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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기사는 '데이트'입니다. 청년들이 데이트를 통해 결혼에까지 이르는 과정은 파란만장할 것입니다. 아슬아슬한 데이트, 데이트과정과 그것을 끝장내면서 평생 씻기 힘든 상처를 주고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요. 당사자만이 아니라 지켜보는 이들은 할 말이 참으로 많을 것이고요. 성경은 데이트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요? 교회안에서 청년들이 아름답게 데이트하는 것에 대해 나누려고 합니다. - 편집장 주

 

  

갈등,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안정진.jpg

 

 

 

 

 

 

 

 

안정진 목사

(한울림교회)

 

 

 

사라는 이제 스물아홉 살의 그리스도인 자매다. 그녀는 두 살 위의 이삭과 교회에서 만나 이년 넘게 교제하고 있다. 둘은 서로를 결혼상대로 생각하며 진지하게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둘 사이에는 미묘한 감정의 골이 생겨났다. 최근에는 그 갈등이 조금씩 깊어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사라는 이삭을 생각하며 아버지를 생각했다. 사실, 사라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가장으로 아내나 자녀들에게 군림하는 분이었다. 사라는 아버지가 가정에서 권력자요, 지배자라 생각했다. 사라는 그런 아버지와는 달리 자신을 존중해 주는 이삭에게서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삭에게서 지배자 같은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러자 사라의 마음은 조금씩 불안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를 참을 수 없게 했던 것은 ‘남자가 여자 위에 군림할 권리가 있다’는 이삭의 생각 때문이었다. 지난 주말에는 터질 것이 오고야 말았다. 그 시작은 ‘페미니즘’이었다. 이삭은 페미니즘과 관련하여 여성을 비하하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그때 수개월 동안 쌓인 사라의 감정이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당황한 이삭은 사과를 했지만, 화를 내는 그녀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그는 사라에게 헌신적이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도 그런 것이 사라는 지나치게 이삭에게 의존적이었다. 사라는 관계를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 이삭의 삶에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둘이 가까워지는 시간은 다른 모든 친구와 멀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삭은 이런 생각이 밀려오자 억울한 마음이 들었고, ‘내가 뭘 잘못 했기에. . .’하는 생각에 울컥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둘은 생각했다. ‘내가 너무 심했나?’ ‘뭐가 잘못된 것이지?’ ‘무엇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창조의 러브스토리

성경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말씀한다(창 1;26-27, 5:1, 9:6, 약 3:9). ‘하나님의 형상’은 ‘사회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성부, 성자, 성령은 구원의 드라마 전체에서 서로 협력하며, 의존하는 관계다. 물론, 이 세상이 있기 전부터 삼위일체는 서로 사랑하시며, 교제하셨다(요 17:24). 이런 사회적인 맥락에서,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신 말씀은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다(창 2:18). 이것이 여자를 창조하신 이유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성(性)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협력하며, 서로 보완하며 살아가도록 당신의 형상으로 지으신 것이다. 이성과의 교제는 이렇게 하나님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평등하게’ 지으셨다. 하나님은 남녀 모두에게 땅 위에서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고 하셨으며, 남녀 모두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으며, 남녀 모두에게 다른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다(창 1:28). 우리가 “문화명령”이라 부르는 이 소명은 남녀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다. 확실히 해 둘 것은, 창조 기사 그 어디에도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거나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고 암시하는 곳은 없다. 가령, 아담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와에게 말한 것은(창 2;23), 기쁨의 노래였지, 여자를 향하여 어떤 지배권을 주장한 것이 아니다. “돕는 배필”은 어떤가? 여자는, 남자보다 낮은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돕는’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요”(시 70:5), “우리의 도움이 여호와께로다”(시 121:2)라고 할 때도 사용된다. 하나님이 우리의 도움이시라고 말할 때 누가 하나님을 자신보다 낮은 조력자로만 보겠는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여자는, (하나님같이) 남자를 돕는 자 혹은 남자와 “함께 일하며” 이 세상을 다스리는 자이다.

 

 

낙원에서 생긴 문제

그러나 죄가 들어오면서 이 러브스토리는 망가져 버리고 말았다. 가장 먼저, 남자와 여자는 벗은 몸을 가리고 하나님과 서로에게 숨어 버렸다. 하나님이 불순종의 이유에 대하여 묻자, 남자는 여자를 비난하면서 마지못해 죄를 고백했다(창 3:12). 한편, 여자는 죄를 고백하면서 자신이 남편에게 미친 영향은 말하지 않고 뱀에게 탓을 돌렸다. 이렇게 남자는 여자를 비난함으로써 대적하고, 여자는 남자를 무시함으로써 자신을 남자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 버렸다. 죄와 불순종이 두 사람에게 미친 결과는 출산의 고통과 노동하는 수고, 그리고 그 마지막은 죽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세기 3:15에서 이 모든 일그러지고 망가진 것을 회복할 구속자에 대한 소망을 주신다. 그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하실 분이다. 이 모든 타락의 결과를 되돌릴 분이다. 그분이 오기까지 남자와 여자는 갈등과 긴장 속에 놓여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여자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 3:16). 이 말씀은, 남자와 여자의 갈등이 하나님의 형벌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여자는 남자에게 사랑과 친밀함을 갈망한다. 그러나 남자는 아내의 갈망을 채워주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지배하려고 한다. 여자는 남편을 원하지만, 지배자를 얻게 된 것이다. 다스림의 왜곡이 일어난 것이다.

   실제로 모든 시대의 남성이 여자(아내)를 문자 그대로 노예로 만들거나 군림하려고 하지 않았다. 남자는, 하나님이 새로운 본성을 창조하여 주시지 않는 한 그런 악함에 기울어지기 쉬운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사라의 아버지와 이삭처럼) 모든 남자는 여자들 위에 군림할 어떤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잘못된 생각을 한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남자들의 불법적인 다스림에 고통하고 신음하는 여자들이 있다. 합법적이고 책임감 있어야 하는 다스림(섬김)이 죄로 인하여 불법적으로 군림하고, 심지어 폭력적인 지배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이와 반대로, 여자는 남자와의 관계를 획득하거나 유지하기 위하여 과도하게 남자에게 밀착하려고 한다. 그런 나머지 하나님이 주신 문화적 소명을 성취하는 일에는 소극적이거나 침묵한다. 아내와 엄마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감당하는 것만으로 자기 역할을 축소하기도 한다. 물론 자녀를 양육하고 가정을 돌보는 일은 어떤 가치와도 바꿀 수 없이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부르심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 나아와 그분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참여하는 신자로서의 부르심이다(마 6:33). 낙원에서, 그 부르심은 구원자가 오시기까지 결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받고 말았다.


 

타락의 결과 뒤집기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하신 일 중의 하나는 창세기 3:16의 결과를 바꾸신 일이다. 그 일은 혁명적인 일이었다. 첫 사람 아담과 달리, 마지막 아담이신 주님은 그의 신부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 주셨다. 그의 다스림(섬김)으로 남녀의 갈등을 포함하여 하늘과 땅의 모든 일그러지고 뒤틀린 것을 올곧게 하시었다. 사복음서 안에서, 여자에 대하여 비하하거나 부정적인 말씀을 하시는 주님을 결코 만날 수 없다. 심지어, 주님은 부활의 첫 증인으로 여자를 세우신다(마 28:1), 오순절 후에, 사도들이 가는 곳마다 여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들로 여자들이 활동하는 것을 본다. 주님은 여자들을 그리스도의 나라를 받는 공동의 상속자로 준비시키신다. 오순절에 성령이 오셨을 때, 베드로는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 . . 그때에 내가 내 영을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 .”(행 2:17-18). 그리스도는 그의 남녀 종들을 준비하셨고, 마침내 성령이 강림하시던 날에 창세기 3:16의 결과가 뒤엎어졌다. 사도 바울은 오순절 이후로 유대인과 비유대인, 종과 자유인 사이의 장벽뿐 아니라, 남자와 여자 사이의 막힌 장벽도 무너졌다고 말씀한다(갈 3:28). 그리고 선언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오순절에 남녀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그 나라의 동역자, 그 나라의 공동 상속자로 부름을 받았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충만을 받은 새 아담과 새 하와(그리스도인)는 공동의 목표인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는 동반자이다. 물론 지금도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고 있다. 마귀는 삼위 하나님이 이루어 놓으신 새로운 질서를 할수 만 있다면 깨뜨리고 싶어한다. 다스림(섬김)을 군림과 지배로 바꾸고, 차이를 차별로 평등을 불평등으로 바꾸려 한다. 그러나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에는 이 모든 왜곡과 비틀림과 불안전함이 비로소 완전해질 것이다. 신자는 종말에 올 그 승리를 소망하며 지금 현재에 말씀을 붙들고 싸우는 사람이다.

 

샬롬을 향하여

이삭은 집으로 돌아와 성경을 묵상하며, 그 밤에 주님을 간절히 찾았다. 무엇보다 ‘샬롬’을 위하여 기도했다. 성령께서 이삭의 죄를 건드리셨다. 눈물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주님처럼 섬기고 희생하려고 하지 않고, 군림하고 지배하려고 했던 자신의 못난 모습이 보였다. 사라를 비난하고 원망했던 자신의 모습으로 괴로웠다.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지” 않고 세상의 지배적인 가치를 따라 생각하고 있었던 자신이 몹시 부끄러웠다. 이삭은 주님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내일 사라에게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용서를 구하기로 했다.

   사라 역시 그 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삭의 생각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어떡하지, 그러면. . . .’ 사라는 다시 아버지의 모습이 이삭과 겹쳐져 절망감으로 우울해했다. 그러나 사라는 감정에 지지 않고 엎드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로 했다. 곧 성령께서 사라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해 주셨다. 사라는 이삭의 마음이 변화되도록 간절히 성령께 구했다.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사라의 죄를 깨닫게 하셨다. 성령은 남자 친구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얼마나 의존적이며, 이기적이었는지를 깨닫게 하셨다. 또한 아버지를 미워하고 정죄했던 죄를 깨닫게 하셨다. 사라는 마음이 아팠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의 이기심과 사랑하지 않았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화를 참지 못한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삭과의 교제와 자신의 가정에 거짓된 평화가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가 있기를 구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더 큰 부르심을 생각하며 사라는 조용히 찬송을 읊조렸다.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참사랑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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