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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와 목회적 사명

필자: Lucius de Graaff (캄펜신학교(해방파)의 교목)1)
번역: 이충만목사(캄펀신학교 교의학 박사과정)




*
이 글은 어느 매체에 기고한 글을 번역한 것이 아니고,
캄펀신학교 교의학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는 이충만 목사가 글을 부탁하여
Lucius de Graaff 목사가 친히 쓴 글이다.




말씀의 사역자의 목회적 사명

말씀의 사역자(목사)의 본분은 가감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네덜란드 개혁교회 해방파의 교회법이 명시하고 있는 말씀의 사역자의 임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덧붙여있다:

"또한 교회의 성도들을 심방하는 것, 아픈 자들을 돌보고 위로는것, 믿음의 자녀들을 그들을 지혜롭게 하는 성경말씀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교육하는 것이 말씀의 사역자의 본분이다."

이것이 곧 목사의 목회적 사명이다. 이에 대해 나는 이글에서 소개하겠다. 


목자와 양무리

목사(pastor)라는 단어는 목자(herder)를 의미한다. 목자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짐승, 예를 들어 소나 말, 혹 양이나 염소 따위를 보살핀다. 그런데 성경이 믿는 자들을 소나 거위로 비유하지 않고 양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때 목자는 양치기, 곧 양을 돌보는 목자이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에서 자신을 가리켜 목자라 일러주셨다. 그것도 선한 목자시다. 예수님은 양들이 익히 그 목소리를 알고 있는 선한목자요, 양무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참 목자시다. 

그런데 왜 성경은 믿는 자들을 소나 말이 아니라 특별히 양에 비유하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는 양들의 특성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양들은 말이나 소, 개나 고양이와 달리 자신들의 무리를 스스로 찾지 못한다. 양은 무리에서 벗어나면 스스로 돌아올 재간이 없다. 그러니 목자는 무리를 벗어난 양을 찾아 어깨에메고 다시 무리로 데려와야 한다.

양들의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면 성경이 우리를 양에 비유하는 것이 이해된다. 곧 양과 같이 우리도 목자이신 예수그리스도 없이는 하나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스스로 결코 찾을 수 없다. 목자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없다면 우리는 에스겔 34장 5절이 묘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르지 않다. 이들은 목자 없이 여기저기 흩어져 배회하는 양과 같다. 이 양들은 안타깝게도 필시 들짐승들의 먹잇감이 된다. 

목사는 장로들과 함께 성도들을 돌보는 목자노릇을 해야 한다. 목자노릇을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양떼를 익히 알아야하며, 이는 양떼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목사는 목자로써 자신의 양떼를 익히 알기위해 반드시 성도들을 찾아 방문해야 한다. 나는 목회를 시작하고 나서 줄곧 500여명의 성도들로 구성된 교회를 담임하였다. 그때마나 나는 가능한 빨리 성도들의 집을 방문하려고 노력하였다. 무엇보다 목자로써 나의 양떼의 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나는 한 번도 심방하지 못해 잘 알지 못하는 성도의 장례를 집례 해야 하는 일만큼은 목자로서 미연에 방지하고 싶었다.

목자가 성도들을 심방해야하는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이는 앞선 글에서 다루었던 설교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과 직결된다. 설교는 설교자가 봉사하는 그 공동체의 필요에 부합해야한다. 그러니 목사가 다른 공동체에서도 수정 없이 쉬이 사용할 수 있는 설교를 작성하였다면, 이는 목자로서 자신의 양떼의 필요를 위해 좋은 설교를 선포했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심방의 중요성은 목자에게만 있지 않다. 양무리에게도 있다. 곧 양무리도 자신들의 목자를 익히 알아야한다. 교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목자를 잘 알고 좋은 관계를 맺고 있을 때, 목자의 설교 또한 경청할 수 있으며 그의 훈계를 받아드릴 수 있다. 목사와 성도가 서로 좋은 관계를 맺고 있을 때에 성도는 목사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인다. 나는 한 교회를 20년간 목회한 경험이 있다. 이는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특성상 꽤 긴 기간을 한 교회에서 목회한 것이다. 이렇게 긴 시간을 목회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성도들과 돈독한 신뢰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목사와 장로

목사뿐만 아니라 장로도 심방해야 한다. 목사와 장로는 당회의 논의를 통해 목회사역을 분배해야한다. 장로는 목사와 동일하게 성도들을 돌보는 목회사역에 책임을 진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현재 네덜란드교회 안에 유행하는 ‘성도간의 목회(onderlingepastoraat)’라는 개념은 주의를 요한다. 이 개념은 교회 안에서 일정수의 가정들을 그룹으로 나누고 이 그룹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의 삶과 신앙생활의 문제를 의논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형태의 모임이 몇몇 교회들에서는 잘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를 성도간의 ‘목회(pastoraat)’라고 일컫는 것은 무리가 있다. 개혁교회의 신학과 교회법을 따라서 ‘목회(pastoraat)’라는 단어는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 부름을 받아 그분의 양떼를 돌보아야하는 당회, 곧 목사와 장로들에게 사용되는 것이 옳다. 목사와 장로는 성도들에 대한 특별한 책임감을 지고 있다. 이를 히브리서 13장 17절은 다음과 같이 알려준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

이와 같은 목회의 책임감과 중요성은 목사가 어려움에 처한 성도들을 심방할 때에 두드러진다. 이때 목사는 아주 지혜로워야 한다. 예를 들어 목사가 성도들 중 사랑하는 사람들을 여의고 슬퍼하는 자들을 심방한다고 가정해보자. 필시 목사는 이들로부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실존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왜 하나님은 우리아이가 당한 불의의 사고나 난치병을 묵인하셨나요?" 이러한 질문을 쏟아내며 성도들은 하나님을 향해 원망할 수 있다.  성경 또한 이러한 상황을 익히 알고 있고, 시편 기자도 하나님께 ‘왜’ 라고 질문한다. 시편 42편 9절: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나는 수년간의 목회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왜’ 라는 질문에 목사가 답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이는 내가 비록 그 답을 성경으로부터 알고 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목자로서 나는 슬퍼하는 성도들의 손을 잡아주어야 하고, 무엇보다 그들이 성경 안에서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도와야 함을 배웠다. 이로써 목사는 답을 제시하기보다, 슬픔에 잠긴 성도가 스스로 다음과 같이 고백하도록 도와야한다: "목사님, 저는 하나님께서 나의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고 확신합니다."


목사의 권위

1960년대 내가 캄펜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할 때, 이미 몇몇의 한국 유학생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난 15년간 나는 정기적으로 한국 유학생들을 만났다. 한국 유학생이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로서 목회하기도 하였고, 지금은 캄펀신학교의 교목으로 그들을 만난다. 나는 이들을 통해 네덜란드개혁교회와 한국교회간의 차이점을 종종 듣는다. 그중에 하나가 목사의 권위이다. 한국교회 안에는 여전히 목사의 권위가 인정된다. 그러나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변했다. 나의 선친이 목회하실 때에는 이곳에서도 목사의 권위는 중요하게 인정되었으나 현재는 그렇지 않다. 나는 이러한 변화를 애석하게 여긴다. 교회 안에서의 목사의 권위는 인정되어야한다. 

단, 목사의 권위는 목사가 선포하고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목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되뇌일때 권위를 가진다. 이를 위해 목사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고, 교회는 이를 알고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자로서의 목사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이 권위를 가지고 목사는 심방하여 성도들을 살피고 권면한다. 


목회의 열매

끝으로 목사로서 직면하는 실존적인 질문에 대해 답을 하고자한다. 목사가 목자로서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자문할 수 있다: "과연 나의 목회적 돌봄이 열매를 맺고 있는가? 나의 목회적 돌봄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벽돌장이는 자신의 노동의 결과물을 즉시 확인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웃에게 자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목사는? 목사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그 누구도 믿음에 이르게 할 수 없다. 바울사도가 이야기 하였듯이, 목사는 그저 심고 물을 줄뿐이다. 열매는 하나님께 달려있다(고전 3:6).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게 해주시어 누군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게 될 때, 목사는 그저 기쁘다. 나는 지난 40년간 세속화된 네덜란드 문화에서 목회하면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을 자주 보았다. 목사는 교회를 떠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 자신의 수고가 결국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자문하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목사는 이사야 55장 10-11절의 말씀을 믿고서 좋은 목자로서의 노릇을 멈추지 않아야한다.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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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ucius de Graaff 목사는 화란 개혁교회(해방파)의 목사로서 41년간(1972-2013) 봉사하였다. 이 기간 동안 헝가리 선교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지금은 캄펜신학교(해방파)의 교목으로 봉사 중이다. 신학뿐만 아니라 이슬람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여러 편의 책을 출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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