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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목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하나님의 뜻’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할 정도이다. 세상의 모든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뜻대로 되겠지요’라고 말하고, 어떤 선택이나 결정을 앞두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한다. 도대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만사는 하나님의 뜻

믿는 이들은 만사가 하나님의 뜻대로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면 만사가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7문답에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섭리란 하나님의 전능하고 언제 어디나 미치는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마치 자신의 손으로 하듯이,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여전히 보존하고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잎새와 풀, 비와 가뭄, 풍년과 흉년, 먹을 것과 마실 것, 건강과 질병, 부와 가난, 참으로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그의 손길로 우리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분해야

우리가 세밀하게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가? 만사가 하나님이 정하신 뜻대로 되는 것이니 과정이 어떻든지 나타난 결과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면 되는가?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드러난 뜻’과 ‘숨겨진 뜻’이 그것이다.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 29:29).

하나님의 드러난 뜻은 성경을 통해 명백하게 계시되었다. 이것을 우리는 율법이라고 부른다. 신약성경에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한 구절들이 여럿 된다. 예를 들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는 말씀이 그것들 중에 하나이다.

하나님의 드러난 뜻은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구체적인 결정의 순간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많은 신앙인들은 신비한 방식에 호소한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뜻을 찾기 위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고, 성령의 특별한 감동이 올 때를 기다리기도 하고,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는 이들에게 가서 묻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는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조차 알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우리가 그런 것을 찾아 나설 이유가 없다.

하나님의 숨겨진 뜻을 모른다고 해서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결정된 뜻이 있으니 그것을 찾지 못하면 아무 것도 행할 수 없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그런 태도로서는 진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출근할 때 무슨 종류의 옷을 입고, 무슨 교통수단을 선택할지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을 묻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시해 놓으신 일반적인 뜻을 통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갈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빌 2:13).

하나님의 뜻과 죄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려움을 당한 성도를 볼 때에 “하나님이 사랑하시니까 징계하신 것이에요.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서 더 큰 복을 주실 겁니다.” 라는 말을 종종 한다. 이 정도의 격려성 말이라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문제는 욥의 친구들의 경우에서 드러났듯이 끔찍한 재난이나 환란을 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드러내놓고는 말하지 않지만 속으로 ‘죄없이 망한 사람이 있나요? 무슨 죄를 지은 것이 있을테니 잘 생각해보고 회개하세요.’ 라고 말하는 경우마저 있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런 일이 일어난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여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특히나 목사들은 그런 일들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었는지 알리고 싶어한다. 여기에 무슨 하나님의 뜻이 있었던 것일까? 가장 쉽게 하는 해석이 우상숭배이다. 일본 사람들이 수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이라는 해석이다. 일본에 하나님의 백성이 한 사람도 없었을까? 우리 나라는 일본처럼 수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지 않으니까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듯이 우리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와 같으리라는 말씀에 비추어 본다면 우리의 죄가 더 작다고 할 것인가? 또 하나의 해석은 하나님의 경고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경고하시기 위해 그런 일을 일어나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게 소위 말하는 액땜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책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거의 운명, 숙명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벌어진 일을 놓고는 하나님의 뜻이라서 그렇게 되었다고 너무나 쉽게 말한다. 설명하기 쉽지 않은 일이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하고 넘어간다. 심지어 우리가 저지른 죄악조차도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하고는 그냥 넘어가 버린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첫 설교를 하고 있는데 여기서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함께 이야기한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도 모르는 가운데 그 뜻을 실행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는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을 넘겨 주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뜻을 실행한 것이니 그들이 칭찬받아야 하는가? 아니다. 그들은 심판받아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동원된 존재가 아니라 자기들의 적극적인 완악함으로 하나님의 드러난 뜻을 거부하므로 하나님의 숨겨진 뜻을 이루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우리의 완악함에 대한 책임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

각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을까? 예를 들어 우리 민족이 일제 하에서 끔찍한 고난을 겪은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또한 6.25라는 끔찍한 일을 겪은 것이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연단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예전에 함석헌이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책자를 통해 우리 민족의 독특성을 주장한 것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민족은 고난 받은 유대인들과 거의 같은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우리가 즐겨 부르는 ‘아리랑’이 ‘알이랑’에서 나온 것인데 이 알이 바로 하나님을 뜻한다고 한다. 우리 민족의 기원은 유대인들처럼 하나님과 함께 하는 민족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 앗수르와 바벨론, 페르시아, 이후에는 로마의 압제를 통해 그들을 징계하실 뿐만 아니라 연단시키셨듯이 우리 민족도 그렇게 하나님께서 연단하시는 과정을 겪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런 해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식의 해석에서는 일제 36년 치하도, 625전쟁도, 광주민주화운동도 하나님의 뜻이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이 그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셔야 한다. 게다가 일본제국주의와 북한공산당과 정치군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용되었으니 칭찬받아야 하는 것인가?

구약의 유대인들은 하나의 민족, 그리고 독립된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있었지만 그 자체로 교회였다. 이스라엘의 왕들은 세상 나라의 왕들과 달리 교회의 직분자였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정치적으로 억압받고, 경제적으로 고난 받는 나라와 민족을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출애굽은 고난 받은 한 민족의 정치적인 해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기 교회를 어떻게 구원해 주시는지, 그 교회가 범죄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징계하시는지를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각 민족을 다루시는 방법

이스라엘은 하나의 국가이면서 동시에 교회였던 독특한 민족이었다. 이제는 유대인들과 같은 역할을 하는 그 어떤 민족도 없다. 우리 민족을 향하신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뜻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민족처럼 우리 민족을 하나의 민족으로, 그리고 일반은총이라는 관점으로 대하고 계신다. 우리를 특별히 훈련시키셔서 유대인들처럼 하나님께서 쓰시는 선민으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 민족이 당한 끔찍한 고난 자체가 거룩한 것도, 구속사적인 중요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신약시대에는 어떤 나라도 신정국가가 될 수 없다. 신약시대에는 유대인도,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도 하나의 세속민족, 세속국가일 따름이다. 이슬람이 신정통치를 꾀하고, 서구를 향해 성전(聖戰)을 선포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기독교 국가가 먼저 성전을 부추겼다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자기 민족이 선민이요, 자기 민족이 예전에 고난당했던 것이 온 세상을 구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유럽의 제국주의를 발생시켰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스페인이 그랬고, 영국이 그랬고, 이후에는 미국도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나라와 민족을 종교가 아니라 윤리를 통해 다루신다. 하나님께서는 윤리라는 잣대를 가지고 이 세상 나라들을 현재적으로 심판하기도 하신다. 최종 심판의 날이 있겠지만 현재적인 심판도 있다. 구약시대의 노아홍수와 소돔 고모라의 경우가 그랬다. 교회도 현재적인 심판에서 예외가 아니다. 성경은 세상나라들과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유대민족, 즉 교회와의 관련 하에서 해설하고 있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 이제 교회는 한 민족의 교회가 아니라 세상 모든 나라 사람들의 교회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세상 속에 교회가 있고, 심지어 교회 속에 세상이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민족들이 어떤 다양한 종교를 가지든지 마지막 날까지 관용을 베푸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민족을 미개한 상태에서 개화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웃의 나라들을 사용하셨다고 보아서도, 그렇다고 우리에게 유대인과 같은 구속사적인 사명이 있기 때문에 연단하셨다고 보아서도 안 되겠다. 거기에 하나님의 뜻을 굳이 들먹일 이유가 없다.

교회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하나님께서는 특정한 민족을 통해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교회를 통해 일하신다. ‘민족교회’라는 말을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민족이 교회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교회가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예전에 ‘민족복음화’라는 말이 유행했고, ‘시를 하나님께 바친다’는 말을 하기도 했고, ‘성시화 운동’이란 것이 있기도 하다. 이것은 교회와 신자의 선교적인 역할을 강조한 말이기는 하지만 기독교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타종교나 믿지 않는 이들을 제압하려는 발상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신자는 이중적인 신분을 가지고 있다. 신자이면서 동시에 시민이다. 이 두 가지는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신자는 교회의 회원이면서 동시에 나라의 국민이고 시민이다. 신자는 교인으로서 복음을 전하며 살아야 하고 시민으로서 국가의 법률에 따르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교인인 동시에 국민이나 시민으로서 사회통합과 복리증진을 위해 힘써야 한다. 우리가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더라도 하나님이 우리 민족도 사랑하시고, 우리가 우리 민족을 향해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란 말 때문에 교회가 발목 잡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하나님의 뜻이란 말을 최후까지 아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내뱉은 후에는 주워 담을 수도, 무를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만사를 섭리하시지만 우리는 구체적인 일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알기 힘들다.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한 것이 다음 순간에는 뒤집히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을 아는 체 할 수 없지 않겠는가! 너무 명확하게 밝히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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