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획기사는 '교회의 정치화, 위험하다'라는 주제입니다. 어느 시대의 교회든지 소위 말하는 정교분리문제로 인해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교회의 욕망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했고요. 성경과 현실 양자에 촉수를 예민하게 들이대고 있을 때 제대로 발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교회가 세상에 크게 영향을 미치려고 하다가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기에 교회가 제대로 정치화되기를 바라면서 연재를 시작합니다. - 편집자 주 |
크리스천 극우 청년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박종현 목사
(전도사닷컴 편집장, 함께심는교회 담임)
1인 미디어가 우경화되고 있다
1인 미디어의 빠른 발달과 함께 극우 콘텐츠가 눈에 자주 띈다. ‘극우’라면 태극기를 앞세운 나이 많은 기성세대를 떠올리겠지만, 온라인에서 이런 종류의 콘텐츠를 기획, 연출, 출연하는 이들은 대부분 청년이다. 눈여겨볼 점은 이들이 만든 콘텐츠의 성장 속도다. 대표적 매체인 유튜브에서 극우 개신교 채널의 성장은 기독교 카테고리는 물론 여타 영역과 비교해도 매우 빠른 편이다. 20세기 후반부터 눈에 띄게 둔해진 개신교의 성장 속도와 비교해 보면 대조적이다. 이들 채널은 겉으론 유튜브 저널리즘을 표방하지만 그 실상은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처음엔 개인방송으로 시작하는 듯 하지만, 점차 기성 조직과 결합해 오프라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양새다. 이러한 이상 현상은 정치적으로는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에 따른 2017년 정권교체 시기와 맞닿아 있다. 그 시기에 1인미디어 플랫폼의 폭발적 성장과 맞물리면서 그 약진이 더욱 두드러진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영상콘텐츠 제작 비용이 급속히 줄어들고 대중화되면서 생산자 계층이 더욱 다양해진 현상 자체는 미디어 민주주의 관점에서 보면 고무적이다. 하지만 다음의 질문을 피할 순 없다. 왜 크리스천 청년들이 뜻밖에도 비슷한 유형과 내용의 극우 콘텐츠에 몰려들게 된 걸까.
한국 개신교의 성장과 밀레니얼 세대
주지하듯이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개신교의 성장은 그 축을 함께 한다. 분단과 개발, 군사독재 상황이 조성한 심리적 불안, 가치관의 혼란에서 대중을 구원한 것은 ‘교회’였고, 교회의 일원들은 그 안에서 느낀 소속감과 연대감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와 가치관을 찾을 수 있었다.1) 특히 독재 정권의 발호와 그에 발맞춘 고속성장에 적절히 편승한 개신교는 마치 그 보상인 듯, 양적으로 팽창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시대의 관점에서 성공한 이들이 각 개교회의 중직에 차지하게 되었고, 이들은 강력한 자본과 피플 파워에 해당하는 많은 교인수로 대표되는 미래자산을 바탕으로 교회의 양적 성장을 일궈나갔다. 이 과정에서 목사들은 교회와 자신들을 그 자리로 이끈 가치관을 지키고 강화하는 일에 종사하며 이를 신학적 바탕으로 삼았는데, 이미 전쟁이라는 거대한 악과 그 무자비한 힘을 직간접으로 경험했던 기성세대에게 익숙한 친미반공과 그것을 극복하게 한 번영신학이 그것이었다. 물론 일부 진보 개신교인들과 목회자들이 반공과 근대화의 틀을 벗어나 민주주의와 인권, 사회적 약자 돌봄을 몸소 실천해 온 게 사실이다.2) 그러나 한국 기독교는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0년대 이후에도 반공친미의 깃발아래 모여 권위적이며 폐쇄적, 배타적인 방향을 고집하고 말았다. 이는 대형교회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성공신화에 물든 번영신학을 전수 받은 교회를 통해 자라난 다수의 한국 교인들 역시 이러한 내러티브에 익숙해진 채 새로운 세대를 맞은 셈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를 가리킨다. 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이기에 IT기술을 다루는 일에 두려움이 없고, 특별한 교육 없이도 빠른 디지털 적응력을 발휘해 유튜브 등을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기술을 습득해 나갔다. 이러한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은 명확하다. 소셜미디어와 디지털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만, 관계 그 자체보다 적절히 자신의 감정과 상태를 나타내고 목소리를 높이는 일에만 몰두한다는 점이다. 또한 자기애와 자존감이 높기 때문에 자신을 충족하기 위해 과감하게 소비하기도 하고,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을 줄도 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떻게 이런 세대 가운데에 극우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걸까? 무엇보다 합리적이고 개인적인 취향에 몰두하는 이들이 말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들 밀레니얼 세대가 부모 세대나 그 윗세대를 통해 경제적으로나 교육적으로 많은 혜택을 받았음을 지적한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너는 특별하다’ 혹은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들으며 자랐지만,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질 낮은 일자리와 학자금 대출에 좌절하게 되면서 무너진 신자유주의 경제는 이들에게 불안감과 부담을 가중했다.
부모세대 혹은 그 이전 세대가 이룩한 평범해 보이는 것들은 더 이상 자신들만의 힘으로 성취할 수 없는 높은 성취가 되었고, 그들은 기성세대가 이루어놓은 세계와 그들의 세계관에 더 깊이, 심지어 맹신적으로 빠져들게 된다. 특히 ‘이것’이 일반적인 기성교회의 강단으로부터 끊임없이 강화되었는데, 그것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포스트모던세계에서 잘 작동하지 않는다 해도 그것 자체를 신앙으로 삼고 믿게 된 것이다.
유튜브 저널리즘의 작동원리
앞서 언급한 우경화된 유튜브 콘텐츠들은 극우세력에 의해 기획 및 운영되면서 특히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젊은 층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진보성향의 청취자들이 팟캐스트를 통해 정보와 의식을 공유했다면, 젊은 보수 세력들은 유튜브를 통해 급성장하고 있다. 촛불혁명은 박근혜 정권을 심판하는 역할을 수행했지만, 그 반대급부로 극우보수층을 결집하는 악의 부메랑과 같은 위험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유튜브를 방송채널로 활용하고, 카페나 밴드를 통해 소통하며, 카카오톡을 통해 가짜뉴스에 가까운 선동적이며 근거 없는 콘텐츠를 퍼 나르고, 오프라인 강좌와 모임을 통해 결집한다. 전통적인 극우단체들 특히 기독교 단체들을 통해 모인 자본을 적극 활용하기 때문에 그 규모 또한 날로 커지는 상황이다. 이렇게 쏟아지는 정보들 속에서 일부 청년들은 자신들의 교회 강단에서 생산되는 정보와 일치하는 정보들을 확인하고, 그것을 자신의 세계관과 신념체계에 편입시킨다. 이것이 확인되지 않은 가짜뉴스라 하더라도 스스로 필터링할 수 없게 되는 이유이며, 크리스천 극우 청년은 이러한 검증되지도 않은 콘텐츠를 숙주삼아 탄생하고 있다.
마치며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보수와 진보의 합리적 대화는 객관적 인식을 전제로 한다. 이를 훼방하는 왜곡된 정보는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극우가 자신들의 대척점에 있다고 주장하는 종북세력은 1990년대에 들어서며 이미 유통기한이 끝난 가상의 적에 불과하다. 우리 시대의 교회는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조국교회는 이제 낯설고 새로운 포스트모더니즘 문화의 풍랑 속에서 복음의 본래적 가치 회복을 고민하는 건전한 보수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중차대한 시기에 과거의 왜곡된 망령에 사로잡힌 극우 청년들이 다른 곳도 아닌 교회를 통해 양산되고 있다면, 우리는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걸까.
1) 김선일, 『한국 기독교의 성장 내러티브』(서울:CLC, 201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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