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환영합니다.
최종편집
성희찬.jpg



성희찬 목사
마산제일교회 담임목사
예장 고신총회 헌법해설집 발간위원회 위원


“가난한 집 애들이 설악산이나 경주 불국사로 수학여행을 가면 되지 왜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갔느냐?”

“대통령의 눈물을 보고도 함께 울지 않는 자는 백정과 다름이 없다”

“000 후보 아들이 희생자 실종자 가족들이 미개하다고 했는데 사실 잘못된 말이기는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거든요.”

최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일부 목사들의 막말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들의 입에 복음이 아니라 막말이 있다니.

목사가 교회를 대표하는 자들이라 할 수 있다면 이번 일부 목사의 막말 파동은 세상과 공감하고 이웃과 소통하는 능력을 상실한 교회, 무례한 기독교의 일부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부 강한 어조로 이를 비판하는 자들은 쓰레기 목사라는 뜻에서 이런 목사들을 ‘목레기’라고 풍자하였다. 듣고 말하기조차 거북하고 사나운 말이다. 

사람은 본래 사유, 도구 사용 등 뿐 아니라 모든 점에서 공감하는 존재이다. 더구나 이 시대는 공감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대통령의 지도력은 한마디로 공감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 아프리카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미국 백인 출신 사이에 태어난 그가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가? 그 비결은 바로 국민들과 공감하는 의사소통에 있었다고 말을 한다.

제레미 리프킨이라는 사람은 "우리 시대는 공감의 시대"라며 자신의 저서 『공감의 시대』에서 이제 경쟁의 시대에서 공감의 시대로, 적자생존의 문명에서 공감의 문명으로 나아가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여기에 발맞추어 우리 사회에서 보수적인 성향의 신문인 조선일보에서도 ‘자본주의 4.0’, ‘따뜻한 자본주의’라 하여 특집을 꾸민 적이 있다.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인 신자유주의를 반성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자본주의, 모든 사람에게 따뜻한 자본주의를 구호로 제시하였다.

지금 우리는 이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경쟁이 생명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따뜻한 자본주의를 외치면서 사람들은 이제 이웃과 공감하는 것을 중시하고, 함께 가려고 하고 함께 살려고 한다. 이러한 시대에 한국 교회는 지금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국민과 함께 하고 이웃과 함께 나란히 가고 있는가? 소통하고 있으며 공감을 나누고 있는가?

세월호 참사 사건을 두고 일부 기독교 지도자가 보인 언행은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으며 우리 사회에 무례한 기독교로 비추어졌다. 공감과 소통의 능력을 상실한 교회로 보여졌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즐거워하는 자와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15).

사실 이번 일부 지도자들의 막말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다. 공감과 소통에 실패해 온 한국 교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 것이다. 이신칭의(以信稱義)의 은혜를 입은 신자와 교회가 국민과 함께 하고 이웃과 함께 가고 있는가? 소통하고 있으며 공감을 주고 있는가?  

우리가 잘 아는 영화 ‘밀양’(2007년 5월 개봉)이 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신애가 왜 교회/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리는가? 피아니스트의 꿈을 가졌으나 남편을 잃은 신애가 아들과 함께 밀양에 정착하게 된다. 그러나 이곳에서 아들이 유괴되어 살해되고 만다. 절망에 빠진 신애는 교회를 의지한다. 거기서 그녀는 평화를 얻고 전도에 힘쓴다. 그러던 중 아들을 죽인 살해범이 있는 교도소를 찾는다. 꽃을 보여주며 주님의 말씀과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을 건넨다. 그런데 유괴범이 다음과 같이 “저는 이미 주님께로부터 용서를 받았습니다.” 라고 말하며 평안한 모습을 보인다. 이 말에 신애는 아무 말 없이 교도소 밖 주차장으로 나와 꽃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였다. “내가 아직 용서를 안 했는데 하나님이 왜 용서를...” 이후 신애는 더 이상 하나님과 교회를 믿지 않는다. 이 영화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웃과 세상과 소통에 실패하고 있는 기독교의 현주소, 사회로부터 공감과 정감을 얻지 못하는 교회의 현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영화가 개봉되던 그 해 2007년 7월에 아프가니스탄에서 23명의 단기 선교팀이 피랍되었다. 이 사건에서도 국민들은 세상, 이웃과 소통에 실패하는 기독교의 모습을 보았다. 아직도 석방이 안 된 상태에서 피랍자 가족 한 사람이 인터뷰하는 것을 텔레비전을 통해 직접 본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어떻게 진행하실지 기대가 크고 신나고 재미가 있다!” 이 말은 당시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동분서주하는 외교통상부 뿐 아니라 걱정하며 염려하는 국민의 가슴에 상처를 주었다. 하나님과는 소통해도 이웃과는, 형제자매와는 소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웃과 세상에 비친 기독교인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인근에 있는 장례식장에서 이런 글귀를 본 적이 있다.

“설교하지 말라.”

설교자인 나는 이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 장례식에서 목사가 설교를 하지 말라는 뜻인가? 그 뜻은 아닐 것인데 하며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생각하니 이해가 되는 말이었다. 장례식에서 와서까지 슬픔에 잠긴 유족들을 위로하기보다는 유족들을 설교하는 자가 있기 때문에 붙인 글이었다.

이웃과 세상에 비친 기독교인의 모습은 이웃과 사회를 떠난 독선가, 낮은 자리에 서기보다는 아니, 함께 공감하기 보다는 도리어 위에 서서 군림해서 설교하고 가르치는 자, 이러한 모습은 아닐까? 세상이 왜 교회가 하는 말에 묵묵부답인가? 왜 전도에 귀를 막을까? 공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함께 사는 생활에서 모범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공감의 시대에 어떤 지도자를 원하는가? 정답을 가르치려고 덤비는 자보다는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이다.

외국에 있을 때 기독교 일간신문에서 교회의 한 교인이 쓴 글을 읽었다. “우리는 어떤 목사를 원하는가?” 라는 주제의 글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목사는 설교를 잘 하는 목사, 신앙교육을 잘 하는 목사, 성경과 교회 역사를 잘 아는 목사가 아니었다. 우리가 원하는 목사는 상대방의 말에 경청하는 목사였다. 이어서 그는 자기의 경험을 말하였다. 자기 아이, 당시 아직 만13세가 되지 않은 아이가 치명적인 암에 걸렸는데 너무 고통이 심하여 아버지인 자기에게 이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으니 안락사를 시켜달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안락사를 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는 누구에게서 위로를 받고 싶었고, 그는 당장 교회의 목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사님, 내 아이가 안락사를 원합니다.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그때 그 목사님은 당시 거침없는 자기의 말에 말없이 경청하였다고 하였다. 만약 그때 그 목사님이 그냥 정답만 말해주었다면, 즉 “안락사 시켜서는 안 됩니다.” 라고 말하였다면 자기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었을까 하며 끝까지 자기의 말을 듣고 공감해 준 목사님에게 감사한다고 하였다. 그렇다. 그가 목사에게 전화를 한 것은 정답을 몰라서, 그 정답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목사로부터 위로를 받기 위해서였다.

아직 꽃이 피지도 못한 자식을 잃은 유족들을 향해 막말을 통해 돌을 던지는 이런 행태에 대해 어떤 식자는 우리 사회는 지금 보수와 진보가 아니라 인간과 짐승으로 구분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공감과 소통의 시대에 어떻게 이 능력을 다시 회복할 것인가, 이는 이 시대 기독인과 교회의 어깨에 짊어진 과제이다.

< 저작권자 ⓒ 개혁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 [해외칼럼] 목사(설교자)와 설교

    목사(설교자)와 설교 필자: Lucius de Graaff1) 목사 (Heerde – april 2015) 번역: 이충만 목사/해외필진(네덜란드) 매 주일 한 편의 설교 설교를 작성하고 행하는 것은 목사의 주무이다. 이는 목사를 칭하는 네덜란드 단어인 ‘predikant(프레디칸트)’가 분...
    Date2015.05.05 By개혁정론 Views1858
    Read More
  2. [해외칼럼] 제2차 헬베틱 신앙고백서 (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

    제2차 헬베틱 신앙고백서 (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1) 저자: 로날드 카멩가 (Ronald Cammenga, Protestant Reformed Seminary 교의학 교수) 번역: 박재은 목사 (Ph.D. cand., Calvin Theological Seminary)2) 배경 제2차 헬베틱 신앙고백서는 하인리...
    Date2015.04.21 By개혁정론 Views2241
    Read More
  3. [칼럼] 세월호 1주기, 심히 부끄럽다

     세월호 1주기, 심히 부끄럽다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목사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한 것일까?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되었는데도 세월호는 여전히 진행중이니 말이다. 아직도 그 진실이 제대로 드러난 것이 없으니 말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골든...
    Date2015.04.16 By개혁정론 Views1366
    Read More
  4. [해외칼럼] 창조주의자들의 새로운 자기인식

    창조주의자들의 새로운 자기 인식1) 필자: Rien van den Berg 번역: 이충만 목사2)/해외필진(네덜란드) 새로운 창조주의자들의 자기인식이 오늘(2015년 3월 28일) 네덜란드옵회스덴(Opheusden)에서 개최되는 학술대회에서 제시된다. “창조의 가치” (이번 학술...
    Date2015.04.06 By개혁정론 Views1363
    Read More
  5. [해외칼럼] 성경 거꾸로 읽기

    성경 거꾸로 읽기1) 저자: 아를 레더(Arle C. Leder. 미국 칼빈신학교 구약학 교수) 역자: 박재은 목사2)(Ph.D. cand., Calvin Theological Seminary) 아이들은 큐어리어스 조지 (역자 주: 원숭이가 주인공인 만화 영화, Curious George) 같은 자기들이 좋아하...
    Date2015.03.28 By개혁정론 Views1828
    Read More
  6. [해외칼럼] 디지털 시대 속에서 교회 사역하기

    디지털 시대 속에서 교회 사역하기1) 저자: 제스 캐스트-킷(Jes Kast-Keat. 뉴욕 시에 위치한 웨스트엔드 대학교 사역자) 역자: 박재은 목사2)(Ph.D. cand., Calvin Theological Seminary) 나는 디지털 네이티브 (digital native)로서 꽤 상위에 위치한 사람이...
    Date2015.03.17 By개혁정론 Views1790
    Read More
  7. [칼럼] 무한한 용서와 용서의 한계

    무한한 용서와 용서의 한계 황대우 목사 고신대학교 교수 개혁주의학술원 책임연구원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다. 그것도 무한한 용서의 종교다. 즉 기독교는 용서를 비는 자에게 용서의 한계를 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용서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와 사랑...
    Date2015.03.12 By개혁정론 Views2063
    Read More
  8. [해외칼럼] 기독교적 겸손 정의내리기

    기독교적 겸손 정의 내리기1) 저자: 제프 플라드(Jeff Pollard. 플로리다에 위치한 시온산 성경 교회 장로) 역자: 박재은 목사2)(Ph.D. cand., Calvin Theological Seminary) 겸손 (modesty)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사랑이나 믿음이란 단어처럼 겸손이란 단어를...
    Date2015.03.10 By개혁정론 Views3002
    Read More
  9. [해외칼럼] 하나님의 뜻과 우리 삶의 방식

    * 다음 글은 네덜란드 일간지 ND (Nederlands Dagblad)에 2015년 2월 14일에 실린 칼럼을 저자의 허락을 받아 번역하였습니다. =========================================================================== 하나님의 뜻과 삶의 방식 Prof. dr. Ad de Bruijn...
    Date2015.02.26 By개혁정론 Views3581
    Read More
  10. [해외칼럼] 마사키 스즈키 명예박사학위 수락 연설

    * 2015년 1월28일, 캄펜신학교 (해방파) 개교 160주년 기념행사로써 일본인 지휘자겸 오르가니스트인 마사키 스즈키(Masaaki Suzuki)의 명예학사 학위 수여식이 있었습니다. 마사키 스즈키는 해방파교회의 자매교회인 일본 기독개혁파교회 소속 교인으로 바흐 ...
    Date2015.02.20 By개혁정론 Views4340
    Read More
  11. [해외칼럼] 즐거움: 우리 시대의 가장 거대한 우상

    즐거움: 우리 시대의 가장 거대한 우상1) (Pleasure: The Greatest Idol of Our Time) 저자: 존 쿠퍼(John W. Cooper, 미국 칼빈 신학교 철학교수) 역자: 박재은 목사2)(Ph.D. cand., Calvin Theological Seminary) 전체적 조망 십계명 첫 번째 계명은 우리에...
    Date2015.02.14 By개혁정론 Views3381
    Read More
  12. [해외칼럼] 어떻게 아이들에게 개인 예배를 가르칠 것인가?

    어떻게 아이들에게 개인 예배를 가르칠 것인가?1) (How to Teach Your Children Private Worship?) 저자: 조엘 비키(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총장) 역자: 박재은 목사2)(Ph.D. cand., Calvin Theological Seminary) 예배란 무엇인가? 하나님은 ...
    Date2015.01.31 By개혁정론 Views3495
    Read More
  13. [해외칼럼] 갱신과 해방 - 기독교 언론의 역할

    갱신과 해방: 기독교 언론의 역할 저자: G. Harinck 교수(캄펀신학교) 번역: 이충만 목사1)/해외필진(네덜란드) - 다음은 네덜란드 개혁교회(해방파)에서 발행하는 잡지 "De Reformatie"(2014년 12월 30일)에 실린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 독서문화가 쇠퇴하고...
    Date2015.01.29 By개혁정론 Views1713
    Read More
  14. 이순신과 칼빈: 16세기의 위대한 두 인물

    황대우 목사 고신대학교 교수 개혁주의학술원 책임연구원 요즘 불멸의 이순신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의 영웅이다. 이순신 장군은 1545년에 태어났다. 지금부터 자그마치 460년 전의 일이다.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이다. 이순신은 특히 ...
    Date2014.12.02 By개혁정론 Views1921
    Read More
  15. 중세 수도원 영성의 부정적 유산

    황대우 목사 고신대학교 교수 개혁주의학술원 책임연구원 1. 서방이든 동방이든 유럽의 중세 세계는 기독교 신앙에 의해 이룩되었고 유지되었다. 당시 가장 중요한 개념은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 아래 있는 세상과 사람보다 더 복된 것은 없다...
    Date2014.11.24 By개혁정론 Views2330
    Read More
  16. 시험에 시험 든 한국 교육

    임경근 목사 다우리교회 담임목사 고려신학대학원 외래교수 연년생으로 낳은 두 딸! 첫째 딸은 지난 해 홈스쿨 10년 만에 대학에 들어갔다. 올해 홈스쿨 11년째인 둘째 딸이 오늘 수능을 보기 위해 저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사교육 한 번 받아 본 적이 없다....
    Date2014.11.13 By개혁정론 Views1931
    Read More
  17. 봉헌에 대한 태도: 천주교와 개신교

    이성호 목사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실제로 있었던 일을 하나 소개하면서 글을 쓰려고 한다. 어떤 기독교 대학교의 직원 한 명이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였다. 그는 기존 교회에서 하던 대로 십일조도 하고 감사헌금 및 온갖 종류의 헌금을 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Date2014.11.05 By개혁정론 Views2589
    Read More
  18. 주인의식: 누가 주인인가?

    황대우 목사 고신대학교 교수 개혁주의학술원 책임연구원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사회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주인은 백성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주인은 교인인가? 민주주의를 가장 이상적인 정치형태로 보는 사람들은 아마도 교회 역시 사회 집단이므로 민주적...
    Date2014.11.03 By개혁정론 Views1780
    Read More
  19. 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 고신대학교 관련 지상논쟁을 바라보며

    최재호 성도 실로암교회 필자는 지난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뉴스앤조이>라는 인터넷언론사에서 영남지역 및 고신교단 담당 기자로 있으면서 학교법인 고려학원 문제 등 고신교단을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집중 취재하였고, 눈물을 흘리며 기사를 썼다. 그러...
    Date2014.08.27 By개혁정론 Views2513
    Read More
  20. 고신대학교, 정말 위기인가?

    황대우 목사 고신대학교 교수 개혁주의학술원 책임연구원 고신대학교는 정말 위기인가? 입학생 감소로 인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는 모든 대학을 매년 감사하여 부실하게 경영되고 있는 대학들에 대해서는 재정 지원을 제한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
    Date2014.08.25 By개혁정론 Views336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
사설
[사설] 성찬상을 모독하지 마라
[사설] 제7차 개정헌법 헌의안, 총...
[사설] 총회장은 교단의 수장이 아...
[사설] 명예집사와 명예권사, 허용...
[사설] 총회가 계파정치에 함몰되지...
[사설] 최근에 일어난 고려신학대학...
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칼럼
왕처럼 살고 싶습니까? 왕처럼 나누...
푸틴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3부)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2부); 교회...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1부)
우리 악수할까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Peter Holt...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기고
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 우리가 왜...
왜 고재수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
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