제야 왜 큐티가 성경학교의 주제가 될 수 있는지가 이해가 되었다. 이 표현은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과 함께 교회 중심을 강조하는 종교개혁의 유산을 강조하고, 세례 받을 교인이 하는 4가지 서약 중 교회 중심의 생활에 관한 것과 정면으로 상충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교회생활을 간과하는 표현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에서 성경을 배우고 설교를 듣는 교회생활은 무시하고 개인이 큐티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란 말인가? 이 해설을 작성한 담당자와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총회 교육원의 교회관이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신앙생활은 교회생활이 아니라니?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신자에게 교회는 우리의 어머니와 같은 곳인데, 이 거룩한 어머니를 떠나서 큐티를 한다는 말인가.
처음에 교육 부서를 담당하는 교역자가 이 문제를 제기하였을 때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직접 공과 교재와 해설책을 확인해 보고 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공과의 책이나 교재의 기술은 아주 세련되고 멋있는데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은 신학과 교훈과 교리의 알맹이가 빠져버린 초라한 것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고신 교회의 목사로서 한 번도 교단 공과를 멀리한 적이 없다. 교사들이나 교역자들이 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불평을 해도 그래도 우리가 교단의 공과를 아끼고 후원하자며 그들을 달래 왔다. 어느 교회에 있을 때는 어린이 선교단체에서 발간한 교재를 사용하고 있는 것도 설득해서 교단공과를 쓰도록 하였다. 작년에 성령강림절이 이른 바 ‘스승의 주일’과 겹치게 되었다. 스승의 주일이라는 말도 처음 듣는 것이었으나, 그 주일에 본 교단의 유치부 공과에서 스승의 주일과 관련한 내용을 다루면서 성령강림절에 대한 내용은 한 마디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시 확인해보니 총회교육원에서 발간하는 공과에서는 아예 성령강림절을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올해 유치부 공과도 마찬가지이다. 성령강림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구속사에서 예수님의 탄생과 고난, 죽음, 부활, 승천, 재림과 함께 중요한 구속사의 단면인데, 다행히 지금은 많은 교회가 성령강림절을 지키는 마당에, 그런데 미래 세대의 교회교육에 가장 앞장 서야 할 총회교육원에서 발간하는 공과에서 성령강림절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디 상상이 되는 일이란 말인가? 스승의 주일은 지켜도 성령강림절은 말하지 않는 유치부 공과를 접했어도 꾹 참고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이번 여름성경학교 주제를 보고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 교회가 과연 총회교육원에서 발간하는 공과를 안심하고 믿고 신뢰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