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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거꾸로 읽기1)


저자: 아를 레더(Arle C. Leder. 미국 칼빈신학교 구약학 교수)

역자: 박재은 목사2)(Ph.D. cand., Calvin Theological Seminary)



아이들은 큐어리어스 조지 (역자 주: 원숭이가 주인공인 만화 영화, Curious George) 같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책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책을 읽고 또 읽고 반복해서 읽는다. 아이들에게는 전에 읽었던 책도 영락없이 새롭다. 부모들이 책을 읽어줄 때 행여라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단어나 문장을 읽지 않고 넘어가면 순간 슬픈 표정을 짓기도 한다.
어떤 아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했던 책에 대한 사랑을 커서도 절대 버리지 않는다.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이전에 불확실했던 내용들이 더 선명해지기 마련이지만, 때로는 약간 다른 이야기로 결론 나기도 한다. 이처럼 모든 읽기는 새롭다. 다시 읽을 때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도 있고, 마지막으로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이야기로 이해되기도 한다. 책을 반복해서 읽을 때 결론 부분 내용 자체는 같지만, 그 내용의 깊이는 한 차원 깊고 넓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소설 전체를 독파하는 것만큼 성경 전체를 읽는 것은 꽤 힘든 일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제안을 하고 싶다. 성경을 거꾸로 읽어보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책 읽기에 있어서 그렇게 많이 쓰이는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만약 어떤 책을 연구하기 위해 여러 번 읽어야 한다면, 이렇게 거꾸로 읽는 것이 전체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간단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책의 마지막 이야기가 어떤 모양으로든지 책의 처음 이야기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초기에 언급되는 영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문제들이 마지막부터 읽을 때 쉽게 해결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게 된다. 만약 어떤 소설의 처음과 마지막 내용을 다 아는 사람이라면, 중간 아무 장이나 무턱대고 펴서 읽는다고 해도 전체적인 서사 구조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내용 파악이 가능할 것이다. 독자가 책의 어느 구석 부분을 거닐고 있다 하더라도, 처음과 마지막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면 현재 읽고 있는 위치가 정확히 어딘지 파악할 수 있다.

성경의 끝과 처음
성경은 이렇게 끝난다. 어린양의 피로 인해 구속함을 받아 모든 죄가 깨끗케 된 모든 나라와, 족속, 그리고 민족들은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만, 구속받지 못한 자들은 새 예루살렘 밖에 거할 것이라고 말이다. 계시록 21-22장에 묘사된 이러한 마지막 장면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피조물의 창조, 특별히 인간의 창조 서사와 맥을 같이 한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고, 그로 인해 결국 쫓겨나게 된다. 이제 인간은 에덴의 동쪽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성경 초입부에서 언급되는 “문제점”이다. 성경 처음과 마지막 사이의 모든 내러티브들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러한 문제를 일으킨 인간들을 다시 그의 존전에 흠 없는 자로 세울 것인가와 이에 대한 인간의 반응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이 바로 “꼬임,” “뒤집힘,” 그리고 “해결됨”이라는 내러티브를 지닌 성경 전체의 이야기이고, 우리는 이미 이 성경 초반부에 나오는 문제점이 마지막에 어떻게 해소되는지 알고 있다.

문제의 시작: 성경의 끝에서부터 처음으로 이동하기
성경의 마지막에 나오는 성전 이미지, 즉 전능자가 보좌에 앉아있고, 구속 받은 자는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오고 하나님의 존전에서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성전 이미지는 바로 성경의 첫 부분에 묘사된 성전 이미지와 일맥상통한다. 성경 초반부에 나오는 아직은 죄가 유입되지 않은 깨끗한 창조 세상은 마치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존전에서 자신의 소명대로 제자리를 찾아 거하는 거룩한 성전과도 같다. 즉, 타락 전 이 세상은 마치 모든 제사장들이 [아담과 하와] 자신의 거룩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성전과도 같았다. 그러나 창세기 1-2장을 넘어서고 나서부터는 이러한 거룩한 성전의 이미지가 무참히 짓밟힌다. 성실한 제사장이었던 아담과 하와는 신적 기원을 지닌 거룩한 행위를 거부해버린다 (창 2:15). 그들은 이제 육적인 제사를 드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더렵혀진 성전은 하나의 비참한 결과를 낳게 된다. 바로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면전에서 쫓겨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제사장적 인간들은 나무가 물을 원하듯 하나님의 존재를 원한다.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 남는 건 죽음뿐이기 때문이다 (창 2:17; 롬 6:23). 이것이 바로 서사적 문제점이다. 성경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를 지배하는 분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점을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반추할 때 깨닫게 된다. 우리는 추방당한 제사장들인 것이다.

놀랍게도 이 문제점은 신속히 해결된다. 추방당한 제사장들이 모세의 지도를 받아 하나님이 현존하는 시내 산에 도달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좌정하시기 위해 필요한 장소인 여호와의 집까지 짓게 된다. 그들은 구름 속에 임재 한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시내 산에서의 삶은 마치 에덴동산의 삶과도 같았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은 다시금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한다. 에덴동산에서처럼 시내 산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 삶을 누리는 방법에 대한 명령을 받기도 한다 (즉, 율법과 레위기 내러티브). 민수기에서 이스라엘은 솔로몬 성전에 좌정하고 계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행을 시작한다. 이것은 바로 변하지 않을 복음의 좋은 소식이었다. 하나님이 다시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

“꼬이고 뒤집힘:” 시내산 그리고 나머지 이야기
만약 출애굽기에서의 하나님의 현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면 우리는 64권의 또 다른 성경책을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조상들은 더욱 더 많은 잘못을 구약 뿐 아니라 신약 전체를 통해 또 다시 저지르고 있다.  

아마도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존전에서 추방당하여 그 주위를 떠돌던 사람들의 속내는 진심으로 하나님 편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들은 사실 그러길 원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보다는 바벨이라는 우상으로 돌아가는 편을 택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자녀들은 문제를 꼬는데 있어서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 혹은 바벨을 섬기는 이방인들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았다. 모세가 율법을 받아오는데 시간이 지체되자 아론을 위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에게 집을 짓고 그들에게 절을 하기에 이른다. 하나님은 그들의 문제를 하나님의 방법으로 처리하셨고 다시금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기뻐할 수 있게 된다. 아마도 누군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은 후에도 계속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인내심이 발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임이 곧 드러난다.

시내산은 또 다른 종류의 이야기의 꼬임을 제공한다. 이 부분부터 열왕기상하 까지 우리는 얼마나 비극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신을 섬기기 위해 하나님과 싸워 가는지에 대해 읽는다. 하나님께서 계속 참으심으로 그들에게 좋은 길을 열어주셨지만,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부터 더욱 더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다. 중단 없이 사사기를 계속 읽어 내려가다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의 성격을 더욱 더 깊이 알게 된다. 혹은 열왕기를 읽다보면 얼마나 지도자들이 어리석었고 무능했는지 그리고 왜 하나님께서 다시금 그들을 면전에서 물리쳤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왕하 23:27; 24:3, 20). 결국 이스라엘은 여전히 에덴의 동쪽에서 목적 없이 방랑하는 아담과 하와의 모든 조상들을 이방 땅 강 유역에서 만나 그들의 비참한 최후에 대해 애곡하기 시작 한다 (시 137; 애 1-5). 선지자들은 줄곧 경고했지만, 그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왕하 17:13-14, 23; 사 1).

일부는 성전을 짓기 위해 다시 그들의 땅으로 돌아왔지만, 하나님의 현존은 더 이상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성전에 깃들지 않았다. 이집트나 바벨론 등으로 귀양 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일은 바로 이 문제점을 해결할 오로지 한 분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시내산과 솔로몬 성전의 기쁜 소식은 다시금 마태에 의해 선포되기에 이른다. 마리아의 아들은 임마누엘이다 (마 1:18-24). 그는 “세상 끝날 때까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 (마 28:20). 요한은 예수가 바로 그 성전에서 우리와 함께 했던 그 하나님이라고 선포 한다 (요 1:14). 예수님 자신도 새로운 성전을 스스로 세울 것이라고 말씀 하신다 (요 2:20).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더 꼬여버린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성전을 삼 일 만에 다시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이 자신의 몸을 염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에게 온갖 고초와 시련을 가한 뒤 무덤에 던져 넣어버린다. 고린도인들의 성적 타락을 언급하면서 바울은 새로운 복음의 소식을 전한다. “너는 너 자신이 거룩한 성령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3:16-17; 6:18-20). 유대인, 이방인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하나님의 현존의 좋은 소식을 더럽히기 위해 애쓰는 자들 같았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라”라고 권면한다.

마지막 좋은 소식
성경은 처음부터 명확하다. 모든 성전 건물들은 종국에 황폐화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황폐케 됨이 하나님의 보배요 지혜다 (벧전 2:4-5). 성경의 마지막 부분이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에게 훨씬 더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다. 모든 나쁜 소식들이 사라지고 (계 21:3-4), 꼬일 대로 꼬여진 문제점들은 더 이상 그 존재의 위상을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어린양의 피로 거룩해진 자들은 하나님의 존전에 들어가 처음과 나중 되신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즐거워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경의 마지막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기쁜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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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칼빈 신학교 Forum에 Reading the Bible Backwards라는 제목으로 실린 내용으로 번열 및 게재 허락을 맡고 게재 합니다. 저자권은 Forum과 저자에게 있습니다.

2) 박재은 목사는 현재 미국 미시건 그랜드피즈에 위치한 칼빈 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조직신학으로 박사논문 작성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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