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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이번 기획기사는 '코로나 19와 신앙생활'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전세계가 큰 두려움과 혼란에 빠졌고, 우리 한국사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니, 이제는 한국이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걱정거리가 되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이 코로나 19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코로나 19가 우리 신앙생활에 큰 변곡점이 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판과 예배논쟁부터 시작하여 세상에 대한 태도 등 코로나 19가 바꾸어 놓고 있는 우리 신앙생활의 모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 편집장 주

 

 

재난 속의 그리스도인,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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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근 목사

(다우리교회)

 

 

‘코로나’(Corona), 왕관처럼 예쁘게 생긴 바이러스(Virus)의 모양을 따라 붙여진 이름이란다. 일명 ‘코로나19’는 사스(SARS)로 알려진 ‘중증호흡기 증후군’의 일종이다. 2019년 12월 1일 중국 후베이성에서 최초 발견 된 후 확산의 속도가 빨라졌다. 우리나라에도 코로나19의 확산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공포에 휩싸여 있다. 세계도 ‘팬데믹’(Pandemic) 상황이 올 지도 모른다고 염려하고 있다.

 

   과거 흑사병(Pest)으로 알려진 전염병이 14세기 중앙 아시아에서 발병해 실크로드를 따라 서양과 중국으로 퍼져나갔다. 유럽 총 인구의 30-60%가 죽었다고 하니, 대단했다. 흑사병은 17세기까지 산발적으로 발병했다 사라지곤 했다. 이 과정에서 거지, 한센병 환자, 외국인 특히 유대인이 학살을 당하거나 집단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마녀사냥처럼 희생양이 된 것이다. 특히 유대인이 애매히 박해를 받았다. 자국민에 비해 유대인의 감염률이 턱 없이 낮았기 때문이다. ‘저 불쾌한 유대인들이 우리 도시에 질병을 퍼터린다.’고 생각했다. 평소 게토를 이루며 살던 유대인 혐오가 가미된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지만 먹혔다. 나중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유대인은 자주 손을 씻는 종교적 관습 때문에 감염이 덜 했다고 한다.

 

   재난 가운데 그리스도인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이 ‘코로나19의 발생과 확산은 하나님의 심판이다’라는 말한다. 이런 생각은 코로나19의 확산만큼이나 널리 공유되고 있는 듯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런 말을 들을 때 불편한 마음이 든다. 왜냐하면 모든 재난이 하나님의 심판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재난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이웃인데 그들을 향해 심판의 말을 쏟아내는 것이 과연 지혜로울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필자는 누가복음 13장 말씀이 생각났다. 이 본문을 기초로 재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정리해 본다.

 

 

첫째: 재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인가?

 

   성경에 의하면 모든 재난과 고난이 하나님의 심판은 아니다. 욥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욥에게 닥친 재난은 죄에 대한 심판이 아니다. 욥에게 닥친 재난은 까닭 없는 고난이었다. 욥의 친구들이 와서 욥에게 죄를 실토하라고 회유하고 설득하고 위협했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의 잘 난 지식에 불과했다. 일반적으로 ‘인과응보적 삶의 원리’는 맞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일반적 원리를 초월하는 분이다. 재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도 그와 같아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시공간에 제한을 받는 인간은 그 크신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없다. 더군다나, 피조물인 인간은 원 그림이 없는 수백 만 장의 퍼즐 한 조각에 불과하다. 주변 조각을 바라보면서 무슨 평가와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예수님은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요 9:2)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

 

   인간은 너무 쉽게 타인의 인생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집에 우한이 있으면 최근 혹은 예전에 범했던 죄를 들먹이며 ‘천벌을 받는 거야!’라며 한 마디 한다. 어려움 당한 사람이 있으면 같이 울며 도움을 주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강도 만나 팔 다리 부러지고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자를 향해 ‘왜 그렇게 조심성 없이 행동했냐? 네가 당한 것이니, 네가 책임져라’라는 정죄는 옳다 하더라도 적절하지 않다. 재난이 심판인지 아닌 지는 하나님이 아신다. 그 판단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나중에 결론 나게 되어 있다. 재난의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이 할 것은 재난 당한 자의 이웃이 되어 주는 것이다. 재난의 상황에서 이웃 사랑을 행하기 쉽지 않다. 어려운 이웃 사랑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비난과 심판의 말을 내 뱉기 쉽다. 조심해야 한다.

 

 

둘째: 재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누가복음 13장 1-5절을 보면, 두어 사람이 예수님에게 와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1절)을 알려 주었다. 이 말을 예수님에게 전한 이유가 무엇일까? 문맥을 볼 때 빌라도에게 처참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죄가 크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들은 그런 악한 자들에게 비해 의롭다고 인정받고 싶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살해당한 갈릴리 사람들을 변호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은 열심당원이었을 수도 있다. 민족주의자이고 독립자결단원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죽음이 하나님의 심판일 수 있음을 거부하지 않는다. 언약백성은 언약을 배신하고 떠날 때 “폐병과 열병과 염증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신 28:22)을 겪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새 언약을 거부하고 불신앙에 빠져 죄 가운데 살아갈 때 하나님의 징벌이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재난은 심판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재난이 하나님의 심판일 수 있다. 예수님은 그것을 인정하신 것과 같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더 들어보자.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2-3절)

 

   재난 가운데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태도를 유추할 수 있다. 재난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은 정죄하는 데 목소리를 낼 것이 아니다. 특별히 재난의 때에 빠지기 쉬운 유혹과 죄가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깨닫지 못하고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발견하고 정죄하는 것이다. 그런 자들을 성경은 ‘외식하는 자’라고 한다. 자기 내부에 있는 죄에는 눈을 감고 겉으로 드러난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는 큰 소리 치는 자가 외식하는 자다. 누가복음 13장 1-5절 바로 앞 본문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핵심이다.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눅 12:56-57)

 

예수님은 덧 붙여 한 사건을 더 언급하셨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4-5절)

 

   이런 재난이 일어나면 처참하게 죽은 불운(?)의 사람을 향한 사람들의 눈길이 심상치 않다. ‘저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 레, 저런 비참한 죽음을 당하는가?’ 하지만, 그런 태도는 옳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도토리 키 재기 하듯 인간이 서로 정죄하며 죄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잘못이다.

 

   코로나19의 재난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무엇일까? 재난을 당한 사람을 향한 정죄가 아니다. 재난 밖에 있는 자가 재난 안에 있는 자를 향해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니다. 재난 가운데 재난을 향한 정죄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려는 태도와 같으니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저들보다 더 의로워 재난 밖에 있다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재난, 그리스도인의 자세: 회개!

 

   그러면 재난 속에서 타인에게 눈을 돌리지 말고 어디를 봐야 한다는 말인가? 예수님의 권면을 들어보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3, 5절)

 

예수님의 회개의 외침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핵심이 “회개”이다. “회개”가 곧 “복음”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평상시에도 자신의 죄를 보고 회개해야 한다. 하지만, 재난의 때에는 더욱더 회개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재난의 때에 남을 정죄하고 비난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해야 한다. 더 겸손히 낮아져야 한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오해해 잘못 적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재난을 막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고 회개의 기도에만 열중하라는 말이 아니다. 중세교회는 흑사병을 종말이 온 증거로 보며 일을 하지 않고 고행을 통해 죄를 씻도록 유도했다. 이것 또한 적절하지 않은 적용이다. 그리스도인은 일상의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 단지 재난의 때에 타인을 정죄하지 말고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처한 일터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또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정부의 전염병 방제 시책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공무원들과 의료계에 종사하는 자들을 응원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들을 도와야 할 것이다.

 

   1665-66년 잉글랜드의 런던에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인구의 30-50% 가까이 죽었을 것으로 예측한다. 이때에도 ‘이 재앙은 런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다’라고 말하기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토머스 브룩스(Thomas Brooks) 목사는 런던을 떠나지 않고 흑사병 환자들을 돌보며 성도들을 위로하며 영혼을 살폈다. 그가 남긴 유명한 책이 있어 소개한다.

 

<고난 가운데 잠잠한 영혼>(그책의사람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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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성경 전체에 흩어져 있는 ‘고난’ 관련 구절들을 읽고 정리했다. 그 가운데 특별히 시편 39:9가 있다.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시 39:9)

 

    재난의 때에 그리스도인이 이런저런 말들을 많이 하는 것보다, ‘침묵’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나님은 재난 가운데도 여전히 살아 계시고 섭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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